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끝에서 우리 사회의 현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서 분출한 것이 있었다. 한 대학생의 사회를 바라보는 눈과 의식이 녹아서 표현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주제의 대자보가 바로 지난해의 시대상을 군더더기 없이 그대로 적절하게 표현하며 사회의 큰 방향을 불러온 사건이다. 이후 각 대학들과 다양한 계층과 지역에서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들을 통해 오늘의 우리들의 자화상을 노출시키며 감추어져 있던 욕구들을 분출함으로 그동안의 과격한 시위보다도 더 폭발력 있게 그 위력을 실감케 했다. 이는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세대를 불문하고 스스로 88만원 세대라고 밝힌 그의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불편한 지적대로 안녕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소리라도 쳐야 했는데 소리는 고사하고 그저 죽은 채 하고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나약한 자들을 대신한 그의 한 방에 은근히 카타르시스(catharsis)같은 쾌감을 느꼈다. 문제는 새해가 됐음에도 여전히 이 땅의 우리들은 안녕하지 않다는 것이다. 진, 보수 이
예수님은 과연 12월 25일에 오셨는가? 우리는 그 날을 기념해야 하는가? 성경을 자세히 살피고 역사기록들을 부지런히 공부하면 예수님께서는 결코 12월 25일에 출생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2월 25일은 바벨론 태양신 축제의 날임을 알 수가 있다. 12월 25일이 어떻게 태양신 축제의 날이 되었는가? 고대 바벨론 왕국은 바벨탑을 쌓기 이전부터 노아홍수 심판을 거치면서 태양을 생명이라고 숭배하기 시작했다. 창세기에 보면 니므롯(Nimrod)이 바벨이라는 큰 성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처음 영걸이 되었다.(창10:8-9) 니므롯이 죽은 후에 그의 어머니이자 부인이 된 구스의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가 니므롯을 태양신으로, 자신을 월신(月神)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다. 그 때부터 12월 25일은 태양신 숭배의 날로 지켜지기 시작했다. 에스겔서에도 태양에게 경배하는 기록이 있다.(겔8:16) 이 바벨론의 태양신 숭배가 메데,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으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로마 카톨릭이 서기 5세기경에 12월 25일을 예수님 생일로 영원히 지킬 것을 명령했다. 그 때부터 오늘날의 성탄절 즉 크리스마스(Christmas, 그리스
새벽송의 추억이 그립다. 크리스마스 전날이 되면 밤이 맞도록 집집마다 다니면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선율은 또 얼마나 감미로웠는지…. 참 아련하고 따뜻한 추억이다. 그러나 이제는 잊어야만 하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가슴이 아프다. 크리스마스의 진실을 알고 나서는 더 이상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축제(?)를 즐길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께서 탄생한 날로 달력에 지정된 날이다. 그러나 이 날이 정말 그분께서 탄생한 날인가? 또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는 크리스마스 관습들(트리 장식, 산타클로스, 캐롤송, 선물교환 등)은 기독교의 기원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고대 이교주의(Cult)의 산물인가?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날짜에 대한 진실은 다음 번에 다루려고 한다. 먼저 ‘크리스마스’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가 합쳐진 것이다. 미사란 라틴어 “Massa”에서 나온 말로서 로마카톨릭의 그리스도의 미사(Christ`s Mass)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특별한 미사이다. 미사는 예배가 아니라 제사이다. 크리스마스는 초기
