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면서 긴장을 푼다? TV를 보면서 긴장을 느낄 수는 있어도 긴장이 풀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래 시청할수록 더더욱 그렇다. 에너지는 관심을 한 곳으로 모으거나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다시 충전되는 법이다.TV를 보고 있으면 주의력이 먼 곳으로 즉 우리가 보고 있는 그 곳으로 달아나버린다. 그러니 정신 에너지가 흩어져 정신이 산만해지고 집중력도 약해진다. 살기도 바쁜데 인생의 의미는 무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이런 질문들을 우리는 “나중”으로 미룬다. 이 것은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고 무조건 길을 떠난 여행자와 다르지 않다. 그러다 인생이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정신이 번쩍든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든다. ‘나는 왜 살고 있을까?’ 죽을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퇴직을 하고 나서야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인생의 의미를 묻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요즘 세상에 누가 도덕적 가치를 따져? 우리의 가치관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자신의 가치관을 거스르며 사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긍정적 사고가 상황을 악화시킨다? 긍정적
키즈 파워 인 지저스는 성경의 질기고 딱딱한 부분을 다지고, 매콤한 부분에 달콤한 소스를 가미하고 아이들의 입 크기에 맞게 정당히 나누어 놓아 말씀을 거부하지 않고 잘 섭취하도록 돕는데 있습니다. 더 이상의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말씀에 거부감이 생기지 않도록 그들의 눈높이와 입맛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교육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3) 가르치는 교사를 위한 도구지원열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교회학교 아이들의 인생의 시기를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한다면 집을 짓기 위해 땅을 고르고 기초공사를 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있는 아이들의 인생 기초공사를 말씀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그런데, 땅을 파더라도 맨손으로 팔 수는 없습니다. 좋은 삽을 더 나아가서는 포크레인을 제공해야 땅을 원하는 만큼 파고 든든히 기초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그 기초를 마무리 하는 데에 교회학교의 교사가 도와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학교의 교사는 무엇으로 도울 수 있습니까? 교회학교의 교사로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깊이와 균형이 잡힌, 손에 잡히고 익숙한 교육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열악하고 어
한국사회가 정신적 혼란기를 맞아 목회자로서 할 말이 없게 됐다. 그 이유는 비종교인 90%가 종교를 가질 의향이 전혀 없다는 한 여론 조사의 결과가 일간신문에 기사화됐기 때문이다.향후 종교를 갔겠다고 답한 비종교인 비율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비종교인과 종교인 중 비기독교인 기독교인 등을 대상로 작년 하반기와 올해 초에 걸쳐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2012년 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의식” 조사 결과를 31일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비종교인 537명 중 “향후 종교를 가질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9.3%(53명)였다. 1998년(32.9%)에 비해 3배 넘게 줄었다. 또한 2004년(23%)과 비교해도 2.5배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조사를 진행한 글로벌리서치 관계자는 이 결과에 대해 “과학적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는 비중이 커지고, 사회가 갈수록 치열해지고 각박해지면서 사람들이 종교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드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종교에 대한 기본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비율이 커지고 있다. 종교적 역동성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비
요즘 목사님들의 일상 언어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언어, 자주 듣는 단어 중 하나는 ‘바쁘다’이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바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목회 이외의 것들로 바쁜 목사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처음에는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에 의해 시작된 것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바쁨이라는 수렁에 빠져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바쁜 나날을 보내는 피곤의 포로가 된 목회자를 흔히 볼 수 있다. 목회의 위기를 잉태한 것이다. 피곤은 탈진으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에는 목회로 소명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부정적 가능성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언제나 미약하다. 