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호세아 4:6을 중심을 우리의 현실을 살펴봤다. 이제 다음 세대 관련한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해보고자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려고 작정하신 것 같이 느낀다. 나나 우리 팀들의 그 모든 부족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 사역과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먼저 나의 주변에서 다음 세대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전반적인 부분을 나누고, 그 다음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기도하며 우리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에 함께 힘썼으면 한다. 나의 경우, 다음 세대 관련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인도하신 것은 군선교였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3군 전체를 열어가시는 것 같았다. 군선교 중 한 중요한 사역은 전국 ROTC 학군단에 간사들을 세워 후보생들을 섬기는 것이었다. 코로나 전 전국 113개 대학 모두에 간사들을 세워 섬겼다. 코로나로 인해 활동이 제한되어 잠깐 소강상태에 있다가 이제 다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지금은 80여개 대학에서 간사들이 후보생들을 섬기고 있고, 나머지 학교들에도 간사들을 충원하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해 주시고, 이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도 깊이 헤아리고 있는 한, 어떤 형편에 처해있든지 그 마음에 합당한 삶을 기꺼이 선택하며 살아가고자 수고하고 땀 흘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혹은 누가 어느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해도 하나님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면 여지없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때마다 일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이즈음에 또다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정직하게 물어보았을 때, 예수님 보다 앞선 그 무엇 때문이라면, 다시 말해서, 그 마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무엇 때문이라면, 결국 허물어지고 말, 또한 반드시 허물어야 할 바벨탑이라는 사실도 때마다 일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하여, 일평생 동안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따라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전인격으로 경험하며 누리게 하소서. 생명과 약속의 말씀을 따라, 더불어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믿음직한 하나님의 자녀로!
2. 찰스 파햄의 성령사역 이해 1) 찰스 파햄의 목회소명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작은 찰스 파햄(Charles F. Parham)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1873년 6월 4일 아이오와주의 무스카틴에서 출생해 어렸을 때부터 종교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그의 회심 전인 9세 때 이미 목회의 부름을 느꼈다. 그는 4년 후인 13세 때 회중교회(The Congregational Church)에서 구원을 받았고, 14세 때 감리교회에서 평신도 전도사가 됐다. 그는 16세 때 사우스웨스턴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여기서 그는 목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그는 목회에 대한 직업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교회에 대한 흥미마저도 잃어버리게 됐다. 이때 그는 진로를 바꾸어 목회보다 의학을 공부하려고 했으나 류머티즘 열병에 걸린 나머지 이를 계기로 자신이 목회에로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이런 질병에 걸린 것이라 믿고, 만일 하나님이 이를 치료해 주시면 목회를 하겠다고 헌신한 결과 치료를 받게 되어 다시 신학교에 입학해 졸업했다. 이후 그는 19세 때 캔사스주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목회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 직원들과의 빈번한 의견 불일치로 인하여 1894년에 감리교를
메타버스 예배를 시작한 것은 큰 시도였지만, 아쉬웠던 것은 설교와 찬양 등의 실제 예배실황을 유튜브로 방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3D 예배 가운데서 예배의 핵심인 설교와 찬양은 2D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안형제는 ‘메타버스 예배 안에서 설교를 시도해 보자’고 의기투합을 했다. 하지만 메타버스 예배를 운영하는 것과 메타버스 설교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 필요했다. 2주 후 주일예배에서 VR 설교를 하기로 하고 광고했다. ‘7월 25일에는 이병문 목사님이 메타버스 예배 안에 들어와서 직접 설교합니다.’ 그리고 준비를 착수했다. 우선은 설교자가 VR 기기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일주일 전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안형제의 집에 가서 그 도구를 착용하고 3D를 체험하기로 했다. 나는 눈에 쓰는 헤드셋과 손에 잡는 컨트롤러만 착용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보다 더 복잡했다. 헤드셋과 컨트롤러 외에 허리에 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를 차고, 센서가 달린 운동화를 착용해 이동을 감지했다. 내 움직임은 뒤에 세워진 스텐드에서 감지해서 자연스럽게 내 아바타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또 한 가지의 문제
내가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결정하자 주변의 많은 분들이 우려와 격려를 보내주셨다. 가장 많은 질문은 “지금도 교회를 개척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이 질문은 몇 가지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질문이다. 그 첫 번째는 젊은 나이가 아닌데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나이가 적지 않은데 그동안 잘 사역하던 교회를 사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막상 교회 개척을 시작해보니 주변에 나이 드신 분들이 개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목회자들이 개척을 꺼리지, 나이가 드신 목사님들은 오히려 더 담담하게 개척하는 경우가 많았다. 섬기던 교회에서 은퇴하신 후에 작은 교회라도 사역을 이어가겠다는 분들도 있고, 뒤늦게 신학을 한 후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 목사 안수를 받으신 분들 중에서도 많은 나이로 인해 기존의 교회로 들어가서 사역하기가 쉽지 않기에 교회를 개척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측면은 한국에 교회들이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데, 굳이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울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미 세워진 교회들을 건강하게 세워가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지 교회를 더 세우는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
