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3월 30일 밤 비행기로 처음 베트남에 왔습니다. 무지 더운 작은 방 하나에 아빠랑, 엄마랑, 저랑 천장 선풍기 하나로 3월의 베트남을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못 써본 에어컨이 한이 됐는지 이제는 에어컨 없이 1분도 못 버티는 몸이 됐습니다. 52 Giai phong. 베트남 첫 집 주소. 말 한마디 못 하던 시절 누가 뭘 물어봐도 제 대답은 항상 “남므이 하이 야이 펑”이었습니다. 아빠가 학교까지 빼 먹으며 날 데리고 선교지를 다니셨습니다. 이유는 통역 때문이었습니다. 성도는 몇 명인지, 교회는 얼마나 됐는지, 그것도 모자라 신학교 수업 통역까지…. 피아노도 못 치는데 반주도 맡기셨습니다. 어려운 단조 곡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주일마다 반주도 아빠 박자도, 매주 엉망이었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예배를 드렸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습니다.랭귀지 학비가 없어서 중국산 오토바이를 한 대 구입해서 한인회 광고비 받으러 다니며 한 달에 100불을 벌어 등록금을 마련했습니다. 툭하면 고장나는 중국산 오토바이로 꽁화 초입부터 황화탐까지 걸어서 끌고 다니기도 하고, 씨클로랑 부딪혀 무릎이 다 까지고 비오는 날에는 속옷까지 흠뻑 젖어서 감기
형제들의 종이 되지 못했던 나는 주님께 굴복한 주님의 종이 아니었습니다.지난 10월 29일 목요일 춘천한마음교회(김성로 목사) 새벽 예배를 인도한 최경훈 형제의 간증에 “공동체에 판단 정죄와 굴복의 말씀이 선포되면서, 하나님 앞에서 난 고개를 들 수 없었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김성로 목사님이 한마음 공동체에 선포하신 말씀들 중에 자주 ‘판단 정죄하는 영’에 대하여 경고하신 것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것이 작은 교회의 인도자들 중에 교만의 영이 들어간 이들이 있어서 그들이 다른 작은 교회들이나 그들의 인도자들에 대해 판단 정죄하는 것에 대한 경고인 것으로 이해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경훈 형제의 간증을 통해 그것이 인도자들이 자기들의 작은 교회들 내의 멤버들에 대해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에 관한 경고였음을 알게 됨과 동시에 곧바로 그것이 나 자신의 목회와 연결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바로 내 양무리에 대하여 그러한 판단과 정죄의 영으로 행한 것이 그대로 내 심령에 폭로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뽕짝 찬양 사역을 하시는 구자억 목사님이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지방회의 어떤 목사님이 구자억 목사님의 찬양 동영상을 내게 보내 주셨습니다. 전에 한 번 본
남의 설교가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설교도 가끔 추락하려고 하는 위기를 맞는다. 목회 현역에서 떠나온 나는 프리랜서 설교자로서 은퇴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나는 설교가 모처모일 모장소에서 추락하려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내가 긴장했고 재빨리 추락직전고도를 높여 비행하는 것을 체험했다.그 사례를 말하면 이렇다. 나는 매주 월요일 모회사 30분 아침 경건 예배를 수년간 인도하고 있다. 내가 그 회사 아침경건예배를 인도할 때 선언하는 설교는 처음부터 복음주의적 십자가 설교를 하기로 작정했었다. 30여명의 사원 중 몇 사람만 교인이 되고 그 외 모두는 아직 불신자인 회사원 앞이지만 조금도 나의 설교의 색깔이나 질을 낮추지 않고 기성교회 성도를 앞에서 하는 그것처럼 했었다. 때로는 나도 놀랐던 사실이었다. 그것은 예수의 예자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도 성경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전했다는 것이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일단 잘 순응하고 경청하며 이해해 주더라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이 회사원 앞에서 초두 설교한 것을 그대로 기신자들의 교회나 신학생 그리고 교역자들의 모임에서 행해도 통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내가 지금 추락하는 설교를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냄새나는 송장을 앞에 두고 드린 감사의 기도는 기적을 일으켰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1:41~42)욥은 가산도, 종들도, 자녀들도 모두 하루아침에 잃었을 때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1:21)하고, 전신이 악창으로 고생할 때 아내의 저주에 대답하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욥2:10)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시험하신 후에 “갑절의 축복”(욥42:10)을 더하셨다.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다. ‘감옥문’을 열기 위해서 그들은 무엇을 했던가? 지진으로 ‘기적문’이 열리기 전에 찬미의 제사가 있었고 ‘
