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그리스도인 모임에 갔더니 그 중 어떤 그리스도인이 차라리 불교방송을 듣는 게 어떠냐고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동의를 얻고자하는 기세를 펴고 있었다. 모두 교회신자들이었고 목사는 나 홀로였다.모두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 사람은 나를 향해 가부간에 나의 의견을 말해 보라는 듯 시선을 나에게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 그런 질문에 당황하기는커녕 오죽하면 오늘 날 교회신도들이 저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까 하면서 내심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나는 그런 질문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더니 그의 긴 설명이 뒤따랐다 : 몇 몇 기독교 방송을 청취하고 있는데 온통 마음이 가지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를 대게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왜 저 멀리 떨어진 지방의 담임목사가 굳이 온 한국이 다 듣도록 설교를 내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저 목사가 저렇게 설교하자니 교회 헌금을 얼마나 방송국에 쏟아 부었을까? 저 설교목사의 설교는 그럴사한대 실제로 그의 삶도 그럴까?어쩌면 전에는 아비목사가 설교하더니 이제는 자식목사가 대를 이어 설교할까.저 깡촌교회 목회자는 언제 저렇게 전파를 타는 설교를 할까?중들 설법이야 의당히 별것 아니라 치부하
“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2:11)예수님께서 우릴 위해 세상에 오신 구주 성탄절과 새해를 맞아 동역자들과 섬기는 교회에 풍성한 은총과 축복을 기원합니다. 우리가 동방 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여 동방으로부터 험난한 사막길을 지나 베들레헴까지 찾아가 아기 예수께 경배하지 못할지라도, 어린 아이가 자기의 점심을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드림으로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이 배부르게 먹고 남은 조각을 12광주리에 거둔 것처럼, 우리 침례교 성도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6:9)지방회비의 1/10을 절약하여 돕는 방법도 있겠다고 생각하여 의논해 보기도 했고, 최보기 증경회장의 좋은 제안에 본인도 동의한바 있거니와 믿음의 분량대로 동역자들이 사례비를 봉헌하는 것이나, 옛말에 십시일
(2008-2009)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전여회는 왕은신(Lucy Wagner) 선교사님을 한국에 초청했는데 왕 선교사님은 그 때 한국에서 오랫동안 함께 선교하셨던 베티 제인 헌트 선교사님과 함께 한국에 오셨다. 왕은신 선교사님은 1955년 미국 남 침례회 파송 선교사님으로 한국에 오셔서 2년간 언어를 배우신후 1957년부터 1993년 퇴임시 까지 36년간 전여회 선교사로 결혼도 안하시고 초기 전여회 성장과 발전을 위해 또한 한국인의 영혼 구령을 위해 헌신했다. 전여회는 2000년에 나은수 선교사님과 조혜도 전 총무님의 집필로 「부르심을 따라」란 왕은신 선교사님 전기를 한영판으로 출간했는데 이 책에 보면 왕 선교사님이 초창기 교회마다 여전도회를 조직하고 지도자들을 훈련하기 위해 초창기 전여회 임원들과 함께 시골구석까지 전국을 방문하며 얼마나 헌신적으로 사역하였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여회 역사 속에 왕 선교사님의 헌신은 계속해서 오래도록 후대에 까지 소개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책은 전여회 회원 뿐 아니라 미국 여선교 회원들에게도 많은 은혜와 도전을 주는 책이 됐다. 왕 선교사님 전기 서문 앞에 나오는 어느 시인의 글이다. 1960년 9
캘리포니아 크스트 힐 커뮤니티 교회 담임목사 데니 벨레시 목사는 2000년 11월 어느 주일 교인들에게 100불씩을 나눠주고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은데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1.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임을 명심할 것.2. 어디에 써도 좋지만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만 사용할 것.3. 앞으로 90일 후 전 교인 앞에서 보고할 것.이상한 프로그램에 처음에는 교인들이 망설였지만 4부 예배 후 1만 불의 돈은 다 나갔습니다. 교인들의 손에 들려진 이 100불은 이제까지 자신이 만져본 돈 가운데 가장 사용하기 곤란한 돈이었습니다. 90일이 지나고 미국의 유명한 TV NBC Date-line프로그램에서 전국에 방송됐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참여자들이 간증할 때 온 교회는 눈물의 바다를 이뤘고, 100불은 여러 곳에서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불치병 어린이 환자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시작한 한 성도는 창고에 하나 가득 아동도서를 모으게 됐고, - 어떤 이는 노숙자에게 담요를 사줬고,- 예수영화를 노숙자에게 상영하는 일에 사용해 10명의 친구들이 동참하면서 금액은 6,000불로 늘어났고,- 어떤 이는 아기를 유산하거나 어린 아기를
