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전국 교회들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모이는 예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복음의 열정으로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자는 의미를 더 부여해 정부가 제안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준수하며 주일 예배를 드렸다. 물론 아직 시기상조, 불안요소로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특히 대구·경북지역에서 적잖은 확진 환자를 양산했던 모 이단·사이비 단체의 모임 형태가 밀폐된 공간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근거리에서 집회를 진행했기 때문에 기성교회도 이 같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교단 소속 대부분의 교회들은 철저한 방역활동과 교회 방문자에 대한 신상 파악, 교회 내 주요 공간에 곳곳마다 설치한 손소독제와 일회용 마스크와 장갑 비치를 통해 정부가 요청한 7대 방역 규칙을 준수하고 있다. 더불어 성도들 또한 높은 의식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자발적으로 교회의 모임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거나 SNS를 통해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하고 위로하며 격려하고 있다. 온라인 예배라 할지라도 주의 거룩한 예배에 함께 동참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함께 헌신하며 온라인으로 귀한 예물을 드리기도 했다. 교회도 정상
세 자리수를 기록하던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지난주를 고비로 두 자리 수를 기록하며 코로나19 확산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같은 노력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연장하고 다중이 모이는 교회가 먼저 앞장서서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고 헌신해 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과 치료에 최일선에 서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도 매일같이 코로나19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국민들의 참여와 협조에 감사하며 특히 교회와 같은 종교단체의 협력을 항상 강조했다. 사실상 코로나19가 다른 나라에 비해 확산이 더딘 통계는 국민 모두가 조심하고 대비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4월 12일 부활절을 기점으로 많은 교회들의 온라인 예배에서 모이는 예배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4월 26일은 교단의 여러 지역 교회들의 온라인 예배와 예배당에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병행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중대본은 이런 사실을 주목하고 주말 브리핑을 통해 지난 4월 19일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를 2주 더 연장하는 발표를 하며 교회가 자발적으로 코로나19 확산에 노출되지 않도록 재차 요청하기도 했다. 교회도 정부가 제시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1347~1350년 유럽 전체 인구의 1/3이 죽음을 맞이했던 흑사병은 박테리아성 질병으로 중세 유럽의 주요 국가와 도시, 마을들을 강타하며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많은 도시에서 흑사병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법과 질서를 파괴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유대인 때문에 전염병이 생긴 것이라고 흑사병 발병 지역에서는 유대인을 탄압하고 학살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이와 함께 로마가톨릭교회의 횡포에 반감을 가지며 중세의 여러 국가들과 도시 국가 사이에서 세워진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전염병 하나로 정치·경제·사회·종교·문화 등 전 분야가 영향을 받으며 사회를 변화시켰다. 지금 우리의 현실도 코로나19로 심각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확진자들과 사망자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태 초기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주요 방역 체계 확립, 다중 이용 시설의 참석 금지, 교회 등 문화시설 행사 자율적 조정, 마스크와 손세정제의 생활화로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코로나19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매년 4월은 ‘국내선교회의 달’이며 특별히 4월 19일은 국내선교회 주일입니다. 국내선교회 주일은 국내선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후원하는 주일입니다. 4월 한 달 동안은 국내선교를 위해 전국교회의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려야 하는데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고, 한국교회도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국내선교회를 위해 후원해 달라고 하는 소리가 자칫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뇌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그러한 생각들이 확신에 찬 담대함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해야 될 사역이 중단된다면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그렇잖아도 미래학자들이 예상한대로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하면서 복음의 그래프가 2015년부터 하강 곡선을 그려가고 있는 때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강타하여 교회들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들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에 미국에서 희망의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코로나가 한창 극성을 부릴 때에 미국의 두 교회에서 한국의 작은 교회들을 위해 모금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서 코로나19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아침마다 뉴스 검색을 통해 확진자나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출근이나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사무실이나 매장을 방문할 때에는 손소독제를 가장 먼저 찾아서 사용한다. 카페에서도 가급적 넓고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곳을 골라 띄엄띄엄 앉는다. 동네 주변이나 대형마트 등 일상의 거리 풍경도 달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대형 쇼핑몰이나 마트, 역세권의 발걸음은 뜸해졌다. 사람이 붐비거나 혼잡함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지하철이나 버스도 출퇴근 시간의 혼잡함은 옛말이 됐다. KTX 이용객도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교회는 모든 성도들과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성도들이 이용하지 않음에도 수시로 방역을 진행한다. 예배는 사역자 위주로 최소한 3~5m이상 떨어져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당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 대부분의 교회 모임은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예배 또한 온라인 실시간 방송으로 전환해서 각자의 처소와 공간에서 별도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19로 인해 변한 우리의 모습이다. 바이러스 질병 하나가 나라 전