교회 성도 내외분의 차를 타고 결혼식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자매가 뒷좌석에 앉은 나와 아내를 되돌아보면서 하는 말이 이 에세이의 제목 그것이었다. 아마 이 자매는 목회 끝 판에 돈 때문에 얽히고설킨 목사의 결말을 가슴 아프게 보았던 것 같다.이 자매는 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는 권목사님은 참 목사 신줄 압니다. 그 연세에 지금 돈이 없지 않습니까?”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일체의 빚이 없고 추위와 더위를 막아 줄 내 아파트가 있고 쌀독에 쌀이 있고 김치 냉장고에 김치가 있고 은행에 커피 값 정도의 충분한 돈도 있으니까. 이 정도에 이르지 못한 은퇴 동역자도 꽤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나다. 그래서나는그자매에게재빨리응수했다“. 나는돈이 있는데요.”라고. 이 말을 듣던 그 자매는 웃으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소.“ 목사님, 그건 돈이 아니고 생계비입니다.”그래서 나는 돈과 생계비는 다른 것인가라고 잠시 경제학적 개념에 혼란을 겪었다.나도 원칙적으로 은퇴 목사님들이 쪽박을 들고 동냥하는 생활을 해야만 성공한 목회자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돈 없는 가난한 목
민봉수(O. K. Bozeman) 선교사는 한 때는 가구 점원이었고 건축사로 한국에 왔을 때는 1959년이었고 6.25전란 후에 고통당하는 한국 백성들의 소식에 평신도 선교사로 자원해 오셨다. 그의 아내 바바라(Barbara)선교사는 음악을 잘했고 부부애는 특별했다고 이번에 나온 둘째딸 로라 매이(Raura May) 자매가 간증했다.한국 선교 33년 후 65세로 은퇴하신 민봉수 선교사는 매일 아침 운동하며 건강하던 부친은 어느 날 몸이 좀 이상하다고 방에 들어가 침상에서 조용히 1991년 소천하셨고 사모님은 오랫동안 치매질병을 이기며 2010년 88세에 소천하셨다고 했다.금번 일행과 총회에 들렀을 때 딸 로라는 울먹이며 어머니의 사랑을 간증했다. 자매복지원을 운영해온 방호선 원장과 얘기를 나누던 중 이혼모나 미혼모를 받아 돌보시던 방원장이 딸려온 네 살짜리 남자 고아를 소개하며 입양을 권하자 둘째 딸인 바바라의 승인없이 받았고 나중에 양자로 추천했는데 바바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사랑에 이끌려 양자로 삼았다.그후 인도네시아에 근무하던 바바라의 남편이 한국에 와 집안에 있는 한국인 아이를 보고 놀라 물었을 때 어머니가 양자로 받으라고 해서 받게 된 경위를 설명하여
춘천역 앞 미군 부대가 철수한 넓은 공터에 강원도 축산물경진대회가 열리던 날 나는 우연히 그곳에 들리게 된 데에는 강의 차 춘천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강의를 마치고 조교목사와 함께 그 현장을 찾았다. 횡성한우를 위시해서 강원도의 대표적 牛公들이 모두 다 모였다. 아무래도 그 우공들은 우축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느라고 일종의 수감생활을 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번 경진대회에 선발되어온 우공들은 그 중에서 특출한 부류에 속하는 우공들이었다.넓은 빈터에 임시 축사를 짓고 한 마리씩 들어갈 수 있는 각방을 만들고 그 밑에는 쇠똥은 없이 깨끗한 짚으로 잠자리하고 먹이는 강원도 산촌의 깨끗한 건초이며 물통의 물은 사람이 마셔도 될 정도의 정수였다. 그리고 우공들을 쭉 살펴보니 경진대회에 출연한다고 한결같이 털갈이를 잘한 것들이었다. 몸의 털이 깨끗하고 두발도 정돈되어 있고 곤드레도 매끈한 나무뿌리로 해서 코를 꿰메고 있었다.여기 선발되어온 우공들을 대강 세어보아도 백두는 넘는 것 같았다. 자공(雌公-암소)이 절대로 많고 그 다음엔 웅공(雄公-숫소) 들이고 끝으로 송아지 떼들이 자공엄마소 곁에 붙어있었다.이 우공들은 흥분하는 것 같았다. 수감생활 같은 좁은 축사에 갇혀
이젠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잊을 때가 벌써 지났다. 율법과 맞붙어 사랑해 보려했지만 율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 문제란 무엇인가? 인간이 율법을 실천하기에는 역부족이요 무능한 존재자란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에 율법과 시원섭섭한 이별을 고해야만 했다. “잊으리” 율법을 말이다.나는 남국인 작곡 이승연 노래로 유행했던 유행가 “잊으리”에 그 “님”을 율법으로 대치시켜 율법과의 이별을 가끔 노래 부른다. 겉은 유행가이고 속은 복음성가이라니까. 「그토록 사랑한 그님(율법)을 보내고, 어이해 나 홀로 외로워 하는가 생각하면 무얼해 만날 수 없는 님(율법). 차라리 손 모아 행복을 빌리라. 이제는 모두 잊으리 그대(율법)와 나의 순간들. 이제는 모두 잊으리 그날의 행복 꿈이라고. 생각하면 무얼해 만날 수 없는 님(율법) 차라리 손 모아 행복을 빌리라.」과거에 우리는 율법을 그토록 사랑했다. 왜냐하면 일단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요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신 율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율법에는 하자가 없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얼마나 훌륭한 하
