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시작한 코로나19의 영향력은 4개월이 지난 지금도 확장이 되고 있고, 이로 인해 많은 변화들이 있지만 은혜 가운데 잘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지난번 선교소식에서 4~9월 세워졌던 계획들은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전면 중지가 됐습니다. 말씀 사역을 위한 지방이나 타교회 모임도 전면 취소가 됐고, 교단 모임이나 단기팀 방문도 취소가 됐습니다. 큰 딸 시온이는 예정되었던 시간에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이제는 바이러스의 확산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가 많이 지쳐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현실적 어려움이 더 커지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영업 제한의 조치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7월말까지 종교적 행사와 모임이 금지가 됐습니다. 이에 사역자 모임을 통해서 전체 모임이 아닌 가족초청의 형태로 소수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동이 불편한 가족들은 저희가 방문해 위로하며 만남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모임이 어렵고, 자유롭게 참여할 수가 없게 되면서 예배를 사모하고 참여를 희망하는 가족과 아이들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드리던 예배가 사모하며 기다려지는 모임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이 때에 강건하시고 평안하시길 소망합니다. 6월 1일부터 필리핀 전국적으로 봉쇄령을 완화시켰습니다. 코로나 확진자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위험한 상태이긴 하지만 4월 조사에 의하면 필리핀 실업자가 730만명을 넘어섰기에 굶어 죽는 이들 폭동을 일으키는 이들 앞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금씩 열었다는 뉴스입니다. 바기오는 워낙 산골이라 외부로의 출입을 막아 버리니까 확진자의 수의 증가는 매우 적습니다. 약 세 달 동안 40여명으로 안전한 상태입니다. 6월 8일부터 시장을 일주일에 두 번 가야 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발소도 문을 열었고 식당에서도 정원의 50%는 매장 내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합니다. 아직도 봉쇄령은 진행이 되고 있고 6월 15일 이후 정부에서 발표가 있었지만 이렇다하게 크게 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필리핀의 비자 이야기 저희는 2년에 한 번씩 선교사 비자를 연장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2020년 3월 말 만기이기에 1월에 모든 서류를 다 제출하고 4월 초에 받기로 했는데 마닐라 이민국이 봉쇄되면서 모든 업무가 다 정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6월 1일 말
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상황이 길어지면서, 세네갈도 이제는 코로나19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형태로 바뀌고 있습니다. 보건 상황이 나아진 것은 없지만, 더 이상 세네갈 국민들이 비상사태로 경제 활동과 사회 활동이 통제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지면서, 곳곳에서 데모와 불만이 터져 나왔고, 결국 세네갈 정부도 규제를 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살아가기-믿음과 나눔 지역간 이동 금지와 예배 모임 금지 등으로 지역 교회들은 더욱 큰 어려움을 견뎌야 했고, 지금도 여전히 많이 힘듭니다. 하지만 미국 샌안토니오한인교회와 한국 포도나무교회의 긴급 지원이 답지하면서, 여러 세네갈 지역 교회들과 나눌 수 있는 복을 누렸습니다. 후원해주시는 모든 분들의 흔들림없는 지원 덕에 저희 가정도 재정과 물건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함께 힘든 시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한 가족임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빛이 됐습니다(요일4:12). 이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지나며, 세네갈 교회와 믿음의 형제들이 더욱 사랑 안에서 단단하게 세워져갈 것을 기대하며, 주님을 찬
선풍기를 찾는 계절이 왔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28기 신임선교사훈련 지난 5월 15일에 28기 신임선교사훈련을 마쳤습니다.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도 3개월의 훈련을 받고 23명이 수료했습니다. 시작할 때 ‘무사히만 끝나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오늘도 무사히’하는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훈련생들이 외출을 못하자 생활이 단순해지면서 서로의 교제가 깊어지고 훈련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동기애를 넘어 동지애(同志愛)를 공유하는 것 같았습니다. 훈련의 효과도 기대보다 훨씬 더 좋았습니다.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시도들도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선교사들과 토론을 했고 타문화를 가정하여 전도, 제자훈련, 목장모임을 실습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는 많은 것을 빼앗아갔지만 또한 많은 것을 선물해준 것입니다. 모든 훈련을 마치고 떠나가는 훈련생을 진심으로 축복했습니다. ‘좋은 선교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교사가 되십시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언제 파송될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29기 신임선교사훈련 감사하게도 올해는 선교사 지망생이
평안하신지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가 싶었는데 다시 확산이 되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상황은 혼란스럽지만 모두에게 그 분의 평안함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홈 가족은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학생 친구들은 모두 온라인 강의 덕에 집에 머물러 있고, 고3인 예빈이는 드디어 등교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많은 친구가 집에 함께 하는 것이 힘겨울 때도 있는데, 또 그렇게 더 많이 서로를 알아가고, 가끔 심심치 않게 재미있는 일들과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많은 분들이 우리홈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시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섬겨주셨는데, 올해에는 풀타임으로 함께 할 동역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남자 우리홈에서 준혁 형제가 섬기게 됐고, 우리홈 작은집(비전힐)에서 혜민 자매가 함께 하게 됐습니다. 준혁 형제는 저의 오랜 제자이면서 동역자인데, 드디어 함께 하게 됐고 혜민 자매는 미국 조이풀 교회에서 파송해 주셨습니다. 우리홈 이사를 잘 마쳤습니다. 귀한 분들의 기도와 도움의 손길로 순조롭게 잘 마무리됐습니다. 이사를 자주(?)해서 그런지 가족들 모두 어색하지 않게 짐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 금방 마무리됐고, 재
