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어떤 사물에 대한 자기의 이해를 표현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비록 눈이 먼 시각장애인이라도 코끼리를 접한뒤, 기둥 같다느니, 벽 같다느니라고 느낌을 말할 수 있다. 그들이 코끼리를 만진 경험이 일치점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코끼리임에는 틀림없다. 모 든 공식에서분모(分母)는 동일하고 단지 분자(分子)가 틀린다고 해도 분모에 변화가 없다. 1/5이나 3/5에 있어서 분모 5가 같으면 분자인 1과 3은 5의 자녀요 형제다. 그런즉 1과 3은 싸울 일이 없다. 성경에 관한 학자들의 설명을 읽어보면 시각장애인 촉상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학자는 구원의 교리를 강조하고 또 어떤 학자는 성경론을 강조한다. 또 어떤 학자는 종말론을 강조한다. 자기들이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이 제각기 있다. 그런데 똑같은 주제를 놓고 설명이 분분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로마서 강좌에 있어서 로이드 존스는 찰스 핫지, 존스토트, 그리고 칼 바르트와 의견을 달리한다고 솔직히 언술하고 있다. 학자간의 의견 차이는 학문의 성격상 가능하다. 문제는 내 것은 맞고 네 것은 틀렸다고 말할 때 시각장애인들의 코끼리 접촉에서 벌어지는 의견의 차이다. 나는 여전히 로이드 존스를
다윗의 망명, 도피생활이 시작된다. 꿈에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없었지만 반란을 우려한 사울 왕의 집요한 추적 때문이다. 유대나 베들레헴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기에 결국 다윗은 살기 위해 놉 땅으로, 블레셋 땅 가드로, 아둘람 굴로, 모압으로, 헤렛으로, 엔디게 동굴로, 바란 광야로 돌며 무려 15년 동안 긴 도피 생활을 한다. 사울 왕이 죽어서야 그 지긋지긋한 도피 생활을 끝낼 수 있었는데 감사한 것은 그 도피생활을 하나님이 줄곧 도우셨다는 것이다. 놉,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다 다윗이 급히 달아났던 곳은 놉이었다. 당시 사울 왕국의 수도 기브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다윗은 엘리 가문을 잇는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는 곳으로 간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다윗 일행은 먹을 것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에 제사장에게 먹을 것을 요구한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올렸다가 내온 진설병밖에 없다고 한다. 성소의 상 위에 차려 놓는 열두 덩이의 떡, 이는 이스라엘 공동체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는 것,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물이라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다(레24:9). 그런데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과 그 소년들의 곤궁한 처지를 보며 이 원칙을 무시하고 소년들이 성적인
불교의 교리 중에는 살생을 금하고 있다. 살생은 사람의 생명을 죽여서는 물론 안 되고 또 모든 것의 생명을 무의미하게 심지어 오락형 식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중들은 차라리 동물을 죽여서 얻게 되는 고기 먹기를 금하고 채식을 주로 한다. 그러나 식물에도 생명은 있지 않은가? 그러니 모순된 교리 아닌가? 물론 무의미하게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이런 종교의 교리에 한계가 있다. 성경에는 살생하지 말라는 것은 없고 살인하지 말라는 있으니 이것이 타 종교와의 또 한 가지 차이점일 것이다. 여하튼 불교지도자들인 중들은 고기 먹기를 금한다. 그런데 혹 어떤 중이 생선회를 즐겨 먹는다 해도 남이 보는 데서 바다낚시를 하지는 않는다. 나는 중이 사냥하거나 낚시질하는 것을 평생에 한 번도 본 바가 없다. 생선회는 먹어도 낚시질을 하지 않는 중의 양심과 태도에서 나는 이런 교훈을 취한다. 속담에 눈치 빠른 사람은 절간에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모든 살생을 금지하는 절간에도 새우젓 숨겨두고 먹는 모양이다. 그들 나름대로 덕을 세우기 위한 조치인듯하다. 그것을 성경은 덕을 세우라고 했다. 소위 건덕(建德)이니 “모든 것이 내게 가하
사람은 누구나 관계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그물망은 날로 더 촘촘해지는데 든든하면 건강하게 살지만 끊어지면 치명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본문에는 든든한 관계의 그물망으로 ‘어왕다’(어차피 왕이될 다윗)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엉킨 그물망 다윗은 단 한 번도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출마한 적도 없다. 졸지에 기름 부음을 받기는 했지만 뜻밖의 일이라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골리앗을 물리쳤던 것도 영웅 되려고 한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 심부름 갔다가 열받아 나섰는데 얼떨결에 영웅이 된 것, 그런데 이 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 국민들은 영웅 대접하는데 사울 왕은 자기를 대적자로 여긴다. 사울 왕과의 그물망이 걷잡을 수 없이 엉킨다. 여인들이 부른 노래 때문에 큰일했다고, 잘했다고 칭찬하던 사울 왕이 돌변한다. 이성을 잃은 것 같다. 불같은 질투심으로 그날부터 아예 죽이려 한다. 벽에 박아 버리겠다고 창을 던진다(18:11). 18장 10절에 보니 ‘그 이튿날’이라 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워 이기고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어제 그렇게 좋아하던 왕이 두 번씩이나 창을 던져 죽이려 했다는
