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새94/통102)작사: 리아 밀러(Rhea F. Miller, 1894~1966)작곡: 조지 쉬아(George Beverly Shea, 1909-)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2.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전에 즐기던 세상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3.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않아 찬송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예수님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까? 물질과 명예, 부모자식 그리고 건강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이 질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제부터 예수님만을 기뻐하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우리는 입술로 이 찬송을 노래하지만 마음은 세상의 것들을 기뻐하며 살았기에 지나온 삶이 부끄러워 마음껏 부를 수 없다고 고백할
봄이 왔다. 그 길었던 겨울은 아직도 미련이 남은 듯 꽃샘추위로 심술도 부려보고 난데없는 찬바람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결국 겨울은 떠나고 그 자리에 찬란한 봄이 왔다. 자연은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아래 순리에 따라 언 땅을 뚫고 새싹을 틔워내고 꽃을 피워낸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봄도 시간이 지나면 또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 떠남의 과정이 힘들어도 억지로 순리를 거역하거나 고집부리지 않는 자연의 흐름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왜 우리는 그런 자연의 모습을 닮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흔히 요즘 세대를 극단적 개인주의의 자아를 가졌다고 진단한다. 자신의 생각만 절대적인 선이며 정의이며 옳음이라고 외치며 자신의 방법만이 정의 구현의 참된 길이라고 고집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아파하는 타인의 입장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의 어떤 정의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 자신의 옳음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가끔씩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아닐까? 깊어가는 봄을 보며 때가 되면 자리를 내어주는 계절처럼 순종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한 세
춥고 황량한 겨울을 살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봄이 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봄을 향한 소망으로 겨울을 보내고 나니 올 해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아직 체감으로 전해지는 기온이 따뜻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른 봄에 쌀쌀한 바람과 맞서 꽃망울을 터뜨린 봄꽃들은 서둘러 봄소식을 전해준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변화하는 자연과 함께 우리도 새로운 꿈을 꾸고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계절이 봄이기에 봄은 그 어느 계절보다 큰 의미로 다가오는 계절인가보다. 작곡가들에게도 봄의 의미는 특별한 것이었는지 클래식 음악 중에는 봄과 관련된 음악들이 많이 있다. 비발디의 사계를 비롯하여 슈베르트의 가곡, 슈만의 교향곡 등 봄을 노래하고 표현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봄을 이야기하는 음악들의 공통점은 밝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것인데 아마도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봄의 상징성 때문인 듯 하다. 이런 많은 음악들 중에서 올 봄에는 특별히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봄의 월츠를 소개하고 싶다.요한 스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 1825 ~ 1899)는 월츠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요한 스트라우스(Joh
서쪽 하늘 붉은 노을(새158)작사: 주기철(1897-1944)작곡: 김남수(1954-)1.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언덕 위에 비치누나. 연약하신 두 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 쓴 가시관과 몸에 걸친 붉은 옷에, 피 흘리며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2.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는 자국마다, 땀과 눈물 붉은 피가 가득하게 고였구나 간악하다 유대인들 포악하다 로마병정, 걸음마다 자국마다 갖은 곤욕 보셨도다3.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는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의 복 얻으려면 이 길만을 걸어야 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4. 아픈 다리 싸매주고 저는 다리 고쳐주고, 보지 못한 눈을 열어 영생 길을 보여주니 온갖 고통 다하여도 제 십자가 바로지고, 골고다의 높은 고개 나도 가게 하옵소서 1920년대에 도쿄음악학교를 나온 윤심덕이라는 가수가 있었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한국 최초의 성악가이자 대중 가수이며 배우였다. 그녀는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h, 1845-1902)의 “도나우 강의 잔물결” 곡조를 차용해서 “사(死)의 찬미”를 히트시켰다.“광막한
2015년이 양의 해라던가? 물론 12간지나 띠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올해가 양의 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이유는 아마도 양이라는 동물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상징으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서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모신 성도들을 일컫는 동물이기도 하고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건도 어린양의 죽음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릴 적 읽었던 동화에서도 양은 언제나 선하지만 악한 이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여린 존재로 등장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양은 선한 평화의 상징으로 늘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이다. 이렇듯 친근한 동물, 양의 존재를 좀 더 가깝게 느끼며 살게 될 새해에 우리들의 삶도 목자이신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는 축복의 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문득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사냥 칸타타가 기억났다. 