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다섯 살 큰 딸 선희의 예쁜 재롱이 가족 모두의 즐거움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교회 뒷마당 텃밭을 즐겨 일구시던 시아버님께서 그날따라 채소에 농약을 살포하시려고 원액을 통에 부은 후 남은 용액을 무심코 텔레비전 위에 놓고 나가셨습니다. 그리곤 한참 텃밭에 약을 뿌리시던 중 선희가 “할아버지 저 감기약 먹을 시간이에요”하자 그만 아무 생각 없이 “그래, 텔레비전 위에 남아있는 감기약 다 먹어라” 하셨던 것입니다.
선희는 방에 들어가 텔레비전 위에 나란히 놓인 병 중에 가까운 쪽에 놓인 농약을 쭉 마셨고, 그길로 ‘악’ 비명과 함께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저희 사택은 교회 아래쪽에, 부모님의 거처는 교회 옆쪽에 위치해 아무도 아이가 당한 이 엄청난 사고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꿈에도 예기치 못할 사고였습니다.
학교에서 황망히 달려온 남편은 신포동에 있는 자선소아과 의원으로 딸을 둘러업은 채 달리던 남편의 이마엔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은 이미 까만 동자가 넘어가 흰자위만 보였습니다. 병원 원장님이신 장로님은 “얘를 어떻게 이 모양이 되도록 내버려 뒀냐”며 야단야단하셨지만 더 이상 제 귀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원장님은 서둘러 아이의 위를 세척하고 링거 주사를 꽂은 후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셨습니다. 여전히 흰자위를 드러낸 채 40도의 고열을 오르내리며 혼수상태인 딸을 보니 눈물, 콧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선희는 동네에서나 교회에서나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예쁘고 총명한 아이였습니다. 시아버님도 아들만 있던 집안에 태어난 손녀딸을 늘 등에 업고 특별히 애지중지하셨는데 사고 이후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셨습니다. 그러나 모두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딸은 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흰자위만 드러낸 채 땀만 비 오듯 흘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선희를 살려주세요,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 꼭 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생떼를 쓰듯 저는 간절한 절규의 기도를 물 한 모금, 밥 한술 뜨지 않고 오직 선희의 회복만을 위해 밤낮으로 이어갔습니다.
금식 사흘째 아침, 팔에 아이의 머리를 누이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드디어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해가 수평선에 떠오르듯 까만 눈동자가 떠오르며 배가 고프다는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거참 희한하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네. 퇴원해도 좋습니다!” 할렐루야! 제 눈엔 감사의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사고 이후에도 딸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성장하여 현재 KBS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흘간의 간절한 금식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저는 온전히 믿습니다.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온몸과 영을 다해 믿고 있습니다. 이날의 저의 놀라운 간증이 많은 분에게 힘과 격려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