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도 어김없이 부활절을 맞이했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고난이 온 인류를 위한 고통이었음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새로운 신앙의 결심을 하게 된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을 생각하면 나태했던 신앙의 모습을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다. 어버이날이 되어서야 나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 겸연쩍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요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좋은 말이 없다. 말속에 ‘화’가 섞여 있고 ‘분’이 섞여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같은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비록 세상 사람들은 화를 내고 분을 내더라도 성도들은 그것을 순화시켜서 어찌되었든 세상을 밝게 만들어야 하는데 성도들 역시 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성도들이 어떤 가치와 생각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려면 세상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방식대로 휩쓸리어 가다가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생각해야 할 가치는 생명이다. 또 하나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하는 부활
교회의 사명은 영혼구원이 최우선이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기주의와 독선에 함몰되어 복음 전파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나아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비현실적인 사역에만 치중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비롯해, 한국교회 대표 연합기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목회자들의 독선과 이기주의, 명예 때문에 분열되는 갈등을 겪고 있는 현실이 비기독교인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 하나는 요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복”이라는 단어다. 그것이 세속적인 복이든 영적인 복이든 아마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복이 빠진 설교가 드물고, 복이 빠진 기도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예수를 믿는 것이 복인지, 복을 받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인지 주객이 바뀌는 경우를 흔히 본다. 기독교 진리를 오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게 된 그 자체가 가장 크고 중요한 복인데, 그것을 경시하고 더 큰 복을 받겠다고 엉뚱한 일에 분주한 사람들이 많다. 이는 진리의 우물가에 앉아서 목이 마르다고 엉뚱한 포도주를 찾는 격이다. 마치 우물가의 여인처럼 영원한 생
제주와 부산 등 남쪽지방에서 올라오는 꽃 소식 중에 이런 소식이 있다. “남매가 노란 꽃을 피웠다” 남매는 무슨 꽃일까? 음력으로 12월을 섣달이라고 하는데 섣달을 한자로 ‘나비’라고 하니까 남매라고 하면 섣달, 즉, 음력 12월에 피는 매화라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이 가장 사랑했고 칭송했던 꽃 매화는 많은 별칭을 갖고 있는데, 매화의 다른 이름 중 가장 친숙한 이름은 역시 매실나무이다. 매화가 꽃을 강조했다면 매실나무는 열매를 강조한 것이다. 꽃이 너무 일찍 피어 ‘조매’라고 부르고 추운 겨울에 핀다고 ‘한매’ 또는 ‘동매’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유명한 ‘설중매’는 눈속에도 핀다는 뜻이고, 봄내음을 전한다고해서 ‘춘매’라고도 한다. 또 ‘탐매’, ‘심매’라는 말도 있는데 아직 바깥 날씨가 추운데 매화를 찾아다니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이 탐매는 도교적인 의미가 있어서 많은 시서화(詩書畵)에 소재가 되었고 그중 조선시대 화가 김명국의 탐매화(探梅畵)가 유명하며 조상들이 매화를 유독 사랑했던 이유를 알 수 있는 시구절이 있다. 매일생한 불매향(每日生寒 不賣香; 매화는 일생을 추운 겨울에 살지만 결코 향을 팔지 않는다) 사람으로 말하면 고난을 해결
『나다나엘 호손』작 『주홍글씨』는 1850년 작으로 17세기 보스턴에서 일어난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두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통해 죄와 구원의 문제를 심도 있게 그린 작품이다. 간통한 여자에게 그 벌로 가슴에 간음을 뜻하는 ‘Adultery’의 첫 자인 ‘A’자를 주홍 색으로 달게 한데서 주홍글씨는 간음한 여인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다.『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이란 소설은 추리소설의 구성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를 살해한 범인을 추적한 결과 카라마조프 집안의 보잘 것 없는 하인 『스메르자코프』로 밝혀지게 되며 동네를 떠돌던 여자 거지가 낳은 아들이 『스메르자코프』였고, 이 사건 후 자살로 그 생을 마감하고 있다. 『스메르자코프』의 출생의 비밀은 바로 주인 어르신인 『표도르 카라마조프』였던 것이 밝혀진다. 이 역시 간음과 출생의 비밀이 뒤 얽인 소설이다.지난 2월 26일 헌법 재판소는 간통죄를 재판관 7:2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위헌 의견을 낸 5명은 박한철, 이진성,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으로 결정문에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또는 성적 결정권은 모두 헌법상 기본권이고 법률에 따라 제한이 가능하지만 간통행위를 형벌로