물은 생명수이다. 물은 몸의 체액과 혈액 그리고 위와 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다시 말해서 물은 생존과 건강에 꼭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물만 마셔도 건강해지고 많은 질병이 낫는다. 어떤 물을 마셔야 하는가? 일단 그 물은 순수물(pure water)이라야 한다는 것만 알아두자. 오늘은 물이 인체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고 한다. 물은 음식물만큼 중요하다인체의 반 이상은 수분이며 뼈의 상당부분도 또한 수분이다. 체내의 수분이 1/10만 부족해져도 인간은 위험해지며 1/5을 잃는다면 치명적이 된다. 생명에 필요한 모든 중요한 액체는 물에 의존한다. 물이 없이는 원형질이 존재할 수가 없다. 동식물과 곤충은 물론 새나 물고기도 물이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세포도 수분이 부족하게 되면 활동이 중지된다. 음식은 물이 없이는 소화가 되지 않는다. 인체의 작용 중 가수 분해라고 알려진 화학반응이 있다. 단백질, 녹말, 지방질 등을 변화시켜 세포의 활동에 필요한 영양을 만드는 데에도 물이 필요하다. 입안에서는 대부분이 수분인 타액이 나와 섭취된 음식물을 소화시키기 시작한다. 다음에는 수분 량이 90%인 위액이 위속에서 음식을 소화시킨다. 완전히
청중들은 약간 술렁거렸다“. 저의 나이는 얼마로 보입니까?” 나는 다시“나의 나이는 6X9는 54입니다”했다. 좀 더 술렁거렸다. “아마도 저의 나이가 54세 더 넘게 보이면 알아 맞춰보세요?”뒤쪽의 젊은이가 일어서서 60세로 보입니다라고 하자 앞쪽에 앉은 할머니가 자세히 저를 쳐다보더니 65세로 말했다. 틀렸다고 말했더니 조용해서 이제 설교를 막 시작하려는데 한 사람이 손을 들어 대답하겠다고 해서 나는 퀴즈 시간이 지났으니 “알았으면 모르는 사람에게 말해 주라”고 했다. 하노이에서 인민위원장(국무총리)을 우리들 16명의 BWA임원들이 만나서 월남의 기독교 자유를 얻어내고 하롱베이 관광을 한 후 비행기로 사이공에 내려와 마제스틱 호텔에서 500여명 기독교 성도들과 함께 월남의 공산화 후 31년만에 처음으로 모였다.세계총재 데이빗 코피(David Coffey) 박사의 모친상 소식에 갑자기 영국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저가 대신해“칼을 갖고 월남에 왔다”는 제목으로 인사를 하여 주목을 끈 일이 있었다. 주일에 4개의 월남침례교단중 히엔(Hien) 총회장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하면서 돈 10불을 보이면서 청중들의 반응과 시선을 끌기 위해 던진 첫 마디가“6X9는 54”
“놈”자는 예쁘게도 쓰이고 밉게도 쓰이는 묘한 말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반대파들이 헌법을 들추며 공격하자 “그 놈의 헌법….”이라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있었다. 이 때의 “놈”은 좀 귀찮고 까다로운 존재의 의미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깡그리 몹쓸 헌법이란 뜻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손자보고“이 놈 이리 오너라.”할 때의 이 놈은 아주 예쁘다는 뜻이다.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가 금년으로 105차를 맞이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총회에 참석해 보면 자구 목사님들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소리로 “그 놈의 총회, 이래서 되겠느냐. 이놈의 총회 다시는 참여 안할거야.”한다. 그런 말하는 목사일수로 거의 매회 빠지지 않고 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매양 고맙기도 하다.사실 교리적으로 따지고 보면 성경에는 총회란 기구는 없다. 성경에도 없는 기구를 사람들이 만들어 하자니 분쟁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교회 위에 상회(上會)가 없다. 어떤 교단에서는 사실상 교회 위에 상회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상회 노릇을 하고 있는 데 참으로 비성경적인 인간들의 작동(作動)이다.왜 교회 위에 상회가 없는가? 교회는 하나님이 창세전에 계획해서 세우시고 예수님을 그 교
“학생 과장님, 졸업시험이라 너무 긴장한 나머지 컨닝을 한 것 같으니 한번 실수는 병가상사(兵家常事)라고도 했으니 저들의 장래를 고려하셔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그런데 정 교수는 정색을 하면서 “한 전도사님, 학생회장이 되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시요! 졸업하면 목사가 될 사람들인데 어떻게 커닝으로 졸업시킨다면 목회현장에서 어떤 일이생길지 한 선생이 책임질 수 있어요. 그만 나가시요!”쫓겨나오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하필 엄격하신 학생과장 정진황 교수 시간에 5명이 부정시험에 걸렸단 말인가! 하루 동안 곰곰이 생각하다가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갈 때 흑판에 쓰인 5인 학생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이튿날 흑판에는 이름을 지워버린 학생은 자진하여 학생과장실로 오라고 했다.“학생과장님, 어제 제가 이름을 지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요!”겸손히 머리 숙여 사과의 인사를 했다. 돌이켜 보면 1954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대구에 처음 개척한 하나뿐인 덕산동 반월당 침례교회 집사들이 진황이와 윤백이가 대전 신학교 예과에 처음 입학했다고 자랑스러워했는데 과연 여름방학에 내려와서 우리 고등학생들을 모아놓고 RA와 GA에 대해 특강을 해준 일이 있었다. 또 한남대학 4학년때는 정교
