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판자교회의 변신 탄자니아판 연세대의 기공식이 있었던 6월 29일 오전은 아프리카선교회를 통해 새롭게 교회를 건축한 2곳의 입당예배가 열렸다. 입당예배를 드린 교회는 키동고교회와 킬로모교회였다. 버스에서 내린 단기선교 팀원들을 맞이한 교회 성도들은 스와힐리어로 된 찬양을 통해 새로운 성전을 지을 수 있게 도와준 한국교회에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 한국의 교회와 비교하면 굉장히 보잘 것 없는 건물이었다. 겉면은 페인트칠조차 되지 않아 앙상한 벽돌이 그대로 드러났고 창문도 없어 큰 구멍만 덩그러니 있는 그야말로 짓다 만 것 같은 교회 전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교회 바닥은 마감이 제대로 되지 않은 듯 시멘트 가루가 흩날렸다. 현지 선교사의 말에 따르면 이것조차도 탄자니아에서는 개교회가 감당하기 힘든 건축이라고 한다. 만약 현지 교회가 스스로 교회를 건축하려 한다면 어느 정도 지은 후 못 다 지은 부분을 위해 돈을 모으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기존에 건축했던 부분이 낙후돼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많이 드는 교회 건물을 한국교회가 세워 준 후 현지 교회 성도들이 나머지 부분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채우는 방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함께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아프리카에 출발하기 전날 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천국에 가서 함께 행복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 나의 가정은 구원을 받지 못했고 나는 혼자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 내가 이 가정 가운데 전도자로서 세워졌다는 것을 은연 중에 삶 속에서 잊은 채 살아왔다. 교회와 관련해서 엄마와의 트러블이 적어지게 되고 내 삶이 너무 편해지니 나도 모르게 가정의 구원에 대해 기도를 소홀하게 됐던 것 같다. 이런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논산한빛교회에서 합숙을 시작하게 됐다. 합숙을 시작하며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전도 대상자를 찾으라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쓰임을 받기 위해 아프리카 선교를 시작하는구나를 느꼈다. 나는 그렇게 영혼 구원과 전도 대상자에 대한 비전을 가진 채 이번 아프리카 선교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탄자니아에서의 처음 일정인 현지 목회자 세미나를 조이풀스쿨 스태프로 섬기며 무한한 감사를 느낀 것 같다. 10시간 이상을 버스를 타고 달려서 이 자리에 오신 분을 위해 내가 식사 준비를 해드릴 수 있고 찬양을 들려 드릴 수 있고 준비한
이번 단기선교를 가게 된 계기는 침례신학대학교 채플시간에 강신정 목사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실 때 아프리카 선교 인원을 모집한다는 말씀을 듣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가게 됐다. 처음에는 기대와 설렘이 넘쳐서 빨리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선교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기도하면서 걱정과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계속 걱정하는 나를 보며 교회의 많은 지체들은 잘 할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와 중보를 해줬고 이후 나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아프리카 땅에 복음을 잘 전하고 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거의 비행기와 이동시간만 하루정도를 걸쳐 탄자니아에 도착해고 조이풀학교에 도착했다. 이렇게 이쁜 학교도 있구나하며 곳곳에 붙어있던 예수님의 복음을 보면서 미소가 저절로 생겼다. 조이풀학교에서 1주일이라는 귀한 시간이 주어졌으니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내가 돼야겠다고 결심을 한 첫날 밤이었다. 단기선교팀은 입당예배를 갔다. 우리가 있던 학교에서 먼 거리에 많은 교회가 위치해 있었고 그곳에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주님의 자녀들을 보게 됐다. 한국인이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웃음과 선물과 사랑을 부어주는 탄자니아 사람들을 보면서 아낌없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바
탄자니아 목회자 세미나 때 목회자 세미나를 섬겨준 탄자니아 교회 청년들의 워십이 크게 기억에 남는다. 나는 평소애 얌전하고 조용한데, 예배 때는 특히 더 진지하고 조용한 편이다. 학교에서 자유주의, 은사주의, 그리고 신사도 등에 대해 배우다가 나도 모르게 보수적으로 예배 드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던 것 같다. 그래서 진지하고 근엄한 자세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게 탄자니아에서의 예배는 갇혀있던 새가 새장에서 나와 자유롭게 날개 짓을 하는 듯한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탄자니아 교회 청년들과 신나는 찬양에 맞춰 춤을 추면서 예배를 드리는데 너무 자유롭고 즐거웠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춤추고 뛰면서 예배하는데, 문득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 때문에 신난 우리를 하나님께서도 기쁘게 받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예배 문화와 춤이 생소하고 달라서 처음에는 머뭇머뭇했지만, 현지 청년들의 동작을 따라하며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하나님 한 분께 시선을 두고 예배하다 보니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내가 느낀 것을 100%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행복했고 너무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한국에 가서도