목회라는 것이 주부들의 일상처럼 형체도 없이 분주함을 가져다주는 것이고,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끝도 없는 것일 수 있지만 목회자가 바쁨이라는 것에 중독되거나 노예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거룩도 경건도 아니다. ‘목사가 바쁜 것은 죄다’라고 말한 정병선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이 또한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유진 피터슨(Eugene H. Pet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를 지은 저자 다하라 요네꼬는 일본의 여성으로서 18세 소녀 때 열차에 뛰어 들어 자살을 기도하다 두 다리와 한 팔을 잃고 남은 한 손도 손가락이 셋만 남게 되었다. 그 후 주님 안에서 새 삶을 얻었고 사고 후 34년이 지난 지금 52세로 두 자녀를 두고 목사의 아내로 성실하게 살고 있다. “나에게 남겨진 손가락! 오른손에 남은 세 개의 손가락으로 처음으로 한 개의 감자 껍질을 벗기려고 했을 때의 일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의 기분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데구르르 굴러가는가 하면 바닥에 떨어져서 멋대로 굴러가는 감자를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식칼을 들고 쫓아다니는 나의 마음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초조감과 무서운 힘으로 덮쳐오는 절망감이 있을 뿐이었다.그런 일이 조금만 더 계속되었더라면 손에 들고 있던 식칼로 무슨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처절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손가락 세개로 식칼을 든 채,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처량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간장이 녹아내릴 정도로 부르짖었다.‘아버지여! 당신은 나 같은 인생도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 같은 것을 결혼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
대한민국에서 종교는 성역이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감정과 맹종이 논리와 이성을 압도해 종교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종교를 비판하는 데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말기를 맞이하고 있다.집권 초기에 한국교회의 득세에 따른 다종교 질서의 붕괴를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을 무릎 꿇게 하고 대통령 하야 발언도 교계에서 서슴치 않게 나오곤 했다. 대표적인 교계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를 뽑는 선거는 금권 논란이 불거지더니 급기야 권력 싸움이 벌어지면서 분열의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기독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더욱이 한국교회를 향하는 시선은 요즘 들어 더 서늘한 기운을 느낄 정도로 냉랭하다. 이에 맞춰 한국교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금권선거 물의를 일으킨 한기총의 해체를 요구하며 물신주의를 배격하려는 움직임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교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이들 단체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새해가 되어 호스피스 센터에 초청받아 예배를 인도했다. 좀 특이한 예배다.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각각 병실에 있고 목사는 병실 밖에서 마이크 앞에서 설교한다. 병실에 설치된 스피커로 병상에서 환우들이 설교를 듣는다. 예배 후 병실을 돌아보며 기도를 해 드린다. 대부분이 임종을 바로 앞에 둔 환우들이다. 나이에 관계가 없다. 49살의 젊은 나이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입종을 앞둔 남자 환자의 “내가 인생을 잘못 살긴 잘못 살았는가봅니다.” 라는 고백은 차라리 나에게 절규로 들린다. 그는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임종을 예견한 듯 이혼한 처와 딸, 형제를 보고자 며칠 동안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관계자에게 듣게 됐다. 지난날 살아온 인생의 날들을 모아 압축을 하면 두 개의 단어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감사” 또 하나는 “후회”라는 단어일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감사한 일들, 측량할 수 없는 고맙고 감사한 일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이면에는 후회할 일들이 더 많으니, 그러면서 또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대개의 환우들은 임종이 가까우면 지내온 인생을 회고하면서 보편적으로 다음의 3가
