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국. 내 나라를 사랑합니다. 지난 월요일(14일)에 연세중앙교회(윤석전 목사)에서 초교파적으로 수천여명이 교회 본당에 입추의 여지가 없이 모여서 조국을 위해 울며, 부르짖으며, 통성으로 3시간 이상 기도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전국에서 온 대형버스가 주차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월요일 마다 흰돌산에서 모이는 초교파 목회자 모임인 ‘실천목회 연구원과 사모 목회대학’의 주의 종들이 중심하여 모였습니다. 내 조국이 없이는 국민도 교회도 없습니다. 애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조국을 사랑합니다. 전국에서 교파를 초월해서 벅찬 가슴으로 모였습니다. 그 동안 조국을 위해 늘 기도하지 못한 것을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1시부터 시작된 강의는 김성국 자유연합대표가 했습니다. 강사의 첫마디는 엡6:12절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현재 싸우는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님을 분명히 했으며 김대표의 강의의 핵심은 우리의 신앙의 핵심을 관통했습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곧 신격화를 전재하며 그들은 그것을 목숨의 가치와 동일하게 하고 있으며, 이에 반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제거한다는 것이다(북한에 김일성 부자 동상-38
제69대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 김대현 목사와 제1부총회장 곽도희 목사, 제103차 총회 임원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제69대 총회 의장단 취임을 통해 교단의 새로운 도약이 이뤄지기를 전국 3천교회와 대의원들은 기대하고 있다. 화합총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섰던 대의원들도 후보를 지지했던 대의원들을 정치적으로 안고 가야할 것이다. 교단 화합을 위해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교단 발전에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취임한 김대현 총회장은 임명된 임원들과 많은 논의가 있어야겠지만 교단화합을 저해하는 어떤 임원의 독주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지난 회기동안 실패의 원인 중 하나가 몇 사람의 독주에 의한 권위주의에 매몰되어 총회장을 넘어선 월권행위 때문에 화합총회에 악영향을 끼치게 됐던 것이다. 자신은 총회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대의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총회장은 임원들의 전횡을 사전에 검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총회장의 의중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철저한 관리감독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몇 년간에 반목이 재발할 우려가 있다. 과거의 모든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과감한
안식년으로 귀국한 선교사님이 퀴즈를 내면서 말했다.“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들은 한국 사람이래요!”“예? 동방박사들이 한국 사람이라고요?” 평소에 우스갯소리를 잘 하지 않는 분이라, 웃어넘기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무슨 엉뚱한 학설이 제기됐나? 아니면, 우리나라가 동방이라고 자칭 재림주 하나님이 몇 십 명이라더니 또 어떤 이단이 생겼나?’4가지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동방에서 왔다는 것이고, 둘째는 무리지어 다닌다는 것이고, 셋째는 선물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고, 넷째는 박사들이라는 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디서 누가 지어냈는지는 모르지만, 한참을 웃었는데, 마음 한 편으로는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특히 한국이 엉터리 박사 천국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교육과학기술부, 우리나라 박사학위 등록 등을 관리하는 곳에 의하면, 목사님들이 받은 목회학박사(D.Min) 중에 가장 엉터리가 많다고 한다. (‘가짜 박사’라는 명칭까지 써가면서 가짜박사를 남발한 학교 이름들까지 발표한 적도 있다). 물론 제대로 과정을 거쳐서 수여하는 곳이 더 많을 텐데, 억울하게 오해를 받는 곳
가을의 쪽빛 하늘아래 산등성이의 새하얀 억새들이 은빛 물결이 되어 춤을 추고 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억새는 화려한 단풍빛깔 보다는 화사하지는 않지만 문득 가을 여행을 하고 싶은 ‘가을의 유혹’이다.이러한 10월의 멋스런 날에 제12차 아시아 침례교 여성대회(The 12th ABWUassembly)가 연세중앙교회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 매5년마다 개최되는데 한국에서는 1978년에 개최된 후 35년만에 아시아 18개국의 1,000여명의 아시아 여성 대표들이 등록했고 한국에서는 300여명의 여선교회원들과 사모들이 참여했다.“주님의 순결한 신부로 준비되자”란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는 다채롭고 화려한 침례교단의 멋진 아이콘이 아닐수 없었다. 모든 순서는 영어로 진행됐지만 지식의 전달보다는 믿음의 아이콘으로 모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회의 목적이 다양한 훈련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제자로 아시아의 침례교 여성들의 연합을 위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사역과 선교를 위한 네트워크와 참석자들에게 함께 예배하고 친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에 큰 의의가 있었다.기도, 세미나 간증 설교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발견했고 영적으