아가의 옹알이에도 맞장구치며 함박웃음으로 받아주는 엄마 아빠들의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으시겠구나’ 싶어 가슴이 찡 해옵니다. 주님은 저의 모든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는 분이시기에, 그 따스한 사랑의 온기 앞에 나아가 앉게 됩니다. 그러면 어려움도 고난도 주님의 햇살 아래에서 눈사람처럼 녹아져 내립니다. 제 육신은 끊임없이 저의 연약함과 허물들을 들추어내어 인과응보의 죄의식 아래로 저를 끌고 갑니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두려움 안에 저를 가두어 놓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십자가 아래로 저를 신부처럼 데리고 가서 신랑 되신 주님의 사랑으로 단장시켜주십니다. 그 은혜가 저를 주님의 사랑의 법 아래로 이끕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주님을 통하여 우리를 보시는 것처럼 저 역시 아버지의 눈으로 저를 바라보게 되는 기적의 자리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주님의 사랑을 보며 그 사랑에 제 뿌리를 더욱 깊고 견고하게 내립니다. 제 배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넘치는 자리! 저희의 평생이 기도의 자리에 나아감으로 저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저희는 집에서 잠잠히 예배자리로 나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샬롬!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참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게 됐습니다. 모두 강건하신지요? 그동안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우리의 삶의 자리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저희도 서울 안식관에서 다음 선교지를 놓고 기도하며 준비하던 중, 1월 초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정탐을 다녀오게 됐습니다. 여러 곳을 둘러보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나안 땅처럼 아름답고 비옥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참 어둡고 황폐한 땅임을 제게 보여주셨고, 그 땅과 민족들을 향한 애끓는 주님의 부르심과 평안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파송교회 및 본부와 상의 끝에 이 지역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하고 준비하던 중에 코로나19가 터져서 발이 묶여 버렸습니다. 현재 저희 뿐만 아니라 많은 선교사님들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우리 삶을 뒤흔들 때,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없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오직 주님께 은혜를 구하며 열어주시는 만큼 순종하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저희가 나아갈 땅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크로드의 심장’으로 불립니다. 인구는 약 3300만명에 사회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락다운(지역봉쇄)은 6월 이후 조금 완화 됐지만 여전히 타지역 간 이동은 어렵고, 교회 예배 또한 정부 방침은 불허하고 있습니다. 하루 200~300명 확진자가 유지됐다가 최근 더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미 지역사회에 많이 감염된 것을 보입니다. ① 지난 5월 태풍으로 교회 천장이 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파로 예배당은 폭탄을 맞았고 카페트는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고 악기와 앰프는 유아실로 옮겼습니다. 교회 건물 임대기간이 지난 5월 15일로 끝났는데 헌금이 많이 줄어 렌트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주인에게 가격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만약 연장이 되지 않으며 이전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지난 4월 라구나 호수 빈민들 생필품을 지원했습니다. 일단 마게도냐교회 성도들 중심으로 지원했는데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생필품이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원망이나 불평보다 늘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감사했습니다. 마게도냐교회 루엘 목사는 락다운이 실시되기 전 잠시 고향에 내려갔다가 몇 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루엘 목사를 만나 장학생들 가정의 형편을 보고 한국에서 보내준 장학금과 생필품을 전달해줬습니다. 이렇게라도 도움을 줄 수
저희 가정과 사역지를 위해 기도와 물질로 도와주시는 동역자분들께 평안을 전합니다. 코로나 사태 속에 인도 상황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이렇게 전 세계에 크나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많은 어려움 속에 생활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인도에 코로나19 확진자의 발생은 1월 30일 중국에서 인도로 들어온 대학생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미미했으나 인근 국가의 코로나 확산이 커지게 된 것을 본 정부는 인도 유입을 막기 위해 3월초 외국 항공기의 입국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인도 내에 유입된 코로나는 시간이 갈수록 확산이 커지게 되어 3월 중순 정부는 국가봉쇄령(lock down)을 한 달간 실시한다고 선포해 모든 산업과 기관들이 문을 닫게 됐습니다. 이로 인해 일일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언제 풀리지 모르는 불안감에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교통수단(기차, 버스)도 멈춰 수천 km를 걸어서 가게 됐습니다. 번복된 국가봉쇄령 연장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심각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태가 됐습니다. 모든 종교시설이 폐쇄됐고 미처 이에 대한 준비가 없는 저희 사역자들도 당황해 하다가
마다가스카르가 해적의 소굴? 마다가스카르가 해적들의 천국이었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영화로 유명한 캐리버안의 해적들이 실제로 마다가스카르의 해적의 영향으로 생겨났다고 전문가들이 말할만큼 마다가스카르 섬은 해적으로 유명합니다. 이 해적들은 인도에서 유럽으로 항해하는 무역선들을 주로 약탈했기에 영국의 피해가 심각했고 결국 영국 해군이 이 해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이곳까지 원정을 오게 됩니다. 마다가스카르 동북지역 해안 연안 곳곳에 퍼져 있던 해적들을 모두 소탕하면서 마다가스카르에는 기독교가 1811년 런던선교회를 통해 전해집니다. 해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일반해적과 국가에서 공인한 사략해적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의 해적은 사실상 사략해적이었고, 사략해적을 공인해준 곳은 대표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였습니다. 처음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상선이 주 목표였지만 후에는 자국의 배도 약탈하는 말 그대로 도적놈들이었기에 영국 해군이 해적의 본거지였던 마다가스카르까지 와서 정벌하게 된 것입니다. 무기한 입국연기 에티오피아 항공사로부터 항공기 운항취소통보와 함께 1년 기간(~21년 1월 17일)동안 언제든지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