대통령 부인이나 대통령후보 부인이 남편의 정치생명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가깝게는 전 카터 대통령의 청교도적인 검약이미지를 부양시킨 것이 바로 로잘린 부인이었다.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밤 축하 파티에서 부인이 입고 나온 드레스는 중고품이었다. 상류사회와 패션계에서는 일생 일대의 가장 신나는 날에 중고품을 입었다는 것은 퍼스트 레이디로서 센스가 없다고 비난을 했지만 대부분의 미국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백악관으로 이사간 바로 그 이튼 날 실내의 난방을 낮추라고 한 것도 중고 드레스와 일맥상통한 것으로 카터의 검약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큰 역활을 했던 것이다. 25대 퍼스트 레이디 아이다 맥킨리 부인은 은행원 출신으로 그가 퍼스트 레이디가 되기 전부터 해왔던 슬리퍼 삼기를 평생 계속, 통산 5천 켤레를 손수 만들어 친지나 저선단체에 보내고 있었다. 이 부인의 슬리퍼 때문에 당선됐다하여 맥킨리 대통령에게는 “슬리퍼”대통령이라는 애칭이 붙었었다. 30대 퍼스트 레이디 그레이스 쿨리지 부인은 농아학교 교사 출신이다. “그녀는 말 못 하는 사람에게는 말을 하게 하지만 말 많은 사람에게는 말을 못 하게 하는 재주도 갖고 있다”고 쿨리지가 말했
지난 3월 5일은 총회 건축헌금 운동을 전국교회에 알리고 총회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발대 예배를 드렸다. 총회 부채에 관심을 가진 목회자와 성도들이 참석, 현재 총회 부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상환 계획과 앞으로 4월까지 해결해야 하는 일부 원금 상황 계획에 대해 듣고 최대한 전국교회의 힘을 모으기로 했다.총회는 제100차 총회를 통해, 여의도 총회 건축을 진행했고 제102차 총회에서 건축을 완결 짓고 현재 오류동 총회 기관이 모두 이전한 상태에서 여의도 총회 시대를 보내고 있다.그동안의 여러 우여곡절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건축 초기부터 교단이 부담하기 어려운 부채를 안고 건축을 진행했던 일과 총회 빌딩에 입주할 예정이었던 모 기업의 문제로 급하게 임대사업을 준비했던 부분 등 건축과정과 임대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현재 약 90%이상의 임대율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얻고 있는 시점에서 최대한 조속한 시일 내에 총회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격려하고 싶다.현재 총회 건축헌금으로 약정하고 들어온 금액은 약 3천 500만원이며 앞으로 오는 4월까지 약 1개월이 넘는 기간에 모금해야 할
청량리발 구절리행 기차를 타고증산을 지나 정선에 닿으면비행기재보다 조금은 높게아리랑고개보다 조금은 슬프게겁주는 덕송리 뿌연 연기 등에 업고그림자는 싸안고어깨 들썩이는 비봉산몇 개의 돌무덤과 바위까지도같이 흔들리고 있다 그림자 위로 떠가는 구름들그 구름 이어져 한강까지 가려나아니면 천상에 보금자리 일구신내 어머니 따뜻한 품에 달려가려나 빛없는 곳에 작은 불씨 타오르듯말없는 곳에 작은 속삭임 생겨산이며 강이며 소나무며 온밤 뒤척이는데하늘에선 바람만 날고 있었다김현자 / 서울성천교회
이미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듯이, 부활절(Pascha, Easter)의 날짜를 정하는 문제는 325년에 콘스탄틴 황제가 소집한 최초의 종교회의(공의회, The First Ecumenical Council)에서 부차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주된 논점은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하나님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에 있느냐”하는 것이었지요? 기독론(Christology) 문제를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부활절에 관하여서는 많은 논의 끝에 태양력으로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Spring Equinox)을 태양이 다시 살아나는 날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태음력으로 달이 가장 둥글고 크게 되는 날인 보름의 만월(Full Moon)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을 “춘분이 지난 후 보름이 지난 후 첫번째 주일”(올해의 경우, 3월 21일-춘분, 4월 3일-보름, 4월 5일-부활절 주일)로 정했습니다. 보름이 춘분이나 그 다음날 온다면 부활절은 3월 셋째주일이나 넷째주일이 되겠고, 보름이 춘분 전날이라면 대체로 4월 셋째주일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주일이 정해지면 그 전 주일을 일반적으로 “종려주일”(Palm Sunday)이라고 부르지요.
