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릇 관광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릇 모든 동물들의 재주 부리기의 속사정을 알턱이 없다. 저 곰이 어쩌면 저렇게 재미있게 춤을 추나 했는데, 그것은 곰을 생포해서 일단 발톱과 이빨을 뽑아 버리고 입, 코, 머리를 관통하는 쇠줄을 넣은 다음 말을 듣지 않으면 줄을 당겨 고통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조련사의 쇠갈고리가 무서워 열심히 재주놀이를 한다는 것이었다. 대게 사람들은 그 동물들이 잘먹고 잘자고 재주만 부리는 선택된 행운아 인줄로 생각하는 경우가 혹 있지만 세상에 더할나위없는 불쌍한 것들은 비로 그들이다. 왜 그렇게 재주를 잘 부렸던가? 그것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가하는 고통 때문이다.이하에 모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그대로 옮겨본다 : (한국일보 2013,11월 30(토)지평선에서) 인도에서 ‘춤추는 곰’은 400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오락산업이다. 야생에서 곰을 생포해 발톱과 이빨을 뽑은 뒤 입과 코, 머리를 관통해 줄을 넣는다. 말을 듣지 않으면 줄을 당겨 고통을 준다.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 곰을 올려놓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관객들은 “곰이 춤을 춘다”며 즐거워한다. 서커스단의 코끼리들은 불훅(bullhook)이라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 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19~21)최고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안전한 투자가 있다면 사람들이 몰려와 아마 북새통을 이루며 문전성시가 될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거늘 우리가 생명을 구원하는 투자 곧 영적 생명보험에 다함이 없는 천국의 상급에 투자한 사람들을 살펴본다. 우리의 몸과 가진 것, 시간과 재능을 바쳐 투자하는 것 보다 더 보람있는 최고수익의 보상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1. 수입의 절반을 바쳐시카고의 택시 기사 밀톤 브라운스테인(Milto Brownstein)씨는 기발한 방법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에게 전도했다. 그는 성경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카드에 인쇄하여 차내에 부착하고 누구든지 그 중 하나를 맞췄을 때는 요금을 면해주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장애자들은 무료로 태워다 주며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의 찬사를
병원의 승진 제의와 남아달라는 제의를 단호히 뿌리치고 나는 대전 침례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40이 다 된 나이에 시작된 신대원생 생활은 또 다시 나를 다 내려놓아야 하는 훈련의 시간이었다. 나는 다 내려놓고 그곳에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가 다 내려놓는 또 다른 훈련의 시작이었다. 보건진료소장은 그때 당시 공무원이 아닌 별정직이라 퇴직금도 없었다. 감사하게도 전여회에서는 주거와 학자금과 소정의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다. 전여회는 나에게 1년쯤 침례 신학대학원을 다니다가 유학을 가라고 제안했다. 1989년 당시 우리 교단 총회는 미국 루이지아나 주 총회와 자매 결연을 맺고 있었고 여선교회 끼리도 자동 자매 결연을 맺고 서로 교류하고 있었다. 전여회는 나를 위해 미국 남침례교단 국제선교회(IMB)에서 장학금을 약속받아 줬고 루이지아나주 여선교회가 있는 뉴올리안스 신학대학원으로 가도록 준비를 해 주었다. 그런데 그 곳에 입학하려면 토플 550점이상 받아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신대원 공부라 젊은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그 사람들보다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했는데 토플 공부까지 하려니 상당히 힘들었다. 영어 공부는 방학때 밖에 할 시간이 없었는
복음의 길은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무척 껄끄러운 통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기에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다음과 같이 권고하지 않았던가?“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그런데 이 복음의 길을 사람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정상복음 통로를 마구 뜯어고쳐 온갖 갈래의 길을 터놓았다는 것이다. 복음의 길을 단지 편안하게 걸어가도록 하기 위해, 칼날같이 갈라놓고 솜같이 감싸는 복음의 정체를 마구 뜯어고쳐 놓았다는 것이니. 복음은 율법과 은혜를 무자비하고도 냉정하게 그리고 사정없이 갈라놓고,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만으로의 그리스도인이 가야할 복음의 길을 제시했건만 사람들은 이 복음이해가 율법세계에 찌들어온 사람에게는 먹혀들지 않으니, 복음의 외길에 수많은 샛길을 만들어 놓고 편한대로 복음의 길들(?)을 걸으라는 선심공세 성심공작을 감행한 오늘의 교회란 말이다. 나는 우연히 모일간신문 분수대란에 노재현(논설위원, 문화전문기자)씨가 “계단, 난간 투성이. 