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식 목사 / 빛으로교회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는 큰 변화를 겪으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비대면의 환경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동안의 현상을 진단하며 앞으로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성을 3개의 키워드(하이브리드, 배움, 소그룹)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새로운 마음 위드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현재는 과거로의 회귀를 허락하지 않으며, 새로운 마음을 갖출 것을 요청한다. 조금만 더 견디면 끝날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를 여러 차례 허망하게 만들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러온 팬데믹과 함께 2021년이 끝나고 이제는 코로나19가 빠른 시기에 끝날 것이라는 성급한 답을 주저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미 백신 접종 완료 인구가 상당히 높아도, 오미크론이란 변수 앞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만큼 바이러스의 변이 속도가 빠르고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타임머신 역할을 했다. 2030년을 2020년으로 가져왔다. 한층 더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에서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는 2022년이 될 것이다. 2. 코로나 시대의 위기 코로나19로 교회는 충분한 준비나 신학적 성찰 없이 거대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파도 앞에 놓여 있다. 비대면 예배가 일상화되면서 2년 동
코로나19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교회가 역사적으로 급성전염병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전염병에 대한 해석과 대처 종교개혁자들은 급성전염병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다양한 각도로 해석했다. 울리히 츠빙글리 스위스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활동 무대였던 취리히는 1519년부터 1520년 2월까지 창궐한 흑사병으로 인구 7000명 중 25%가 죽음을 당했다. 츠빙글리 역시 흑사병에 감염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극적으로 회복됐다. 츠빙글리는 죽음 앞에서 인간의 무능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깊이 깨닫게 되면서부터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인문주의자에서 개혁주의 신학자로 변하게 됐다. 그는 흑사병에서 회복된 후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 시인 역병가를 썼는데, 역병 가는 ‘토기장이와 토기’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강조하였다. 흑사병은 츠빙글리가 개혁주의 신학자가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인리히 불링거 불링거가 츠빙글리의 후임 목사로 목회하던 때 취리히에서는 흑사병이 1564~65년에 발병해 시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불링거의 아내와 3명의 딸
코로나19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교회가 역사적으로 급성전염병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중세 교회의 전염병에 대한 해석과 대처 중세 시대 흑사병으로 불린 급성전염병은 유럽에 간헐적이며 지속적으로 발병했고, 14세기 후반부터 만성적인 풍토병이 됐다. 중세 초기 541년 이집트 항구도시 펠루시움에서 발병한 흑사병은 542년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진출해 544년까지 약 30만 명을 희생시켰는데, 그것은 주민 전체의 1/3에서 1/2에 해당되는 숫자였다. 흑사병은 유럽으로도 번져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중세 유럽은 역병에 대해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과 의술을 발전시키는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다. 투르의 주교이자 프랑스 역사가인 그레고리우스(538-594)는 갈리아에서 역병이 발생했을 때, 클레르몽의 주교 갈루스가 주민들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지로 행진했고, 그 결과 클레르몽의 주민은 단 한 명도 역병으로 사망하지 않았던 반면 후임 주교 카우티누스는 571년 역병이 발생하자 도피하기 바빴고, 그 결과 클레르몽의 주민들이 시체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희생됐다고 했다. 흑
코로나19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교회가 역사적으로 급성전염병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하여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초기 교회의 전염병에 대한 해석과 대처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첫 3세기 동안 두 번의 국제적 전염병이 있었다. 첫 번째는 165년경부터 189년까지 창궐한 “안토니우스 역병”으로 로마제국 전체 인구의 1/3 혹은 1/4를 죽게 만든 전염병이었다. 고대 도시는 인구 밀도가 매우 높아 질병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바울이 로마에서 사역하던 1세기 중반 로마시의 인구는 약 45만 명 정도이며, 1,220평 당 302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인도의 캘커타가 122명, 뉴욕 맨해튼이 100 명인 것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붐볐음을 알 수 있다. 높은 인구 밀도는 심각한 위생 문제와 전염병의 확산을 야기했다. 키프리아누스 역병’으로 불린 두 번째 전염병은 249년에서 262년까지 지속됐는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시민의 2/3를 죽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교회는 급성전염병에 잘 대처해 로마제국의 지배적인 종교로 부상하게 됐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담임목사 디오니시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여전히 주보(週報)는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그 교회 주보(週報)의 어느 부분을 보십니까? 대게 주보 뒷면에 보면 광고와 아울러서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주로 지난주일 출석 상황과 헌금자 명단을 집계한 것이지만 “주보 한 장”으로 그 교회의 교세와 형편을 가늠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교회에서는 통계란에 여러 항목을 만들어서 전체 숫자를 많게 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그런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유령 숫자까지 넣어서 통계를 만드는 교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본래 주보(週報)라고 하는 것은 주일의 예배를 안내하고 교회의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일종의 그 교회의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즈음 대개의 주보는 “예배 안내”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교회 사진이나 큼직하게 넣고 목사. 전도사. 안수집사(장로)의 이름까지 전면에 게재해 한눈에 교회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게 하고 구역목장 통계나 조밀하게 해서 교인은 몇 명이나 되고 헌금은 어느 정도 나온다는 것을 선전한 “교회광고지” 같은 인상이 짙습니다. 하기야 요즈음은 “뜻” 보다는 “목소리”의 크기로 시비하는 세
