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이 돌아왔다. 참 빛인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해결하고 율법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으셨다.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셨다는 사실에 목자들은 물론 동방박사들까지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경배를 드렸다. 그리고 이때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함께 찬송을 드린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각 개교회들은 성탄트리를 장식하는 것은 물론 성탄절 칸타타를 연습하며 이 땅의 평화와 사방에 펼쳐질 복음의 은혜를 만끽한다. 교회뿐만 아니라 서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청 광장과 대한민국의 입법기관인 국회의사당에도 성탄트리가 세워지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 분단의 상흔이 씻기지 않은 한반도 문제와 지역, 세대, 남녀 갈등 등 어느 때보다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절실한 2018년의 성탄을 맞이하고 있다. 교회는 빛을 발해야 한다. 복음과 사랑의 빛을 온 세
로티 문 선교사는 미국 남침례교(SBC) 선교의 전설이다. 해마다 남침례교 교회들은 성탄절 헌금으로 로티 문 선교사의 이름을 딴 ‘로티 문 헌금’(Lottie Moon Offering)을 드린다. 로티 문 선교사(1840∼1912)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격변기의 중국에서 헌신적 선교를 했다. 그는 선교지에 나간 여성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영향력 있는’ 최초의 여성 선교사다. 7남매 중 넷째로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로티는 남북전쟁 전에 남부 아가씨에 걸맞은 교육과 귀족들이 누렸던 특혜를 받으며 자랐다. 로티 문이 1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믿음이 신실하신 어머니는 자녀들을 좋은 신앙인으로 키워냈다. 로티의 오빠 토머스와 언니 오리아나는 훌륭한 의사로, 막내 여동생 에드모나는 미 남침례교회가 파송한 최초의 독신여성 선교사 2명 중 1명이다. 로티의 사역은 1872년에 중국선교사로 파송된 동생 에드모나 선교사를 돕는 일부터 시작했다. 1873년, 로티 문은 중국 북부에 도착해 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교사 일보다는 로티는 중국 현지 담당자에게 전도와 교회개척 분야를 희망했으나 그 요청이 거절되자 그는 홀로 핑투로 가서 교회를 개척했
2018년 달력이 이제 한 장만 남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때다. 교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임재하심을 경험하며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교회는 또 상처로 힘들어 하는 자들과 아픔을 겪고 있는 자, 어려움이 해결할 조짐마저 보이지 않는 자를 향해 끊임없는 위로와 격려,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를 향해 손을 내미시고 어려운 자들을 일으켜 세워 세상 권력을 가진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애굽의 압제와 권력에서 해방시키셨고 재산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 드릴 예배에 대해서도 성경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죄인된 자들과 병든 자, 소외된 이웃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몸소 실천했다. 그러면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는 주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실천하기를 명령하셨다. 그 뜻에 맞게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많은 사랑을 나누며 실천했다.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입혔으며 어려움에 처한 자들, 순교의 순간을 맞이하려고 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냈다. 세상이 풍요롭다지만
매년 찬바람이 불어오면 우리 주변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 그리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는 나눔과 돌봄을 위해 언론매체들은 사회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나는 섬김, 나눔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이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내 어머니의 달비(딴머리) 머리다. 지금은 가난이 내게 위대한 선생이 되었지만 유아시절 아버지께서 친구에게 서준 과도한 빚보증 때문에 집과 모든 재산, 가재도구들이 집단리에 의해 모두 경매처분 되어 갑자기 가난이라는 것이 호환마마보다 무섭게 우리 식구들을 덮쳤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부모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게 했던 최후의 끈이 “내 어머니의 달비”였다. 까마득한 기억의 어린 날, 친정어머니께서 큰딸 시집보내면서 반닫이 느티나무 농 밑에 고이 넣어 주셨던 대장장이가 정성껏 만든 까만 가위를 새벽기도 드리고 와서 곱게 갈아 옆에 놓고 어머니께서는 그 일을 하실 때는 꼭, 잠에 취한 어린 나를 깨우셔서 앞에 앉히고 둥근 체경(거울)을 손으로 잡게 하고는 비녀를 뽑은 삼단 같고 칠흑 같은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앞으로 곱게 넘겨 빗으시고 당신의 머리카락을 조금씩 조금씩 여기저기를 잘라내셨다. 그리고 잘라낸 부분이 보이지 않게
아직도 건국일 하나 제대로 통일하지 못하고 둘로 나눠져 대립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길을 잃으며 방황과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주변국을 비롯한 세계는 급변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전쟁터 아닌 전쟁터를 만들며 나라 밖으로 진군하고 있는데 우리는 ‘정저지와’(井底之蛙), 즉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우물 안에서 ‘좌정관천’(坐井觀天)하고 있다. 좁디좁은 우물 안에 앉아 우물만큼의 하늘만을 보면서 하늘이 이러니저러니 한다. 자기 좁은 세계로 하늘을 보며 하늘을 말하는 개구리가 바다를 알리가 있겠는가? 아니 바다에 대한 생각 자체가 있겠는가? 최근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모습이 꼭 우물 안에 앉아 우물만큼의 하늘만 보고 서로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개구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청와대와 정부는 남북문제에 정권을 몰입하지만 남북문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고, 한반도와 세계를 위협한다는 북핵의 해결도 오리무중이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촉발된 한국 경제는 연일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이제 국민 대다수는 서서히 다가오게 될 경제 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들만의 정책을 찬양하며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지난 11월 18일 주일을 추수감사로 지켰다.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구약시대 맥추절부터다.