너무 친절한 등산길. 이건 산이 아니다.”라는 칼럼을 읽고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창35:1~3)하나님의 명령 따라 야곱처럼 누워있거나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듯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에 일어나 따라가자! 예수님은 회당장의 죽은 외딸의 시신을 향하여 “달리다쿰”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막 5:41, 눅 7:15)고 명령한 즉 소녀가 곧 살아서 일어났다.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의 장례 행열을 가로막고 관에 손을 대어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 7:14)하시니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했다. 죽은 지 4일이 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너라”(요 11:42)부르시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일어나 나왔다. 사도 베드로도 “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난 60년의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이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진보주의 진영이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면, 보수주의 진영은 선교적 측면에서만 통일을 이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양 진영은 북한을 공존의 대상으로 여기고 함께 통일을 이루어 평화적으로 발전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교회의 연합된 노력을 해야 한다. 4. 통일에 대한 교회의 사명분단이 장기화되어 갈등과 이질감으로 적대적인 관계의 남북 분위기가 미약하나마 호전되고 있는 이 시점에 한국교회는 통일을 기대하며 화해를 위한 노력에 경주해야만 한다. 특히 한국교회가 북한 복음화를 위해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와 사명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통일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다음 다섯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무엇보다 교회갱신의 사명이다. 이미 자정 능력을 잃은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회의 물량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기복주의, 교권주의, 직분의 계급화 현상, 개교회주의, 파벌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교회에
나는 전국 여성선교연합회가 주최한 소녀회 캠프에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했지만 전여회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1978년 아시아 침례교 여성대회가 서울에서 개최 되었을 때 그 대회의 응급 분과 위원장이었던 부산 침례병원의 브래넘 선교사로부터 응급 분과위원으로 봉사해 달라고 부탁받아서 그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어느 해인가 전여회 여름 수련회시 초청을 받아 간증을 한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년동안 포기하지 않고 연락을 준 전국여성선교연합회 때문에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나는 간호가 천직이라고 믿었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또 다른 부르심이라면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즈음 대한 간호협회가 4년만에 한번씩 개최하는 전국 간호사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는데 각 분야에서 패널들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가 전국의 보건진료원들을 대표하여 패널리스트중 한 사람으로 초청됐다. 그리고 동시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화중 교수(후에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섬김)로부터 방문 요청을 받았다. 그분은 내가 그 대학원에 와서 공부하기를 여러번 권면했다. 나는 서울에 갈 기회가 생겼기에 조혜도 총무님을 행사 전
대학생 딸이 한 청년을 사랑한다는데 엄마의 눈엔 영 아닌 것 같다고 충고해 주어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어떻게 하나?담임목사가 보기엔 옳지 않은 결정이라고 권면해 주어도 끝까지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성도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애굽을 탈출한 200만 명의 히브리 민족과 그에 따른 수많은 짐승 떼가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지나가면 쑥대밭 될 것이 염려된 모압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시켜 히브리민족에게 저주의 예언을 하여 이 지역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부탁한다.처음엔 발락의 초청을 거절하던 발람 선지자는 거듭된 요청과 많은 은. 