(2008)월간 성광 발행 50주년이 되는 2008년, 제 55차 연차총회및 여름수련회에는 하나님께 큰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몇가지 특별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먼저 월간 성광에 관한 스킷을 증경회장님들과 총무님이 준비하고 기념 케익을 커팅했다. 개회예배를 고미현 교수와 침례신학대학교 종교음악과 학생들로 구성된 더 웨이를 초청해 축하음악회로 준비했고 그동안 문서선교에 헌신해 주신 회원들과 교회들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실행이사회에서는 많은 행운 물품을 준비하고 순금으로 된 행운의 열쇄도 준비하여 행운권 추첨시간도 가졌다. 월간 성광 50주년 기념 역사 화보집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는 총회 시에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줄 예정이었으나 발간이 조금 지연되어 추후에 각 가정으로 발송됐다.50년간 발간된 월간 성광은 1957년 말 아버나티 선교사(미국 남 침례회) 부인이 부인 전도회(현 전여회)에 2만환을 주면서 부인 전도회 월간지를 만들어 보라고 하여 시작됐다. 처음에는 24쪽에서 30쪽 부피의 잡지 150부가 발간되어 각 교회로 무상 배포됐다. 그 후 교단 분열로 여성들의 활동이 잠시 중단됐다가 1959년 10월에 다시 재조직되어 기관 명칭을 “부인전도회”에서 “여
아프가니스탄 무장 단체 텔레반에 5년간 포로로 붙잡혔던 보 버그달 미군 병장은 한때 용감한 미국의 영웅으로 떠받침 받다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엉뚱했었다고 한다. 그는 탈영병이라고 했다. 그가 스스로 탈레반 진영을 찾아갔다는 것이 현지인의 증언으로 밝혀졌다.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몰락한 가짜 영웅을 위해 불행하게도 수색에 나갔다가 전사한 병사들이 생겼다. 그런대도 나라는 그를 어떻게 대해 주었던가? 오바마는 그를 텔레반 지도자 5명과 맞바꾸는 교환조건으로 고국으로 돌아오게 했었다.고향인 아이다호주(州) 해일리 주민들은 버그달 환영 행사를 취소했다. 버그달을 찾는 수색 작전에 나섰다가 사망한 병사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죽음이 정말 가치가 있었느냐”며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버그달 수색 당시 숨진 다린 앤드루스 소위의 아버지 로버트 앤드루스는 “아들은 정말 찾을 필요도 없었던 녀석 때문에 불필요하게 죽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앤드루스 소위와 함께 사망한 매슈 마르티넥 일병의 가족은 “왜 버그달을 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는지 꼭 알아야겠다”며 “그를 찾는 데 목숨을 걸었던 많은 병사가 있는 만큼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버그달 수색 작전 중 사망
모든 생명체에게 생존을 위해서는 고통이 자연스레 따른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생물세계에 시련의 고통은 필연적이다. 목걸이의 십자가가 되기까지는 깨어지고 제련소의 불길 속에 녹아 공인의 손에서 다듬어져야 한다. 광물질인 다이아몬드가 되기까지 그 면을 깎아 색깔을 반짝이게 만들어져야 검은 벨벳위에 그 아름다움의 자태와 광채를 발한다.조개는 값비싸고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모래알을 품어 쓰라린 그 아픔을 참아야 하는가? 준마가 되기 위해서나 맹견이 되기까지와 훌륭한 물개쇼를 보이기까지 그 얼마나 고난도의 훈련과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독수리가 공중의 제왕이 되기 위해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것 같이”(신32:11) 얼마나 피눈물 나는 훈련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훈련과 시련에 고통과 고난은 필연적이다. 사람도 적응하고 더 잘 살기 위해 고통을 감수한다. 옛말에 무남독여 외딸 아기 시집가면 벙어리로 3년에 귀머리거리와 소경으로 석 삼년을 살아야한다고 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잘 키우기 위해 이런 저런 고통을
한국 속담에 “개 팔자”란 말이 있다. 개는 자유롭게 뛰놀며 돌아다니며 산과 들도 놀이터로 알고 즐기며 사는 동물이라서 아주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데서 개 팔자란 말이 나왔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그냥 논다. 옛날 동네 개들의 목에는 목줄이 없었다. 집집마다 개들이 있었고 그 개들은 집단적으로 무리를 이루어 동네를 배회했다. 어쩌다 낯선 객이 동네에 들어오면 짓는다. “여기 낯선 사람이 왔습니다. 동네 어른신네들” 밤에 도적 지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개는 똥을 좋아한다. 아기의 똥을 아기엄마가 “워리 워리”라고 외치면 동네 큰개들이 몇 마리씩 달여 왔다가 그 중에 제일착으로 도착한 놈이 어린 아기의 똥을 받아먹고 혓바닥으로 아예 똥구멍까지 핥아서 깨끗이 청소해 주기도 했다. 