이제는 산책을 하며 오고 가는 사람들이, 눈으로 웃음을 주고 받으며 스치며 한마디하며 지나가던 정겨운 모습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맞은편에 사람이 보이면 오솔길을 벗어나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씁니다. 길을 벗어나 수풀 위 아래로 이혼한 부부처럼 피해가는 모습이 일상화 되어가고 있으니 황폐화 되어가는 사회의 정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구를 대표하는 치맥축제(치킨과 맥주)때 행사장 주변에 모이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고 흥을 즐기는 도시가 고요하고 삭막하게 됐습니다. 어쩌다 사람이 보이면 이번 대구·경북지역에 코로나19를 확신시킨 신천지가 아닌가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불신의 서글픈 모습이 현실입니다. 기침을 하며 힘들어 하며 행단 보도를 건너면 다가서서 도와주던 정이 사라지고, 경계하고 혐오스럽게 생각하며 피해가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골목에서 성도들을 만나면 할렐루야 하며 반가워하던 때가 몇주 전인데, 간단하게 목례로 인사만 하고 지나가는 모습은 세상 환경에 이렇게 빨리 적응이 되어가는 모습에 놀라고 있습니다. 혹 교회 성도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골목길을 지나가거나, 사람을 만나며 다니는 직업을 둔 분이 교회 출석하면 그 사람을 못 믿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서 코로나19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아침마다 뉴스 검색을 통해 확진자나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출근이나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사무실이나 매장을 방문할 때에는 손소독제를 가장 먼저 찾아서 사용한다. 카페에서도 가급적 넓고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곳을 골라 띄엄띄엄 앉는다. 동네 주변이나 대형마트 등 일상의 거리 풍경도 달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대형 쇼핑몰이나 마트, 역세권의 발걸음은 뜸해졌다. 사람이 붐비거나 혼잡함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지하철이나 버스도 출퇴근 시간의 혼잡함은 옛말이 됐다. KTX 이용객도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교회는 모든 성도들과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성도들이 이용하지 않음에도 수시로 방역을 진행한다. 예배는 사역자 위주로 최소한 3~5m이상 떨어져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당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 대부분의 교회 모임은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예배 또한 온라인 실시간 방송으로 전환해서 각자의 처소와 공간에서 별도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19로 인해 변한 우리의 모습이다. 바이러스 질병 하나가 나라 전
코로나19로 인해 그야말로 비상시국이다. 2월 중순까지만 해도 끝이 보이는가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신천지 사태로 인해 확진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 1일 오후 4시 기준으로 국내 전체 확진자 수는 3736명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대구가 2705명, 경북은 55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렇게 많은 수가 대구경북 지역에 밀집돼 있어 해당지역의 주민은 물론이고 교회들 역시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경제 마비는 물론이고 누가 신천지인지 일반인은 알 도리가 없으니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대구 서구 방역총괄팀장이 신천지 교인이었다는 소식까지 더해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확진자 증가 사태의 핵심으로 떠오른 신천지의 은밀한 특성으로 인해 비단 이 지역만이 아닌 다른 지역 또한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해짐은 물론이다. 점차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치권을 비롯해 많은 언론들이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세계 모두가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검사 속도에 경의를 표하고 있지만 국민들 입장은 매일 늘어가는 확진자 수가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서울의 대중교통만 해도 마스크
지금 세상은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졌다.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은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다.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많이 소유하기 위해 돈을 쫓아 살았다. 그러다보니 인격이 작아졌다. 가족을 놓쳤다. 건강을 잃었다. 크게 소유했지만 존재의 크기는 작아졌고, 행복을 잃었다. 감히 말해본다 식욕은 몸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다. 사는 동안 불필요한 잉여욕망과 싸워야 한다. 새들은 적게 먹고 적게 배설한다. 새들은 날기 위해서 뼛속까지 비운다. 그렇다고 새들이 불행하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뼛속까지 비웠다고 새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도 없다. 오히려 새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잘 먹고, 잘 산다. 가진 것이 적었을 때가 걱정거리가 가장 적었다. 감히 말해본다. 부족할 때 보다는 풍족했을 때 더 괴로움이 많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적게 가지면 괴로움도 적고, 바라는 것이 작으면 불
지금 온통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를 보면서 나라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국민이 되어서 내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하겠지만 그냥 흔히 하는 말대로 나라 걱정이 아니라 지금의 이 나라를 덮고 있는 코로나19라고 하는 신종 바이러스의 악한 기운 때문이다. 중국 우환으로부터 침투한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공포로, 특히 대구에서 소위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신천지에 의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지난 2월 24일 오후 5시를 기점으로 확진환자가 833명을 넘어섰으니 오늘밤 얼마나 더 늘어날지 심히 두렵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분의 창조주 되심과 섭리, 그리고 심판주 되심을 믿는다. 또한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며 절대 주권자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 또한 성경에 기반을 둔 신앙이다. 그런 맥락에서 ‘온역’, ‘전염병’의 문제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많이 사용한 이야기로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는 죄인들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전염병으로 징벌하실 때, 정말 무고한 백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