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침례를 받은 증거로서 방언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찰스 파햄으로부터 배우고 있었던 아그니스 오즈맨 양이 강의실에서 찰스 파햄과 여러 사람들의 안수기도를 받았을 때, 방언을 말하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성령침례의 증거였다는 것이다. 그 후 찰스 파햄 자신도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방언이 진정한 성령 침례의 성경적인 증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드디어 이제는 “성령의 망각”을 이야기하던 시대가 지나고 성령론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 오순절 성령운동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기독교 역사 가운데 여러 가지 성령운동들이 많이 있었고 기적 발생에 대한 주장들도 있어왔지만, 성령의 초자연적 능력에 대한 강조는 대체적으로 20세기 초에 일어난 오순절 성령운동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됐다. 그리고 역사상 어떤 성령운동도 오순절 성령운동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20세기 오순절 성령운동의 기원은 1900년 12월에 미국 캔자스 주의 토페카(Topeka. Kensas)에 있는 벧엘 성서 대학(Bethel Bible College)에서 일어났던 사건에서 비롯됐다. 즉 이 대학에서 재직하며 “성결운동”을 주도했던 찰스 파
필자는 2017년 충남도민으로 충남도민 인권조례의 위험성을 알게 된 후, 인권조례를 반대해 폐지하고자 노력하는 시민단체에 속해 함께 했다. 각 지역에 제정된 인권조례는 차별금지법과 동일해 미니 차별금지법이라고 한다. 차별금지법(평등법) 반대운동에 연계되어 자원해 활동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최초 추진했고 이후 15년간 여러 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사회적 합의 등의 이유로 자진 철회하거나 폐기됐다. 현재 21대 국회에서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과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박주민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평등 및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안 등 총 4건이 발의된 상태이다. 지난 5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한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을 의결했다.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속도가 붙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이에 대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과 각 지역의 기독교연합회는 규탄하며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본 기고문에는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 법이 왜 위헌인지 살펴보며 차별금지법에 대한 궁금증과 국내
때를 따라 꽃은 피고 열매를 맺나니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물들이 어찌 이리도 어여쁠까요. 봄이 되니 여기저기 그저 감탄사가 연거푸 나옵니다. 그러나 꿈에 부풀어 씨앗을 정성스레 심는다고 싹이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더군요. 꽃마다 심을 시기가 있고 개화의 시기가 있고 열매 맺음의 시간이 있음을 화초를 통해 깨우쳤답니다. 제가 보기에 하도 예뻐서 초봄에 이르다 싶었지만 미리 씨앗을 심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행여나 싹이 나오나 매일 매일을 들여다보아도 싹이 틀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패했다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얼마있다 새롭게 또 씨앗을 심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어느덧 떡잎이 쏙 나오더니 연한 녹색의 이파리가 쑥쑥 자라나 소담스레 넝쿨을 뻗으며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꽃은 좀 더 기다렸다 씨앗을 뿌렸어야 했나 봅니다. 봄이 되면 자연적으로 떨어졌던 씨앗들이 돌 틈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요, 그중에 어떤 씨앗은 싹이 나긴 하지만 떡잎만 나온 채로 가운데 싹은 자라지 않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자주 내리던 빗물에도 부르트지 않고,
메타버스 예배와 설교를 경험하면서 세상이 달라졌음을 발견했다. 메타버스 예배 속에서 느낀 점과 우리의 생활 특히 신앙생활에 미칠 영향을 나누어보겠다. 첫째, 메타버스의 세계는 이미 우리의 옆에 와있다. 따라서 메타버스 예배도 기술적으로 완전히 준비되어 있고 이미 시도되고 있다. 단지 우리가 그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 메타버스 예배가 현실예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유튜브나 줌을 통해서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느새 일반화됐지만 현실의 대면예배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었다. 원래 주님께서 의도하신 예배는 오감(五感)을 총동원한 예배였기 때문에 시각과 청각에 국한된 영상 예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VR기술은 원래 사람의 오감으로 느끼게 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점차 현실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메타버스에 참석하는 것이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물론 메타버스 예배가 현실예배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 할지 모른다. 하지만 교회 예배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부 예배(9:00), 2부 예배(11:00), 3부 메타버스 예배(오후 2:00) 등 이렇게 될 수도 있다. 둘째, 메타버스 예배의
그 동안 호세아 4:6을 중심을 우리의 현실을 살펴봤다. 이제 다음 세대 관련한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해보고자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려고 작정하신 것 같이 느낀다. 나나 우리 팀들의 그 모든 부족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 사역과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먼저 나의 주변에서 다음 세대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전반적인 부분을 나누고, 그 다음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기도하며 우리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에 함께 힘썼으면 한다. 나의 경우, 다음 세대 관련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인도하신 것은 군선교였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3군 전체를 열어가시는 것 같았다. 군선교 중 한 중요한 사역은 전국 ROTC 학군단에 간사들을 세워 후보생들을 섬기는 것이었다. 코로나 전 전국 113개 대학 모두에 간사들을 세워 섬겼다. 코로나로 인해 활동이 제한되어 잠깐 소강상태에 있다가 이제 다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지금은 80여개 대학에서 간사들이 후보생들을 섬기고 있고, 나머지 학교들에도 간사들을 충원하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해 주시고, 이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도 깊이 헤아리고 있는 한, 어떤 형편에 처해있든지 그 마음에 합당한 삶을 기꺼이 선택하며 살아가고자 수고하고 땀 흘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혹은 누가 어느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해도 하나님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면 여지없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때마다 일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이즈음에 또다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정직하게 물어보았을 때, 예수님 보다 앞선 그 무엇 때문이라면, 다시 말해서, 그 마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무엇 때문이라면, 결국 허물어지고 말, 또한 반드시 허물어야 할 바벨탑이라는 사실도 때마다 일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하여, 일평생 동안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따라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전인격으로 경험하며 누리게 하소서. 생명과 약속의 말씀을 따라, 더불어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믿음직한 하나님의 자녀로!
