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을 겪게 되는 불가피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일방적이고 본인 중심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이들과 대면하게 된다. 그뿐인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속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분노하고 답답해하며 그런 부당함을 성토하지만 정작 결정적인 행동에는 주저하거나 포기하면서 더 큰 분란과 혼란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물론 자신의 것을 지키고 싶고 손해보고 싶지 않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같을 것이고 또 비난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불의나 부당함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분명해야 하고 상황을 보는 시각에는 일관되고 균형 있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을 지나고 있는 현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치가 바로 변질되거나 타협하지 않지만 큰 시야로 상황을 보는 통찰력이며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사고력일 것 같다. 일관된 원칙과 균형은 창작 예술에서도 필요한 것으로 작품의 정통성과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 속에서 나오는 작품에 시대를 초월하는
올해도 절반이 다 지나고 한해의 후반기를 맞으며 시간의 빠름을, 또 세월의 덧없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무엇을 성취하였는가보다 어떻게 이루어내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자세와 방법으로 그 결과를 이루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다. 나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타인의 연약함을 드러내기를 서슴치 않고 나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향한 무례한 독설을 솔직함이라 포장하기도 한다. 그 뿐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똑 같은 상황이나 이슈에 대해 손바닥 뒤집듯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도 상황의 변화에 따른 유연성이라 정당화하기도 한다.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본향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여행이고 이 세상은 그런 방랑자의 여정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행동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머물러 살 것 같다. 이 삶에서의 영원한 안락을 위해 기득권을 쟁취해야 하고 그렇게 얻어진 나의 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 중 하나가 자연 환경이고 또 그중에서 우리가 누리는 큰 은혜는 음악이다. 음악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비롯한 여러 악기로 연주할 때 또 다른 언어가 되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연주자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적 경험을 전달할 수 있다. 연주자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삶 속에서 찬양을 찾아내고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가 연주하는 음악 역시 은혜와 감동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훌륭하게 작곡된 교회음악이라도 연주자의 마음에 십자가의 감동이 없으면 은혜로 전달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음악을 대하는 마음과 전달하는 시각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은 다문화 중심의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좋은 음악, 마음에 선한 영향력이 될 수 있는 음악은 작품성과 함께 연주자의 자세와 영적 상태도 함께 판단되어야 하고 이것은 다음 세대에게 음악을 전달할 때 깊이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모차르트(W.A. Mozart, 1756-1791)의 엑술타테, 유빌라테는 특별히 연주자 어떤 자세와 목적을 가지고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과
작은 키에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아이작 와츠는 그의 아름다운 시를 읽고 찾아온 엘리자베스 싱어(Elizabeth Singer)를 사랑하게 됐다. 와츠는 37세에 열렬히 사랑하는 싱어 양에게 청혼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거절당하고 말았다. 실망한 그는 결혼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버려버렸다. 세상의 사랑에는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그는 “세상은 허무하도다. 불공평하지만 공평하도다”라고 자신의 푸념 섞인 속마음을 짧게 적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는 ‘마크 레인 교회’의 사역에 더욱 매달렸다. 와츠 목사의 마음이 많이 상해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런던시장 토마스 애브니(Thomas Abney) 부부는 축 처져 있는 그를 런던 교외의 저택으로 초대했다. 그를 일주일정도 푹 쉬게 하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저택에 머물면서 애브니 부부의 세 딸들과 정이 든 와츠는 어린 딸들을 위해 “바쁜 아기 꿀벌”과 “멍멍 짖고 물어대는 강아지”라는 시와 다음과 같은 자장가를 써주었다. “쉿! 아가야 곤히 자거라. 거룩한 천사들이 네 침대를 지켜준단다.(Hush! my dear, lie still and slumber; Holy angels guard th
레지날드 히버(Reginald Heber)는 영국의 조용한 마을 호드넷(Hodnet)을 좋아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옥스퍼드 대학 학위를 가진 이 성공회 목회자는 런던의 저택에 살아도 괜찮을 만큼 넉넉했다. 하지만 히버는 시골 호드넷에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가진 것을 나누며 작은 교회를 섬기길 원했다. 시골의 환경은 그가 조용히 글과 찬송을 쓰기에 참 좋았다. 그는 그렇게 직접 지은 찬송들을 특별한 예배가 있을 때마다 교인들과 함께 불렀다. 그러던 히버가 성공회 주교로 취임하게 됐다. 윗사람들은 그가 인도의 캘커타(Calcutta) 지역을 맡아 떠나기를 원했다. 히버는 정든 호드넷을 떠나기 싫었지만 사역자는 병사처럼 윗사람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인도로 사역지를 옮겼다. 3년간 사역에 전념하던 그는 1826년 4월 3일 43세였을 때 인도의 티루치라팔리(Tiruchirappalli)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예배를 인도했다.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더워 그는 예배를 마친 후 물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만 예기치 않게 익사하고 말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그의 아내는 남편의 낡은 가방에서 종이 한 뭉치를 발견했다. 그가 오래전에 예배를 위
