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理性)은 사물의 이치와 원리를 알아내는 힘이다. 논리적 개념적으로 생각하는 힘으로 본능, 충동, 욕망 등에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도덕적 법칙을 만들어 따르도록 의지와 행동을 규정하는 자율적 도덕적 의지의 능력을 이성이라 한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반면에 인간은 본능적인 감정을 절제하고 진위, 선악을 구별하여 바르게 판단하고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인간을 이성적 존재라고 한다. 감성(感性)은 사전적으로는 자극에 대하여 느낌이 일어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5관(五官) 눈, 코, 귀, 혀, 피부 다섯 가지 감각 기관(感覺器官)이 타인의 감정 등 외부로부터의 모든 감각적 자극을 받고 그에 반응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이성이 논리적이고 지식적이라면 감성은 감정적이고 정서적이라 할 수 있다. 상품을 광고할 때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디자인이나 색상으로 모성애를 자극한다거나 여성의 마음을 자극하는 것을 감성적인 마케팅이라고 하고 상품의 품질이나 경제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을 이성적인 마케팅이라고 한다. 사람은 이성적이라야 하지만 감성도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이성 감성뿐만 아니라 영성(靈 性)도 있다. 영성은 신령스러운 품성이나
울금은 진도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로, '막힌 기운을 뚫어주는 황금색 음식'이란 뜻이다. 요즈음 매스컴에서도 육고기나 생선 요리뿐만 아니라 뇌건강과 항암효과에서부터 다이어트 식품으로 알려진 울금은 요사이 관심이 되고 있는 면역력 기능을 높여 준다고 알려져 있다. 울금을 자랑하고 광고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진도에서 특산물이라고 재배되는 작물 중에 하나로 울금을 넣어 만든 엿과 젤리를 구입하고 몇 개씩 포장해 나누며 전도하고 있다. 대부분 노년층으로 구성된 마을주민 분들은 집을 방문을 하거나 회관에 찾아가 만난다. 또 들이나 밭에서 계시는 분들을 만나면 사탕이나 과자 하나라도 드리며 말을 건네고 안부를 묻는다. 그래서 진도에 목회하며 생긴 습관 하나가 차 안에나 주머니에 사탕이나 과자들을 꼭 넣어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옛 팽목항인 진도항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아픈 추억의 장소이지만 먼 진도까지 찾아오신 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요 장소다. 몇 년째 매주 한 번씩이라도 가면 언제든 새로운 분들을 만날 수 있다. 교회 청년과 전도를 나서며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나게 하실 일을 기도하고 기대하는 시간은 새로운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을 “자칭 사도”로 그의 사도직을 조롱했다. 적대자들로부터 사도직에 대한 의심을 받았던 바울은 당대에 거짓 사도들로부터 자신을 구분하였다. 바울이 제시한 참된 사도와 거짓 사도를 구분하는 대원칙은 하나님으로부터 ‘파송 받은 자인가,’ ‘아닌가’ 이다. 바울은 자신은 사람들로부터 파송 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복음 전파의 소명을 받아 파송된 자임을 강조한다(갈 1:1, 11~12).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복음의 계시와 이방인 선교에 소명을 받고 파송 받았다면, 거짓 사도들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위임을 받고 파송된 자들이다. 바울이 거짓 사도들과 구분하여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하는 것을 볼 때, 신약이 기록되던 원시 기독교 시대에 12사도와 바울 사도 외에도 다른 사도들이 있었거나 사도의 직무를 수행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희사한다. 그렇다면 신약성서에서 “사도”라는 명칭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에 관해 물음에 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도”로 번역한 아포스토로스는 아포(~로 부터)와 동사 스텔로(내가 보낸다)가 결합해 파생한 “~로 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의 명사이다. 고대 헬라어 문헌에
넷째는 방문상담사 돌봄과 성장을 위한 자문 제공이다. 방문상담은 교회의 목양적 방문이나 사회적 방문의 경우 모두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와 격려 및 필요한 지원과 돌봄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가치 있는 사역이자 전문적인 활동이다. 하지만 낯선 곳을 찾아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 사람만 아니라 호의적이지 않은 여러 가족 구성원들이나 관리되지 않는 어린 아이들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무거운 이슈들을 다룬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크고, 신체적·정신적으로 에너지를 소진(burn-out)시키는 힘든 작업이다. 