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교회가 역사적으로 급성전염병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중세 교회의 전염병에 대한 해석과 대처 중세 시대 흑사병으로 불린 급성전염병은 유럽에 간헐적이며 지속적으로 발병했고, 14세기 후반부터 만성적인 풍토병이 됐다. 중세 초기 541년 이집트 항구도시 펠루시움에서 발병한 흑사병은 542년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진출해 544년까지 약 30만 명을 희생시켰는데, 그것은 주민 전체의 1/3에서 1/2에 해당되는 숫자였다. 흑사병은 유럽으로도 번져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중세 유럽은 역병에 대해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과 의술을 발전시키는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다. 투르의 주교이자 프랑스 역사가인 그레고리우스(538-594)는 갈리아에서 역병이 발생했을 때, 클레르몽의 주교 갈루스가 주민들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지로 행진했고, 그 결과 클레르몽의 주민은 단 한 명도 역병으로 사망하지 않았던 반면 후임 주교 카우티누스는 571년 역병이 발생하자 도피하기 바빴고, 그 결과 클레르몽의 주민들이 시체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희생됐다고 했다. 흑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여전히 대면 모임은 제한을 받고 있고 예배 외에는 대부분의 교회 사역들은 멈추거나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현실이다. 팬데믹의 장기화는 우리의 육과 영혼에도 심각한 위기를 안겨줬다. 제대로 된 예배와 양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성도들은 팬데믹의 환란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교회는 다각적인 방법으로 성도들을 돌보며 이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대면으로 진행했던 사역들을 비대 면으로 돌리고 소그룹 모임이나 구역모임, 목장모임 등도 가정 모임 중심으로 변화시켰다. 개인의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지켜나가기 위해 성경통독이나 큐티의 생활화를 이뤄내고 있으나 성도들은 코로나 이전의 신앙심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삶은 여전히 회복이 필요하고 은혜를 사모하며 갈망함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교회의 출석률 하락에 대한 통계자료는 이 시대의 교회의 존립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다. 이제 성도들도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보다 자신의 편의와 안위를 위해 선택하는 신앙인으로
코로나19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교회가 역사적으로 급성전염병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하여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초기 교회의 전염병에 대한 해석과 대처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첫 3세기 동안 두 번의 국제적 전염병이 있었다. 첫 번째는 165년경부터 189년까지 창궐한 “안토니우스 역병”으로 로마제국 전체 인구의 1/3 혹은 1/4를 죽게 만든 전염병이었다. 고대 도시는 인구 밀도가 매우 높아 질병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바울이 로마에서 사역하던 1세기 중반 로마시의 인구는 약 45만 명 정도이며, 1,220평 당 302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인도의 캘커타가 122명, 뉴욕 맨해튼이 100 명인 것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붐볐음을 알 수 있다. 높은 인구 밀도는 심각한 위생 문제와 전염병의 확산을 야기했다. 키프리아누스 역병’으로 불린 두 번째 전염병은 249년에서 262년까지 지속됐는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시민의 2/3를 죽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교회는 급성전염병에 잘 대처해 로마제국의 지배적인 종교로 부상하게 됐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담임목사 디오니시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은
올해도 역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작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 지고 집단 면역이 생길 수 있는 요건을 갖췄지만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의 국내 유입과 확산으로 코로나 확산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천명 대의 확진자와 수백 명의 중증환자로 코로나 대응에 대한 회의와 쉽게 일상회복을 주장했던 정부의 방침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종교활동 즉, 교회에 대한 방역지침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기존의 일상회복 1단계의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접종완료자로 구성된 예배는 70%, 미접종자 등으로 구성하는 경우 30%(최대 299명)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소모임도 접종완료자만 가능하며 최대 4인으로만 가능한 상태이다. 하지만 최근 발발한 교회발 집단 확진으로 인해 방역당국은 방역수칙 준수를 거듭 당부하고 있다. 교회가 이런 상황일수록 보다 더 철저하게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교회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3년 가까이 교회는 교회다움을 유지하지 못하고 교회의 모든 사역들은 위축됐으며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 교회들도 적잖았다. 교단발전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교단 교회 수는 3433개이며 이중 제11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여전히 주보(週報)는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그 교회 주보(週報)의 어느 부분을 보십니까? 