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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한명국 목사의 회고록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라고 엄명한 말씀은 주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 혹은 최후명령처럼 바울 사도의 유언이요 최후명령으로 때를 얻든 못 얻든 영혼구령을 명령했다.

 

선전종이와 공짜 이발

해방 후 우리 마을엔 이발소가 없었다. 고모부 댁에 가서 이발을 몇 번 했는데 당시 이발 기계는 두 손으로 머리를 깎는데 기계 이빨이 여러 개가 빠진 오래된 기계라서 머리털이 잘 깎이지 않아 전진후퇴를 할 때면 머리가 아파서 여러 번 울곤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위로 머리를 깎아주셔서 학교에 갔더니 동무들이 머리칼을 소가 뜯어먹었다!”고 놀려댔다.


토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노란종이를 아무 말 없이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동무들의 말은 예수쟁이가 예수 믿으라고 하는 선전종이”(전도지)라 했다. 교회에 안 다니는 우리들은 놀려댔다. 어떤 때는 예수를 믿지 말고 나를 믿어라!”고 골목대장인 내가 먼저 소리치면 아이들도 작은 막대기를 흔들고 나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절에 몸을 판 불자인 내 기억으로는 그 노란색 종이에 쓴 글을 한 번도 읽지 않았고 찢어버리거나 던져버렸고 우리가 그를 놀려대도 그는 언제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했다.


그런 후 언젠가 동무들이 공짜로 이발해 주는 곳이 있다고 해서 따라가 줄을 서 기다렸는데 내 차례가 되어 가까이서 보니 바로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노란 종이를 우리 동리에 와서 나눠주는 그 예수쟁이가 아닌가!? 나는 당황한 나머지 달아날 수도 없고 해서 머리를 잘 깎고 고개를 숙인 채 인사를 하고 쏜살같이 도망쳐 왔다.


그 후엔 다시는 공짜 이발하러 가지 않았고 노란종이 나눠주러 그가 우리 마을에 왔을 때 놀려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은 모시개 장로교회 집사라고 했다. “역시 예수쟁이는 다른데가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말없이 전도지 주고 이발해준 집사님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의 전도는 말없이 전해준 노란색깔의 선전종이와 친절하게 무료로 깎아준 이발기계였다. 70여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놀려대던 초등학생들 거의 모두가 목사, 장로, 집사나 교인이 됐다. 무디의 전기를 읽은 후 대학시절부터 주머니에 전도지를 넣고 매일 한사람 이상 전도해 오게 됐다.

 

땅에 떨어진 전도지

수고스럽게 허리를 굽혀 집어볼 가치도 없는 작은 종이 한 장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한 젊은 아버지가 그 작은 종이를 집어 들었는데 거기서 그가 읽은 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인도에 사는 독실한 힌두교도로 그는 사원예식을 삶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여기는 철저한 힌두교도였다. 우연히 접어든 종이를 자세히 살폈을 때 그 종이에는 인생의 새로운 삶의 개념이 잘 설명되어 있었다.


그 내용을 읽어보니 그가 죄인이며 그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나 구하는 자에게 값없이 죄의 용서를 주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했다. 그 사람은 결국 목사가 되어서 복음을 전했다. 후에는 그의 두 아들도 선교사가 되어 새로운 지역에 예수의 기쁜 소식을 전한 결과 22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수천의 사람들이 주 예수를 믿음으로 참 자유를 만끽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의 작은 전도지가 엄청난 결과를 맺는 강력한 한 알의 씨앗이 됐다. 종이 한쪽 면에 복음이 인쇄되면 하나님의 능력은 그 종이의 뒷면에 붙어온다. 우리의 작은 정성의 헌금과 기도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작년에 동창회에 가서 400여장의 6면지 전도지 인생의 결단과 도전을 나눠줬고 한 번은 조금 요약한 오 인생이여 아 인생이여 아 시간이여전도지 140장을 수원역에서 천안역까지 전철 탄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나눠줬는데 한 사람이 세 번이나 거절해서 그만 뒀고 10여명은 녹음기를 듣거나 핸드폰을 보느라 반응이 없어서 옆자리나 무릎위에 조용히 잘 얹어두기도 했다. 전철전도를 하고 있는데 사복경찰 두 사람이 갑자기 오더니 이보세요, 지금 뭘하는거요?” “옆에 앉은 두 분이 대화 중에 복음에 관심을 보여 일어서서 설명하고 있어요!”했더니 열차 안에서 공중도덕상 물건도 매매하지 못하게 말리지만 전도도 못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수 십년을 만나는 사람에게 기회있는 대로 자연스레 전도를 하면서 하나님과 화목” "사영리등 전도지를 주머니나 가방에서 꺼내어 주고 지금은 내가 만든 몇 가지 전도지를 나눠주며 전도하고 있는데 무디 전도자처럼 70년 초까지 하루에 한사람에게 전달했고 그 후 수 10여년 서울교회 목회하며 은퇴하기전까지는 하루에 두 사람 목표로 하다가 은퇴후 하루에 5~10여명 기준으로 전철, 기차, 버스, 택시 기사, 비행기, 여객선, 정류소, 식당, 시장, 서울역, 길거리 등등 기회있는대로 전도지로 전도해왔고 지금은 기회있든지 없든지 무제한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전도하는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결과를 보고 있다.


한국 사람이나 여러 나라의 외국 사람 차별없이 자연스레 접근해 전도하는데 한번은 전철에서 외국인 두 여자가 동성애로 보여 말을 걸었더니 프랑스 사람이라 해서 반갑게 서툰 불어로 인사하고 불어노래를 불러주고 전도를 한 다음에 좋은 반응을 보았고 전도지를 찾으니 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밖에 없어서 앞으로 불어와 다른 나라 전도지도 만들 작정이다. 택시기사에겐 전도하기 아주 좋은 기회로 70년 데니 메로우(Danny Marow) 부흥사를 만난 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스펄전의 간증

영국의 스펄전(Sperjeon) 목사님이 택시를 탔을 때였다. 운전기사가 정중하게 맞으면서 이렇게 인사를 했다. “손님, 오래전에 모신 적이 있는데 또 다시 모시게 되어 반갑습니다.” “ 죄송합니다. 저는 기억이 안 나는군요” “10년전이니까 기억이 안 나는 것이 당연하죠. 10년전입니다. 손님이 제 차를 타셨는데 손님은 타자마자 저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를 믿느냐고 처음에 물었습니다. 처음엔 불쾌하면서도 손님이기 때문에 친절하게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손님이 목적지보다 멀리 가면서 나를 계속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는 결심을 안 했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에 집에 가서 저는 성경책을 펴놓고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나에게 얘기했던 예수님을 만났고 지금은 집사가 되어 행복한 사람입니다.”

한명국 목사 / BWA부총재, 예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