자신들의 상담교육이나 훈련의 범주를 벗어나는 이슈에 직면하거나 상담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더 악화되는 경우 상담사로서의 부적절감 등으로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느 전문 상담사도 모든 상황에서 모든 이슈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한계와 전문성에 관한 회의를 경험할 때가 있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방문상담사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그들의 속마음을 들어주고 공감하며 위로와 격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많은 경우, 경제적 보상도 충분치 않거나 자원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경험을 오래 지속하기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 들의 이름에 대해서 관여와 배려해주심이 있다. 사가랴의 아들 이름을 천사를 통해서 “요한”으로 미리 알려주셨는가 하면(눅 1:13) “고귀한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의 이름을 더 크고 위대한 ‘열국의 아버지’ 란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꿔 주시기도 했다(창17:5). 또한 개인적으로 특별히 이름을 불러주신 사례들도 있다. 호렙산 근처에서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러간 모세나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집에서 봉사하던 사무엘을 밤중에 각각 부르시고는 사명 이나 장차 될 일을 말씀해주셨다(출3:4, 삼상3:10).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이름을 기억하시며, 불러 주시며, 다윗처럼 존귀하게 만들어주시기도 한다(대상17:8).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이름을 귀중히 여긴다. 이름은 그 사람의 성격, 지위, 업적, 생애 등을 반영하는 것으로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후세까지 명예롭게 되길 바란다. 그렇기에 목회자들도 교인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며 불러 주어야 한다. 나의 경우엔 대심방시 교인 자녀들의 이름을 갑자기 잊어버려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몇 번 이런 일을 겪은 후엔 메모지에 이름을 적어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주인공은 화려하게 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퇴장이 더 중요하다. 어떤 주인공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리얼하게 연기하다가 불행하게 퇴장하는가 하면 어떤 주인공은 해피앤딩으로 등장할 때보다 퇴장이 더 아름다운 주인공도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할 정도로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막강한 자리이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전 세계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미국 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며 엄숙하게 취임식이 진행되는 현장에 전임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를 부정 선거라며 바이든 당선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다가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 난동 사건이 발생하면서 트럼프는 오랜 전통을 깨고 취임 식에 참석하지 않고 백악관을 떠나는 대통령답지 않은 모습을 연출했다. 만 75세의 고령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4년간 재임한 것도 영광스러운 일인데 신사답게 승복하고 취임식에서 축하의 악수를 하고 물러났더라면 멋진 모습이었을 텐데 왜 저렇게 비신 사적이고 명예롭지 못한 퇴장의 길을 택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는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이 자신
토요일 저녁 젊은이부 예배에 들어갔습니 다. 아이들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주안에서 살면서 혹시 간증할 사람이 있으면 한번 해보아라”라고 말입니다.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다음 주일에 똑같은 질문을 또 했습니다. 그때도 여전히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은 간증할 사람이 많아서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 다음 주 예배 시간에 이어서 할 정도로 이제는 간증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예배 때마다 간증 시간을 넣으니 아이들이 매주 깨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서 좋고 또 함께 있는 다른 젊은이들이 여러 면에서 다채롭게 은혜를 받게 되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감동스러운 간증은 대 예배 시간에 모든 성도와 함께 은혜를 나눴습니다. 그 후, 저는 전 교인들에게 이와 같은 교육하게 됐습니다. 제가 “신앙은?” 하면 교인들은 “삶이다”라고 고백하게 했고, 제가 “기도는?” 하면 교인들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는?” 하면 “교회〉 가정〉 직장”이라고 하며, “인격적인 우선순위는?” 하면 “하나님〉 가족〉 이웃”이 라고 합니다. 오늘날 청년들이