흔히 좋은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일벌레가 되었다”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자신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설령 중단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거나 그럴 수 없을거라고 지레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경우 평생 피로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해결책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위안을 삼자.먼저 일벌레가 되려는 목적을 생각해봐야 한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일벌레가 되어야 한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신의 역량 이상을 쏟아 붓는 이유를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생존에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을 넘어선 위대한 대의 때문이라고나 할까? 자존감을 끌어올리자.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믿음은 개인의 가치를 인정하는 현실을 바르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만약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우주의 중심을 지탱하는 사람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생각과 같은 의미다. 그렇지만 조건을 따지지 않고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다면 그들은 당신의 참 자아상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이처럼 현실을 제대로 보는 시선은 낮은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자신을 바르게 보는 안목
어느 날 부터인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동등시 되어 왔다고 생각된다. 한 교회를 개척하고 평생을 목회에 전념하면서 교회는 급성장하게 됐고 한국교회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반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어두운 과거와 더불어 사회에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한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은퇴 후 교회를 대물림 해주고 그 뒤에서 섭정하는 행위, 은퇴 후에도 버젓이 담임목사처럼 매주 강단에 올라 설교하는 행위, 자신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목회자의 말에 절대적 순종을 요구하는 행위, 총회장이나 감독이 되기 위한 혼탁한 선거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태들과 문제점들이 이곳저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사회와 국가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반해 교회와 교단은 권력화 되고 정치세력화 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 땅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양반과 평민의 높은 벽이 허물어지고 주인과 종의 차별이 없어지게 된 혁명적 사건이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1980년대 까지만 해도 교회와 목회자들이 어두운 사회를 이끌어왔고 비 그리스도인들도 교회는 사회적 약자들의 위로와 안식
일반적으로 잡초는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또 아무데서나 볼 수 있어서 귀하게 느껴지지 않고 함부로 대해도 될 것같은 마음이 든다. 질긴 생명력 하나만이 잡초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부각되어서 잡초에게는 자존심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읽어 주는 남자」에는 자신의 문맹을 드러내는 것보다 수감생활을 택함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여자이야기가 나온다. 누가 봐도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그녀는 그렇게 한다.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는 책을 읽어서 녹음한 테이프를 감옥에 보내줌으로 그녀만의 방식으로 자존심을 지키도록 도와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그 남자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글을 배운다. 녹음테이프와 책을 대조해 가면서 글을 배우는 과정은 진정한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녀는 삐뚤빼뚤하는 글씨로 편지를 써서 자신이 더 이상 문맹이 아님을 보여주는데도 그 남자는 여전히 테이프를 배달한다. 남자의 일방적인 방식은 그녀가 평생을 걸고서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무너졌고 무너진 자존심은 절망으로 이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자발적인 감옥행은 어리석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자발적인