2. 찰스 파햄의 성령사역 이해 1) 찰스 파햄의 목회소명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작은 찰스 파햄(Charles F. Parham)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1873년 6월 4일 아이오와주의 무스카틴에서 출생해 어렸을 때부터 종교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그의 회심 전인 9세 때 이미 목회의 부름을 느꼈다. 그는 4년 후인 13세 때 회중교회(The Congregational Church)에서 구원을 받았고, 14세 때 감리교회에서 평신도 전도사가 됐다. 그는 16세 때 사우스웨스턴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여기서 그는 목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그는 목회에 대한 직업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교회에 대한 흥미마저도 잃어버리게 됐다. 이때 그는 진로를 바꾸어 목회보다 의학을 공부하려고 했으나 류머티즘 열병에 걸린 나머지 이를 계기로 자신이 목회에로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이런 질병에 걸린 것이라 믿고, 만일 하나님이 이를 치료해 주시면 목회를 하겠다고 헌신한 결과 치료를 받게 되어 다시 신학교에 입학해 졸업했다. 이후 그는 19세 때 캔사스주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목회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 직원들과의 빈번한 의견 불일치로 인하여 1894년에 감리교를
메타버스 예배를 시작한 것은 큰 시도였지만, 아쉬웠던 것은 설교와 찬양 등의 실제 예배실황을 유튜브로 방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3D 예배 가운데서 예배의 핵심인 설교와 찬양은 2D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안형제는 ‘메타버스 예배 안에서 설교를 시도해 보자’고 의기투합을 했다. 하지만 메타버스 예배를 운영하는 것과 메타버스 설교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 필요했다. 2주 후 주일예배에서 VR 설교를 하기로 하고 광고했다. ‘7월 25일에는 이병문 목사님이 메타버스 예배 안에 들어와서 직접 설교합니다.’ 그리고 준비를 착수했다. 우선은 설교자가 VR 기기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일주일 전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안형제의 집에 가서 그 도구를 착용하고 3D를 체험하기로 했다. 나는 눈에 쓰는 헤드셋과 손에 잡는 컨트롤러만 착용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보다 더 복잡했다. 헤드셋과 컨트롤러 외에 허리에 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를 차고, 센서가 달린 운동화를 착용해 이동을 감지했다. 내 움직임은 뒤에 세워진 스텐드에서 감지해서 자연스럽게 내 아바타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또 한 가지의 문제
내가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결정하자 주변의 많은 분들이 우려와 격려를 보내주셨다. 가장 많은 질문은 “지금도 교회를 개척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이 질문은 몇 가지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질문이다. 그 첫 번째는 젊은 나이가 아닌데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나이가 적지 않은데 그동안 잘 사역하던 교회를 사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막상 교회 개척을 시작해보니 주변에 나이 드신 분들이 개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목회자들이 개척을 꺼리지, 나이가 드신 목사님들은 오히려 더 담담하게 개척하는 경우가 많았다. 섬기던 교회에서 은퇴하신 후에 작은 교회라도 사역을 이어가겠다는 분들도 있고, 뒤늦게 신학을 한 후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 목사 안수를 받으신 분들 중에서도 많은 나이로 인해 기존의 교회로 들어가서 사역하기가 쉽지 않기에 교회를 개척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측면은 한국에 교회들이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데, 굳이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울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미 세워진 교회들을 건강하게 세워가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지 교회를 더 세우는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
자기만 호의호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멋진 집을 지어드리고 싶었던 다윗, 그 마음을 나단 선지자에게 전한다. 나단이 기쁜 마음으로 저녁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온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5), “내 집 짓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한 집을 짓지 않았다고 꾸중하신 적도 없고, 집 지어달라고 부탁하신 적도 없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멋진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생각한 다윗이기에 하나님은 오히려 다윗을 위해 집을 지어주겠다고 하신다(11~12).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래서 언약을 맺으신다. 핵심은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16절), ‘집’이라는 단어로 하나님과 다윗이 서로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는다. 히브리어로 ‘바이트’(בַּיִת), 헬라어로 ‘오이코스’(οἶκός), 이 단어가 7장에 15번은 나오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던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다윗은 하나님 앞에 앉아 감사기도를 드린다(18),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하기, 나단을 통해 주신 다윗과 그 가문