현 시대를 나타내는 많은 현상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 중 하나가 스피드, 즉 빠름이다. 삶의 많은 부분들이 자동화되면서 일상이 빨라짐에 따라 변화의 속도 또한 빠르다. 시대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현재를 표현하는 유행이나 성향의 변화도 정신없이 빨라졌다. 그러다보니 삶의 편리함은 향상 됐을찌라도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일상에서의 진지함이 답답함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원칙을 위한 엄격함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빠른 변화와 신속한 적응으로만 충족될 수 없는 것이기에 현대인들은 공해해지고 외로워지는 것 같다. 진지함이나 엄격함과 같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어 했던 가치들은 역설적으로는 삶을 살만하게 하는 소중한 가치요 기준일 수 있다. 아마도 낭만시대의 기독교 작곡가였던 멘델스존(1809~1847)은 이런 삶의 가치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피아노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엄격 변주곡인데 이 작품의 제목만 보더라도 멘델스존이 추구했던 가치의 본질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주제와 17개의 변주로 이뤄져 있는데 1841년에 작곡된 것으로 멘델스존이 가
시빌라 마틴(Civilla Martin) 여사는 캐나다 노바스코샤 출신으로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 후 학생들을 가르쳤다. 몇 년 후 하버드대학 출신인 월터 마틴(Walter Martin) 목사를 만나 결혼하고 남편을 도와 전도에 힘쓰며 틈틈이 글을 쓰는데 시간을 보냈다. 마틴 목사 부부는 9살 난 아들과 함께 몇 주간 뉴욕의 한 성경학교를 방문하고 있었다. 찬송가집을 만들고 있는 성경학교 교장인 데이비스를 돕기 위해서였다. 어느 주일 저녁 마틴 목사는 그 곳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그런데 부인 시빌라가 갑자기 아프게 돼 그는 아내를 돌봐야만 했다. 고민 끝에 하는 수없이 설교를 할 수 없어 죄송하다고 연락하려는 참이었다. 그 때 어린 아들이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아빠가 오늘 밤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빠가 안 계신 동안 하나님이 엄마를 지켜 주실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 말에 감동이 된 마틴 목사는 어린 아들의 믿음을 대견스럽게 생각하며 평안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교회로 향했다. 그 날 예배의 설교시간에는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 평소보다 훨씬 큰 은혜를 체험했다. 병상에 누워있던 마
드디어 독일 30년 전쟁이 끝을 맺었다. 총소리와 대포소리는 멈추었지만 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도시는 폐허가 되어있었다. 사람들에겐 당장 살아갈 곳조차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쟁이 남긴 가장 큰 상처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과 가족들의 죽음이었다. 1,600만 명이던 인구는 절반 이상이 사망하고 600만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흑사병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이름을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려 죽어갔다. 아버지의 목회를 돕다가 루터교 목사가 된 베냐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는 전쟁 이후의 사역으로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슈몰크 목사 부부는 눈을 뜨자마자 성도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들의 상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것이 시급했다. 32세 된 젊은 슈몰크 목사는 아내와 함께 그날따라 조금 먼 곳으로 심방을 나갔다. 그들의 방문은 상처 입은 교인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 여러 곳을 들르고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기 멀리 집이 보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설마하며 재빨리 집으로 뛰어가 봤다. 사택은 이미 홀랑 타
칼 보버그(Carl Boberg)는 배를 만드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소개로 여러 해 동안 선원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19세에 주님을 영접하고 갑자기 사역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신학공부를 마친 그는 고향에서 문서전도 활동을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주간지 ‘진리의 증인’(Witness of the Truth)의 편집자로 글을 썼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수년간 스웨덴의회 상원의원으로도 일했다. 보버그는 많은 찬송을 썼고 후에 ‘스웨덴 복음전도 언약교회’의 찬송집을 편집하기도 했다. 보버그 목사가 26세에 스웨덴 남동부 해안의 시골을 방문했을 때였다. 갑작스런 천둥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쏟아 내렸다. 그리고 비가 갠 뒤의 풍경은 헤아릴 수 없이 아름다웠다. 숲속의 새들이 크고 작게 지저귀는 노래가 천상의 피리 소리처럼 메아리쳐 울렸다. 발 앞에 놓인 옥색 강물이 바람 따라 퍼지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듯 했다. 우주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듯 보버그 목사는 소리쳤다. 이렇게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터져 나온 탄성이 바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이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기억을 추억으로 고이 접어 마음 깊이 넣어두며 다시 한 번 시간과의 이별을 하는 시기가 왔다. 2017년의 마지막 달력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은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한번 쯤 하게 되는 연중행사 같은 것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격동의 시기를 지나왔고 급기야 땅마저 요동치며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일도 겪으며 그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시간은 야속하게 우리를 떠나려고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그리 큰 지진이 아니라고 하는 강도에도 유리가 깨어지고 땅이 갈라지는 모습에 두려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연약함을 다시 깨달으며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무엇이 중요한가?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안지를 마련하는 것이 송년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우리들의 과제인 듯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데 온 정신과 관심을 쏟아온 것 같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되어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고 행동으로는 실천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자신의 목적과 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