중국은 지금 그 이름답게 세계의 중심이 되어 있다. 최근에는 세계의 금을 한 손에 쥐더니 이제는 다이아몬드를 또 한 손에 움켜쥐려고 유대인과 인도인이 휘어잡던 앤트워프 다이아몬드 시장에 진출, 2년 만에 다이아몬드의 최대 수입국이 되며 미국을 2등으로 밀어냈다. 이렇게 지금 중국은 세계 경제의 한 축을 확고히 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강대국들과 대등한 위치를 확보함으로 중국은 이제 세계가 공부하고 싶은 나라가 됐다. 하지만 빛 뒤에 어둠이 있듯이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도덕적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코뿔소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사이 빠른 경제성장은 했으나 이로 인하여 배금주의를 낳으면서 사회의 도덕성 상실과 각종 부정부패들로 정신적 빈곤이라는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급기야 중국 정부는 중병에 처한 중국의 도덕성 치유를 위해 종교와 전통적 이데올로기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그동안 핍박하며 박해하였던 종교에 관용을 베풀면서 적극 활용하려 하고 있다. 그 대안 속에는 2300만 명의 신자를 가진 중국 내 기독교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중국에서의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함께 중국의 병을 치유하는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비해 지금 한국에서는 중국과 같은 도덕성의
“나를 할아버지로 불러 줄 사람을 찾는다. 매달 많지는 않지만 사례도 할 것이다”2004년 8월 한 이탈리아 일간지에 실린 이색 광고가 독자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당시의 여든살 노인인 지오르지오 안젤로치가 자신을 ‘입양’ 할 가족을 구한다며 게재를 신청한 문안이다. 12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살아온 안젤로치는 로마 근교에서 애완 고양이 몇 마리와 연금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퇴직 후 해온 활동이라고는 교사 경력을 살려 어린 학생들에게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가르친게 전부다. 의탁할 자녀나 친지 하나 없어 외로움을 견디다 못한 안젤로치는 급기야 자신을 ‘할아버지’로 받아들여주는 가족에게 월 500유로(약 75만원)를 지불하겠다는 조건까지 달아 눈물의 공개 호소를 하기에 이르렀다.이따금 해외의 나이든 거부들이 ‘젊고 예쁜 아내를 구한다’는 따위의 구인광고를 내서 화제를 뿌렸던 일들이 있엇다. 하지만 안젤로치의 사연은 몇 마디 입방아 소재로 치부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서글픈 단면이다.세계 3위의 고령국인 이탈리아는 철저한 연금제도와 노인복지 제도로 일찍이 고령사회를 대비하여 각국의 ‘실버정책’에 방향키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가족 중시의 전통마저 견고한
오늘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의 리더십을 보면 둘로 나눌 수가 있다. 지배자형과 지도자형이다. 지배자형 리더십은 남을 이기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사람이다. 정복자의 모습인 것이다. 일평생 남을 이기는 것이 성공인 줄 알고 살아간다. 그러나 지도자형 리더십은 다르다. 싸움이 남과의 싸움이 아니고, 자기와의 싸움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자기와의 싸움에 모든 힘을 쏟는다. 남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문하면서 바로 서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때로 우리는 용기가 없어서 잘못된 일을 보고도 눈을 감는다. 귀찮아서 잘못된 일을 보고도 눈을 감고 못 본채 한다. 잘못된 일을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난이나 비판이 아닌 정직이고 의를 세우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피해간다. 더군다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이라면 당연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때론 우리 사회에선 “너나 잘 하세요”라는 아주 냉소적인 분위기가 있다.교회의 지도자라면 진실한 마음으로, 정직한 마음으로, 사리사욕을 버린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선 자세로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꾼임을 고백한다면 교회의
“모든 것 아버지 허락 없으면 한 마리 새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제103차 정기총회가 성황리에 마치기까지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이루셨습니다.정기총회 개최 준비부터 무려 2년동안 이 일을 준비했습니다. 순천교회 모든 성도들이 금식기도, 릴레이 기도, 구역기도, 개인기도, 연합기도 등 그 기도의 분량을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기도로 준비하는 동안 수많은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순천시에 보조금을 신청할 때였습니다. 시장님까지 결재했던 안건을 시의회에서 “단일 교단에 보조하면 형평성에 어긋나고 이단이나 다른 단체까지 이의를 제기하니 할 수 없다.” 또는 “순천에 침례교회가 2교회 밖에 없다. 이를 허락할 수 없다”면서 지원을 부결시키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참담함과 서러움을 뒤로하고 이듬해 추가로 재신청해서 순천지역 타교단들도 부러워할 정도로 2천만원이 넘는 행사 보조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교회 성도들도 순천 총회개최를 위한 후원 헌금을 모았다. 여전도회에서는 3개월동안 돈가스 사업을 해서 700만원을 헌금했고 모 성도는 20년 근속 순금 매달 10돈을 헌금했으며 한려지방회와 지역 교