나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작정하고 역사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부분을 나누기 전에 우리는 이 시대의 영적 상태를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해서 호세아 4:6을 중심으로 우리의 현 영적 상태를 진단해 보고 있다. 1) 우리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이다. 2)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우리가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는 것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3) 하나님의 백성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그들의 삶은 반드시 하나님의 법을 버리게 되어 있다. 4)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데 가장 먼저 찾아오는 심판은 하나님의 생명 역사가 백성의 삶에서 걷히는 것이다. 5)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6)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들이 넘친다. 그동안 진행돼 오던 한국교회의 침체가 코로나로 인해서 더욱 가속화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산다는 말이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대세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 이 무슨 뜻인가 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성도들과 목회자들은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을 예배 참석, 기도 등 보다 철저한 종교
산부인과 의사나 피부비뇨기과 의사는 성을 의학적으로 다룬다. 주로 예방과 치료를 담당한다. 솔직히 그들의 의료행위는 의료일 뿐이다. 성의 윤리적이며 영적인 영역에는 그들은 전문의는 아니다. 가령 의사들은 동성애는 질병을 일으킨다는 의학적 입장에서 금해야 하겠으나 성경은 하나님이 금하신 조항이기 때문에 금해야 하는 것과 같다. “남자가 짐승과 교합하면 반드시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 것이며” (레 20:15) 또 한 부류의 사람은 의료행위보 다는 성교육차원에서 전문인 활동을 한다. 40대 초반인듯한 여강사가 성교 육에 관한 강의 내용은 들은 바 있는데 주로 동성애의 문제점과 기타 성에 관해 이런저런 학설과 스크린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한 시간 듣자 하니 성교육은 젊은이보다는 늙은이가 하는 게 적절하다고 느꼈다. 또 전문의보다는 생활경험자인 시니어가 더 실감나는 현장 성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다. 더 나아가서 시니어 중에서도 크리스천 시니어가 최상의 강사라고 믿는다. 성(性)은 요람에서 무덤에 갈 때까지 사람에게 붙어있는 귀중한 생활선물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크리스천 시니어의 성교육의 출발은 이런 전제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는 한때 미국 자동차 산업의 전설적인 인물이 었다. 도산 위기라는 재앙의 문턱에 있던 크리아슬러를 극적으로 회생시킨 20세기 경제의 신기원을 이루어냈던 최고경영자, 재임기간 중반 즈음에는 크라이슬러의 시장을 2.9배까지 넓혔다. 그러나 그때부터 아이아코카는 자신을 미국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CEO로 만드는 일에만 심취해 80여 개의 광고에서 자신을 스타로 부각시키며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속에 산다. 지나칠 정도의 자기 선전으로 아이아코카의 개인적인 주가는 올랐지만, 크라이슬러의 주가는 급격히 추락해 결국 경영진들의 압력으로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회사는 독일의 다임러 벤츠에 팔리고 말았다. 자기를 영웅화시키려다가 거인의 인생을 사는 데 실패한 것이다. 반면에 본문에는 자신의 업적이나 공로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겸손하게 살아 진짜 거인이 된 왕이 될 남자 다윗의 승승장구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받고 승승장구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은 화려한 영웅으로 등장하며 큰 사랑을 받지만 사울은 계속 추락하며 외로운 외골수 인생이 된다. 본문에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왕이 될 남자와 정상에서 밀려나고 있
