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인간과 세상의 구원과 치유와 회복과 재건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의 행동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권능의 행동은 “하나님의 영” 혹은 ‘성령’으로 불리어지는 존재로써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이뤄진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성령에 의해 이뤄지는 하나님의 권능의 행동인 것은 그의 침례와 함께 임한 성령 강림의 체험과 그 이후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으신 것과 유대 광야에서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고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메시아’의 사명 (직분)을 주시고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권능으로 기름 부어주셨기 때문에 시작됐다고 제시하셨다(눅4:18~19). 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치유하시는 권능의 역사를 감당하신 것이다(행10:38). 예수님의 사역 속에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고 있었다는 것은 먼저 그의 가르치는 사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은 연합국 전쟁사가로부터 2차 세계 대전 중 가장 유능한 독일군 지휘관중 한 명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네 종류의 장교에 대해서 말합니다. 첫째, 게으르고 멍청한 장교, 둘째, 열심히 일하는 지혜로운 장교, 셋째, 열심히 일하면서 멍청한 장교, 그리고 최고의 리더인 ‘똑똑하고 게으른 장교’입니다. ‘멍부’ 즉 멍청하면서 부지런하고 열심까지 있는 리더는 최악입니다. 의미 없는 일에 자신과 부하들의 힘을 모두 소진시킵니 다. ‘멍게’ 즉 멍청하면서 게으른 리더는 최소한 자신의 멍청함을 주위에 전염시키진 않습니다. ‘똑부’인 똑똑하고 부지런한 리더는 모든 일을 다 잘하려 하기에 중요한 일에 집중못할 때가 있습니다. 최고 리더는 ‘똑게’입니다. 즉 결정적인 한 두 가지 일에 집중하는 똑똑하고 게으른 장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은 사실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지혜’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결정적인 일에 집중할때 나머지 일들에 대해서는 게으르게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최악의 리더는 방향을 모르면서 소신있고 열심까지 있는 리더입니다. 젖은 장작에 열심히 불을 때서 연기만 폴폴 나는 리더입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니라”(마태복음5:17)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 봉고차한 대를 구입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대리점 직원이 친절하게도 그날부터 당장 타고 다녀도 될 수 있도록 자동차 등록 및 자동차 번호판까지 모두 갖춰서 교회로 직접 배달해 줬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봉고차를 타고 시내를 다니기에 하나도 손색 함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기에는 그래도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어린이들과 노인들이 봉고차에 올라타기엔 계단이 너무 높아서 중간 발판을 장착시켰습니다. 그리고 한여름에 햇볕이 너무 강렬할 것을 대비해서 유리창마다 햇볕 차단지를 모두 붙였고 또한 자동차 핸들에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가죽 덮개를 씌웠습니다. 이런 보완할 점들을 모두 보완한 후에 저는 속으로 “이젠 완전해졌네”라는 말을 하게 됐습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기존에 있는 율법을 더 보완하여 완전하게 하실
헬위스는 메노파교회에 가입하자는 스마이스의 제안을 거부했는데, 메노파교 회가 계승론, 기독론, 칭의론, 교회론에서 커다란 오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계승설은 메노파교회만이 참된 침례를 계승했기 때문에, 다른 교파의 침례는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헬위스는 두 세 명이 모인 곳에 함께 있다고 한 그리스도의 약속에 의하면, 모든 교회는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와 다르게 메노파교회만 성례에 독점적 권한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고 했다. 헬위스는 누가 성령과 성경을 독점하여 자신들 외에는 하나님의 성례를 집전할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계승설은 전 시대의 모든 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복음의 자유에도 반하는 것이라 주장했 다. 기독론에 대해서, 헬위스는 메노파교회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했다. 이신칭의와 관련해서는, 메노파교회가 인간의 전적 타락과 무능 대신 인간의 내재된 의로움을 믿었기 때문에 개신교 신앙에 위배되고, 교회론과 관련해서는, 위정자(관료)는 교회회원이 될 수 없다는 사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헬위스는 스마이스 그룹의 메노파교회 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한국은 지난 세기에 빠른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이루며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됐다. 그러나 물질적·외적인 면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빈부의 양극화, 연애도 결혼도 집도 포기하는 ‘포기세대’의 등장, 극심한 노사갈등, 세대갈등, 젠더 갈등이 난무하는 ‘피로사회’ 및 ‘위기사회’가 됐다. 각종 폭로와 비방, 고발과 대립이 사회 전반에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선 사람들의 초점이 자기 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타인들에 대한 존중이나 인정,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근래에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강남역 살인사건, 이수역 폭행 사건, 불법 몰카, 미투 폭로 등의 사회현 상들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상대를 찍어내지 않으면 자신이 당한다고 생각하는 정글 같은 사회, 자기중심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개인주의적이라고 알려진 서구보다도 한국의 공동체성이 더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교회가 인간 곤경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라는 맥락에서 이웃을 돌아보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을 방문하고 돕는 심방사역을 조명한바 있다. ‘심방’ 혹은 ‘방문’은