제103차 정기총회 의장단 선거를 치르면서 모든 선관위 위원들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총회장 추천으로 매년 3명의 선관위 위원이 영입되고 1년이면 6차례 전체회의를 열고 있습니다. 대부분 의장단 선거 참모로 수고하다가 후보가 당선되면 들어오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지역적인 안배도 고려되지 않습니다.그렇지만 선거관리위원회에 들어오면 한 마음이 되어 교단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문화축제를 갖자고 제안을 하고 위원 모두가 찬성했습니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년 동안 회의 중에 한 건도 만장일치로 처리하지 않은 일은 없었습니다.회의전 미리 안건을 토론하고 공통의 의견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이후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뿐만 아니라 정기총회 선거 전날, 의장단 후보자들과 운동원들이 함께 한 1일 합숙도 처음으로 실시함으로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습니다. 단 저녁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진행한 상황이라 약간의 무리함도 보였습니다.내년에는 수정해 저녁 모든 회무가 마무리 된 이후로 진행하도록 제안하려고 합니다. 올해에는 특히 선관위가 상정한 규약 개정이 원만하게
제103차 정기총회가 폐회했다. 제69대 총회 의장단도 선출했고 총회 주요 사업을 정리하고 몇 가지 의미 있는 결의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총회가 우려했던 사안들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결국 상처만 남거나 건설적인 결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특히 7년 만에 통과된 ‘여성 목사 안수’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서 규약을 개정해서 처리했지만 결의 과정에서 소수의 착석 대의원으로 규약을 개정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다. 또한 신학교 이사의 행정 처분 문제, 침례병원 이사회 소환, 전 총무의 환수 문제 등 여전히 교단의 잡음으로 남아 있는 사안들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대의원들의 분위기와 흐름에 편승해서 결의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 교단이 보다 포용력을 발휘하고 결의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함을 깨닫는 계기도 됐다. 또한 교단의 적잖은 부채로 건축시기부터 우려를 낳았던 여의도 총회 빌딩이 완공된 이후, 운영 계획이나 부채 청산 계획, 입주 계획 및 오류동 총회빌딩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첨예한 논쟁만 벌어진 채 모든 짐을 유지재단이사회에 넘겨 놓은 상태이다. 지금부터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임대 사업이 활발
몇 년 전에 성도님 한분이 예쁜 포도나무 분재를 하나 사오셨다. 관리를 잘 못해서인지 잎이 점점 시들고 신통치 않아서 마당 한 곁 수도가 옆 화단에다 옮겨 심었다. 화분에서 꺼내 보니 잔뿌리는 없고 큰 뿌리만 남겨두어 겨우겨우 명맥만 유지하게 만들어 관상용으로 만든 것을 알게 되었다. 첫해에는 뿌리를 내리고 되 살 이를 하느라 고생을 하며 겨우 잎이 살아나고 가지가 움트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새순이 나오고 제법 잎도 무성해 지고 꽃도 피고 대여섯 알 달린 포도송이가 한 두 송이 맺었다. 그러더니 금년에는 새순이 왕성하게 뻗고 무성해져서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서 지금 한창 익어가고 있다. 분재 화분에서 시들시들 다 말라가던 포도나무가 좋은 땅에 화분이 아닌 좋은 땅에 심겨지니 다시 살아났을 뿐 아니라 이렇게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을 보니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눈으로 본다.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사는 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에 물 길러 나온 한 여인을 만나 말씀을 을 통하여 그 심령 속에 영생하는 생수를 주시고 그 일로 인하여 기뻐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는 모습
언제부턴가 ‘간첩’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리게 됐었는데, 최근 소위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을 통해 옛 기억들이 다시 나의 삶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민혁당을 만들어 주사파의 대부로 불리다 전향한 김영환 씨는 이석기 같은 사람들이 전국에 약 1천 명 정도 더 있다고도 하니 숨이 좀 막힌다. 실제로 이석기 의원이 보여준 그간의 행동들이 내란 음모였는지는 앞으로 검찰과 법원의 판결을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작금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국민입장에서 지극히 염려가 된다. 이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 갈등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가 있는 한 진보는 존재한다.그러나 진보주의와 종북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이 둘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것은 진보세력과 종북세력 모두 민주라는 이름아래 서로의 목적을 위해 합종연횡 한 결과다. 이번 사태로 어정쩡한 두 부류가 선명하게 분류되기를 희망한다. 보수만이 옳은 것이 아니다. 보수를 견제하고 보수를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진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진보가 보수를 무조건 비난하고 반대 방향으로만 나간다면 오늘과 같은 종북에게 먹혀 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북한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