먹는데에 눈치 볼 것이란 전무했다. 귀저기가 없는 50년대에 개들은 그냥 고마웠다. 해가 지고 어둠이 오면 놀던 개들은 제각기 자기 주인집으로 찾아간다. 엉뚱하게 다른 주인집으로 가는 실수는 결코 없었다. 암놈이 낳은 강아지 새끼들을 이집 저집으로 입양해줘도 어미 암캐는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가봤자 이웃집으로 가는 것이니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80여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대소간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었지만 첫째는 평생 경찰서에도 들어가 본 일이 없었는데 74년 긴급조치하에 두 번이나 중정을 거쳐 검사 앞에 섰다가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어 두 번 판사 앞에 재판 후 8개월 만에 풀려날 때까지 “왜 내게 이런 고통을?” 다음은 서울침례교회 부임후 3년간 교회가 부흥일로에서 유치원 화재사건으로 장년 교인 수는 600명까지 반타작을 내고 3년이 넘게 화재수습을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치욕과 환란을 견딜 때 “왜 하필 나에게?!란 질문을 스스로 수없이 되새겼다. “고통 없이 수익은 없다”(No Pain, no gain)는 속담을 50년 전 영문학교수에게 의미 있게 듣고 마음에 간직했는데 막상 지난 침례신문 3주간에 걸쳐 기고한 두 사건을 당했을 때엔 수 없는 “왜?”란 질문을 던지고 성경과 인류역사와 위인들의 삶에서 비쳐보고 그 해답을 궁구해 보았다. 감옥에서 신구약 37독에 신앙서적 50여권을 읽었고 화재수습 3년간 고통에 대한 10여권의 책을 찾아 읽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생각나는 바를 두서없이 요약해 본다. 고통과 환란에 가혹한 시련은 육가원칙 중 누구로부터 내게 어디서 왜 오는가? 하나님,
(2008)1월 24일부터 31일까지 정성애 해외선교진흥부장과 함께 네팔에서 개최된 서남아시아 선교대회에 참석시 전훈재 선교사님의 안내로 전여회와 수원중앙교회가 협력해 대지구입을 지원한 석띠쌀리 교회를 방문하고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교회는 5월 21일에 평택 에덴교회의 협력으로 건축이 완공되어 교단 100주년 기념교회로 봉헌됐다. 교회와 기관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선교후원의 열매였다. 한 교회나 한 기관의 힘으로는 어려워도 힘을 합치면 하나님의 사역은 더 많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전훈재 선교사님은 고아원 사역, 교회 개척사역, 네팔총회와 함께 신학교를 운영하며 열정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다. 전여회는 이 방문을 계기로 여성신학생 2명에게 졸업시 까지 장학금을 후원하고 네팔 침례교 여성연합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현재까지 7년 가까이 여성 사역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교단 총회는 해마다 교단 발전협의회를 개최했는데 이 해 2월 28일에 대전대흥교회에서 개최됐던 교단발전협의회가 기억에 남는다. 이 모임에서 여성목사 연구위원회와 직제 연구 위원회 보고, 교회 분쟁에 대한 해결 방안, 교단의 단기, 중기, 장기 계
2007년 봄 새벽 3시,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 공동체교회 담임목사 사택에 전화벨이 울렸다. 조심스럽게 교회 밖을 살펴보니 생선박스 안에 있는 아기를 발견했다 아직은 싸늘한 봄날, 이 새벽에 아기가 혹시 죽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상자를 펼쳐보았으나 살아있었다.그 후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2009년 12월 교회 앞에 베이비 박스(Baby Box)를 설치했다. 지금까지 무려 561명의 아이가 베이비 박스를 통해 살아났다. 지난 주간에 유명한 필립 얀시 부부가 이곳을 방문했다. 캐나다에서 신문을 통해 이 베이비 박스 소식을 듣고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다며 한국을 방문한 하이라이트라고 했다. 그는 “아기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어서 누군가 그들을 대변해야 한다. 영어에 ‘애드버킷(advocate)’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준다는 의미다. 구약에서도 의인은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대변했고 예수님은 우리의 에드버킷”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외국인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주 노동자 160만명 시대에 일자리를 찾아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낳은 아기를 이곳에 버리고 가는 것이다. 현재 신고 되지 않은 불법 체류자의 외국인 부모에게 태어
