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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려고 목회한 것은 아닌데

하늘 붓 가는대로 – 164


처음 목회를 시작하던 마음과는 엉뚱하게 지금 목회의 방향이 제멋대로 달리고 있는 것이 교계실상이다. 이러려고 목회한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어버린 목회현장 앞에서 이제는 반성감 마저 무디어 버렸다. 그러려니 하고 그렇게 되어진 목회 현실을 어떤 섭리처럼 수용하는 목회자들의 목회 양상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첫째는 진퇴양난형(進退兩難形) 목회다. 처음부터 목회소명이 없었건만 부모를 비롯해 측근자들이 밀어 재끼는 바람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이후 딴것에 눈을 돌릴 수 없어 목사안수까지 받아서 목회란 것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시종일관 아직까지 영 맞지 않는 일이 다. 그러나 진퇴양난이다. 물지게와 몸이 따로 노는 물지게꾼이니 흔들린다.

괴롭다. 그래도 물을 지어 줘야 아침밥을 얻어먹을 머슴이다. 안할 수도 할 수도 없는 목회형이다.

 

둘째는 생계형(生計形) 목회다.

식구는 많아지고 이제 목사도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없어서 강단을 붙잡고 있어야 우선 밥이라도 먹을 판이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런 모습은 외국 에서 이민 목회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볼 수 있지만 국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먹고 살자니 목회해야 하는 목회형이다. 목회, 이제는 그것이 생계의 수단이다.

 

셋째는 치부형(致富形) 목회다.

목회를 하다 보니 교회 재정도 돌아가고 목회의 사례도 만만치 않아 통장에 돈이 쌓인다. 이따금씩 성도가 이래 저래 감사하다고 베푸는 봉투가 꽤 짭짤해서 또 은행 통장에 넣다보니 목표 달성이란 부푼 과제가 생겼다. 거기다가 목사 사모란 사람이 부추긴다. 1, 210억으로 올라가 보니 성도의 머리가 돈주머니로 보인다. 그만 돈 바벨탑을 쌓게 됐다.

 

넷째는 명예형(名譽形) 목회다.

세상에 있었더라면 무슨 장()이라도 한 자리 할 사람이 목회길에 들어섰 기에 세상 장()을 못하니 명예가 그리 운지라. 그래서 어이하든지 교계 안에 서라도 장() 자리는 다해 봄으로써 세 상에서 못하던 장을 교회에서 하자는 목회형이다. 교단 안에 장자리가 꽤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가장 선호하는 자리가 총회장 자리 같은데 역대 다수 증경 총회장의 고백은 그것 할 것 못 되오. 교회에 손실만 많았소.”였다.

 

다섯째로 청빈형(淸貧形) 목회다.

모두 보란 듯이 무소유 목사로 목사의 정체를 내겠다는 목회다. 자기는 단벌 신사를 자랑한다. 구두는 펑크가 날정도로 신고 다닌다. 성경에는 청빈이란 말이 없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5:18) 이 청빈형 목회자는 자기에 따른 식구들에게 쓸데없이 고통을 준다.

 

거룩한 위선형 율법주의적 목회가 되기 쉽다.

위의 목회형들은 처음부터 작정된 모델이 아니라 목회하다가 중간에 이상한 바람이 들었기 때문에 생긴 것인데 불행하다. 이러려고 목회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래 됐다. 그럼 참 목회형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목회형 목회이다.

 

시중서점에서 인기리에 팔리는 목회전략관계 책에서 눈을 떼고 성경 속의 목회서신으로 돋보기안경 쓰고 읽으시라. 거기 답이 있다. 이 목회가 남은 목회(Remnant ministry)이다. 다양한 목회 방법이 많기도 하지만 거의 몹쓸 목회이고 그 가운데 끝까지 남은 목회형이 있다.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모래 같아도 남은 자만 구원받듯이(9:27), 살아남을 목회는 따로 있고 그 수는 적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또 새기고 싶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여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 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돼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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