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다민족국제선교연합회(대표 정윤명 목사)는 지난 5월 24일 미 샌프란시스코 프레젠 힐 오크 파크 크리스천 센터(빌 마태 목사)에서 제8회 글로벌 다민족 연합 콘서트를 가졌다.“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시67:3)란 주제로 열린 이번 콘서트는 35여 민족교회 700여 명의 성도들이 참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민족으로 향한 치유의 메시지를 함께 나누며 찬양했다.또한 미국의 회복과 열방의 부흥을 소망하며 초교파적으로 모든 세대들이 함께 모여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시간이었다.이번 행사는 미국 주류 교회와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러시아, 루마니아, 아시아 지역,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함께 참여했다.Ray Buford 목사의 색스폰특별연주와 Lori cooper의 듀엣과 워십댄스, 버마와 인도네시아, 하와이언의 워십댄스, 이스라엘 기독교도인들의 shofar연주, 아트로 아메리칸과 라티노 교회들의 뜨거운 찬양이 있었으며, 오크 파크 크리스천 센터의 다민족 연합성가대가 “알파와 오메가”의 열창했다.한국교회를 대표하여 참석한 오크랜드연합감리교회(이강원 목사)의 “천지창조”의 국악찬양은 여러 민족들로부터 뜨거운 갈
군선교를 하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세워놓은 원칙이 있었다. 그중의 하나는 ‘군교회의 역사성’이다. 비록 민간 목사의 신분으로 군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만, 언젠가 이 사역을 그만두고 후임자가 왔을 때 그동안의 사역을 파악하고 계승시켜 사역의 연속성과 발전을 위한 목적에서이다. 이를 위해 민간 목사가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감당해야만 했다. 그것은 행정적 부분이다. 예를 들어 입원 환우들의 상황을 매주 파악하여 불신 환우들은 ‘전도 대상자’로, 믿는 환우들은 ‘인도 대상자’로 분류하며, 전도대상자도 성향과 가능성 여부를 A. B. C 등급으로 파악, 점검해서 교회를 소개, 안내하고 예배로 인도한다. 이 과정 속에서 관심 병사들이 발견되어 상담과 기도를 통해 문제 해결이 이루어진다. 기간병과 간부들에 대한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것들을 자료화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 나가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이런 수고의 열매로 정기적인 위문예배도 필자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연결된 팀들이 지난 10년 동안 변함없이 함께 해오고 있고, 오랜 시간 맞춰온 팀웍을 통해 효과를 증진시키고 있으니 필자를 믿고 함께해준 분들에게 한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5. 아프간 피랍사건의 위기관리 평가 『분쟁·제한지역에서의 팀 정체성』 문제는 피랍사건 해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서, 처음부터 팀의 성격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 사건을 통하여 인식하게 되었다. 피랍사건의 정황들을 살필 때 샘물교회 봉사팀은 『위기예측』과 『현지 상황파악』에 실패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민족복지재단 카불지부의 두 차례의 초청장 발급 거절을 감안한다면, 아프간의 치안이 안전하지 않았음을 인식했어야 했다. 또한 국제 NGO들이 『BLACK 보안등급』지역으로 분류한 곳을 방문하면서도, 위기인식과 비상사태에 대한 점검과 대비에 소홀하였다. 위기관리 주체가 공식 초청자인 한민족복지재단이었음에도 실제 일정과 활동은 IACD 소속 사역자와 연결됨으로 인하여, 유사 시 현장 『위기관리 주체』의 혼선과 공백이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위기상황은 피해자인 샘물교회로 옮아갔고, 차후 교회가 유발시킨 위기를 정부가 대신 떠맡음으로써 야기된 국민적 분노와 무력감이 반기독교, 반(反)선교라는 불길로 전이되면서, 한국교회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다. 위기관리의 핵심은 『초동 대응』이다. 그것은 신속한 비상연락망 가동과 정보·미디어 관리인데, 사건 발생
1. 샘물교회 아프간 피랍사건에 대한 질문들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피랍사건이 발생한지 어언 8년이 지났다. 당시 피랍사건 관련자들이 큰 충격과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상황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커져서 큰 파괴력으로 피랍 당사자들과 샘물교회 및 한국 사회와 정부를 대혼란 가운데로 몰아넣었다. 미국의 ‘테러단체와의 협상 불가’ 방침, 아프간 정부의 ‘인질-죄수 맞교환 불가’ 천명, 그 와중 인질 살해 협박과 가족들의 심리적 공황상태, 설상가상으로 위기상황을 관리할 주체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탈레반과 대면협상을 시작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고, 인질들이 석방되면서 마침내 40여일의 피랍 상황이 종료하게 되었다. 아프간 피랍사건은 한국교계와 선교단체, 언론계와 정부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단기봉사팀·선교사 위기관리』와 『재외국민 보호』라는 시대적인 과제를 안겨다 주었다.이러한 단기봉사팀 피랍사건의 분석과 평가를 통하여 아래와 같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 ‘단기선교’라는 명칭과 관행이 미친 영향은?