메뉴

그 때 이해 안된 한 사람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1. 예수

초등학교 3학년때 사촌이 공자와 석가모니의 만화책을 주어서 잘 읽었는데, 한번은 예수 그리스도란 만화책을 줘서 불자인 내가 읽어도 될까? 망설이다가 읽었다. 십자가 장대 나무에 달려 죽은 모습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살아가려고 온갖 못된 일을 하는데 예수가 그렇게 좋은 말씀도 하고, 병자도 고쳐주고, 귀신도 쫓아내고, 음식도 먹여주고, 심지어 바다 위를 걸으며 풍랑과 바다도 잠잠케 하고 죽은 사람까지도 살리는 죄 없고 선한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가? 십자가에 달려 고개를 떨어뜨리고 피를 흘리며 죽는 만화 그림이 너무도 애처롭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나의 마음과 영혼 깊숙이 신비로운 인침으로 다가왔음을 뒤에 느꼈다. 지금도 그 모습이 가끔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마도 십자가의 은총이 닿았던 것 같았다. 신앙생활 67, 목회 54년을 돌아보니 어느 하나라도 십자가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었다.

 

2. 아브라함

중학교 때 처음 정식으로 교회에 나가 신성균, 김석규, 박기양 등 원로목사님의 설교는 믿음의 조상아브라함에 대해 늘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신생호를 타고 동해 바다위에 28시간 풍랑의 사경을 넘어 포항에 내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객지생활 고생 중에서, 아브라함은 고향산천 부모형제를 두고 어떻게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12:4) “갈 바를 알지 못하고”(11:8)갔을까? 다음으로 원로목사님들의 설교에서 100세에 기적으로 낳은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장작불에 불태워 제사를 드리라고 하신 하나님도 물론 아무 대꾸 없이 순종한 아브라함도 정말로 이해되지 않았었다.

 

3.

고등학교 때 1954~56년 대구에 하나뿐인 중앙동 반월당에 레이 선교사가 개척한 덕산교회에 다녔는데, 교회당을 지은 김기석 목사님이 포항교회로 가시고 후임 목사로 노재천 목사님이 부임하신 후 주일 낮 예배에 욥에 대한 설교를 하시고 저녁에도 하셨고 이어서 수요기도회에도 하셨다. 박 집사나 안집사도 수군거렸고 우리들 고등학생들도 노인 목사님이 설교 밑천이 떨어져서 계속 높은 목소리로 욥의 설교를 하시는가? 그런데 동방의 부자요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된그에게 내린 가혹한 환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것도 마귀에게 맡겼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욥은 오히려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찬양했다고 하니 더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1:20~21)

 

4. 모세

대학진학은 못하고 3년간 온갖 일하면서 가사를 돌보다 구약성경에서 애굽의 왕자가 살인자로 추방되어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 처가살이 40년후 80세에 시내산 가시떨기 숲에서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곧 야훼를 만나 사명을 받고 사지의 애굽왕 바로 앞에서 양치기 지팡이를 던졌는데 뱀이 되었고 애굽의 마술사들도 뱀이 되었으나 잡아먹혔는데 지팡이로 돌아왔을 때 잡아먹힌 막대기는 어딜 갔는지 그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그런데 바로 앞에 10가지 재앙이나 홍해 앞에 지팡이를 내밀어 갈라지게 한 것과 반석을 쳐서 생수를 낸 모세와 지팡이의 관계에 기적의 신비가 이해되지 않았다.

 

5. 엘리야

대학시절에는 지성의 발달에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성경의 기적 중에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36가지 중에 하나가 엘리야의 승천이었다.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인을 남겨뒀으나 열심히 특심한선지자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두려워해 나만 홀로 남았나이다”(왕상18:22)라고 절규했다. 그러나 갈멜산에서 7번 무릎 꿇어 드린 간절한 기도응답으로 하나님은 하늘의 불로 제물을 태워 주시므로 이방신 선지자 모두 진멸시킨 불의 사자 엘리야가 어떻게 불 말과 불 병거를 타고 회오리바람으로 하늘 어디로 승천했는가?

 

6. 예레미야

신대원에 입학해 정진황 교수에게 구약을 배우던 중 하나님은 눈물의 선지자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과 유다의 죄악을 지적하고(1~4) 예루살렘 거리의 의인 한사람을 찾으셨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5:1)

선지자 가운데 가장 예수님의 모형인 예레미야는 파란만장한 생애였는데 그는 자진해 비참한 삶을 바란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 따라 소명의 확신과 충성에서 형극의 길을 걸었다.

유명한 4대 선지자 중에 회개와 심판의 예언자 아모스, 고매한 복종의 예언자 이사야, 사랑의 예언자 호세아에 이어 예레미야는 멸망해가는 조국에 대해 회개의 직언으로 여러 번 배신자 매국노로 몰려 버림받고 투옥되어 고난받고, 유대 나라의 멸망 후엔 애굽의 다바네스까지 남은 백성을 따라가 예언하다가 자기 백성의 돌에 맞아 죽기까지 평생을 선지자로서 사명에 충성했던가!

 

7. 침례 요한

완고한 시골 목회를 시작하면서 신약에서는 그 누구보다 왕에게 바른 말 한마디로 투옥되어 헤로디아의 춤바람에 목 베인 오리라한 엘리야로 침례 요한이었다.

늙고 나이 많은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 가브리엘 천사의 예언대로 기적으로 낳은 침례요한은 광야로 나가 수련을 하고 백성에게 회개의 침례와 나사렛 목수 예수에게 침례를 주고 그는 흥하여야하겠고 나는 쇠하여야하리라라는 말씀대로 죽어갔는가?

목회하면서 온갖 집회에 참석했는데 유명 부흥사나 박태선, 나운몽, 문선명 씨들도 자기 인기가 높을수록 예수는 죽어가고 자기는 펄펄 살아 야단법석이더니 끝장은 이단에서 삼단 사단으로 빠져갔다.

 

8. 사도 바울

크다는 사울이 작다는 바울로 변한 것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로 고백한 살아있는 순교의 절규에서 우선 찾았다.

1981APGTSD. Min. 과정이 처음 신대원에 생겼을 때 교수 6명에 학생은 박영록 목사와 두 사람이었다. 파웰 박사는 홍콩신학교 교장으로 은퇴하고 귀국하지 않고 우리 둘에게 바울신학(pauline)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때야 이해할 수 없는 바울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사울, 바울, 첫 번째 선교사, 교회개척 목회자, 대사도로 바울의 장열한 순교여!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 전무후무한 복음의 영웅이여!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