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옆집 아저씨’란 말이 친근하게만 들리지 않는다. 하도 뒤숭숭한 일들이 많은 세상이다 보니 어린 초등학생 성폭행범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진 않나 하는 염려가 있는 것이다. 교회에 등록하신 성도님들에게 담임목사의 첫 인상을 물으면 ‘옆집 아저씨’같다고 한다. 여기서 ‘옆집 아저씨’는 그 만큼 격의 없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특별히 잘나지 않다는 의미이나 옆집에 사는 것만으로 나를 알아주고 따뜻한 미소로 인사를 받아주는 정겨운 분이라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목사에겐 어딘가 성도와는 다른 중세 수도사 같은 청빈함과 고결한 영적 권위와 감춰진 헌신을 기대하는데 만천하에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 마당에 무엇을 감춘다고 감춰지는 세상도 아니지 않는가? 포장의 한계수명은 그리 길지 못하다. 타의에 의해 강제로 벗겨진 포장보다는 스스로 지금 벗어 자유롭게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 생각되어 나는 강단에서 나의 허물을 숨기거나 과장하지 않으려 한다. 삶은 곧 내 신앙이다. 삶으로 증명된 것만 확신있게 증거 할 수 있다. 교회와 직장에서 교회와 가정에서 내 모습이 다르다면 그는 위선자다. 가운 입은 강단 위와 아래가 다르다면 그는 위선자다. 주님은 창녀와 세리를
“하나님, 능력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 주여, 내게 능력 부어주시옵소서오 능력, 능력, 능력을 충만하게 내려주시옵소서!“라고 했다.“여러분, 이새벽에 저는 ‘능력 좋아하네!’라는 제목으로 설교합니다”라고 했더니 모두들 웃었다. 그 당시 유행어가 “…좋아하네”였는데 저는 그 앞에 능력을 넣었기 때문이다.1964년 신입생들이 새벽기도회에 나와 거의 모두의 부르짖는 기도가 능력달라는 것이었다. 저는 신태원(정파)에 입학했는데 교도부장을 시켰다. 처음엔 큰 감투인가 했더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종을 치고 기숙사 복도를 두어번 왕래하며 신학생들의 새벽기도회 참석을 알려주는 힘든 심부름꾼이었다.“매일 능력달라고 기도하는 소리를 듣는데 능력받아 뭐할겁니까? 성경을 보니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라고 했는데 조그마한 십자가도 안지고 어떻게 능력만 달라는거요? 내라도 능력 안 주겠구먼! 능력좋아하고 있네…!” 이런 시건방진 설교를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바로 나를 두고 설교한 내용이었다. 한동안 신학생들이 절보고 ‘능력 좋아하네’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진정 십자가의 능력이 필요한 자는 저였다. 2. “멸망케할 이단”-박씨와
한국교회의 오랜 전통은 주일저녁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을 단위 영농문화에서 자연스런 형태였을 것입니다. 오늘날 24시간을 다양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산업사회 구조 속에서 이제는 예배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 할 것입니다.교회를 오고가는 시간 낭비가 많고, 자녀들과 함께 식사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주일저녁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주일 저녁 유명한 강사님을 초대해 놓고 참석률이 너무 적어서 죄송한 마음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이제는 어떤 방법으로든 개선책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주일 오후 2시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61% 예전방식대로 저녁에 모이자는 의견이 31%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배나 많았습니다. 오후 2시로 변경할 경우 어떤 형태로 모임을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는 예배 32%, 제자훈련 44%, 기도회 12%, 찬양예배 5%, 목장모임 2%, 기타 4%였습니다. 예배와 제자훈련의 혼합된 형태로 드려지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제자훈련은 1년에 봄, 가을을 학기제로 운영하고 한 여름과 추운 겨울에는 다양한 예배 형태를 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시간과의 싸
