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교제해온 김 목사님이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들로부터 메일을 받고 나에게도 어느 날 보여줬다. 거기엔 김 목사님의 아들과 여섯 살짜리 손녀가 대화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리나야,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신거야. 예수님 믿고 영접하면 용서받고 구원을 얻게 된단다.” “아빠, 영접이 뭐야?” “아빠가 지난 번 목장 모임 때 간증하면서 예수님을 웰컴 했었지. 그렇게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저 마음속에 와 주세요.’하고 웰컴 하는 것이 영접이야. 리나도 그런 기도드릴래?” “아빠, 나도 하나님을 웰컴하는 기도를 할래. 예수님한테 풀로 딱 붙어서 안 떨어질 거라고 말할 거야.” “그럼 리나가 기도하자.” “예수님, 저는 예수님을 웰컴해요. 그리고 하나님한테 풀로 딱 붙여서 안 떨어질 거예요. 예수님과 안 헤어질래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메일 내용에는 가정에서 아빠와 어린 아이 사이에 신앙적인 대화가 있다. 그리고 아빠가 딸에게 예수님을 영접시키고 기독교적 참된 신앙을 전수해줌이 있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이런 신앙적인 대화와 신앙적인 지도가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원하고 좋은 차타고 넓은 아파트에 살아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원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심리는 남들이 부러워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 보다 좀 더 우월하다고 인정받을 때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려고 노력한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어떤 핸드백을 들고 다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가방하나에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가방을 원하는 것은 그런 가방을 들고 다닐 때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기 때문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는 말이 있지만 누가 수억 짜리 로또 복권에 당첨됐다고 하면 “복권에 당첨 된 사람치고 잘 된 사람 없다더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저 사람은 무슨 복이 있어 저런 복권에 다 당첨되나 하면서 나도 저런 거 한 번 걸려 봤으면 하고 부러워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심히 돈 벌고 노력해서 명품 옷 입고 명품가방 들고 외제차 타고 다니며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기 혼자만 행복하지만 칭찬받는 삶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
우리 집 앞에는 늘 해마다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무슨 새인지는 모르지만 때가 되면 현관문 앞 베란다 구석에 늘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현관 앞에 떨어지는 지푸라기와 새똥을 치우기 귀찮기는 하지만 매해 그 구석진 자리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가 신기하고 반갑다. 우리 집에 나도 모르는 사이 매일 왔다가 가는 손님도 있다. 우편배달부이다. 우편함을 저녁때마다 열고 돈 내라는 고지서와 광고지들을 꺼내 뒤지면서도, 나는 혹시 반가운 소식이 없나 기대한다. 요즘처럼 전자메일과 텍스트가 주요 의사소통이 된 시대에도 이메일을 열 때면 문득 생각한다. 오늘은 좋은 소식이 없을까? 뭔지는 모르지만 기쁜 소식이 없을까? 반가운 사람에게 혹 연락이 있을까? 사람들은 연인이 보낸 사랑의 메시지, 가족들의 귀가 시간, 반가운 친구가 밥 먹자는 전화, 직장에 합격했다는 소식, 월급 올랐다는 소식, 상사가 칭찬한다는 소식 등 기분 좋은 연락들을 기다린다. 멀리 대학을 갔던 자식이 돌아오는 명절을 기다린다.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새 얼굴을 기다린다. 좋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좋은 소식을 기다린다. 그 소식들은 지루하고 우울하게 느껴지는 하루에 드리워진 회색빛을 무지개색으로 바꾸기도