· 피랍사건이 국내·외에 끼친 영향력은?· 피랍사건의 위기관리 평가는?· 피랍사건에서의 멤버 케어는 적절했는가? 2.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이 문구는 대한민국 기독군인회의 표어입니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어느 분이 생각하셨는지 모르지만, 기독군인회를 가장 잘 대표하는 짧지만 강한 감동을 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으며, 어쩌면 군복을 입지 않았지만 십자군의 용사인 대한민국의 크리스천들의 삶의 자세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했습니다. 20세의 나이에 사관생도가 되며 군의 길로 들어선 이후 군교회를 섬겼다는 것 외에는 사실 드릴 말씀도 없고 몹시 이 시간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군교회를 다니며 섬기며 느꼈던 제 삶을 돌아보며 은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if !supportEmptyParas]--!--[endif]-- 국군간호사관학교와 하나님의 부르심, 동역자들과의 만남저는 국군간호사관학교(국간사)를 1985년에 입교해 1989년에 소위 임관, 22년여를 근무하고 2011년 4월 육군소령으로 전역했습니다. 군병원 교회와 함께 군인으로서의 신앙을 시작했고, 군병원 교회를 통해서 많은 신앙 체험을 했으며, 전역한 지금도 군병원 교회를 섬기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군병원 교회를 통해 간호장교 중 저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또
2015년 4월 25일 11시 56분 82년 만에 천지가 흔들리는 지진이 우리가 살고 있는 네팔 카트만두에서 그리 멀지않은 람중 11km 지하에서 발생했으며 7.9의 강진이 우리가 살고 있는 발밑에서 발생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멀쩡히 서있던 건물들이 무너지고 도로가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 움직이기를 반복 나를 한순간에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조용했던 도시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동네사람들은 벌써 작은 공터에 모여 있고 여진이 올 때 마다 소리치며 비명을 지릅니다. 눈앞에 멀쩡히 서있는 건물들이 여진에 금이 가기도 하고 무너집니다. 밖에서 일을 보고 있던 나는 혼자 집에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집으로 달려 와보니 아내는 공포에 질려 주저앉아 있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우리도 밖으로 도망치듯이 나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여진이 올 때 마다 비명을 지르고 쿵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날리며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이 꼭 폭탄 맞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후에 우리는 계속되는 여진에 좀 더 안전한 넓은 공터로 대피하기로 하고 여권과 현금을 챙겨 지정된 대피장소로 나왔습니다. 그러기를 잠시 우리는 사역지가 생각이 나서 전화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전화 연결이
단기봉사팀의 위기관리매년 지역교회와 선교단체에서는 성도들을 해외로 파송하여 단기 봉사활동을 하게 하거나 복음 전파의 비전을 갖도록 돕고 있다. 주로 여름과 겨울 방학 등의 휴가철에 집중되는데, 이는 지역교회와 선교단체의 중요한 연례행사로서, 참가자 숫자가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하지만 단기 봉사활동은 문화와 상황이 다른 해외에서 보람도 경험하지만 위기나 어려움을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러한 위기와 재난은 봉사단원들의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파송교회나 선교단체, 나아가서는 기독교계 전체에 충격과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실제로 언어와 문화와 제도가 다른 해외를 방문하는 중에 만나게 되는 위기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상황도 있겠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지역교회나 선교단체는 이러한 경우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준비시켜야 한다. 봉사팀이 현장의 위기 상황 속에서 다 알아서 해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좀 더 겸손한 자세와 사랑의 마음으로 단기봉사 활동을 준비한다면, 어떤 위기는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또 어떤 재난은 지혜롭게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교회의 위기관리가 왜
