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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사바와 와이로

도한호 목사의 목회와 상식-149

여러 언어 중에서 프랑스어가 우리말에 깊이 침투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70년대에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등 젊은 통기타 가수들로 구성된 남성그룹 ‘세시봉(C’est si bong)‘은, 알다시피, ‘It’s very good’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이며; 1960년대 말에 결성되어서‘육군 김일병’과 ‘청춘목장’ 등 건전가요를 불렀던 남성 그룹4중창단 ‘불루벨스 봉봉(Bluebells bonbon)’의 ‘봉봉’ 역시 ‘good’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이며; 색채, 의미, 느낌 등의 미묘한 차이를 의미하는 뉘앙스(nuance)와 ‘함께’라는 의미에서 출발해서 남녀 간의 ‘만남’으로 의미가 발전한 ‘아베크(avec)’도 프랑스어이다.


‘사바사바’는 알다시피, 뒷거래를 통해서 은밀히 일을 성취하는 것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이 말의 유래를 찾는 중에, 일제 강점기에 관청 일을 보러가는 사람들이 일을 쉽게 하려고 간혹 고등어를 가져가 일본인 관리들에게 선물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요즈음과는 달리 당시에는 고등어가 귀한 생선이었고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고등어는 ‘고기 魚’ 변에 ‘푸를 靑’을 쓰는 ‘고등어 청(鯖)’ 자로 표시되는 등푸른 생선으로서 일본어로는 사바(サバ)이다. 내지(內地)에서는 생선을 보관하는 방법으로 염장을 했는데, 큰 고등어 배를 갈라서 작은 고등어를 넣은 것을 ‘한손’이라 하며 함께 묶어서 보관하고 거래했다. 고등어가 두 마리이니 ‘사바사바’가 되었을 것이다.
‘와이로(わいろ)’는 뇌물을 가리키는 일본어인데 우리나라 국립국어원이 1977년 ‘국어순화용어자료집’을 내면서 일본어 ‘와이로’ 대신 우리말 ‘뇌물’을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그런데 필자와 함께 ‘세종일보’에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이자 극작가인 김용복(선생)이 지난 11월 13일자 신문에 ‘와이로’와 관련된 흥미로운 고사(古事)를 소개했다.


고려 명종 임금이 나그네 차림으로 변장하고 야행(夜行) 중에 어떤 선비의 집을 방문했다가 대문에 ‘蛙利鷺 唯我無蛙 人生之恨(와이로 유아무와 인생지한)’이라는 글이 붙은 것을 보았다.
이 글을 문자대로 풀이하면, 개구리 와(蛙), 통할 리(利), 해오라기 로(鷺)로 시작된 처음 석 자 ‘와이로’는, 백로(鷺)는 개구리(蛙)를 먹고 산다는 뜻이며, 다음 구(句)는 나만이 개구리가 없으니 내 인생이 한스럽다는 말이다. 임금이 주인에게 뜻을 물으니, 백로는 뇌물을 탐하는 부패한 관리를 말하고 개구리는 관리들이 좋아하는 뇌물을 뜻한다고 대답했다.


집주인이 자신의 처지와 타락한 세태를 한탄하는 글을 자기 집 대문에 써 붙였던 것이다.
임금은 집주인의 사람됨과 학문을 알아보고 후에 그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 등용해서 당대에는 나라의 외교문서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겼고, 다음 임금 고종 때는 재상에 올라 ‘동국이상국집’ 등 방대한 문집을 펴낸 고려조 제일의 문장가가 됐으니 그가 바로 이규보(李奎報,1168-1241)이다. 사바사바와 와이로, 그것이 어디서 유래했건 가까이 할 것은 못 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