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에서 열이 나면 건강 상태가 안 좋다는 첫 번째 신호라는 것은 보편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인다. 몸에서 일어나는 생존을 위한 씨름으로 인한 열감이라는 의미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뜻이고 이에 대한 환경연구가들의 경고는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6월이면 늘 장마로 많은 비가 내렸던 한반도에 언제부터인가 마른장마라는 말이 생기더니 올해는 아예 극심한 가뭄으로 급수를 제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과학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으로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면서 이제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비한방울도 마음대로 오게 할 수 없음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를 제대로 깨닫게 해 주는 여름이다. 피조물의 한계와 약함을 가진 존재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루는 공동체마다 아집과 사욕으로 가득함을 바라볼 때마다 그 모습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오죽하시겠나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하지만 속내는 철저히 진영논리에 의한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 있다. 진실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편법과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조선인민군이 38선을 넘어 침범함으로써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삽시간에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버렸다.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남쪽으로 피난을 가기 시작했다. 피난민들은 한반도의 최남단인 부산에 가장 많이 모여들었다. 고향에서 겨우 몸만 빠져나온 피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전쟁의 상처뿐이었다. 모든 사람이 불구덩이 속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이제 그들은 삶을 포기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성도들조차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그런 고난 중에 하나님의 섭리를 구하며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신앙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새벽마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매달렸다. 피폐해진 환경과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믿는 자들이 잠시뿐인 고통으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다가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1952년 울산중학교 국어교사였던 26세의 젊은 석진영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가지고 펜을 들었다. 그녀의 글은 절망가운데 빠져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
185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부흥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많은 시민들이 이 부흥운동에 동참했다. 예배당뿐만 아니라 호텔에서 또 극장에서까지 밤낮으로 집회가 열렸다. 곧이어 다른 지역의 사역자들과 평신도들도 모여들었고, 이러한 움직임은 급기야 북미대륙을 반세기동안 뒤흔든 부흥운동의 불씨가 됐다. 이 운동의 중심엔 29세의 젊은 설교자 더들리 팅(Dudley Tyng) 목사가 있었다. 그보다 더 뜨겁게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그가 필라델피아의 “제인 홀”(Jayne’s Hall)에서 YMCA 기도회를 인도할 때, 5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그의 설교가 끝나고 적어도 1000명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헌신을 다짐했다. 며칠 후, 팅 목사는 말씀을 읽다가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가까운 농장을 걷다가 곳간에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기계를 돌리고 있는 노새를 보게 됐다. 그 광경에 흥미를 느낀 그는 가까이 다가가 노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 순간, 코트 소매가 톱니바퀴 사이로 끌려들어갔다. 그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한쪽 팔이 잘려나간 그는 이미 너무 많
문명의 발달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질병을 극복하게 하며 일상의 많은 부분의 속도를 빠르게 만들었다. 편안함과 안락함, 육체와 정신의 풍요로움은 문명사회가 주는 큰 혜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과연 편리함과 풍족함이 삶의 질까지 높여주었을까? 혹은 풍요로움은 곧 행복이며 정신적인 평안까지 책임지고 있는 것인가? 현대에 일어나는 많은 현상들을 보며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가정은 붕괴되고 개인의 내면은 피폐되어 자살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공동체마다 불신이 깊어 갈등은 계속되는 현상들을 볼 때 우리는 가장 풍요로운 문명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가장 삭막하고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불편해도 마음을 합하여 극복하고 조금 가난해도 정으로 이겨내었던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회적 현상을 보는 안타까움에서 생겨난 듯하다. 삶의 편리성은 높아져도 삶의 질은 오히려 낮아지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 시대에 진정한 스승의 부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말은 우리 시대에 올바른 스승이 없어서라는 의미라기보다 스승을 스승으로 대하지 못하는 굳어진 마음들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시온성과 같은 교회(새210/통245) 작사 :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 작곡 : 프란츠 조셉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 장군은 37세였다. 키는 180센티미터가 넘었고 체격은 우람했다. 길게 기른 수염과 밤색 머리카락은 언제나 빗질이 되어있지 않았다. 군화는 낡았고 챙이 처진 모자에 빛바랜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전쟁터에선 겁이 없었지만 대표 기도를 할 땐 무대 공포증에 찌든 사람처럼 기어들어가는 가냘픈 소리로 기도했다. 하지만 늘 혼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본 그의 부하들은 “장군님은 전투 중이 아니면 기도 중이시죠”라고 할 만큼 장군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감사기도를 하지 않고서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을 정도로 그의 신앙생활은 철저했다. 주일에는 편지 한 통을 읽지도 쓰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가 자연과학, 군사전술학을 가르친 미국 버지니아 렉싱턴에 있는 “버지니아 군사학교”의 강의실에서 그는 신자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었다. 또한 흑인 어린이들도 주일학교를 마음대로 갈 수 있도록 “흑인침례주일학교”를 세우고 지속적으로 운영비를 지불했다. 장군은 전투에 나가 있거나 기도를 하고 있