한 평생을 살아온 시니어(Senior)들에게는 한국의 어제와 오늘은 마치 지옥과 천국을 방불케 하는 느낌을 지닌다. 노년들이 피차 만나면 조국의 발전상에 그저 감격해서 노년들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 감탄하고 지금의 젊은이가 바통을 잘 받아서 달리고 있다는 현실감에 만족한다. 그리고 언필칭 “세상 많이 변했구나”라고 하루에도 몇 번 씩 토로한다. 가령 스포츠 세계를 한정해 놓고 보자. 도대체 골프가 뭔가?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스포츠인가? 지독히 가난했던 노년 십대 때 야산에서 소를 먹이다가 귀가할 즈음이면 막대기자로 토막 막대기를 멀리 쳐 내는 놀이를 했다. 힘껏 쳐서 토막 막대기가 멀리 멀리 던져지면 그날 저녁엔 보리밥이라도 먹겠다고 기뻐하고, 거꾸로 이놈의 토막 막대기가 멀리 못가고 가까이 떨어지면 그날 저녁엔 틀림없이 죽그릇이 안겨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막대기치기 놀이를 한 우리들은 지금 골프의 선구자요 선조다. 호화로운 잔디밭이 아니라 자연 야산에서 토막 막대기를 던진 것이 골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학설(?)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 땅의 노년들의 이야기임은 물론이다. 그럼 축구란 무엇인가? 지금 세계는 축구 스포츠가 우상이 되고 있지 않
역사상 가장 큰 재난 중 하나가 1271년에 일어났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몽고의 황제 쿠빌라이 칸을 방문했다. 당시 중국과 인도와 아시아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쿠빌라이 칸은 마르코 폴로가 전해준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몹시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마르코 폴로에게 교황에게 가거든 기독교에 조예가 깊은 사람 100명을 자기에게 보내주면 자기 자신과 모든 신하들과 장군들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일이 신속히 이루어지 않았다. 30년 이상이나 선교사 보내는 일이 지연됐고 그나마 겨우 두세 명의 선교사가 늦게 도착했다. 중요하고 큰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쿠빌라이 칸 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더라도 그 당시의 영토에 미친 영향이 어떠했겠으며, 오늘날 아시아와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겠는가? 한 사람의 구령이 얼마나 큰가? 헬라의 스파르타 표어에 ‘너 하나하나가 산 벽돌이 되라’는 말이 있다. 모든 수는 ‘하나’에서 시작하여 10, 100, 1000, 10000, 억, 조, 그리고 경으로 늘어난다. 1초가 60개 모여 1분이 되고, 한 시간은 60분,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 또 1
7년 전 저희 막내 딸 아이가 부천에서 대안학교를 다닐 때 있었던 일입니다. 딸은 매주 월요일 새벽이면 집을 떠나서 금요일 저녁에 전철을 타고 천안 집으로 왔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시간 때에 맞춰서 전철역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늘 승강구로 마중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밀려 나오는 틈 새로 딸아이를 찾을 때면 언제나 우리 딸은 맨 마지막에 혼자 유유히 걸어 나오곤 했습니다. 빨리 보고 싶은 아버지 마음은 아랑곳없이 자기 편한 기준에서 행동하는 딸아이에게 어느 날 내 마음에 있던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좀 일찍 좀 나와라. 왜 너는 매번 사람들이 다 나오고 나면 항상 맨 나중에 나오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내 말을 듣던 딸아이의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왜 아빠는 주차비 오백 원까지 내면서 이렇게 일찍 나와서 고생하는거냐”는 겁니다. “자기가 나와서 전화하면 차를 몰고 택시 승강장에 와서 자기를 싣고 가면 되는데”라고 말입니다. 두 사람의 말이 자기 입장에서 볼 때는 맞는 것 같은데 뜻이 일치하지 않으니 틀린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엄밀히 분석해보면 딸아이의 말 안에는 내가 아빠가 아닌 운전기사 같은 뉘앙스를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종교개혁이 발발한 지 50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 정신을 되새기며 교회의 갱신과 변화를 위한 논의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종교개혁은 교권주의적 교회 성직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외면당했던 평신도들의 성경적 위상을 회복시켜 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운동이었다. 특히 만인제사장 사상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은 ‘평신도신학’의 기반을 구축했다. 그러나 평신도신학의 선구자인 헨드릭 크래머(Hendrik Kraemer)가 평가했듯이 종교개혁의 원리는 “현실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이 “불행한 결과”로 인해 “오늘날 또 다시 교회는, 평신도가 교회와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해명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강한 소명을 받고 있다.” 이런 시대적 요청을 강하게 받고 있는 한국교회는 “올바른 평신도신학의 정립과 교육의 가능성을 반드시 추구”해야 한다고 은준관은 강조한다. 교회를 올바로 세우고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상호 협력적 노력이 필수불가결하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본질적으로 무엇이며, 목회자와 평신도가 갖는 위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한 실천적 조건