미식가들의 바이블, ‘미슐랭 가이드’를 아시나요? 음식 맛, 서비스, 분위기, 가격 등을 기준으로 레스토랑의 등급을 매기는 가이드이다. 가장 낮은 별 1개부터 별 3개까지의 등급을 매기게 되는데 별 3 개를 받은 레스토랑의 요리사는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고 한다. 매년 별의 등급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별을 얻는 것도 힘들고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요리의 나라 프랑스에 조차 단지 20여개의 3스타 레스토랑만 있다고 하니 정말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은 정말 최고의 맛집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가격은 상상 이상이다. 점심 코스가 1인 10만원 수준이고 저녁 코스는 2인에 50만원에서 100만원에 이르는 메뉴가 많다. 그러니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되는 것은 요리사에게 있어서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명예와 부를 동시에 차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선발해 가이드를 만드는 회사가 아주 재미있다. 이 정도 권위라면 뉴욕의 대단한 요리사 그룹이나, 세계 최고의 프랑스 요리학교인 르꼬동 블루 정도에서 관장해야 맞는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미슐랭 가이드를 만드는 회사는 타이어 회사다. 우리가 잘
‘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서 허리춤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 수도 없습니다. 사원에 들어가서 신께 기도드릴 수도 없습니다. 신성한 그곳에 그림자도 드리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천하게 태어난 것은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 들은 우리와 닿는 것만으로도 오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은 불가촉천민 달리트입니다’ 이것은 나렌드라 자다브가 저술한 ‘신도 버린 사람들’이란 책 표지에 실린 불가촉천민에 관한 글이다. 힌두교에 의해서 생겨난 인도의 신분 제도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사, 수드라 등의 4계급인데 이카스트 체제에 속하지 않는 가장 하층의 사람들이 불가촉천민들이다. 1955년 법이 제정되어 그들을 종교적, 직업적,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인도 총인구의 약 15%에 속해있는 국민들은 지금도 차별대우를 받으며 절대적인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불가촉천민은 인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파키스탄 남부의 ‘누더기를 입은 땅’이란 뜻의 쫄리스탄 사막에도 거주하고 있는데 바로 마르와리족이다. 이들의 숫자는 약 2만 명이나 그 이상일 수 있는데 힌두교도들로서 역시 천대받으
코로나를 바라보는 2가지 관점이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은 세계보건기구 WHO와 선진국들의 싱크탱크 및 글로벌기업 CEO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도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쉽게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과학을 믿으니까요!’라는 말은 지난 12월 14일 미국에서 처음으로 백신 접종을 받은 여성 간호사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매일 코로나로 사망하는 사람들을 치료해야 하는 뉴욕 병원 간호사로서 제법 두려울 법도 한데,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강력한 신념의 근거가 과학이었다. 과학과 의술을 믿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과학을 믿기 때문에 두려움 속에서 전진한다는 매우 인본주의적인 사상이 이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다. 목회자의 입장에서 고난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은 최소한 신앙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데,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세상은 신앙이나 믿음보다는 과학이나 정보가 더 중요한 듯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는 대규모 전염병이 창궐하고 사람들이 많이 죽을수록 신앙이 성장한 것이
필요하면 자신이 교회에 찾아가겠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찾아오거나 방문하는 것은 부담이 되거나 도움이 되지 않다고 보아 기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개인들은 저마다 내면적인 갈등이나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힘든 삶의 현실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의미 상실, 그로 인한 불안, 우울과 자살충동을 경험하며, 사회에서 단절되는 개인들이 늘어간다. 스스로 자기문제를 포기하거나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된 개인들과 가정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기관들에서 이들을 지원하고 돌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찾아가는 방문사업들을 확장하고 있다. 교회에서의 방문사역은 그 기능이 약화 내지는 외면되고 있는 가운데, 현대인의 각종 문제현실과 어려운 상황 들은 이웃의 관심과 방문 등을 통한 지원과 도움이 더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목회신학자 브리스터(C. W. Brister)는 빠른 변화의 시기에 발생하는 교회 사역의 위협 요인들을 언급하며 ‘행위와 성찰’(action and reflection)을 강조한 바 있다. 