하나님의 크신 사랑(새15/통55) 작사: 찰스 웨슬리 (Charles Wesley, 1707-1788) 작곡: 존 준델 (John Zundel, 1815-1882) 수잔나 웨슬리(Susanna Wesley)는 19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 중 아홉 명은 아주 어려서 잃었다. 그녀는 살아남은 열 자녀(3남 7녀)를 바르게 교육하려고 힘썼다. 수잔나는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철저한 계획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활하게 했다. 자녀들에게 말을 처음 가르칠 때는 주기도문을 따라하게 함으로써 가르쳤고 아이가 정확히 다섯 살이 되는 생일부터 알파벳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처음으로 읽게 하는 문장은 창세기 1장 1절이었다. 어머니 수잔나는 자녀들에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속 깊이 새겨 놓았다.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를 먼저 알게 하는 하나님 중심의 가정교육이었다. 그렇게 자라난 존과 찰스 웨슬리에 의해 영국에 영적각성운동이 일어났다. 찰스 웨슬리는 수많은 찬송을 만들어 영국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고, 존 웨슬리는 전례 없는 설교사역으로 영국을 새롭게 했다. 감리교를 만들어 영적부흥을 일으킨 것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그들의 영향은 곧
매년 봄의 시작은 그 어느달보다 숙연해지는 3월과 함께 시작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3월이 왔나 했더니 어느새 3월은 가버렸다. 나라사랑이야 1년 내내 같은 마음이겠지만 그러나 유난히 봄에 더 나라에 대한 생각을 깊어지는 계절이 봄이라는 느낌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 때문일까? 그런 점도 있겠지만 아마도 봄의 시작을 삼일절과 함께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떤 이유에서든 일 년 중 그 어느 때보다 조국에 대해, 민족에 대해, 그리고 자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계절이 봄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세대가 바뀌고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삼일절을 비롯한 우리민족만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념일들이 갖는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예전에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우리 민족이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날을 위한 특별한 노래를 가르치고 부르게 해서 일 년 중 나라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는데 요즘의 어린 학생들은 지나치게 과열된 학습 경쟁 속에서 공부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도, 시간도 없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뼈아픈 과거를 교훈삼고 조국의 시련 앞에서 결연하게 일어섰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라도 특정한 날의
큰 죄에 빠진 날 위해(새282/통339) 작사: 샬롯 엘리엇(Charlotte Elliot, 1789~1871) 작곡: 윌리엄 브래드버리(William Batchelder Bradbury, 1816~1868) 프랑스의 시인이자 목회자인 헨리 말란(Henri Malan)은 영국 브라이튼에 있는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절친한 사이인 성공회 신부 헨리 엘리엇의 몸이 불편한 여동생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었다. 친구의 동생 샬롯 엘리엇(Charlotte Elliot)이 어렸을 때는 밝은 성격과 믿음을 가진 예쁜 소녀였다. 그러나 30세 쯤 됐을 때 병에 걸려 전신을 움직일 수 없는 불구자가 됐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불평이 늘고 세상을 비관하기 시작했다. 성격은 날카로워졌고 신앙을 내동댕이치기에 이르렀다. 집 밖에는 나오지도 않고 방안에서 혼자 지냈으며, 식구들과 대화조차 끊어진지도 오래였다. 그야말로 엘리엇은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엘리엇에게 멀리서 온 말란 목사의 말이 한마디도 들릴 리 없었다. 모든 말들이 허공에 메아리칠 뿐이었다. 그렇지만 말란 목사가 시를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녀의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2017년을 정신없이, 어수선하게 맞아 아쉬웠던 참에 설 연휴를 지내면서 1월을 떠나보내게 된 것은 어쩌면 다행한 일일수도 있다. 설을 맞아 한해를 새롭게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졌기 때문이다. 올 해는 대체공휴일까지 있어서 그래도 조금은 여유로운 명절을 보내는 행운까지 겹쳤으니 나를 돌아보고 내일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에 넉넉한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방송들은 명절이 되면 지나간 시절의 영화를 많이 보곤 하는데 오래전 어느 명절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연휴에 봤던 영화가 문득 생각이 났다. 바로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는 제목의 뮤지컬 영화였다. 1954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1923년, 독일 하이델베르그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인데 독일의 극작가, 빌헬름 마이어포르스터(Wilhelm Meyer-Forster, 1862~1934)의 중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의 내용은 하이델베르그로 잠시 유학을 온 황태자와 하숙집에서 일하는 여성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는 진부한 것이었지만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 영화였다. 특히 남자 주인공인 황태자가 부르는 노래들의 목소리는 당대 최
어서 돌아오오(새527/통317) 작사: 전영택(1894~1968) 작곡: 박재훈(1922~) 아들 하나를 뒷바라지하며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 홀어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이 망나니 같은 자식은 어려운 살림이 지겹다며 나이 많으신 홀어머니를 두고 집을 뛰쳐나갔다. 얼마 후 방황하며 다니던 자식이 잘못을 뉘우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인적이 드문 새벽인데 대문은 열려있었고 방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벽에 기댄 어머니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가만히 계셨다. 깜짝 놀란 아들은 급히 들어가 어머니를 흔들었다. 어머니는 앉아서 졸고 계셨던 것이다. 아들은 무릎을 꿇고 어머니께 용서를 빌었다. “엄마, 밤에는 무서운 산짐승도 내려오는데 왜 문을 열어 놓으셨어요?” 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문을 열어 놓고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크게 뉘우치는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아들이 집을 떠난 이유는 상관이 없다. 집을 떠나있을 때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도 문제가 안 된다. 돌아온 것만으로 기쁜 것이다. 다시 말해 아들은 돌아온 사실 하나만으로 실수와 잘못과 모든 과거를 용서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