1. ‘단기선교’ 용어의 어원과 용례 선교역사가 오래된 서구의 전통은 평생을 사역자로 헌신하는 장기선교사와 대비해서, 1~3년 동안 장기선교사를 돕거나 사역에 제한적으로 참여하는 사역자들을 단기선교사로 불러왔다. 교육, 컴퓨터, 농업개발, 스포츠 분야 등의 전문인 사역자들로서, 선교지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며 선교사역에 대한 비전을 확인하기 위하여 참여하는 경우도 포함한다. 이에 반해 방학이나 휴가철을 이용해서 1주~3개월 정도 선교사역을 지원하거나 선교지를 방문하는 것은 ‘비전여행 (Vision Trip)’ 혹은 ‘필드여행 (Field Trip)’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이렇듯 서구교회의 선교 개념과 전통은 장기선교사들의 사역과 경험을 존중하면서, 단기선교란 최소한 1~3년의 헌신이 수반되는 사역임을 강조하고 있다. 서구교회는 『선교』라는 용어를 남발함으로 일어날 혼선과 모호함을 예방하는 것이, 선교를 대하는 정직하고도 지혜로운 태도라는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선교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90년대 말까지 한국에서는 서구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여 대개 ‘비전트립’, ‘선교여행’ 혹은 ‘비전여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2000년대 들어와 선교여행이
22차 한.비 전도대회를 다녀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12월초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워십 아이들과 약속한 시간과 병원에 가야 할 시간이 겹쳐 마음이 분주하고 힘들었습니다.어머니를 위해 선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저에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향하신 애타는 마음, 주님 한 분으로 모든 것을 맡기는 순종하는 마음이었습니다.지금까지 다니던 선교보다도 마음은 분주했지만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께서 하시는 것을 기대하리라는 마음이 들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둘째 날 오전에 전도를 나가는데 처음 전한 장소가 농구장이었습니다. 파트너와 서로의 마음이 통하여 카드를 주고 많은 선물도 주는 일이 순조로웠습니다. 몰려드는 아이들이 길을 안내하기 시작 했습니다.아이들이 시끄럽게 함께 가니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왔어요” 소리만 질러도 한 블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큰소리로 사영리를 시작하면 중간 중간 아멘을 할 때엔 ‘더 크게’를 강조하면 한목소리로 ‘아멘’을 합창하는 소리는 천국의 합창이었습니다.기도가 끝나면 서로를 바
질문 : 긴급철수한 선교사 가족들이 받은 충격과 외상은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1.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의 심각성 팔리(Richard Farley)박사는 PTSD를 심해 다이빙(deep-sea diving)에 비유한다. 즉 심해 잠수부들이 물에 들어가고 나올 때, 엄청난 바닷물의 압력으로 인해 급격하게 압축과 이완을 경험하면서 신체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도 급격한 심리적 압축과 이완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은 너무 압도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상황의 압력 하에 놓이게 될 때 생길 수 있다. 증상의 특징은 반복되는 상(象)들, 재난이나 위기상황에 대한 꿈, 원래 겪은 재난(trauma)과 유사하거나 상징적인 것에 대한 공포나 회피증 등으로 나타나는데, 위기를 당한 사람들의 91%가 이런 장애를 경험하지만, 모두가 PTSD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이런 장애는 재난 후 즉각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고, 몇 달이나 몇 년 후에 증상이 찾아올 수도 있다. 이런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 PTSD로 진단할 수 있다. 이런 위기 후 증후군 혹은 장애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부상과 같은 질병이지만, 이런 증상을
처음으로 전도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된 전도대회가 많은 것들을 보고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출발 전 개인적인 어려운 상황들이 다른 전도대원들의 간증을 듣다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먼저 참으로 놀란 것은 전도대원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시간들여 돈들여 머나먼 필리핀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겠지만 대원들의 모습은 제 생각 이상이었고 그들의 모습은 저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열정적인 사랑과 전도의 모습에 저는 참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만 바라볼지라” 라는 찬양을 주제로 계속 기도와 찬양으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게 이끄시는 목사님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몸은 피곤할지라도 (실은 돌아오는 발걸음이 피곤하지 않았고 오히려 들떠있었습니다) 영혼은 주님의 은혜로 채워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다른 사람들처럼 몇십명, 몇백명씩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전도대상자들을 만났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만삭이었던 애기엄마의 간절한 눈빛, 영접 후 에 너무 좋다고 감사하다고 뽀뽀를 하며 안아주고 좋아하셨던 아주머니,