(2007-2008)전여회는 해마다 8월 연차 총회에서 선출된 실행이사들과 장학이사, 회관관리 운영이사, 사랑의 집 관리 이사들을 위해 9월에 훈련 연수회를 1박 2일로 개최하는데 이 해에는 용인 에버랜드 홈브리지 힐사이드 호스텔에서 개최했다. 연수회에서는 먼저 전여회의 사역과 실행이사들과 이사들의 사명과 역할이 무엇인지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실행이사회를 개최하여 각 분과위원회 위원들을 선출한다. 또한 한 해 동안 받은 사명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나님께 약속드리며 총회 평신도 부장님을 초청하여 헌신예배를 드린다. 특별히 이 해에는 땅밟기 기도에 대한 훈련도 받았는데 에버랜드에 가서 삼성을 위해 기도하며 직접 땅밟기 기도 실습을 하기도 했다. 길고 힘들었던 무더위도 지나가고 아침, 저녁 소슬 바람이 가을의 문턱에 왔음을 실감나게 할 때 무더위만큼이나 온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며 땀 흘리게 했던 아프간 인질 형제, 자매들이 풀려나 추석 명절을 마음 편히 보낸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순교한 배 목사님에 대해서는 모두가 마음 아파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생명을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은 아주 영
자기의 불행과 실패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을 매우 교양 있는 인격자로 모두 치부한다. 반면에 자기의 불행이나 실패가 남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면 못난이의 변명이라고 수근 거린다.자기의 불행이나 실패의 원인을 전적으로 100%로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이 과연 정확히 옳은 판단인가? 나의 이런 불행상태가 조금은 남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일까. 물론 자기의 불행이나 실패의 원인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 탓임에는 부정할 수 없으나 약간은 남 탓도 아닐까?가령 나라경제가 어려워져서 내가 실직했다고 할 때 그 원인이 실직자 나에게 100% 있단 말인가? 물론 여러 직장인 중에 자기만이 퇴출당했을 땐 자기 탓이 있겠지만 나라경제가 잘 돌아갔더라면 약간의 결점 때문에 자기가 퇴출되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강원도 제자가 해주는 옻닭을 나는 극구 아내에게도 먹으라고 강권하다싶이 했다. 위장병에 특별히 좋다하기에 위장이 약한 아내를 위해 뒷생각은 못하고 우선 앞생각만 해서 먹으라고 강권했다. 아내는 혹시라도 옻독이 오르면 어쩌나 하면서도 일단 옻고기를 만지기 시작 했는데 손에 아무런 징조가 없었더라는 것. 그래서 나의 강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1974년 1월 9일 긴급조치 발동 후 2월 21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기도하고 나오는 나에게 검은 복장의 젊은이가 인사를 하고 이름을 물어서 대답하자 잠간 얘기할 것이 있다고 해서 루삥집이지만 들어오시라고 했더니 밖에 잠깐 나가자고 해서 길가로 따라 갔더니 검정색 새단 차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이 나오더니 뒤쪽 좌석 문을 열고 밀어 넣어 들어갔다. 놀란 나는 말을 잠깐 하자더니 왜 차에 태우느냐고 했더니 우리는 중정 기관에서 나왔는데 가보면 안다고 하며 나를 태우고 부산 수영에 있는 군용공항으로 데려가 비행기에 태우고 한 시간 후에 서울 김포공항에 내렸다. 큼직한 핸드폰으로 본부에 연락하기를 잘 압송했다고 하자 지시대로 남산 중앙정보부로 이송해갔고 높은 사람 앞에 세우고 소개한 다음 그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데로 오른쪽으로 따라 내려가 지하 작은 방에 들어가 수사관과 고된 이틀을 지났다. 22일 조서를 쓰고 저녁 11시경에 풀려나 세종호텔 앞에서 버스로 서울역에 와서 밤기차로 귀가했다.3월 10일 아침에 갑자기 검정색 옷차림의 압송으로 세단차를 타고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남산 중정으로 가서 지하에 내려가 아무런 수사 없이 열손가락
(2007)미국 남침례교 국제선교회는 미국에 있는 한인 침례교회들과 한국의 침례교회들과 함께 세계선교 전략을 위한 모임을 시작했다. 미국 한인 침례교회, 한국 침례교회, 미국 남침례교 국제 선교회가 돌아가며 모임을 주관했는데 5월 21일부터 24일까지 미국 남침례교 국제선교회 초청으로 교단 총무님, 기관장님들, 침미준 목사님들과 함께 전여회에서는 이정자 회장과 내가 참석했다. 국제선교회 선교사 훈련원에 방을 배정 받아 여장을 풀고 다음날 선교사 훈련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 또한 국제 선교회 본부를 방문해 국제 선교회의 사역에 대해 배우는 기회도 됐다. 미국 남침례교단의 협동 프로그램의 협동 기금의 50%와 해마다 성탄절에 드리는 라티문 성탄 헌금으로 선교훈련과 선교사들의 모든 것이 지원 되는 것을 보며 아직도 선교사 자신들이 모금해야 하는 한국 침례교 선교사들의 어려움을 되돌아봤다. 우리교단도 속히 선교사들이 모금에 대한 부담 없이 사역에 전력할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교회들이, 목회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우리 교단은 하나님 은혜로 20년 전에 미국 남침례교 국제 선교회의 도움으로 침례신학 대학교 내에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