금에 미혹되자 하나님은 “일어나 함께 가라”하신다. 모압을 향해 가는 길에 발람을 태운 나귀가 칼을 들고 그를 죽이려는 여호와의 천사를 보고 황급히 밭으로 들어가자 발람은 채찍으로 때린다. 나귀는 또다시 발람의 발을 담벼락에 짖눌러 다치게 해서라도 죽음을 모면하게 하는데 영적인 맹인 발람은 화를 내며 더 세차게 채찍질을 한다. 왜 하나님은 ‘일어나 함께 가라’하시고 나귀타고 가는 길에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 죽이려 하셨을까? (민22:20-23) 떼쓰는 사람이 선택한 길은 결과가 참혹하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주께서 꿈들로 나를 놀라게 하시며 환상들을 통해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욥7:14)작년 11월26일 새벽 처음으로 예수님의 꿈을 꿨다. 60년이 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꿈에 예수님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얘기는 가끔 들은 적이 있었지만,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성흔을 받은 성 프란시스를 비롯한 여러 성자들에게 환상으로 나타났고, 신약성서 속에서는 부활하신 후 보이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순교하는 스데반 집사에겐“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행7:55)으로, 다메섹 도상의 사울에겐 음성과 밝은 빛으로 보이셨고, 그 후에도 사도 바울에게 두 번이나 (행 18:9, 23:11) 보이셨고, 밧모섬의 사도요한에게는 영광스런 만왕의 왕의 위엄으로 나타나셨다(계 1:13-16) 그런데 저에게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보이셨다. 어떤 사람이 오른 쪽에서 걸어와 서는데 옷은 회색과 청색, 검은색이 섞인 작업복, 죄수복 및 환자복 같은 상하의를 입으셨고, 저 앞에 다가와 서더니 고개를 돌려 잠깐 저와 정면으로 주목했는데 조금 검은 노동자의 얼굴이었으나 온화하고 밝은 눈빛이었고, 아무 말 없이 우측으로 몸을 돌려 뒷모습으로 멀리 사라졌다. 희한하게도 꿈인데도 풍기는
지난 2월 12일 새벽 온 세계가 흥분 속에서 지켜보고 있는 순간, 빙판 위의 이상화의 눈빛은 매서웠다. 총성 소리와 함께 전력질주한 그녀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37초 28 기록으로 1위에 올랐다.이전 기록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캐나다의 르메이돈이 작성한 37초30이었다. 12년 만에 0.02초를 단축시킨 것이다. 숫자로 표기된 0.02초는 인간의 평범한 감각으로 느끼기 어려운 시간이다.2위 러시아의 올가 파트쿨리나는 이상화에 비해 불과 0.36초 늦었고, 네덜란드의 마고 보어는 0.78초 뒤처져 동메달을 획득했다. 채 1초도 안 되는‘찰나’에 금.은.동이 결정됐다.피니시라인에 스케이트‘날’을 좀 더 빨리 넣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총성과 동시에 튀어 나가야하는 스타팅 순간의 순발력과 피니시라인을 통과할 때까지의 집중력이 모두 합쳐져야 1/100초의 짜릿한 우위를 느낄 수 있다.이 1/100초의 시간까지 같아서 공동 금메달을 수상한 사람들도 있다.알파인 스키 여자활강에서 슬로베니아의 티나 메이즈와 스위스의 도미니크 자신은 똑같이 1분41초57으로 골인했다. 적외선 장비를 통한 정밀분석으로도 우열은 가려지지 않
나는 겸손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창군에 있는 성동 보건진료소장으로 부임하여 3년반을 시골 주민들의 영육을 돌보는 일을 했다. 외진 시골에 들어가 내 마음에 품었던 세상욕심 다 내려놓고 의료 선교사가 될 준비를 했다. 진료하고 마을을 방문하는 시간외에는 성경읽고 기도하는 일에 모든 시간을 드렸다. 내 생애중 가장 주님을 가까이한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어느 날 이사야 54장을 읽던 중“나는 네 남편”이라는 말씀에 나는 대성통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실상은 일에 심취해 뛰어 다녔던 지난날에 대해 깊은 회개가 나왔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통회하고 자복하였는데 그 순간 성령님이 나의 등 뒤에서 나를 감싸시며 위로하는 경험을 하였는데 나의 마음이 깊은 평강을 경험하는 놀라운 성령 체험을 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는 나를용서하셨으며 나와 함께하시며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계신다는 표현이셨다. 나는 이사야서 54장 말씀을 통해 큰 힘과 선교에 대한 비전을 얻게 됐다.그 곳으로 나를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 일을 잘 감당하도록 시작부터 나를 세심하게 도우셨다. 도시의 큰 병원에서 일하던 사람이 시골에 와서 고생한다고 지역