할렐루야!한비전도대회 제22차 참석할 수 있도록 이끄신 주님을 찬양하며 무한 감사드립니다.지난해 모처럼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계획해서 예약을 하였는데 갑자기 집안에 초상이 나서 손해를 감수하고 취소하였습니다.그리고 얼마 후, 한비전도대회 선착순 접수 소식을 전해 듣고 집사람과 의논하여 둘만의 여행보다 전도대회 참여해서 하늘나라에 남는 일을 하기로 결정하고 접수신청을 바로 하였는데, 그 주일에 벌써 마감됐다는 소식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드디어 출발 일, 우리 일행은 주일예배를 마치고 공항에서 만나 비행기에 탑승했고 아멘선교센터에는 새벽 1시가 넘어서 도착했습니다.첫째 날, 개회예배와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후 조별모임을 갖고 A팀 교회인 제일소망교회까지 버스로 이동하며 기도로 찬양으로 준비하면서 예비 된 영혼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땅 밟기 전도 초청하여 저녁집회를 하였고, 이튿날은 B팀 교회에 가서 초청카드를 나눠주는 땅 밟기 전도를 학교 앞 거리에서 시작했는데, 얼마나 기쁘고 신났었는지.....많은 사람들이 초대에 응해주었고 많은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 너무 기대가 되었습니다. 첫날부터 부르던 찬양이 ‘주만 바라볼지라
오직 영혼구령이란 선교 비전을 마음에 품고 군 사역에 임했던 필자는 사역의 현장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회복을 위한 멘토링’이란 사역의 방향이 결정되는 계기가 있었다. 특이할만한 것은 사역초기부터 지금까지 절기(부활절, 성탄절)를 통한 상처받은 영혼들의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다. 군병원부대는 본부근무중대와 후송중대로 편성되어 있다. 이외에 1군 지사에서 파견된 보급정비대(이하 보정대)로 편성되어 있는데, 필자는 교회에서도 예배에 참석하는 보정대 병사들이 영내의 이방인이란 생각이 들지 않도록 각별히 이들을 보살피면서 본인들이 봉사를 원하면 찬양팀 등에 우선적으로 세워주었다. 이런 관계로 인원이 제일 적은 보정대에서 그동안 교회의 일꾼이 많이 배출 되었다.군선교에 헌신한지 한 1년쯤 지나서 있었던 일로 기억된다. 당시 (간호장교를 아내로 둔) 육사출신의 보정대장에게서 병사들을 교육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요청을 받은 필자는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의무적인 교육에 무감각하고 참석하자마자 대부분 졸음에 빠져드는 병사들을 깨워서 교육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교육기간은 1년으로 월 1회 중대 회의실에서 실시하
질문 : 선교단체·파송교회에 위기관리지침서는 준비되어 있는가?규모 있는 국내 선교단체들과 국제단체들은 보통 선교사 행정 제반에 관한 내부 규정들과 함께 나름의 선교사 위기관리지침서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이러한 정책·지침서 정비작업은 선교 역사가 오래된 서구 선교단체들이 파송선교사 관련 각종 위기사건들을 맞이하여 대처했던 경험들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발하게 되었고, 그 이후 국제정세 변화와 선교사 멤버케어에 대한 다양한 욕구들이 반영·추가됨으로써, 현재의 표준화된 위기관리정책과 지침서로서의 모습을 점차 갖추게 된 것이다. 지난 30여 년 간 선교사 파송에 있어서 비약적인 진보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교계가 『선교사 위기관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2007년 아프간 한국인 피랍사태가 그 계기가 되었는데, 사실 그 이전 한국교회와 선교단체의 관심사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이었던 반면, 선교사 멤버케어나 위기관리에 대한 인식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던 시기였다. 아프간 피랍사건이 선교사 위기관리의 출발점이 되기는 했지만, 이미 2003년 KWMA에서 간단하나마 ‘선교사 위기관리지침서’를 발간하였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1. 사고 경위“그날은 제 생일이어서 제 가족과 팀원인 윤00 단기선교사 가족이 현지 선교사들의 초대를 받아 외부에서 저녁식사 후 늦게 귀가하였던 것입니다. 밤늦게 외출한 것이 화근이긴 했었지만 그 시간에 무장괴한이 주차장에서 기다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경비원들도 사뭇 긴장하고 굳은 표정으로 저희를 맞았습니다. 평소 잘 웃어주던 경비대장 Charles의 표정도 영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미쳐 집안에 들어가지도 못한 상태에서 인근에서 총성이 울렸고, 위기감을 느낀 저는 가족들에게 뛰어서 경비실로 도망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곧 괴한들에게 둘러싸였고 핸드폰 등 귀중품과 현금을 빼앗겼습니다. 총을 여러 발 쏘았다고 하는데 워낙 다급하였기에 총성보다 가족의 신변안전이 더 걱정이었습니다. 강도들에게 떠듬떠듬 현지어로 몇 마디 말하면서 안정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는 강도들에게 ‘안에 사람이 있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설득하고, 남은 현금을 꺼내주며 ‘위험한 행동하지 말라’고 계속 설득했습니다. 돈으로 만족하진 못했지만 안전하게 도주하기 위하여 강도들은 돌로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윤00 선교사에게 커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