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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Baptist 성경”(침례표기 성경)인가? - 2 통일성 속의 다양성

‘성경전서 개역 개정판’(1988)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그 중 일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보편적으로는 교계에 안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많은 논란 속에서 성경의 번역과 개정이 계속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성경이 언어로 쓰여 있고,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존 로스팀의 ‘예수셩교젼셔’(1887)은 서북방언이 많이 사용되어 서울말과 다르다는 점이, ‘개역한글판’(1956/1961)과 ‘성경전서 개역 개정판’(1988)은 한글맞춤법의 변화에 따라 번역과 개정이 다시 이루어졌다. 모든 세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려면 그 세대 사람들의 “난 곳 방언으로” 성경이 읽혀져야 하기에 세대마다 변하는 언어로 “잘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둘째는 성경 번역은 신학적 작업이기도하기 때문이다. 단어 대 단어의 단순 매칭이 아니라 원문의 의미를 어떻게 당대의 언어와 문장으로 표현할 것인가하는 것은 신학적 배경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

 ‘밥티즈마(βα?πτισμα)’를 침례로 번역할 것인가? 세례로 번역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다른 결과에 도달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가 여전히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개신교회는 통합된 성경 번역 기구에 함께 참여하여 일치된 성경을 사용함으로써 주 안에서 연합과 일치를 도모하는 구심점으로 삼아왔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교파, 교단들이 연합을 위해 자신들의 입장을 일정 부분 희생한 것이 사실이고 이로 인한 불만은 여전히 상존한다. 교회의 연합이라는 큰 가치를 해치지 않으면서 누구보다 성경의 권위와 가치를 철저히 지켜왔던 우리 교단의 특징을 담아내는 성경 번역은 어떻게 가능한가?    


한글 성경번역 과정에서 침례교의 독특성을 잘 드러내준 성경은 한국 토착화 선교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침례교 독립선교사였던 말콤 펜윅 선교사의 ‘원산번역’(1919)이다. 펜윅은 한 때 성경번역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입장 차이로 탈퇴하고 독자적인 성경 번역을 시도했다. 그래서 펜윅이 번역한 원산번역에는 독특한 번역이 들어있다. 지면 상 자세히 다룰 수는 없으나 일예로 서기관을 “선비”로, 성령님을 “숨님(성순님)”으로, “침례주시는 요한꾀셔”와 같이 성경번역위원회의 번역본보다 훨씬 더 토착화된 독특한 표현과 침례교 신학을 반영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원산번역’은 최근에 와서야 선교사적으로나 성경번역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 받아 높이 평가됐다. 자금 문제와 신사참배 거부로 인한 교단폐쇄령(1944년 5월 10일) 등으로 충분히 보급되지 못했고, 이후 개정작업도 이뤄지지 못해 우리 교단에서조차 역사의 뒷켠으로 밀려 난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다. 원산번역 성경의 개정과 보급이 계속해서 이뤄졌더라면 성경번역 작업에 참여한 침례교 대표(도한호 전 침례신학대학교총장)에게 더 큰 힘이 실리면서 지금보다 침례교의 신학적 입장이 많이 반영된 성경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을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개역 개정 성경번역 과정에서 난하주에 침례를 표시하고, 침례표기 성경을 별도로 제작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통일성 속에서 다양성을 인정해 왔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 교단이 “Baptist 성경”(침례표기 성경)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해준다. 통일성만을 강조하다 자칫 침례교의 특성이 잊혀지거나 묻혀질 수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Baptist 성경”(침례표기 성경)을 읽으며 복음주의 교파들과 진리 안에 함께 있음과 동시에 우리가 침례교인임을 잊지 말고 고백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이유로 “Baptist 성경”(침례표기 성경) 사용은 “세례”를 “침례”로 ‘한 단어’를 바꾸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2018년에는 3300여 침례교회들에서 “Baptist 성경”(침례표기 성경)으로 믿음의 선배들이 고백하고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감격이 있기를 소망한다. <계속>


이요섭 목사 교회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