보잘 것 없는 베들레헴의 한 목동에서 장군으로, 장군에서 왕으로 등극하여 40년을 다스린 다윗의 인생, 다윗은 가장 최악의 상황, 가장 복잡하고 힘든상황 속에서도 최상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의지한 사람이다.그것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실로 “아름다운 노을”로 물들였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뭔가를 앗아가시는 것 같은데,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훨씬 더 풍성한 축복을 주신다. 어렵고 힘든, 상황과 사건들이 우리로 하여금 더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을 더 절실히 의지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적을 체험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영혼은 더욱 커지고 아름다워 진다.우리는 다윗의 인생에서 바로 그것을 배운다. 하나님은 다윗의 왕권을 굳게 지켜 주셨고, 다윗은 이제 그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대상 18~29장을 보면 다윗은 죽기 전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엄청난 프로젝트를 브리핑한다.바로 자신이 죽은 뒤에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없으니 아들 솔로몬이 이 일을 시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자신이 기초 작업을 다 하고 죽으려는 것이다. 이미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자재들을 수십 년에걸쳐 차곡차곡 모아놓고 있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약1:25)“율법은 멍에”다 사람으로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닌 억압과 속박과 굴레다. 율법이 제공하는 자유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율법인 자유의 법과 비교할 때 그러하고 율법의 끝을 볼 때 심판과 저주와 형벌뿐인 결과를 생각 할 때 그러하다.(골2:14~15, 갈3:13)율법에는 용서와 자비와 긍휼이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러므로 속죄와 희생의 피가 필요하다.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자유는 듣고 잊어버림이 아니라 실행 하게하는 법이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정결하고 깨끗한 경건이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대속의 피와 생명을 희생시키셨음을 자신의 은혜(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 새 계명이요 자유의 율법인 것이다(히8:10, 10:16, 렘31:33). 옛 계명이 돌과 양피지에 기록되었다면 몰랐었다고 회피 할 수 있었겠으나 새 계명은 심비에 기록됐으니 핑계할 수 없다. 즉 어떤 면으로는 더욱 엄격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웃 사랑의 최고한 법“은 긍휼(사랑)을 행하는 법이다.(약2:8) 긍휼은 심판을 이기
3. 확대된 교사 네트워크주일학교 교사들의 네트워크를 넘어서는 확대된 교사 네트워크는 교사의 네트워크에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확대된 교사 네트워크란 교회학교 교사들의 범위를 확대한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확대된 교사란 교회학교 교사와 함께 사역할 수 있는 사람들로 학생과 부모 그리고 담당 사역자를 포함한다. 확대된 교사 네트워크의 구조를 블랙(Black)은 청소년부의 예를 들어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청소년부서가 아닌 경우는 각 부서에 맞게 변형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 학교의 교사와도 네트워클 제안하고 싶다.이런 모델의 사역이 필요한 이유는 첫째로 교사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학생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만나는 교사와 학생은 만나는 시간이 매우 한정되어 있다. 교회에서 교사와 학생이 만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매주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만나고 특별행사나 수련회 기간 동안 며칠 마날 수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닌가? 그렇게 만나서는 학생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학생의 신앙을 지도하는 책임을 맡은 자로서 서로 피상적인 이야기만 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은 복지부동형으로 일이나 문제가 생기면 덮어두고 , 또 어떤 사람은 정면으로 도전하고 문제의 해결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복지부동형의 사람들은 일이나 문제를 덮어두고 쉽게,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이다. 본인에게 어떤 변화와 문제가 닥쳤을 때 변화하고 개선하려는 모습보다는 그냥 덮고 지금처럼 편하게 가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시키는 일 외에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부러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도 없고, 일거리를 만들어서 골치 아플 필요도 없고, 대충 편하게 살자는 생각이다. 바로 이런 생각들이 자신과 사회를 발전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나 사회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하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유형은 자기 위치만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자신만을 생각한다. 자신의 위치만을 생각하다보니 동료나 이웃을 위해 배려하는 여유나 아량이 부족하다. 때로는 편법을 쓰기도 하고, 속여서라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만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단점과 허물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해 주변의 사람과 사회를 병들게 한다. 자신의 모습을 냉정히