실제로 지옥을 보면 전도열에 불타게 됩니다. 한신목회개발원 원장 이중표 목사님은 이런 간증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중학생일 때 둘도 없이 친한 친구가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읽어 보라고 줬습니다. 그 책을 읽어보니 석가, 공자, 노자, 장자, 소크라테스, 예수 등이 했던 명언들이 가득했는데 그 가운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가장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예수님 말씀만 기록된 책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신약성경을 줬습니다. 신약성경을 읽는 중에 목사님은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 후 고등학생 때인 어느 날 아침 기침을 하는데 피가 쏟아졌습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았더니 폐결핵으로 폐오른쪽에 구멍이 나서 피가 나온다는 것이었 습니다. 그러면서 약을 먹는데도 전혀 치료가 되지 않았습니다. 절망한 목사님은 약국을 돌면서 수면제를 샀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 수면제를 손에 들고 잠시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지옥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목사님은 지옥에서 해골 떼들이 소리치면서 고통당하는 것을 보게 됐습니
필자는 공관복음서에서 제시된 예수님의 교훈을 토대로 “하나님의 나라/천국”의 주제에 관해 알아보고 있다. 지난호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된 구약성경의 배경을 알아봤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일치하는 어구는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신다”라는 하나님의 통치 사상의 형태로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는 그가 행하시는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통해 표현됐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의 참되고 의로우며 영원한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의 통치 행위는 이스라엘을 압제와 억압에서 구원하시는 행동들은 물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심판하시는 행동들을 통해 나타났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그의 백성을 공의(진리)와 인자(은혜)로 통치할 ‘메시아’(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오심을 예언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 사상에 기초해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요즘 우리 주위에는 유명한 정치인, 체육인, 연예인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환승역에서 저승(천국행, 지옥행) 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신 분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생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한 후 천국 행을 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자신이 환승역으로 떠날 남은 시간이 얼마쯤인가를 예측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로 떠날 시간이 가까워 왔다는 것을 예감하며, 이 땅에서의 삶이 하나님께서 보내셨고 이제 그 기간이 다 돼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이렇게 사는 삶이 한치도 헛된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사명감을 가지며 날마다 육신의 소욕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어도 우리의 육신은 세상의 정욕으로, 죄악으로 가려고 합니다. 기도하며 내 속에 계신 성령이 육신을 지배하도록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세상의 것, 물질, 권력, 명예 등 아무리 대단해도 시간이 지나가면 다 사라지게 되는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남을 배려하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 끝에서의 삶. 남을 배려하는 사랑의 삶만이 나중에 천국에
오래 전에 나의 친척 중에 몹시 시련을 겪으며 결혼한 부부가 있었다. 연애 시절에 아가씨의 부모가 심한 반대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유는 총각의 어머 니가 술집을 했고, 세 아들의 장남으로 결핵까지 앓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이들의 관계를 끊으려는 과정에서 지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학대와 고통을 줬다.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하도록 아가씨를 방에 가둬놓기도 하고, 강제로 삭발을 시킨 적도 있으며, 밧줄로 묶고는 매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의 관계를 끊을 수 없었다. 총각이 국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자 아가씨는 총각의 근무처가 있는 곳으로 야반도주하여 찾아가선 결국 결혼을 했다. 이들의 결혼 생활은 남편이 고위 공무원으로 은퇴한 지금에도 과거 연애를 할 때처럼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 부부의 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어 희생시켰다(요3:16). 죄인들이 사는 세상, 거짓과 불법, 무질서와 폭력, 낙심과 절망이 있는 세상에 구원과 생명과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1991년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에서 학생부 전도사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한국에 가서 사역하라는 강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시던지 도무지 사역이 마음에 안 잡힐 정도로 한국에만 집착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7월 한 달 동안 휴가(언제 다시 갈 수 없으니 분명한 결정을 하고 돌아오기 위하여)를 내어 한국에 답사를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서 보니 두 가지 때문에 마음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첫째는, 한국에는 교회가 너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둘째는, 10년을 미국에서 살다 보니 어느덧 자신이 미국화가 되어있어 한국에서 적응하며 살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았습니다. 한 예를 들어, 한국의 여름은 습도가 너무 높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했으며, 인구 밀도 너무 심해서 굉장히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어느 한 분이 처가댁에 방문하기 위해 한국에 오셨는데 그분과 함께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