중학교 음악시간 밖에 많은 비가 내리거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여느 선생님과는 달리 깔끔한 용모의 음악 선생님은 클래식 음악이 뭔지도 모르는 까까머리 중학생들을 눈 감으라 하시고 이 곡을 감상하게 하셨다. 시인과 농부 Poet Peasant (Dichter und Bauer)는 주페-Franz Von Suppe (1819~1895, 오스트리아, 작곡가. 지휘자)가 칼 엘머의 대본에 의해 1864년에 작곡, 초연한 오페라타의 제목이다. 지금은 서곡만 관현악의 명곡으로 자주 연주되고 있다.곡의 진행은 느리고 엄숙한 멜로디가 밝아오는 새벽을 깨우고 곧 이어 전원의 아침 햇살을 연상시키는 바이올린 곡이 잘 자고 일어난 이불 속의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갑자기 빠른 행진곡이 한 여름 밤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와 같이 격정적인 분위기로 급반전된다. 그리고 다시 잔잔한 호수의 수면 같은 왈츠가 전개되고 그 호수에 거대한 폭포가 떨어지는 듯 행진곡의 빠른 템포는 듣는 이의 숨을 멈추게 하고 아쉬움으로 끝난다.어제 비전센터 3층 철근 공사장에 올라가 봤다. 아직은 어지러이 널려진 현장이지만 내 마음은 벌써 이 눈높이에서 앞산을 바라보며 이 곡을 감상하면 어떨까 생각
1. 유리조각...自信!1954년 봄, 우리 영남고등학교 ‘조띠’(?)란 별명의 체육선생 초청으로 일본에서 유명한 광도관 도장에 갔다. 거기서 ‘가라테’ 8단인 팔갑산(八甲山)이 전교생이 운집한 가운데 20분정도 가라테에 대한 강연을 하고 마친 후에 깨어진 램프유리를 손으로 쪼개면서 이 것을 씹어 먹을 용감한 학생은 단 앞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계속 나오라고 소리지르니 2,3학년 선배중에 한 두명이 나가는 것을 보고 저도 무심코 용기를 내어 나갔는데 그는 강단에서 내려와 모여온 우리 10여명에게 한 사람씩 배 위에 기합을 넣은 후 램프 유리조각을 나눠주며 종이로 깨끗이 잘 닦으라고 한 후 단상에 올라 “하나 둘 셋”하면 입에 넣고 일본의 ‘샌빼이’ 과자처럼 씹어먹으라고 했다.우리는 그의 큰 구령에 맞춰 “셋”할 때 모두 함께 의심없이 입에 넣고 과자처럼 정말 아삭아삭하게 씹어서 유리조각이 좁쌀처럼 작게 되었을 때에 나눠주는 물과 함께 삼켰다. 평생 살아오면서 유리조각을 과자처럼 잘 씹어먹은 멍청하고 우직스런 추억을 지울 수 없다.어쩌면 6.25 전쟁후 그것도 돈 있는 학생에겐 길거리의 ‘야끼모’(드럼통 위에 자갈을 깔고 밑에서 불을 피워 구운 고구마)가 제일
노은 공동체는 그동안 교회 안에 층층시하 계급화 된 직분을 그리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세상의 지배계급의식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오는 것이 죄 된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침례교회의 정신은 종교개혁의 ‘만인제사장’주의에 입각하여 모든 성도가 제사장적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교회의 직분은 목사와 집사(안수)로 한다고 규약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3년 전 한국 침례교총회는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여 안수집사를 장로로 호칭할 수 있다고 정관을 개정했다.교회의 정치는 감독정치, 장로정치, 회중정치로 나뉘는데 침례교회는 회중정치를 지향하는 교단이여서 장로 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당회는 없다.‘서리집사’는 성경엔 없으나 ‘안수집사’가 되기 전 최소한의 평신도 지도자로서 주. 초를 금하고, 십일조 의무를 감당하며, 주일을 성수하고, 혼인을 귀히 여기며, 제자훈련 ‘생명의 삶’과정을 마친 자로서 목자의 추천으로 담임목사가 임명한다.안수집사회는 항존직으로 목양을 돌보는 초원지기와 달리 교회의 살림살이에 책임의식을 갖고 목회자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구석구석을 돌보는 행정적 기관이다.‘안수집사’는 만40~65세 이하인 목자와 목자의 동등자격을 갖춘 목녀로
2) 기아문제서울대학교 황상익 교수는 “북한의 기아문제는 단순히 큰물(대홍수)과 가뭄 등 자연재해로 생긴 문제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 기아문제의 발생에는 그 배경이 어디에 있든 무분별한 개간과 무리한 식량증산 등 ‘비생태적’이며 ‘생산력 지상 주의적’인 농정(農政)도 한몫을 했으며, 그것은 더 넓게는 북한사회의 전반적 모순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인권문제보다 심각한 북한의 기아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필자가 1993년 강의 차 중국 연변을 방문했을 때 북한주민들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인육을 먹는다는 이야기와 식량을 얻기 위해 국경을 건너 몸을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식량난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센서스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주민 33만 여명이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굶어 죽었다. 1998년을 기점으로 대량아사 사태는 사라졌으나, 대기근이 가끔씩 찾아오고 있어 아직도 굶고 있는 북한 주민이 많이 있다. 특히 김정일 체제 시대의 약 300만 명의 북한주민이 집단으로 굶어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정부의 은폐로 인해 그동안 기아자의 숫자를 정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