2002년 미국 의회가 전화기의 최초 발견자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서 안토니오 뮤치로 수정 발표했지만 일반적으로는 1876년 벨이 최초 전화 발명자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시작된 전화의 역사는 여러 과정을 거쳐 1980년 대 휴대폰 시대를 연다. 집에서 거리로, 고정에서 이동으로 변신을 한 것이다. 처음의 휴대폰은 크기나 편리성에서 여러 가지로 불편했지만 점점 진화해 1993년 IBM의 흑백스마트폰을 거쳐 2008년 애플의 2G를 3G로 업그레이드 된 아이폰과 2010년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삼성의 갤럭시S가 출시되면서 인터넷 웹서핑과 각종 검색, SNS 등 휴대폰의 활용 영역이 모든 삶의 영역으로 확대됐다.최근에는 지문인식과 안구인식의 기능을 하는 능력까지 발휘하며 세상을 향해 그 거만한 혀를 날름거린다. 이렇게 세계가 스마트폰의 지배를 기꺼이 수용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인터넷과 함께 휴대폰 보급률 및 교체율에 있어 당당히 세계 1위를 고수하며 달리고 있다. 이는 거의 종속 및 지배수준이다. 이제 휴대폰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우리 생활의 절대필수품이 되었다.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마음대로 돌려대듯이 휴대폰은 단순한 통화기능에서부터 대부분의 분야에
교회 부흥과 교회 성장은 다르다. 부흥(revival)은 새롭게 되는 것이다. 영혼이 구원받고 구원받은 성도가 새롭게 회복되는 것이다. 성장(growth)은 주로 신자 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교회 성장에 초점을 맞춘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 중에서 단연코 알파 코스와 G12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과연 알파 코스는 성경적인가? 성경에서 금(Gold)은 우상을 만들어 섬길 때 쓰며 인간을 타락시키는 물질로 나와 있다. 또성경에서 금은 오직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의 성구들을 만들고 예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기 위하여 드려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그런데 요즈음 알파코스나 G12같은 은사주의 집회를 하는 현장에서는 금을 성령님(?)께서 금이빨과 금가루로 주고 있다고 한다.왜성령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이율배반적으로 만들면서까지 이런 기적(?)을 베푸시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들을 따라가고 있는 알파코스와 G12는 무슨 원리에 기초한 프로그램일까?알파코스(Alpha Course)는 1990년, 영국 런던의 성공회 소속 ‘성삼위일체 브럼턴성당’에서 니키 검블(Nicky Gumbel) 신부에 의해 시작됐다. 브럼턴성당은 은사주의적 성공회 교회이다. 알파코스는 전
여의도 총회 건물에서 보이는 가을은 아름답다. 지금 여의도에는 유유히 흐르는 한강위에 떠 다니는 유람선과 한강공원을 산책하는 이들로 붐비고 있다. 제주도 한라산에서 강원도 설악산까지 온 국토를 오색물감으로 채색한 가을풍경의 그림들이 가을의 끝자락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서울의 거리는 가로수들의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있고 가을 빛깔이 첩첩산중 계곡물까지 떨어진 낙엽들의 풍광은 다시금 하나님의 솜씨를 감탄하게한다. 지방마다 ‘국화축제’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구절초, 쑥부쟁이, 각종 야생화의 향기 속에 창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있다.미국에 가면 행정지역인 워싱턴DC에는 포토맥 강이 흐르고 포토맥 강가에는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봄이면 생명력이 넘쳐난다 벚꽃이 워싱턴 곳곳을 봄빛으로 물들이고 상춘객의 발걸음이 생동감으로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강물에 곱게 물든 낙엽이 함께 흐르는 풍경을 즐긴 추억이 있다. 미국에 잠시 동안 살 때, 우리집에서 40분 운전하면 갈수 있는 포토맥강가에서 한국의 부산의 해운대 바닷가로 생각하며 혼자서 차를 몰고 다닌 적이 많았다.우리 총회의 위치도 낭만스런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한강이 도로 건너 저편에
마치 붐(boom)이라도 일듯 요즘은 여성들이 대세인 듯하다. 최근 러시아가 중앙은행 총재로 여성을 임명하더니 미국 연방준비제도의장도 여성으로 지명됐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또한 홀로코스트(Holocaust) 희생자의 딸인 카니트 플루그를 지명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양보다 질의 양상을 띠고 있으며 앞으로의 진출 가능성은 더욱 높다할 수 있다.실제로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회 분야에 여성들의 진출이 근래에 와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와 계속되는 기술의 진보들은 더 많은 여성들을 사회로 진출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여성의 관점’과 ‘성정치학적 관점’을 기본으로 하는 페미니즘(feminism)의 짧은 역사에 비하면, 오늘의 관점으로 바라본 여성은 도리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의 주체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잉태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불편한 가능성은 앞으로의 세대 보다 오늘의 세대가 지혜롭게 위험한 장치를 제거하는 비용과 수고들을 얼마나 잘 감당하느냐에 따라 결정 될 것이다.잘못하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하였다는 프랑스 혁명에서도 여성