한국교회는 현재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영적인 혼돈과 종교다원주의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본질적인 문제는 진리의 왜곡과 빈곤이라 할 것이다. 모름지기 교회는 진리의 공급과 동력이 없어지면 세상의 어떤 조직보다도 세속화와 부패의 길을 걷게 된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의 조직과는 전혀 다른 원칙과 생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명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의 공급으로만 활기를 얻게 되는 신령한 유기체다. 다른 표현으로 많은 돈, 사람의 수, 인간 지도자의 지도력, 조직력 등도 교회의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하는 데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있어도 진리의 순수함과 공급이 사라지면, 교회는 반드시 저급하고 누추한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역사가 웅변으로 증명하며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성경의 진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성도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은 그릇된 성경 해석으로 말미암아 인본주의 신학과 신앙때문이다. 가르치는 중요한 개념이 잘못 해석되면서 성도의 신앙생활에 엄청난 혼돈을 가져온 것이다. 교회의 교회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는 이른바 “하나님의 일”이다
세대주의 신학은 영국의 배타적인 형제교회(Separatist Plymouth Brethren) 지도자 John Nelson Darby(1800-1882)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Scofield Reference Bible에 의해 영어권에 널리 보급되었다. 그의 종말론은 미국 근본주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C.I. Scofield Reference Bible은 50년 동안 3백만 부가 팔렸는데, 그 영향으로 Biola, Moody, Dallas, Grace와 같은 신학교가 세대주의 종말론을 가르쳤다.세대주의 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언약신학)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시스템에 따라서 신학이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루터와 칼빈이 가르친 개신교 정통신학인 ‘개혁주의 언약신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대주의 신학’이다. 두 신학체계는 구원과 율법, 종말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구원관의 차이. 신구약 성경을 보는 관점에 우리에게 친숙한 세대주의가 있다. 세대주의에서는 성경 역사를 무죄(innocence)시대, 양심(conscience)시대, 인간통치(human government)시대, 약속(promise: Patriarchal Rule)시대, 율법(Law)시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를 사랑해야 하고, 그 누구보다도 애국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라 없는 국민이 없기 때문이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유베트남이 공산화가 되었을 때 많은 국민들이 작은 배를 타고 탈출하던 것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왜 나라를 버리고 떠나야만 했었는지 구차한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대한민국은 2015년 3월 1일은 삼일절을 96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삼일운동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던 시대에 교회가 중심이 되어 일어난 독립운동이었고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한국교회는 해마다 삼일절을 기념하는 예배와 뜻 깊은 행사를 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삼일운동에 참가했던 많은 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삼일절의 정신은 후대에 길이 계승되어야 한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려고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데 삼일운동의 기독교정신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즉 엑서더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삼일운동을 전개한 가장 큰 이유는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한 데 있다. 당시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병하고 국권을 찬탈한 일제는 우리 민족을 매우 가혹