교회의 전통적 유산이 상실 되어가는 위기를 언급하며, ‘일상의 사건과 갈등, 믿음과 영성의 문제들’에 대한 점검과 갱신의 필요성을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순간 입에서 나온 첫소리가 “나의 주님이시요”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보는 순간 “나의 주님”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신앙의 첫 고백이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라는 고백으로 신앙생활을 출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주님”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면서도 실질적으 로는 너무나 거리가 먼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 도마의 고백처럼 우리도 진정한 믿음의 바탕에서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 되어진 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유와 쉼과 평안”의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면상 짧지만, 최근에 있었던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두 달 전부터 우리 집 마당에 산란계 암 닭 열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첫날부터 이 녀석들은 달걀을 낳기 시작했는데, 저희 부부는 닭장 안에 갓 낳은 달걀을 난생처음 보는 순간 신기하고도 놀라워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웃들도 우리 집에서 닭을 키우며 달걀을 생산하는 것을 구경하기 위하여
“엄마는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초등학교 2학년이 썼다는 “아빠는 왜?”라는 시다. 아빠라는 존재가 초등학생 아이에게 냉장고보다, 강아지보다 못한 존재인 듯한 모습에 글을 읽으며 남자로, 아빠로서 서글픈 마음마저 든다. 이것이 어느 한 아이 만이겠는가? 한국에서 아빠라는 자리, 남편이라는 자리가 외로움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요사이 더 많이 접하는 연애인 사망뉴스, 가족사망 뉴스가 사람의 가치나 존엄을 망가지게 한다. 어느 연구에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외롭다’, ‘괴롭다’거나 ‘슬프다’와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또 ‘나’라는 자신을 지칭하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며,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를 적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쓴 글에서처럼 자신 위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이라서 기보다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믿음에서조차 “우리 가족”, “우리 교회” 그리고 “우리 민족” 등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실상은 “내”라는 의미를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인간과 세상의 구원과 치유와 회복과 재건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의 행동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권능의 행동은 “하나님의 영” 혹은 ‘성령’으로 불리어지는 존재로써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이뤄진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성령에 의해 이뤄지는 하나님의 권능의 행동인 것은 그의 침례와 함께 임한 성령 강림의 체험과 그 이후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으신 것과 유대 광야에서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고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메시아’의 사명 (직분)을 주시고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권능으로 기름 부어주셨기 때문에 시작됐다고 제시하셨다(눅4:18~19). 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치유하시는 권능의 역사를 감당하신 것이다(행10:38). 예수님의 사역 속에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고 있었다는 것은 먼저 그의 가르치는 사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은 연합국 전쟁사가로부터 2차 세계 대전 중 가장 유능한 독일군 지휘관중 한 명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네 종류의 장교에 대해서 말합니다. 첫째, 게으르고 멍청한 장교, 둘째, 열심히 일하는 지혜로운 장교, 셋째, 열심히 일하면서 멍청한 장교, 그리고 최고의 리더인 ‘똑똑하고 게으른 장교’입니다. ‘멍부’ 즉 멍청하면서 부지런하고 열심까지 있는 리더는 최악입니다. 의미 없는 일에 자신과 부하들의 힘을 모두 소진시킵니 다. ‘멍게’ 즉 멍청하면서 게으른 리더는 최소한 자신의 멍청함을 주위에 전염시키진 않습니다. ‘똑부’인 똑똑하고 부지런한 리더는 모든 일을 다 잘하려 하기에 중요한 일에 집중못할 때가 있습니다. 최고 리더는 ‘똑게’입니다. 즉 결정적인 한 두 가지 일에 집중하는 똑똑하고 게으른 장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은 사실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지혜’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결정적인 일에 집중할때 나머지 일들에 대해서는 게으르게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최악의 리더는 방향을 모르면서 소신있고 열심까지 있는 리더입니다. 젖은 장작에 열심히 불을 때서 연기만 폴폴 나는 리더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