독실한 루터교인으로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삶의 우선순위였던 바흐는 예배음악과 교회음악의 대가였다. 그렇다고 바흐가 오직 예배를 위한 음악만을 작곡한 것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세속음악들도 많이 작곡했는데 여기서 세속이란 표현을 잘 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새109/통109)작사: 요셉 모르(Joseph Mohr, 1792-1848)작곡: 프란츠 그루베르(Franz Gruber, 1787-1863)오래된 도시 잘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산맥의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으로부터 멀지않은 곳에 오벤도르프(Oberndorf)라는 마을이 있다. 26세의 젊은 요셉 모르(Joseph Mohr)는 그곳에서 3년 동안 목회를 했다. 31세였던 프란츠 그루베르(Franz Gruber) 교사도 같은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1818년의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 여러 지역을 떠돌며 공연하는 유랑 극단은 성탄절 연극을 하기위해 오벤도르프를 방문했다. 그들의 공연은 교회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오르간 수리공이 오르간을 고치기는커녕 완전히 고장을 내놓았기에 할 수 없이 어느 집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모르 신부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연극이 끝난 후 모르 신부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알프스의 작은 언덕을 거닐었다. 하늘이 아주 맑은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던 그에게 인류가 성탄을 기념하는 한 계속해서 불릴 찬송이 떠올랐다. 밤 12시가 다 되어 집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새428/통488)작사: 엘라이자 휴윗(Eliza Edmunds Hewitt, 1851-1920)작곡: 존 스웨니(John Robson Sweney, 1837-1899) 1. 내 영혼에 햇빛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후렴) 주의 영광 빛난 광채, 내게 비춰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2. 내 영혼에 노래 있으니 주 찬양 합니다 주 귀를 기울이시사 다 듣고 계시네3. 내 영혼에 봄날 되어서 주 함께 하실 때 그 평화 내게 깃들고 주 은혜 꽃 피네4. 내 영혼에 희락이 있고 큰 소망 넘치네 주 예수 복을 주시고 또 내려주시네 엘라이자 휴윗(Eliza Hewitt) 선생은 미국 필라델피아의 어느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늘 사랑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날 휴윗은 성격이 삐뚤어진 한 학생을 조용히 타이르고 있었다. 그래도 화를 참지 못한 반항아는 벌떡 일어나 지붕판때기로 휴윗 선생을 마구 두들겨 팼다.그 일로 휴윗은 척추를 크게 다쳐 상반신에 석고붕대를 하여 움직이지도 못하고 대소변조차 혼자 해결하지 못하게 되었다. 기약 없는 병원생활이 6개월쯤 됐을 때 겨우 석고붕대
피아노는 혼자서도 거뜬히 여러 화음을 동시에 만들어 낼 수 있는 독특한 매카니즘을 가진 악기이다. 그래서 피아노는 악기 중에서 보편적으로 혼자 연주하는 것이 가능한 유일한 악기이기도 하다. 홀로 씨름하고 홀로 연주하지만 또 혼자서 무대의 조명을 온전히 다 받을 수 있는 악기인 동시에 다른 악기들과 함께 연주하며 선율악기들의 빈 공간을 채워주고 받쳐주며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는 음역과 음향을 가진 악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피아노가 발명되고 발전한 후 3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속에서도 악기의 왕이라는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온 악기이다. 이렇게 혼자서도 돋보이는 악기이기에 고독하기도 하고 또 자칫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습관이 되기도 쉬운 것이 피아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독자적인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 나누며 배려하는 작업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 주는 음악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작품 365번이다. 피아노의 신동으로 당시의 유럽 사회를 놀라게 했던 모차르트는 자신을 조금 내려놓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조화를 이루는 연주를 통해 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새338/통364)작사: 사라 아담스(Sarah Fuller Flower Adams, 1805~1848)작곡: 로웰 메이슨(Lowell Mason, 1792~1872)1.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2.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 베게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3.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4.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우레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진 뒤 무대는 막을 내렸다. 늘씬한 몸매의 매력적인 여배우는 런던 리치몬드 극장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사라 아담스(Sarah Adams)는 ‘맥베스 부인’ 역으로의 그 무대를 마지막으로 배우생활을 접었다.아담스의 빼어난 미모와 연기력으로 인해 그녀가 출연하는 공연은 언제나 매진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 중에 그녀가 쓰러졌고 그녀는 그저 과로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기침이 멈추질 않아 병원에 갔더
국회의사당 주변 마른하늘 아래 ‘노란 우산’들이 줄지어 들어선다. 얼핏 보니 개나리꽃 무리인양 고요한 흔들림이 있다. 지친 발걸음 탓이리라. 지난 7월 16일 오후, ‘세월호 생존학생들의 도보행진’이 안산을 지나 1박 2일을 소요하며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이르렀다. “많은 친구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의 ‘노란 우산’은 침묵의 외침, 슬픔의 행렬이었다. “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워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을 받았는고.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먹여줄 사람이 없도다.” (예레미아애가 4장 2∼4절) 실로 지난 봄 대한민국은 세월호와 함께 자책과 슬픔에 초토화된 예루살렘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선지자 예레미아가 바벨론 침입에 의해 철저히 무너진 예루살렘을 향해 옷을 찢으며 애통했던 그 처절한 슬픔의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저 잘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 ‘이 정도쯤이야’ 하는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