남을 배려하고 언행을 조심하는 사람이라면 상대에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치졸한 잘못이나 철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좋은 사람도 화를 낸다. 상사가 실적을 가로채거나 룸메이트가 설거지를 전부 떠맡기거나, 파티에 간 남편이 한 눈을 파는 등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좋은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허나 이웃에게 화를 내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사생활을 위협하는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대인관계는 물론이고, 직장생활과 건강까지도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화는 꾹 참아야 한다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속을 긁는 이웃에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데, 우선 화를 내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점부터 이해해야 한다.화를 내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착해야 한다는 선입견으로 분노를 보는 탓에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그렇다고 분노를 억누르면 안 되는 것일까? 그건 위선자로 몰릴수도 있고, 증오가 싹트며, 복수심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답게 화를
죽어도 좋을 만큼 가슴 뛰게 하는 그 곳, 오랜만에 가도 시간의 거리를 금새 뛰어넘는 곳, 그 곳에서의 일들이 생생히 기억나서 빙그레 미소 짓게 하고,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며 다시 돌아가 보고 싶은 그 곳, 또는 가 볼 수 없어 꿈속에서만 상상의 나래에서만 들여다보는 그 곳, 사랑하는 사람하고는 꼭 가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그 곳, 생애 마지막 순간에도 가보고 싶은 곳 그곳을 일컫는 말이 ‘soul place(영혼의 안식처)’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한 단어이고, 두렵기도 하고, 가장 기대가 되는, 설렘이 동반되는 단어이다. 나에게 ‘soul place’는 27년을 살던 나의 고향집과, 아내와 같이 갔고 지금도 가곤 하는 그 은밀한 곳 그리고 은혜로 들어갈 담대함을 얻은 아버지의 집이 생각난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지난해와는 다르게 살아보리라고 마음먹고 야심차게 하는 새해액션 중의 하나가 다이어리 정리였다. 가족의 생일은 안 적어도 친구들의 생일을 옮겨 적으면서 동그라미 해놓기도 하고, 하루에 할 일을 나름 알차게 적어놓고 보기만 해도 흐뭇해 하다가 작심삼일로 끝났던, 그러면서도 꼭 옮겨 적은 것 중에 ‘어른이 되면 가보고 싶은 곳’의 목록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교회의 기초요 머리되심을 교훈하셨다. 또한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고 말할 것을 주시리라 (마1:19~20)하셨다. 그 나타난 증거를 보자.1)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사도 베드로의 설교는 선지자 요엘서를 시작으로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역사와 선지자, 예수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원의 일관된 그의 외침은 성령의 역사도 역사이지만 “주께로부터 사사”받은 성경을 관통하는 실력과 그의 성령 충만 한 현란한 설교는 대적 자들의 입을 막고 회개시키고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2) 사도행전3장에 베드로의 앉은뱅이 치료 후에 행한 설교는 아브라함을 필두로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것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다고 말하며 모세의 글과 말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너희 형제 가운데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백성 중에 멸망 받으리라”(신18:15)하고 사무엘과 모든 선지자를 거론하는 예수께 사사 받은 성경적 지식을 담대히 선포 하였으며 대적자들로 반론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강력한 설교였
프로야구선수 출신 유명인 조성민(40)씨의 자살을 계기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거리낌 없이 ‘자살 스토리’를 활용하는 방송 문화의 폐해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지난 달 23일 MBC주말 드라마 ‘메이퀸’은 악행을 일삼던 인물 장도현(이덕화)의 자살로 드라마를 끝냈다.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오랜 기간 악행을 저지르던 장도현은 자기 삶을 뉘우치며 바다로 투신자살한다. 프로야구 출신 조씨는 올해 마흔 살이다. 1990년대 고교 야구 명투수로 이름을 날리다 일본 프로야구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전 선수로 활약했었다.그러나 조씨는 일반 사람들에겐 2008년 자살한 연예계 톱스타 최진실씨의 전 남편으로 더 익숙한 인물이다. 최씨의 동생으로 누나와 같이 연예계에서 활동하던 최진영씨도 2010년 자살했다. 불과 4년 사이에 한때 한 가족으로 기대고 살던 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이다. 조씨와 조씨를 둘러싼 인물들의 비극은 자살 문제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 모두의 곁으로 다가서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우리나라의 자살 관련 통계를 보면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하루 평균42.6명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한 해 자살자가 1만5566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