아프리카로 가기 전 목요일부터 논산한빛교회에서 합숙을 했다. 함께 모여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보여줄 워십과 부채춤, 그리고 무언극을 준비하며 선교를 준비하고 그 과정 가운데 공동체성을 기르는 훈련 또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일예배 후에 파송을 받고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가서 새벽 1시 비행기를 타고 19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아프리카에 도착했다. 1일 차 탄자니아에서는 선교사님 집으로 2시간 차를 타고 가서 탄자니아 현지식을 먹고 짐 정리를 한 이후 일정을 마무리했다. 2일 차 부터 목회자 세미나를 탄자니아 청년들과 함께 섬겼다. 탄자니아 청년들의 예배 하는 모습을 보며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부르는 내내 감탄만 했던 것 같다 춤도 노래도 연주도 너무 잘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찬양으로 즐거워하는 탄자니아 청년들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뜨거워졌다. 예배자의 모습과 태도를 다시금 배우게 된 시간이었다. 중간에 아프리카 땅을 위해 순교하신 선교사님들이 계셨던 곳을 갔다.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부르심을 향해 달려온 선교사님들에 희생과 사랑을 보면서 우리도 우리의 편안한 삶에 안주하지 말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 외로운 참새들이었다. 수천 킬로를 날아 지친 날개를 접고 하나 둘 씩 파나마시티로 날아들었다. 9유닛 중 8유닛, 자녀들까지 18명이 6년 만에 한 둥지에 모였다. 그렇다. 우리는 하늘을 나는 참새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해 땅끝을 향해 날아오른 선교사들이다. 내가 사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지리적으로 서울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지구둘레가 4만 킬로인데 서울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2만 ㎞이다. 아르헨티나 뿐만 아니라 중남미 나라들은 한국에 가장 먼 나라들이다. 30년 사역하는 동안 한국에서 한 번도 단기선교 팀이 온 적이 없다.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산장에 6마리의 독수리가 날아들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78대 총회장 김인환 목사 부부와 총회 임원 4분(이창순 해외선교부장, 장남홍 사회부장, 한덕진 평신도부장, 김진혁 공보부장)이 “선교! 영광의 관을 얻을 때까지”란 주제로 지난 6월 19~22일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해외선교회(FMB) 중남미지부 콘퍼런스에 함께 했다. 우리를 찾아 주신 것만으로도 감동인데 콘퍼런스를 위해 1500만 원의 후원금도 전달했다. 아침과 저녁 지친 우리들에게 말씀으로
목산문학회 회원 원제근 은퇴목사는 지난 6월 첫 시집 ‘내 마음의 번역’(밥티조)을 출간했다. 저자는 1950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모진 한국현대사를 거치면서 하나님이 주신 가정과 지나온 목회의 여정을 시(詩)로 녹여냈다. 2008년 계간 ‘해동문학(海東文學)’ 시(詩)로 등단해 상임이사를 역임했으며, 2015년 ‘박태현 전국 동요창작제’에서 “쌍둥이 독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2018~2019년 목산문학회 회장으로 섬겼고 2022년부터 일선목회에서 은퇴해 현재는 성경문화연구소장으로 성서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시집의 1부는 가족의 형성과 성장에 대한 시인의 자서전적 기록이며, 2부는 자녀와 손자를 키우면서 느끼는 시인의 애틋한 감정이 담겨있다. 3부는 시인의 일상 속에서 느끼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구입문의 : (010) 5204-0202 목산문학회 서기 조성배 목사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자기 부인(self-denial)을 강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자기를 부인하면서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기독교가 점점 더 성장하고 현대로 오면서 이런 경향은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유진 드류만은 기독교 전통의 핵심적인 개념인 자기 부인을 “마조히즘적 자기 부인”으로 보고 이런 기독교를 자기 혐오, 자기학대, 심지어 가정학대를 정당화할 여지를 남겼다고 비판합니다. 한편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기독교의 핵심가치는 유지하면서도 이것이 마치 자아실현에 도움을 준다는 새로운 변화도 있었습니다. 김규보는 “거짓 자기, 참 자기, 자기 부인: 대상관계 이론을 통한 기독교 자기부인 고찰”이라는 그의 논문에서, 기독교 영성의 자기 부인의 이상이 자기애로, 자기애가 자기 문화로, 자기 문화가 자기 극복으로, 마침내 자아실현으로 옮겨갔다고 비판했던 부룩스 홀리필드(E. Brooks Holifield)의 말을 인용합니다. 필자는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의 자기 부인이 결국 자아실현에 봉사하는 처지로 전락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교회가 더 이상 자기를 부인하는 삶의 가치를 강조하려 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미처 다 이해되기도 전에 세상은 너무 빨리 변화하고 있다. AI의 혁명, 첨단과학의 시대, 자동화 시대 등 이 시대를 칭하는 많은 용어는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때로는 혼란스럽게도 한다.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이제 기계가 사람을 통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대두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것은 편리함과 예측 불가능한 변화라는 양날의 칼을 마주하며 사는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오랜 시간 지속된 팬데믹은 사람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맞추며 소통하는 일상을 마비시켰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을 매우 고독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편리함이 주는 부작용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편리함의 중독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에 속절없이 밀려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 같다. 혼자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현실과 유사한 비현실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이제는 낯선 일이 아니다. 미래를 향한 꿈과 비전으로 가장 빛나야 하는 젊음이 기계의 통제와 가상 공간이라는 인위적 환경에서 시름시름 시들어 가고 있다. 어쩌면 일부 특정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가 모두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불안감과 외로