최근 교회에서는 믿음을 강조하면서 실생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대한 윤리강요가 꼭 필요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신앙인들에게 교회생활만 가르쳤지 사회생활에서 빛이 되고 소금돼야 함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특히 믿음만 강조했던 교회의 반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중세 스콜라 철학을 대표했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저서 “신학 대전”에서 자살에 반대해야 하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자살이란 각자가 자신에게 빚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공격이고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며, 하나님의 대한 범죄라는 것이다. 또한 자살을 치명적인 죄악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자살을 죄악시했던 경향은 중세를 지나 19세기까지 유럽 사회를 지배했다. 자살이 질병으로 생각되기 시작한 것은 19세에 이르러서다. “자살에 대한 목회 지침서”를 발간하여 교회마다 영적인 훈련에 교재로 사용하고 있음은 세계적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 셀 그룹을 통해 지역, 혹은 이웃 같은 교우들의 소통을 이루고 있지만, 한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바른 신앙 교육을 통해, 생명의 귀중함을 인식시켜야 한다. 때 늦은 감은
말로 하면 똑딱. 일초도 안 되는 ‘안녕!’ 안녕이라는 말을 사전적으로 풀면 ‘아무 탈없이 편안함’이다. 결국 안녕이라는 말과 편안하다는 말은 같은 뜻이다. 그런데 ‘나는 편안해’라고는 해도 ‘나는 안녕해’ 라고 하지는 않는다. 안녕은 주로 상대방에게 건네는 인사말로 쓰인다. 하지만 안녕, 글자로만 달랑 써놓으면 이게 만날 때 인사인지 헤어질 때 하는 인사인지 알 수 없다. ‘헬로우’인지 ‘굿바이’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만날 때도 ‘안녕’이라고 하고 헤어질 때도 ‘안녕’이라고 한다. 만날 때도 손 흔들고 헤어질 때도 똑같이 손을 흔드는 간단한 몸동작 같은 두 글자 ‘안녕’. ‘처음 뵙겠습니다’ 이 1초의 짧은 말에 대해서 일생의 순간을 느낄 때가 있다. ‘고마워요’ 1초의 짧은 말에서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알 때가 있다. ‘힘내세요’ 1초에 짧은 말에서 용기가 되살아날 때가 있다. ‘축하해요’ 1초의 짧은 말에서 행복이 넘치는 때가 있다. ‘용서하세요’ 1초의 짧은 말에서 인간의 약한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안녕’ 1초의 짧은 말에서 일생동안의 이별이 될 때가 있다. 일생의 순간, 사람의 따뜻함, 용기, 행복, 인간의 약한 모습 그리고 이별 이 모든 감
많은 화제를 뿌리며 현재까지 상영되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은 관객이 무려 1,200만을 넘기며 한국영화 역사상 5위 안에 드는 위업을 자랑할 듯하다. 그런 가운데 영화의 중심 현장이었던 ‘꽃분이네’가 영화 후광을 넘어 후유증을 겪으면서 점포 주인의 지나친 권리금 인상 요구로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참으로 기회를 이기적으로 활용(?)하려는 탐욕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여 영화 흥행이 또 다른 甲질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무조건 반갑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그 감동이 여운으로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특히 한 아버지의 아들로 가족의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희생이라는 덕목으로 감당해 내는 모습들은 영화 속 주인공의 자식들이 살아가는 오늘날의 밑거름이 되었기에 더욱 훈훈한 감동이다.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의 뇌리에 남은 장면들은 주인공이 살아낸 삶의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끝 장면으로 갈수록 주인공의 삶이 일부에서는 ‘토’라는 단어도 쏟아냈지만 공감이 견인한 감동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의 시작은 국제시장이 아닌 흥남부두였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한국전쟁이 일어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영적인 시험을 당하셨다. 마귀는 예수님께 자기를 경배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다. 마귀는 그렇게 우리가 추구하고 얻기 원하는 것을 모두 주겠다고 말한다. 이 시대에 이 말보다 더 유혹적인 것은 없다. 마귀는 지치지 않는다. 또 예수님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환경을 바꿔가며 계속해서 시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병대 신앙”을 가져야 한다. 환경에 관계없는 “전천후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그렇다면 마귀는 우리를 영적으로 시험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째 마귀는 합리성으로 유혹한다. 마귀는 논리로 접근해 온다. 일종의 괴변이지만, 사고하는 훈련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쉽게 넘어간다. 한 번 양보하고 두 번 양보하다가 결국 마귀에게 완전히 빠져버릴 때가 많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사람들은 ‘구제하라’, ‘섬기라’는 식의 기독교가 아니고도 얘기 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것들을 말할 때는 납득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진리를 애기하면 황당해 할 때가 참 많다.‘처녀가 애를 낳았다’고 한다. ‘죽음에서 부활한다’, ‘행위가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내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