요즘 적지 않은 가정들의 고민 목록에“가족의 치매”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치매는 부모님 세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치매(dementia)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정신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선천적인 뇌기능 손상에 의한 정신지체와는 달리, 치매는 정상적으로 생활해오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이전에 비해 인지 기능이 지속적이고 전반적으로 저하되고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나타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많은 분들이 아는 바와 같이 과거에는 치매를 망령, 노망이라고 부르면서 노인이면 당연히 겪게 되는 노화현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많은 연구를 통해 분명한 뇌질환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사회복지 용어사전 부분인용). 그런데 이런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접근과 해석 말고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치매의 양상은 그냥 남의 일처럼 보고 생각할 수준은 아닙니다.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다가 간병하던 배우자가 자녀들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동반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치매노인을 전혀 낯선 곳에 버리고 가는 실태도 매스컴을 통해 여러 번 조명되기도 했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이라면 이 문제
솔직히 미안한 말이지만 은혜 받고자 하는 태도보다는 교단의 원로이자 학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연구적 심정으로 도대체 지금 부흥강사님들은 무엇을 외치고 있나 싶어서 자주 부흥회장에 참예하곤 한다.세 부흥강사님들이 똑같은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은 아니로되 본문자체를 나 나름대로 가상해서 택해 놓고 이들의 구호를 적용하기로 했다.“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4:28-29)위의 본문은 율법과 복음을 갈라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율법의 자녀와 복음의 자녀를 명확히 구별해 주고 있다. 본문은 계집종의 자녀와 자유 하는 여자의 자녀를 밝혀 주고 있다. 5장1절에는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명에를 메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자, 이런 본문을 놓고 세 부흥강사님들의 전매특허적인 구호를 보자. 내가 전매특허적 구호라 이름 한 것은 유독 그 강사님의 특유한 구호로서 부흥설교 기간 내에 아마 수 십 번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A 부흥사 曰. “이 말씀이 맞습니까?”B 부흥사 曰. "이 말씀을 믿습니까?“C 부흥사 曰. “이 말씀을
우리가 잘 아는 소련의 크리스천 대 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을 보기 원하는 성도가 있었다. 한 번은 꿈을 꾸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내일 내가 그대의 집을 방문할 것이다”는 말씀을 듣고 깨어나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아침 일찍부터 집 청소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예복을 갖춰놓고 예수님 영접할 준비를 마치고 종일 기다렸습니다. 해가 서산에 지는 황혼까지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짜증스런 마음과 실망으로 앉아있는데 사립문을 열고 웬 거지 하나가 나타났다. 구걸하면서 무엇이든 먹을 것이 있으면 달라는 것이다. 기다리는 예수님은 안오시고 왠 거지만 들어오는가 하고 화가 났다. 화난 김에 아무것도 안주고 호되게 쫓아 버렸다. 그날 밤 꿈에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다. “주님, 하루 종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아십니까?”하고 그 성도는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은 “내가 네 집에 갔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언제 오셨습니까?” “해질녁에 내가 네 집을 찾아 갔었느니라” 이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생각과 변화를 주었다. 꿈속의 예수를 실상으로 보고 현실의 거지를 허상으로 보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스도인은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