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밀 추수가 끝날 무렵에 좋은 것으로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 감사제이다(출 23:16, 34:22). 한국교회는 1904년에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지켰고, 1914년에 와서 11월 셋째 주일로 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일부 교회와 성도들은 한국식으로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교회도 눈에 띄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교회가 11월을 추수감사주일로 지켜오고 있다. 사실 지금의 추수감사절로 자리 잡게 한 일등공신은 북미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ilgrims)이다.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면서 “나라는 있어도 왕이 없고, 교회는 있어도 교황이 없고, 영어를 사용하고, 기름진 땅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도착하도록” 뜨겁게 기도했고, 그 꿈에 그리던 정착지가 바로 북미 대륙이었다. 청교도들은 미국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등 이런 저런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1621년 가을 플리머드에서,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한 첫 곡
지난 11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대법관 9대 4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에 이어 이번 대법 판결까지 더해져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재 국민여론은 양심적병역거부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 15~16일 전국 성인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양심적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응답이 66.8%를 차지했다. 대체복무제 도입 찬성 응답이 73.4%를 차지하고 있어 병역거부말고 대체복무라도 하라는 것이 주된 국민여론이다. ‘양심적’이란 표현도 문제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렇다면 군에 입대한 사람들은 양심이 없는 것이냐”라는 반발하고 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주관적인 개념 즉 개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주관적 신념 내지는 양심이라며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양심이란 부분을 각 개인이 가진 주관적 관념이라고 정의내리면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측정할 만한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찬성
학교법인 한국침례신학원 신임총장에 김선배 교수가 선출됐다. 8명의 신학교 관선이사들은 10월 22일 3년 동안 공석이던 침례신학대학교(침신대)의 새로운 총장으로 김선배 교수를 만장일치로 선임했다. 이로써 그동안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던 신학교가 이제 사실상 정상화의 첫 발을 내딛게 됐다. 그런 만큼 우리는 동문, 교직원 등 침신대 모든 교회 공동체 관계자들은 신임 김선배 총장에게 모든 힘을 실어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관선이사들이 새 총장을 선출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교단 신학교가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우리교단 선지동산인 침신대는 그동안 신학교 이사들의 갈등과 이사 선임 문제, 교원 채용 문제 등이 소송으로 얼룩져 교단 갈등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로 인해 총회파송 이사들과 신학교간 계속된 마찰은 결국 현재 8명의 관선이사 체제아래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신학교의 정상화는 지금 시작에 불과하다. 물론 정관개정이나 정이사 선임, 학교 재산의 처분 등과 같은 것은 이사회에서 할 수 없지만 그 외의 모든 결정은 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신학교가 다시 교단과 긴밀하게 협동할 수 있도록 교직원들은 법인 이사회와
지금 한국교회는 어느 교단 할 것 없이 소송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단과의 싸움도 벅찬데 소송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교계와 세상 언론을 펼쳐보면 교회와 교회, 목회자와 교인 사이 등의 분쟁은 우려할 만한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성경은 소송을 금한다. 그러나 이도 옛말이 돼 교회법 보다는 세상 판결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성경적인 교단이라 자부하는 우리교단도 총회·기관, 지방회, 개 교회까지 최근 몇 년간 크고 작은 소송 건으로 해당 당사자들 뿐 만 아니라 지켜보는 동역자들까지 힘들어하고 있다. 총회도 소송이 끊이지 않고 기관인 신학교, 침례병원 문제 등으로 침례교 공동체가 들썩이고 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성경적인 화해와 조정, 중재 단체로 알려진 기독교화해중재원(이사장 피영민)에 따르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법적인 수단에 호소할 때 그 결과는 상호 증오를 키우고 관계를 영원히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교회와 개인은 화해중재원이 아닌 세상법정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야 어쨌든 교회와 관련된 송사는 내부적인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고 세상 사람들의 비판과 비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신학대학 3학년 초쯤의 일이다. 어느 날 커피숍이었는지 식당이었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옆자리에 앉은 내 또래의 대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 내용이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한 것 같은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들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 흔히 쓰는 용어처럼 사용했기에 무슨 전문 학술용어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나는 내가 무식한 것처럼 느껴져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생 시절까지 내 또래에서 나보다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물 안 개구리의 오만함이었지만 말이다. 그 때부터 나는 사회과학 전문서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얼마나 세상에 대해 무지했는지를 알아 가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신학대학에 진학한 뒤로 학교와 교회 생활이 전부이다시피 했기에 학교공부와 성경공부, 신앙서적 읽기 외에는 눈 돌릴 틈(?)이 없었다. 1학년 때 서양문화사 교수(외래강사)가 침신대 학생들은 책은 많이 읽는 것 같은데 너무 기독교 서적만 읽는 것 같다며 다양한 독서를 권했었지만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