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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본 갈라디아서의 구원론-27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다고 말한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부활로써 시작된 것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시작됐고 이제 성도들 안에도 부활의 생명이 역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 새로운 가족 공동체가 세워진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 공동체로 세워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온 세상의 ‘아버지’로 알려지기를 바라신다. 제임스 던은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예수를 죽음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을 덧붙임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바울의 서술이 합당하다고 한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로서 뿐만 아니라 죽음으로 악함을 끝낸 후에 재창조주로서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바울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로서 최고의 하나님이라는 더 넓은 개념과는 다르게, 바울은 하나님을 예수와 관련한 그의 행동으로 그리고 죽음에 대해 최후의 승리 안에서 충만함에 이르는 창조에 대한 뜻을 가진 하나님으로서 정확히 정의한다고 한다. 즉, 전통적인 유대인의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도 다르게, 하나님은 죽음 가운데서 이미 예수를 살려냄으로써 하나님 자신을 정의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1~4절에서 제이 루이스 마틴은 “바울에게 있어 유일한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기에 1~4절에 하나님이 아버지시라고 3번이나 언급했고 3~4절에서는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이시라 했다.  또 1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생명을 주시는 본질적인 행동을 행함으로써 그 자신을 나타내셨다”라고 했다. 티모시 조지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는데,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같은 문장에서 사용된다는 것은 그리스 문헌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이고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위치하고 그 뒤에 하나님 아버지가 위치한 것은 일반적인 순서와는 반대됐다고 하면서. 이러한 바울의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것과 하나님을 부르는 것 사이에는 구별이 없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1장 3절에서 로널드 펑도 “사도 바울은 은혜와 평강이라는 이중 축복을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단일화된 근원으로 돌리고 있다고 하면서 사도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구분할 수 있는 근원이나 각각 분리된 연결고리처럼 생각하지 않고 마치 은혜와 평강과 같이 연결된 하나의 근원으로서 생각하고 있음을 암시한다”라고 했다.


2) 하나님의 행하심
바울신학의 중심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며 그 초점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과 함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맞춰져 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분이라고 처음으로 소개한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을 존재론보다는 사역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히브리인들의 사고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나님의 사역(행하심)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헬라의 사고는 하나님의 존재여부에 관심을 갖고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창세기 1장 1절과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는 시간을 의미하는 면도 있지만 하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라는 의미가 더 짙다.


동일한 구절에서 바울은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이란 표현을 함으로 그는 하나님을 존재론적 이해보다는 사역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직면한 이후 바울은 주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성취하신 구속과 관련해 그 분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따라서 바울은 1절에서 성부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그 분을 존재론적 용어가 아니라 직능적이고 사역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갈라디아서 1장 3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했다. ‘은혜’와 ‘평강’의 근거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둔다.


바울서신에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구원의 역사에서 같은 분으로 제시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심을 표현한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구원의 뒷받침이 되는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1:15; 2:21)와 ‘그리스도의 은혜’(1:6) 둘 다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결합은 본질상 직능적(사역적) 측면에서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행하심임을 증거해 주는 것이라 본다.


이와 같이 갈라디아서 1장 1~4절에는 하나님의 성품이나 속성보다는 오히려 그 강조점이 하나님의 행하심에 맞춰져 있다. 즉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1절),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3절), 그리스도의 사역과 구원을 위한 기초인 하나님의 뜻과 아버지로서의 관심(4절),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 (5절)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구속하는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자유롭게 이 땅에 온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이며, 모든 사람들에 의해 존귀와 영광을 받을 분이시다. 육체로는 미천한 인류에 다가서는 듯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오른손으로 다시 살리셔서 십자가에서의 수치스러운 죽음을 변호하고 찬양하게 하셨다.


2. 하나님의 작정과 약속(갈 3~4장)
성경은 죄로 인해 시작된 구원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세전(엡 1:4)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가슴에 품으신 작정과 경륜으로 시작된 구원관을 말한다.
성경은 특별히 갈라디아서의 바울의 구원관은 피조물에 의해 시작된 다시 말해 피조물이 그 원인이 된 구원관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하나님 자신이 이유와 목적이 되신 구원관을 설명하고 있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나라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우시는 구원관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창세 후’라 하지 않고, ‘창세전’에 세워진 하나님의 작정이라 하며, 갈라디아서성령으로 인해 시작됐고 성령의 역사로 성취되는 성령의 약속이니 유업이라 했다. 그리고 내게 ‘예수의 흔적’이 있다 했다.  곧 창세전 하나님으로 시작하였고 그리고 내 안에 세워진 예수라 했다(갈 6:17).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역사 속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정과 경륜을 설명하려고 한다.


1) 하나님의 뜻(하나님의 작정과 경륜)
창세전에 세워진 하나님의 작정과 그리스도 안에 세워진 경륜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우리를 그 나라의 왕권에 참여 시키는 일과 관계있다. 창세전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세워진 뜻을 그리스도 안에 세워진 경륜이라고 한다. 이 경륜은 그리스도께서 인생 안에 오셔서 죽음과 부활로써 성취하시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도 그 경륜이 성취되어진다. 이러한 하나님의 작정과 경륜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안에 세워지신 것이요 함께 이루시는 사역이다.


‘하나님의 작정’이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란 말로써 에베소서 1장 11절의 문맥 속에 “뜻대로”가 등장했고 에베소서 3장 11절에서는 “영원한 목적”이란 단어로 사용됐다. 개역개정 성경에 “예정하신 뜻”으로 번역돼 있다. 영원한 목적이란 표현에서 ‘영원’은 시간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목적이 영원을 통해 흐르고 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목적이 모든 시간과 영원 이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 이를 하나님의 작정이라 한다.


김종이 목사 성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