그동안 한국교회가 남북한 통일운동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잘못이 있다면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며, 좋은 점은 계승해야 한다. 그럼 한국교회가 정부의 통일정책에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 살펴보자.첫째, 해방이후부터 50년대까지는 이승만 정권의 제 1공화국 시대에 해당된다. 이 시기 정부의 북한을 향한 공식정책으로 ‘북진통일론’이 있었다. 이 시기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 한국기독교는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김창준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좌파가 있었고,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 노선을 따르는 중도파가 있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우파였던 대부분의 한국교회 노선이다.둘째, 60년대 통일논의는 남북 교류협상론 등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좌파는 한국 전쟁으로 남한의 기독교에 신뢰를 주지 못했고, 우파로 단순화된 한국교회는 신학적 성향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극단적 ‘반공’에 의해 그 정체성이 규정됐다. 이 시기 한국교회 대다수의 흐름은 여전히 반공노선을 견지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60년대 새로웠던 것은, 강원용, 박성중, 박형중, 문익환 목사 등에 의해 공산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의 방식으로서 교회 내부의 혁신과 사회내부의 개혁이 강조되었다는
나는 27살에 자격도 안 됐는데 성일교회(현 임마누엘교회)의 집사로 직분을 받았다. 부족하지만 그냥 순종했는데 하나님께서 서울에서 내려온 한 선교단체의 책임자를 내가 섬기던 교회로 보내 주셔서 말씀 훈련을 잘 받고 직분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게 해주셨다. 바쁜 가운데서도 주일학교 교사, 중고등부 교사, 청년지도교사, 여선교회장까지 맡겨주시는 데로 순종하고 고산면에서 전주까지 수요예배와 금요 철야기도회까지 참석했는데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기는 것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던 것 같다. 나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일을 맡기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마25:21).남장로교 선교 병원인 전주 예수병원이 침례교인인 내게 참 많은 신뢰와 혜택을 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6년 반 동안 그 병원에서 일했는데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 일본, 미국의 농촌 보건의료 사업을 견학할 기회를 줬고 스리랑카와 페낭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 농어촌 보건의료를 위해 일하는 의료인 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제공해 줬다. 나는 간호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천직이라고 생각했기에 죽을 때까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내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려고 노력했다.그러나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2013년 말을 기준으로 한국 선교사의 파송 현황을 조사해 최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선교사 2만5천여 명이 169개국에서 활약하고 있다.2012년 2만 4,742명으로 매년 1천 명 이상씩 증가하는 추세다. 함께 거주하는 선교사 자녀 수도 지난해 1만 7,618명으로 크게 늘었다. 대륙별로는 동북아시아 6,360명, 동남아시아 5,9명, 북미 3,149명이다.이들의 주요 사역은 교회 개척(10,693명), 제자 훈련(8,612명), 캠퍼스 사역(2,499명), 교육(1,361명) 복지 및 개발(819명), 의료(515명) 등이다.우리 침례교단은 타 교단이 부러워할 만큼 지역을 선택하고 집중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연합해 선교하고 있다. 지난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여의도교회 한기만 목사님은 그동안 수십억 원을 투자하며 해외선교회를 이끌어 오면서 일관된 정책을 펼쳐 오늘날 700여명의 침례교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일에 쓰임 받다가 영원한 나라로 상급을 받으려 떠나셨다. 선교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이다. 이 명령에 순종하여 130여년 전 서양의 선교사님들이 수많은 순교의 피를 이 땅에 뿌렸
같은 재능을 가졌지만 그 쓰임은 다르다는 것. 다 같은 기술을 가졌으나 그 기술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칼로 요리를 할 수 있건만 흉측스럽게도 그 칼로 범죄도 저지를 수 있지 않는가.달마도(達磨圖)의 대가로 꼽히는 법주스님이 있다. 그가 선묵화 40년을 돌아보는 고희전을 2013년 10월 16-22일 서울 인사동 한국 미술관에서 갖는다. 그는 홍익대 미대 서양학과 4학년 때 대학생불교연합회의 해인사 여름 수양회에 참가했다가 발심하여 출가해서 스님생활을 하게 되었고 주로 달마도를 그려재켰다. 용화사와 해인사 등에서 참선에 몰두하던 법주스님은 “내가 가진 특기를 살려보자”고 작심해서 달마도를 그려왔다. 그는 미술 특기를 그렇게 달마도 그리는데에 썼다.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누구나 다 알겠지만 그의 스승인 보톨도 지오바니라는 사실은 아마도 잘 모를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14살 때 지오바니의 제자가 되고자 방문했을 때 선생은 그를 데리고 술집 앞에 있는 조각상을 보여주고 그 다음엔 교회당으로 인도해서 교회의 조각상을 보여 준 뒤 네 기술과 재능을 무엇을 위해 쓰기를 원하느냐 질문을 던졌을 때 미켈란젤로는 주님을 위해 사용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