코로나19가 터지고 2년 동안 충격과 폐해(弊害)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여파는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언제 끝날지, 얼마나 더 피해가 있을지 예단할 수 없기에 누구라도 ‘알 수 없음’으로 답해야 할듯하다. 최근 들어 다시 새로운 ‘변이’들이 또다시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어 참담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라는 시대적 팬데믹을 겪은 이후의 교회들은 “반드시 변화를 요구함”이란 과제 앞에 당면해 있고 이러한 변화로의 움직임도 이젠 다양하며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하고 그 방법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 21년째 작은 시골에서 목회하고 있는 농촌목회자의 생각이다. 현재 한국교회, 그중에 더 심각한 코로나 후유증에 힘겨워하는 농어촌교회에 대한 한국기독교는 뚜렷한 대안 제시가 극히 미진한 것 같아 안타까운 현실이고 계속 나타나는 통계적 자료에만 눌려있고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에 대한 대책이 묘연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필자가 목회하는 성암교회는 전형적인 농촌교회로 이번 코로나19가 충
1818년 어느 늦은 밤. 오스트리아 잘차흐(Salzach) 강변에 위치한 오베른드르프(Oberndorf)란 작은 마을 성니콜라스 교회에 시무하는 모올 신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르간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오르간은 잘차흐강의 습기로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에 놓고 갑자기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그런데 수리를 위한 기술자의 방문은 봄이나 돼야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때 성탄절 행사도 해야 하고, 연극발표회도 해야 하는데, 한 대밖에 없는 오르간이 고장이 났으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시골 마을이라 기술자는 봄이나 오게 되어있고, 그렇다고 새로 구입할 형편도 안되었기 때문에 모올 신부는 벌써 며칠째 오르간을 뜯어서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도무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오르간도 없이 어떻게 성탄절 행사를 할까?” 몹시 상심한 모올 신부는 일손을 멈추고 자리에 꿇어앉은 채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참 동안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니 깊은 밤, 어둠 속에서 환한 달빛이 비치는 마을의 풍경이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참으로 고요한 밤이구나!” 그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에 감동받은 순간, 모올 신부는 아름다운 시 한 편
역사는 말한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냈다. 비대면(un contact)과 사회적 거리두기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기도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역사는 말한다. 세계대전 후에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팬데믹 (pandemic) 후에 펜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 전염병 연구소 파우치 소장은 2021년 말에는 종식될 것으로 예측했지만 지금 우리는 변종 바아러스로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빌게이츠는 2022년에나 종식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그러나 이것도 완전한 일상의 복귀가 아니다. 언제든지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 팬데믹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백신은 유효기간이 3~4 개월이다. 코로나는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어주셔야만 끝날 수 있다. 인간중심의 자본주의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비(非)인간화와 기계화로 결국에는 사물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사회와 공동체를 파괴되고, 자연을 무분별하게 훼손하며 인간의 무한 욕망을 무한 긍정하는 죽고 죽이는 정글 구조를 만들고 있다. 지구화·도시
코로나19 사태로 앞당겨진 4차 산업 시대 목회는 대면 중심의 현장 예배를 지향하던 한국교 회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초연결사회, 접속 패러다임의 전환점에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예배당의 빈자리에 성도를 채우는 것이 부흥이라고 배워온 목회자들로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 텅 빈예배당에서 새로운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는 이미 익숙해진 “가상공간 혹은 사적인 공간의 공적 공간화”이다. 다시 말해 예배와 신앙교육의 공간이 교회당 바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니 급진적으로 가상의 공간 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몇 해 전까지 누가 주일 예배를 자기 집 거실에서 스마트폰으로 드리는 성도들의 믿음이 선하다고 말할 때가 올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이미 세상은 코로나로 앞당겨진 4차 산업 시대의 변화에 직면하여, 누구나 손쉽게 스마트폰 안에 디지털 공간과 접속해 가장 사적인 공간인 가정에서 예배가 가능한 초연결사회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에 코로나19 사태는 4차 산업 시대의 변화를 실험하는 도전과 모험의 시간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감염병 전문가뿐 아니라 사회의 패러다임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코로나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우리에게 와서 우리로 변화를 요구했다. 너무나 안일했던 초기 대응과 나와는 상관없을 줄 알았던 어리석음이 화를 키웠다고도 말한다. 또한 교회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믿는 자라면 코로나를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일명 지혜롭게 하라는 말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교회로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라면 믿음뿐이다. 언제든 조건은 계속해서 변화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끊임없이 사람이 우선이라는 말이 정의처럼 주장하고 동조할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우린 단순한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신정 민주주의자이다. 조건과 상황에 적응하여 변화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이다. 비대면 신앙은 없다.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은 전투다. 싸우는 것이다. 져도 괜챦은 싸움이 아니라 목숨을 건 싸움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지를 소개하는 글을 부탁받았다. 그러나 결론 부터 말하면 특별히 코로나 이전의 교회생활과 많이 다르지 않다. 주일이면 예배드리고, 주중엔 수요예배, 구역 예배, 금요예배로,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