문제가 있다는 건 살아 있음이라 계획을 세우고 힘쓰고 애써도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치니 무너지고 목숨을 잃는 이도 있으니 재물도 생명도 내 것이 아니더라 풍파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창조주께 다 맡기고 따르며 삶이 내 것인 줄 착각하지 말아라 시인은 목산문학회 회원으로 시와 논설 등 다양한 글을 쓰며 기고하고 있으며 현재 새울산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조선행이 좌절됐던 토마스 선교사의 눈앞에 나타난 ‘제너럴셔먼호’는 기회였다. 제너럴셔먼호는 민간상선이었다. 19세기는 서구 열강에 의한 아시아의 개항 및 식민지화가 극에 달한 때였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는 민․관을 가리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아시아를 개방시켜 이권을 선점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아편전쟁 등의 사건으로 중국과 일본도 개항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민간상선인 제너럴셔먼호 역시 비슷한 이유로 조선을 개항의 대상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제너럴셔먼호의 미국인 선주, ‘프레스턴’은 조선을 미개국(未開國)으로 여기며, 조선 개항을 선점해 한몫 잡을 생각이었다. 그는 배에 보급품을 채우고, 선원을 모집하기 위해 중국에 기항했다. 그러나 기항의 주된 목적은 무엇보다 용선계약이었다. 용선계약은 선박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자(무역회사 등)가 선박회사로부터 선박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빌리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가리킨다. 선주 프레스턴은 영국 회사인 메도스 상사와 용선 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교역할 상품을 싣고, 그 다음으로 조선어 통역관이 필요했는데, 메도스 상사의 알선으로 인해 영국인 토마스 선교사가 추천을 받은 것이었다. 결국 토마스 선교사는 미국
요즘 교권 추락에 대한 뉴스가 급격히 늘고 있다. 6학년 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교사, 학부모의 갑질로 자살을 선택한 교사 등등 대체 학교가 어떻게 변했기에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지 두렵기만 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속에서 시작된 ‘불편함’을 고치기 위한 노력들이 되려 말도 안되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이에 따른 가해자들의 반응이다. 자신의 자녀가 일으킨 폭력사건에 “죄송하다”는 말이 아닌 교사의 잘못이라고 반박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자살을 선택한 교사와 관련해서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전달됐다. 한 교사가 목숨을 끊은 교사를 추모하는 카카오톡 프로필을 올리자 어떤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프로필을 내리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이다. 대체 우리나라가 어떻게 이런 사회로 변모했는지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야말로 공감이란 것이 사라진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공감의 부재는 한국교회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은퇴할 당시 자신을 철저히 잊어달라고 부탁했던 어떤 목회자가 최근 이중직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현실을 무시한 채 넉넉
장마로 인한 폭우로 한반도는 다시금 수해로 고통을 받았다. 중대본은 지난 7월 19일 이번 호우로 사망자 46명, 실종자 4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국적으로 누적 대피인원은 1만 1536가구 1만 7795명이다. 정부는 집중호우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충남 공주시, 논산시, 충북 청주시, 전북 익산시 등 13개 지자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 가운데 충청지역은 우리 교단의 중심지이기에 많은 이들이 걱정과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에도 교단 소속 교회들의 피해가 잇달았던 만큼 전국 침례교 공동체의 기도가 절실한 상황이다. 7월 26일 기준 총회에 폭우 피해를 알린 교회는 10여 곳이다. 지난 신문을 통해 피해 소식이 알려진 공주 옥성교회의 경우 담임인 임재경 목사가 높은 지역에 사는 성도의 집으로 피신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맞이했다. 옥성교회를 비롯한 피해 교회들이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의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뿐만 아니라 교단 소속 교회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힘들겠지만 해마다 이어지는 폭우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취약한 구조를 지닌 교회들에 대한 조사를
[주일예배] 하나님이 꿈꾸시는 교회 사도행전 12장 25절, 13장 1~3절 안희묵 대표목사
[주일설교] 야곱 마음에 살아있는 말씀 창세기 30장 25~43절 김중식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