전염병은 예수님께서 이미 누가복음 21장 11절에 종말 때 일어날 징조 중의 하나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도 그렇겠지만 저의 생애에도 이런 전염병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니 전세계의 인구가 긴장해야 하며, 심지어는 태어나는 아이들까지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삶을 보면 보통 안쓰럽지 않습니다. 코로나19가 발병했을 때 정부 시책으로 처음에는 교회를 향하여 예배 금지 명령이 내려졌고, 그 후엔 비대면 예배를 지시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실태입니다. 이로 인해 교계에서는 크게 두 갈래 양상으로 나뉘는 것을 보게 됐는데, 하나는 정부 시책에 순응해 비대면 예배로 드리는 노선과 또 다른 하나는 평상시처럼 대면 예배를 고수하는 노선입니다. 목회자들은 물론 성도들조차도 혼선을 빚으며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작년에 대통령이 교계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예배 방식을 일괄적으로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해 달라고 부탁한 자리에서 한교총 대표 목사님은 대통령 면전에서 “종교 단체를 영업장이나 사업장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발언을 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 후 정부에서는 대면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
회자되는 유머가 있다. 하루는 할머니 한 분이 골목길을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 할머니는 속으로 “아니 내가 아직도 처녀처럼 보이나, 내 뒷모습이 그렇게 예쁜가.” 하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누군지 보고 싶었지만 남자가 실망할까 봐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께서 싱글벙글하자 손자가 물었다. “할머니.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었 어요?” “아까 집에 오는데 어떤 남자가 나한테 처녀라고 그러더라.” 손자는 믿기지 않는듯 “잘못 들은 건 아니고요?” 그러자 할머니는 정색을 하며 “아니야. 내가 분명히 들었어. ‘같이 가 처녀’라고 했어.” “그게 누군데요?” “그건 모르지, 하여튼 남자들은 예쁜 건 알아 가지고?” “그럼 내일 보청기 끼고 다시 잘 들어보세요.” 이튿날 할머니는 보청기를 끼고 집을 나섰다. 하루 종일 돌아 다녀 봐도 그 남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일 다시 나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오는데 뒤에서 어제 들었던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갈치가 천원, 갈치가 천원!” 잠시 착각하고 사는 것도 행복할 것 같다. 마을에서 공부하시는 문해학교 학생
미국에서 1년 동안 가족과 함께 지내다 귀국한 딸에게 물어본 게 있다. “한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땠어? 힘든 부분이 많았 겠지?” 그런데 딸은 “아니예요, 거기서 제일 기쁘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했어요. 부담이 없었고, 눌렸던 압박감에서 해방되어 지내니 아주 좋았어요”라고 매우 충격적인 대답을 해줬다. 이 일로 그동안 딸이 목회자 자녀로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교회를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가족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상가 건물 한 층을 임대해 예배 실과 사택으로 사용하다보니 자녀들은 어린 시절을 좁은 공간에 갇혀서 답답하고 힘들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나와 아내가 전도 활동을 하기 위해서 외출한 후엔 가끔 정신 이상자나 걸인이 찾아오면 문을 잠그고 불안감에 떨며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목회자 자녀들이 받기 쉬운 스트레스나 고충도 겪었으리라. 지미 도드와 래리 맥누선 공저인 “목회자도 사람이다”란 책에는 이런 고충들을 진솔하게 써놓았다. 곧, 목회자는 교인들을 상사와 같이 섬기는데, 그상사들은 목회자 자녀들까지 감시와 단속을 한다는 것이다. 자녀가 어려도 예의 바르며 친절하기를 원한다. 믿음 좋은 모범적인 자녀들로
구약시대라면 십계명의 지위와 권위는 당당했을 것이지만 때가 때인지라 지금은 신약시대다. 신약시대의 십계명의 지위와 권위는 어떤 것인가? 초단부터 말하지만, 십계명은 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설 제 자리가 없다. 왜냐하면 신약시대에는 십계명이 관여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벌써 이런 표현에 알레르기식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내 눈앞에 훤하게 많이 보인다. 우선 십계명의 역사적 과정을 요약한다.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의 중간모음이 십계명이고 이것이 신약으로 넘어 오면서 산상수훈으로 자리를 펴다가 끝내 두 계명으로 응결됐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묻노니 어느 누구인들 최후의 요약적인 두 계명을 100% 지킬 자가 있느냐? 아무도 없다. 그러니깐 모두가 죄인이다. 이를 예수 해결해 주셨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사무엘상 17장은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다. 58절이나 되는데 골리앗이라는 이름은 4절과 23절에 한 번씩 딱 두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이름이 너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골리앗’ 하면 거인이나 장애물의 화신이 됐다. 