모 처에 강의 차 전철 노인석에 앉아 아침 출근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앉을 자리에 두 사람이 앉았기에 가운데 한 자리는 여유 있는 공석이었다.어떤 이가 다가오더니 무슨 쪽지를 빈자리에 휙 던지고 달아나듯 떠나버리기에 뭔가 하고 주워보니 이런 것이었다: 시원한 소변, 강력한 파워! 50~80대 누구나 대만족! 청춘이 별건가요! 단, 1회 섭취로 달라진 남성을 확인하세요! 그것을 주워 읽는 동안 노마호두(老馬好豆)라더니 시니어도 그런가 웃었다. 그리고 그 쪽지를 대강 읽어보고 또 버리지 않고 나의 배낭가방에 고이 넣었다. 그걸 그냥 버려두면 전철 차내가 온통 휴지로 불결할 것 같아서 고이 주워 넣었을 뿐이었다.그런데 내 옆에 앉았던 다른 승객이 갑자기 자기 명함을 건네주면서 나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이 승객이 왜 이러시나? 그는 자기가 이 쪽지 회사의 직원이라고 했다. 정말 우연의 상황이었다. 그가 말하기를 이런 쪽지를 받으면 대개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받는 즉시 구겨버리곤 하는데 어째서 선생님은 그걸 고이 보관하시려는 거냐고 했다. 그때 나는 말했다. “나 목사입니다.” 목사란 말에 그 쪽지사의 직원은 더욱 놀라는 것
바울 사도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고 분부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구약성경에는 주로 천사들을 통하거나 선지자들을 통해 그리고 간혹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에서(요1:1~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입술로 말씀해 주셨는데, 그 후 성령을 보내셔서 말씀해 주시고 성령의 감동(딤후3:16)으로 오늘 우리가 읽는 기록된 말씀을 주셨다. 우리가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 그때 특별히 와 닿는 감동과 은혜의 말씀이 있어, 그 어떤 것도 오늘 우리가 받는 기록된 말씀 이상의 권위를 갖는 것은 결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미국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Phoenix)에 살던 사람이 일정한 기간의 교도소 징역을 끝마치며 출감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에는 자기를 이곳에 보낸 사람을 쏘아 죽일 작정을 하고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오는 날에 집에 와보니 어린아이 둘만 집에
“석 목사 BTS(방탄소년단)라고 들어보았어?” “아니” “유투브에서 한 번 찾아봐. 우리 목회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아이돌 가수들이라고…우리 목사들은 반성 많이 해야 돼.” 한 달 보름 전 나는 친구 목사와 이러한 대화를 나눈 후 나이 50이 넘어 이 아이돌 그룹 팬으로 입덕했다. 전세계는 요즘 그야말로 BTS라는 한국 아이돌 그룹 열풍을 맞고 있다. 그들은 올 해에만 팝의 본 고장 미국에서 모든 가수들의 꿈의 무대 빌보드 차트에서 두 차례 1위를 석권했다. 세계 순회공연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최근 수 주간은 북미에서만 22만 장이나 되는 공연 티켓을 발매 한 시간 만에 모두 완판시켰다. 여세를 몰아 현재는 런던, 암스테르담, 베를린 등 유럽의 유명 도시들을 순회 중인데, 그 열풍은 광풍이 되어, 각 공연장 티켓은 발매 십 여분 만에 모두 완판 됐다고 한다. 또한 작년 11월부터는 유니세프와 함께 ‘자신을 사랑하라’(Love Myself) 캠페인을 시작했고 폭력으로부터 전 세계 아동과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End Violence 프로그램 파트너로 활동하면서, 지난 9월 24일에는 UN에 초청되어 행한 명연설로 헤아릴 수조차 없는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목회진단을 위한 여러 안내서가 출간됐는데, 목회진단이란 한 교회의 건강 상태를 회복시키고 증진시킴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와 그 교회가 표방하는 신학과 역사적인 배경과 현재 그 교회 안팎의 문화적인 환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조사 분석해 교회의 장점과 약점, 기회와 위험을 밝혀내고 잠재력과 가능성을 구현시킬 방안과 문제점에 대한 개선책을 찾아냄으로써, 단기적 그리고 장기적으로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추구하는 활동을 말한다. 목회진단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 자체적으로 스스로 할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또 정기적으로 진단함으로 교회의 질병을 해결하고 건강하고 건전한 교회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석정문은 미국 한인교회 성장과 발전을 위해 오랫동안 상담역으로 사역했는데 자신의 사역 경험을 기초로 해 목회진단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는 “하나님은 교회가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1000여 명의 목회자들과 400여 개의 교회를 대상으로 컨설팅과 코칭을 실시한 결과로 “GO THRIVE COACHING”이라는 이름의
