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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를 위한 효과적인 독서전략-13

탁월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 히포(Hippo)의 감독으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바로 「고백록」(The Confessiones)을 집필했다(A. D. 397-401년). 그가 죽고 난 이후에도 「고백록」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읽히는 불후의 명저다. 고백록은 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널리 읽혀진 책으로서 철학자들, 문학가들, 심리학자들, 신학자들, 평신도들, 심지어는 비기독교인들 까지도 애독하는 책이기도 하다.
특별히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안식이 존재할 수 없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절대적인 그의 신앙 표현은 오랫동안 빛나고도 남을 흔적이다.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신앙인의 진심어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당대의 주요한 철학들을 통해 걸어온 자신의 지적이고 영적인 여정을 고백적인 문체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이 치열하게 전개했던 육체와의 투쟁으로부터 자신에게 참된 자유를 주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그의 깨달음을 기록하고 있다.


고백록에는 한 권의 책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고 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의 유명한 철학자 키케로(Cicero)가 쓴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 고백록에 이렇게 기록했다: 주여, 이 책은 저의 모든 태도를 아주 분명하게 바꾸고, 제 기도를 주님께로 향하게 했고, 제게 새로운 욕망을 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저의 모든 욕망이 가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지혜의 불멸성을 염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로 돌이키기를 시작했나이다.

고백록에서 보듯이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그 속에 적힌 말 한 마디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거창하게 운명과 인생을 말하지 않아도 좋다. 좋은 책에서 뽑은 좋은 말 한 마디는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마음의 비타민이 될 수 있다. 감동과 기쁨, 사랑과 희망, 힘과 용기가 될 수 있다. 그의 고백처럼 한 권의 책이 얼마나 삶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교훈삼아 목회자는 책의 사람이자 독서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시대적으로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한마디로 그는 어렵고 힘든 시절에 독서인으로서 앞서간 영적 지도자였다.   
 
2. 존 웨슬리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1703년 6월 17일에 사무엘 웨슬리와 수잔나 웨슬리(Samul and Susanna Wesley)의 15번째 자녀이자 두 번째 생존한 아들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웨슬리는 불타는 사제관에서 극적으로 구출됐는데 어머니 수잔나는 이 때 하나님의 손이 웨슬리에게 특별히 함께 하셨다고 믿었다. 따라서 수잔나는 아들을 양육하는 일에 특별한 책임을 느꼈다. 1713년 웨슬리는 차터하우스 스쿨(Charterhouse School)에 입학하기 위해 런던으로 갔다. 여기에서 그는 6년을 보낸 후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처치 대학(Christ Church College at Oxford)에 진학해, 그 곳에서 1726년에 문학사를 받았다.


웨슬리의 초기 옥스퍼드 시절은 그의 영적 순례가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1725년 제레미 테일러의 거룩한 삶(Jeremy Taylor’s Holy Living)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Thomas à Kempis’s Imitation of Christ)를 읽은 후 웨슬리는 그의 생애를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 13년간은 이 헌신에의 결심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밝혀내기 위한 고뇌에 찬 시도로 채워졌다. 1738년 5월 24일의 올더스게이트 체험에서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결됐다. 그 곳에서 웨슬리는 그의 믿음에 생명과 능력을 더하기 위해 필요했던 개인적 확신을 발견했다. 이 때 이후로 웨슬리는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요 조직가가 됐다. 이후 60년간의 여생을 웨슬리는 여행하고 설교하며 끊임없이 활동했는데, 무려 25만 마일 이상을 주로 말을 타고 여행 했으며 4만 4000번 이상 설교할 기회를 가졌다. 웨슬리는 1791년 3월 2일에 수고를 그치고 안식을 취했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한 시대 속에서 영적 지도자로 아낌없이 헌신했던 웨슬리의 업적은 계속 연구되고 알려져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기독교 영적 지도자들 중에서도 웨슬리와의 만남은 마치 대양을 탐사하는 것 같아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를 만날 수 있다. 얕은 곳을 걸어서 갈 수도 있고 깊은 곳을 다이빙해 갈 수도 있다. 어떤 방법으로 찾아가든 거기에는 즐거움과 유익함이 있다.
웨슬리에게는 매일이 의미 있는 날이었으며 매순간이 “하나님의 순간”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매일을 기도와 성서연구와 경건을 위한 영적 훈련으로 보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은밀하게 준비된 일꾼 중에 자기의 백성들이 자기를 잊어버린 동안 하나님의 광야학교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낸 모세가 바로 그렇게 쓰인 일꾼이었고, 다윗과 침례 요한과 바울이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가 또한 그렇게 쓰인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최호준 목사 삼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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