조국교회는 여러 가지 복잡한 현안문제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던 차에 세계교회협의회(WCC) 제 10차 부산총회로 인해 보수와 진보교단이 갈라져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에 모 기독교 단체에서 말한 것처럼 WCC의 신학과 이론은 비판하되 보수와 진보가 하나 되는 길은 버리지 말아야 하겠다. 조국교회가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니까......조국교회가 나뉘어져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이다. 예배할 때 사도신경을 고백 하는가 아닌가로 나뉜다. 지나간 시론에서 사도신경 고백문제를 다루었기에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다. 오늘은 사도신경 안에 복음과 교리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사도신경은 참 성도들의 믿음을 충분히 담고 있는가? 과연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믿고 있는 중요한 모든 교리들이 사도신경 안에 요약되어 담겨져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사도신경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어야 할 보편적이고 확실한 교리들이 너무나 많이 빠져 있다. 먼저, 사도신경에는 “성경”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
가을의 쪽빛 하늘아래 산등성이의 새하얀 억새들이 은빛 물결이 되어 춤을 추고 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억새는 화려한 단풍빛깔 보다는 화사하지는 않지만 문득 가을 여행을 하고 싶은 ‘가을의 유혹’이다.이러한 10월의 멋스런 날에 제12차 아시아 침례교 여성대회(The 12th ABWUassembly)가 연세중앙교회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 매5년마다 개최되는데 한국에서는 1978년에 개최된 후 35년만에 아시아 18개국의 1,000여명의 아시아 여성 대표들이 등록했고 한국에서는 300여명의 여선교회원들과 사모들이 참여했다.“주님의 순결한 신부로 준비되자”란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는 다채롭고 화려한 침례교단의 멋진 아이콘이 아닐수 없었다. 모든 순서는 영어로 진행됐지만 지식의 전달보다는 믿음의 아이콘으로 모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회의 목적이 다양한 훈련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제자로 아시아의 침례교 여성들의 연합을 위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사역과 선교를 위한 네트워크와 참석자들에게 함께 예배하고 친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에 큰 의의가 있었다.기도, 세미나 간증 설교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발견했고 영적으
중국은 지금 그 이름답게 세계의 중심이 되어 있다. 최근에는 세계의 금을 한 손에 쥐더니 이제는 다이아몬드를 또 한 손에 움켜쥐려고 유대인과 인도인이 휘어잡던 앤트워프 다이아몬드 시장에 진출, 2년 만에 다이아몬드의 최대 수입국이 되며 미국을 2등으로 밀어냈다. 이렇게 지금 중국은 세계 경제의 한 축을 확고히 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강대국들과 대등한 위치를 확보함으로 중국은 이제 세계가 공부하고 싶은 나라가 됐다. 하지만 빛 뒤에 어둠이 있듯이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도덕적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코뿔소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사이 빠른 경제성장은 했으나 이로 인하여 배금주의를 낳으면서 사회의 도덕성 상실과 각종 부정부패들로 정신적 빈곤이라는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급기야 중국 정부는 중병에 처한 중국의 도덕성 치유를 위해 종교와 전통적 이데올로기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그동안 핍박하며 박해하였던 종교에 관용을 베풀면서 적극 활용하려 하고 있다. 그 대안 속에는 2300만 명의 신자를 가진 중국 내 기독교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중국에서의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함께 중국의 병을 치유하는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비해 지금 한국에서는 중국과 같은 도덕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