하나엘 교회에 불신자가 들어오면? 불신자가 교회를 등록하면 새가족부에서 관리한다. 새가족부에서 정해준 새가족 멘토를 정하면 그 멘토가 새가족에게 관심을 가지고 교회에 정착하도록 돕는다. 봄학기와 가을학기에 시작되는 생명의 삶 성경공부에 권면해 성경공부를 하게 한다. 목장에서 전도된 영혼은 그 목장에 소속하게 하고 교회로 전도되어진 사람은 목장에 소개하여 목장 안에서 교제하게 한다. 1년이 지나면 목자와 의논하여 교회의 부서사역에 은사에 맞춰 봉사하도록 한다. 그래서 하나엘교회에 전도되어온 성도들을 향한 목표는 생명의 삶을 통해 신앙양육을 받고,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체험하고, 목장을 통하여 교제를 경험하게 되고, 부서봉사를 통해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새생명축제 때에 주변에 있는 불신자를 교회에 전도하는 전도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등록 후 3년에서 5년이 지나면 이제 “새로운 삶”, “말씀의 삶”을 통하여 더욱 성숙한 단계의 성경공부를 하게 된다. 목장에서 성도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신앙을 보고 배우게 된다. 교회 안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해외선교나 국내선교에 동참하고 하나님 나라를 함께 이뤄나간다. 이것이 하나엘 교회가 불신자를 전도
매번 태풍이 불 때마다 핸드폰의 문자가 경고를 알리기에 바쁘다. 얼마 전 몇 년 만에 몰아오는 강한 태풍 솔릭으로 특히 도서지역인 진도에 사는 주민으로서의 혜택(?)인 듯 연거 푸 문자를 받았다. 전국적으로 태풍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준비했다. 그리고 나라 열도를 관통하고 지나갈 태풍이 피해가 없이 잘 지나가기를 모두 애원했다. 작년 진도에 내려온 첫해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바닷가 사람들은 태풍이 큰 피해없이 지나갔다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비가 오지 않아 저수지가 마르고 물이 없어 많은 농가에서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섬 산속에 있는 저수지와 심지어 바다와 인접해 있는 댐마저 녹조로 뒤 덮였었다. 그리고 2년 만에 태풍 같은 태풍을 맞아들이는 기분은 딱히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수없는 안전 안내 문자를 받고도 무감각했고, 처음 맞은 제주도의 상황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었다. 그러나 태풍의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하며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먼 섬에 있는 교회들에게 전화를 했을 때 “아직 본 게임도 아닙니다”하는 소리를 들었고, 비바람은 몰아치기 시작했다. 저녁때쯤 되어 본격적인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인데, 이 관계는 이성적 숙고들에 의해서도, 자연적인 필연성들에 의해서도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이성과 자연 밖에서 인간에게 선사되는, 인간을 압도하는, 인간이 순종해야 하는, 계시로써, 은혜로써 표시되는 것이고 여기에서는 인간이 다른 문화영역들에서와 같이 독자적 창조적이 아니며 철저히 순종적 예속으로 이뤄진 것이다. 결국 신앙은 궁극적으로 집중적인 관심을 갖는 상태이다. 신앙의 동태(動態)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의 동태이다. 사람은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그러한 것처럼 많은 것에 관심을 갖는다. 특별히 음식물이나 거주처소 같이 그의 생존 자체를 조건 짓는 것에 대하여 그렇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다른 생물적 존재와는 달리 정신적 관심사, 즉 인식적, 심미적, 사회적, 정치적 관심사가 있다. 그 중 어떤 것은 시급하다. 아주 시급한 관심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들 하나하나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관심사와 마찬가지로 인간 생활 또는 한 사회 집단의 생활을 위해서 궁극적 관심사를 주장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궁극성을 주장할 수 있다. 그것은 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전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또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