반면에 다윗은 어린 소년,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예상을 뒤엎는다. 승리의 비결이 뭘까? 골리앗, 어마어마한 거인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4절), 한 규빗이 사람의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니까 대체로 45~50cm, 그렇다면 거의 3m 정도의 거인이다. 기네스북 역대 공식 최장신 로버트 워들로우(Robert Wadlow)의 272cm보다 한참 더 큰 비공인 역대 세계 최장 신이다. 키만 큰 게 아니라 힘도 셌다. 갑옷의 무게가 놋 5천 세겔, 1세겔이 11.4g이니까 57kg이고, 창날 무게만철 6백 세겔, 거의 7kg에 가까우니 맞짱 뜨다가는 뼈도 못 추릴 정도다 (5~7절). 그런데 고대 전투는 1:1 싸움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윗은 골리앗과 맞짱을 뜬다. 블레셋과 이스라엘간에
내가 시내 전철을 탄 시간은 여름 오후 4시경인가 싶다. 동대문역사 문화역에서 한 여인이 건너편 경로석에 와 앉았다. 오후라서 그녀와 나사이에는 가리울 승객도 없는지라 그녀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물론 나와 그녀는 생명부지간이다. 그런데 오늘 오후 나는 전철 여행 중에 값내지 않고 중년 미녀를 바라 는 기쁨을 갖게 되었으니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일상 속의 보너스로 생각한다. 에이 목사치고는 좀 지나친 감정표현이 아닌가라고 옆구리를 슬쩍 찌를 다른 동역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앞의 중년 미녀는 60세 후반인듯 한 여인이었다. 아래는 검은 바지를 입었고 상의는 하얀 블라우스 옷을 걸쳤는데 의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의 키는 어림잡아도 확실히 나의 163cm보다는 더 올라간 신장이었다. 샌들을 신은 그녀의 열발가락은 투명체로 손질되어 있었 다. 뭉실뭉실하게 부풀어있는 머리 카락 모습이 마치 구름 같았으나 단지 검은색 구름이었다. 눈은 맑은 호수처럼 시원하고 입술은 통통한 앵두 같고 코는 클레오파트라의 그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가끔 눈을 감았 다떴다 하는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다. 얼굴색은 거의 백인같이 흰색인데 양볼엔 약간의 홍조가 띄었다. 가벼운 핸드
숀 코넬리 주연의 ‘왕이 되려 한 남자’(The Man Who Would King)라는 영화가 있었다. 007의 사나이, 숀 코넬리는 가장 제임스 본드다운 제1대 제임스 본드다. 그 영화가 나온 지 3년만인 1978년에 타임지(Time)가 영국 찰스(Charles Windsor) 황태자를 표지 모델로 선택하면서 제목을 ‘왕이 될 남자’(The Man Who Will Be King)라고 붙였다. 하지만 43년이 지났는데도 찰스 황태자는 아직도 왕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왕이 될 남자로 남아 있다. 그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는 올해 만 94세이고, 본인도 나이가 만 71세나 됐으니 정말 왕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본문 사무엘상 16장에도 ‘왕이 될 남자’가 등장한다. 다윗이다. 다윗도 왕이 되는 과정이 쉽지 않다. 왕은커녕 오히려 죽을 것 같은 위기들이 도사리고 있다. 15세에 기름 부음 받지만 왕이 된 것은 30세, 긴 세월 동안 ‘왕이 될남자’로 힘겹게 지낸다. 그러나 결국은 왕이 될 남자다.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나님의 히든카드로 등장하면서 다윗 시대가 시작된다. 왕이 될 남자 다윗, 이제부터는 사무엘서의 역사는 다윗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자주 외국에 체류하는 나와 아내는 양식에 약간은 익숙하지만 솔직하게 한국 마트에 가서 양식 식자료를 선뜻 사오지 못하는 것에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미안한 바도 느낀다. 오늘 TV에 햄이야기가 나오기에 나와 아내는 마트에 가서 햄을 사가 지고 와서 먹기로 하고 내가 심부름을 했다. 이렇게 해서 사온 햄의 껍질은 육안으로 보아서는 명백히 비닐 껍질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비닐 껍질은 벗겨내고 먹는 것이라 여겨 두 내외는 이놈의 껍질을 벗기는데 여간 공이 들지 않았다. 우선 잘 벗겨지지를 않는데다가 온 손에 기름이 묻고 작업 결과도 그 매끄럽던 햄이 전쟁터에서 총알을 맞은 듯 만신창이가 됐다. 그 매끄럽고 반들반들하던 햄이 몰골이 흉하기 말할 수 없었다. 이런 고통의 작업을 하는 것이 정상인가. 외국에서 먹어보던 햄을 생각해 보았다. 또 한국 호텔에서 먹어보던 햄을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그것들은 우리가 집에서 먹던 햄과는 모습이 다른 것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이 껍질 까버리는 것이 아니고 그냥 먹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아내는 그럴 것 같기도 하단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오븐에서 갓 꺼내온 햄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어보았다. 이상하더군. 그래도 나와 아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