그 옛날 거의 매일 10년을 산에 다니면서 기도했었다는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그 당시에 평신도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기도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때를 회상만 할 뿐 기도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 되어 있다. 심지어는 현재 새벽 예배조차도 안 드리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 생명은 꾸준히 계속 자라가야 하는데 어느 한 정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내리막길을 향해서 내려가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된다. 헌신과 봉사, 주를 향한 열정과 열심히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도 식어 버리고, 영적 사람이 육의 사람이 되어 세속적인 사람으로 전락하여 버린 사람들이 나의 주변에 너무 많은 것 같다, “신앙은 삶이다” “기도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하나님의 영역이다”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종”이라는 단어며,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구절은 데살로니가후서 5장 10절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찬송가 가사 중에서 제일 마음에 와닿는 가사는 540장 3절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어찌 아니 기쁠까 주의 얼굴을 항상 뵈오니 더욱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나눴다. 그럼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얼굴만을 구한다고 되느냐고 질문한다. 우리는 시편 63편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지난번에 다윗의 시편인 시편 27:4을 토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 전체적인 윤곽을 살펴봤다. 시편 63편은 다윗에 유대 광야에 있을 때, 즉 그가 압살롬에 쫓겨 광야로 도망하던 때에 지은 시이다. 다윗은 그 당시에 압살롬에게 쫓겨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많은 그의 가족들을 예루살렘에 남겨둔 채 사막으로 도망와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압살롬이 많은 군대를 이끌고 그에게 들이닥친다면 그는 살아날 길이 없는 상황이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그의 가족들에 대한 안위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압살롬은 대낮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많은 그의 후궁들을 성적으로 겁탈했다. 그 나라의 안정과 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만약 당신이 다윗이 처했던 상황에 처했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을 간절히 구했겠는가? 이런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와달라고 목이 터지라고 외친
물론 지금도 토레이의 번역된 저서들은 한국교회 내에서 중생과 성령침례 사이를 구분하는 개혁파 성령운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는 무디와 동역하면서, 그리고 무디신학교의 교장으로서 수많은 교계지도자들과 선교사들에게 명확한 체험으로써의 성령침례를 강조했다. 19세기 개혁파 성령운동의 여러 경향 중에서 그의 성령침례론의 핵심은 “봉사의 능력”이었다. 토레이는 성령으로 인해 거듭나는 일과 성령으로 침례 받는 일은 전혀 다르다고 봤다. 우리 마음속에 내재하시는 성령을 지니는 것과 성령께 완전히 붙들려 우리가 그분의 소유가 되는 것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듭남에 있어서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생명이 부여되어 구원받게 되는 것이지만, 성령침례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토레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위해 복음전도 등 어떤 봉사를 하고자 할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마련이라고 하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침례를 받으면 다 권능을 얻게 되는데, 그 권능은 곧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얻은 일을 감당하기 위한 권능이라고 했다. 토레이의 성령침례론은 기사와 이적 중심은 아니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고 난 후 20년 이상 우리나라 경제는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취업문제와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필자는 IMF가 오기 전에 예배당에 화재가 발생해 갑자기 건축을 하게 됐는데 교회가 부흥되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빚을 내서 건축을 하는 중에 IMF가 와서 6개월 만에 완공하고 입당하기로 했던 계획이 틀어져 4년이나 걸리면서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입당은 했지만 IMF로 실직을 한 사람, 폐업을 한 사람, 타지로 떠난 사람, 장기간의 건축으로 떠난 성도들도 있었고 IMF로 인한 경기침체와 함께 교회부흥도 침체되면서 건축 부채를 갚느라 힘겹게 목회를 했다. IMF사태 이후로는 교회를 개척해도 자립이 어려워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교회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경제활동을 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일을 하게 됐고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한 이야기가 대두됐다. 목회자는 강단에서 기도하다가 죽을 각오를 하면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보내 주신다면서 다른 일 하는 것을 소명의식이 결여된 목회자로 여기며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목회자들이 자주 보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조회수가 가장 많은 게시판 중의 하나는 청빙게시판이다. 우리 교단의 총회 홈페이지도 예외는 아니다. 목회자청빙 게시판의 평균 조회수가 가장 많은 편이다. 그만큼 어느 교회에서 사역할 것인가 하는 것은 목회자들의 큰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사역하는 교회를 떠나 다른 사역지를 찾는 이들도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교회들도 새로운 목회자를 구할 때 신문이나 SNS의 청빙공고를 통해서 목회자를 구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것이 됐다. 특히 요즘 시대는 청빙과정에서의 투명성과 공평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러한 과정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바라던 교회나 사역지에서 청빙공고가 나오면 요구되는 제출서류를 준비해 제출하게 되는데, 교회들은 엄청난 지원서류 더미에 시달리게 된다. 필자도 한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사임을 하고 떠나려고 할 때에 목회자 청빙공고를 냈었던 적이 있는데 무척이나 많은 지원서류를 받아봤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서류를 제출하신 분들 중에서는 전화까지 걸어 이러저러한 것을 문의하기도 하고, 자기를 선택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까지 있었다. 독일에서 사역할 때도 주변의 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