아시아인 최초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30·토트넘)이 올 시즌 소속팀과 자신에게 찾아온 놀라운 결과에 대해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손흥민 선수가 한국인으로서 EPL의 득점왕에 오른 것은 참으로 전세계에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마음을 시원케 하는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손흥민 선수가 전세계가 인정하는 위대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 손옹정 감독의 헌신적인 지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손흥민의 아버지이자 스승 손웅정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수오서재)’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손흥민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었던 비밀스러운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손 감독은 “나는 나의 축구 이야기가 부끄럽다. 축구를 모르면서 축구를 했다. 나는 ‘마발이’ 삼류 선수였다. 공도 다룰 줄 모르면서 공을 찼다”고 자신의 현역 시절에 박한 평가내렸다. 빠른 발 덕분에 버텼지만 기본기와 기술이 부족했고, 독기 품고 악바리 같이 몰아 붙였지만 축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였다고 했다. 그는 아킬레
그 옛날 거의 매일 10년을 산에 다니면서 기도했었다는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그 당시에 평신도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기도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때를 회상만 할 뿐 기도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 되어 있다. 심지어는 현재 새벽 예배조차도 안 드리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 생명은 꾸준히 계속 자라가야 하는데 어느 한 정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내리막길을 향해서 내려가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된다. 헌신과 봉사, 주를 향한 열정과 열심히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도 식어 버리고, 영적 사람이 육의 사람이 되어 세속적인 사람으로 전락하여 버린 사람들이 나의 주변에 너무 많은 것 같다, “신앙은 삶이다” “기도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하나님의 영역이다”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종”이라는 단어며,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구절은 데살로니가후서 5장 10절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찬송가 가사 중에서 제일 마음에 와닿는 가사는 540장 3절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어찌 아니 기쁠까 주의 얼굴을 항상 뵈오니 더욱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나눴다. 그럼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얼굴만을 구한다고 되느냐고 질문한다. 우리는 시편 63편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지난번에 다윗의 시편인 시편 27:4을 토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 전체적인 윤곽을 살펴봤다. 시편 63편은 다윗에 유대 광야에 있을 때, 즉 그가 압살롬에 쫓겨 광야로 도망하던 때에 지은 시이다. 다윗은 그 당시에 압살롬에게 쫓겨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많은 그의 가족들을 예루살렘에 남겨둔 채 사막으로 도망와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압살롬이 많은 군대를 이끌고 그에게 들이닥친다면 그는 살아날 길이 없는 상황이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그의 가족들에 대한 안위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압살롬은 대낮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많은 그의 후궁들을 성적으로 겁탈했다. 그 나라의 안정과 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만약 당신이 다윗이 처했던 상황에 처했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을 간절히 구했겠는가? 이런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와달라고 목이 터지라고 외친
가난했던 신학생 시절, 다른 목사님처럼 나도 생활비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남편이었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려왔을 때 뛸 듯이 기뻤으나 돈이 없다는 핑계로 임신 및 출산에 관한 책들을 읽고 집에서 아기를 낳을 생각을 했다. 출산하는 날, 이러한 행동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를 금방 깨달았다. 아내도 죽을 것 같았고, 태어날 아이도 죽을 것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택시를 타고 산부인과로 달렸다. 피 흘리며 기진맥진한 아내를 껴안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나의 무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아내와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내가 잘못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내 품에 아기를 안겨주며 말했다. “축하해요. 예쁜 딸입니다. 산모도 건강하고, 아기도 건강합니다.” 아기의 눈동자를 마주칠 때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을 맞이할 때도 이런 기쁨이 있었으리라. 아기를 안고 무릎 꿇어 생명을 지으신 위대한 창조주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딸은 나의 무식함을 용서하며 티 없이 맑은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이런 딸이 성장해 멋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프랑스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 때에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군인들이 숲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봤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긴 나머지 상사 한 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줬다. 어머니는 지체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눠서 세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라고 했다. 이것이 어머니이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에게는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어머니이다. C.S. 루이스 교수는 아주 명쾌하게 우리의 사람된 모습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 의해서 양육되고 필로스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고 했다. 우리는 다같이 ‘사랑’이라고 같은 말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