대게 주보 뒷면에 보면 광고와 아울러서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주로 지난주일 출석 상황과 헌금자 명단을 집계한 것이지만 “주보 한 장”으로 그 교회의 교세와 형편을 가늠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교회에서는 통계란에 여러 항목을 만들어서 전체 숫자를 많게 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그런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유령 숫자까지 넣어서 통계를 만드는 교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본래 주보(週報)라고 하는 것은 주일의 예배를 안내하고 교회의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일종의 그 교회의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즈음 대개의 주보는 “예배 안내”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교회 사진이나 큼직하게 넣고 목사. 전도사. 안수집사(장로)의 이름까지 전면에 게재해 한눈에 교회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게 하고 구역목장 통계나 조밀하게 해서 교인은 몇 명이나 되고 헌금은 어느 정도 나온다는 것을 선전한 “교회광고지” 같은 인상이 짙습니다. 하기야 요즈음은 “뜻” 보다는 “목소리”의 크기로 시비하는 세
코로나19가 터지고 2년 동안 충격과 폐해(弊害)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여파는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언제 끝날지, 얼마나 더 피해가 있을지 예단할 수 없기에 누구라도 ‘알 수 없음’으로 답해야 할듯하다. 최근 들어 다시 새로운 ‘변이’들이 또다시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어 참담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라는 시대적 팬데믹을 겪은 이후의 교회들은 “반드시 변화를 요구함”이란 과제 앞에 당면해 있고 이러한 변화로의 움직임도 이젠 다양하며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하고 그 방법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 21년째 작은 시골에서 목회하고 있는 농촌목회자의 생각이다. 현재 한국교회, 그중에 더 심각한 코로나 후유증에 힘겨워하는 농어촌교회에 대한 한국기독교는 뚜렷한 대안 제시가 극히 미진한 것 같아 안타까운 현실이고 계속 나타나는 통계적 자료에만 눌려있고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에 대한 대책이 묘연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필자가 목회하는 성암교회는 전형적인 농촌교회로 이번 코로나19가 충
우리나라 침례교회의 전통, 혹은 특징이라고 한다면 ‘오지선교’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교단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말콤 펜윅 선교사는 그의 멘토인 고든 목사가 아프리카나 인도, 중국과 같은 오지 국가에 선교사를 집중적으로 파송하는 것을 봤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펜윅 선교사는 선교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됐다. 펜윅 선교사는 타 교단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또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았던 만주나 시베리아, 그리고 몽골과 같은 동북아시아의 오지 지역에 순회 복음 전도자를 보냈다. 이러한 오지 선교가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했는지 어떤지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오직 말씀만을 들고 들어가 그곳에 복음의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침례교 전통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오지가 아닌 신도시에 개척을 하는 침례교회가 늘어나고 있지만 지금도 주님이 주신 사명 하나로 아무도 찾지 않는 농어촌교회를 파고 들어가는 이들이 있다. 본보는 지난 12월 9일과 10일 농어촌에서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충남 3곳, 전남 5곳으로 이틀 만에 소화하기에는 쉽지 않은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한
1818년 어느 늦은 밤. 오스트리아 잘차흐(Salzach) 강변에 위치한 오베른드르프(Oberndorf)란 작은 마을 성니콜라스 교회에 시무하는 모올 신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르간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오르간은 잘차흐강의 습기로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에 놓고 갑자기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그런데 수리를 위한 기술자의 방문은 봄이나 돼야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때 성탄절 행사도 해야 하고, 연극발표회도 해야 하는데, 한 대밖에 없는 오르간이 고장이 났으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시골 마을이라 기술자는 봄이나 오게 되어있고, 그렇다고 새로 구입할 형편도 안되었기 때문에 모올 신부는 벌써 며칠째 오르간을 뜯어서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도무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오르간도 없이 어떻게 성탄절 행사를 할까?” 몹시 상심한 모올 신부는 일손을 멈추고 자리에 꿇어앉은 채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참 동안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니 깊은 밤, 어둠 속에서 환한 달빛이 비치는 마을의 풍경이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참으로 고요한 밤이구나!” 그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에 감동받은 순간, 모올 신부는 아름다운 시 한 편
2021년 성탄의 기쁨을 누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교회는 2년째 코로나 팬데믹으로 실망과 좌절 가운데 보낸 시간을 뒤로 하고 그동안 하나님의 인도와 동행을 경험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힘이 되어 주는 사명을 감당해 왔다. 모두가 어렵고 힘든 순간이었지만 모두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목회적 환경 속에서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매진했다. 이 가운데 총회는 교단의 여러 교회들을 함께 협동선교프로그램(CP)의 일환으로 성탄절 헌금을 미자립교회와 다음세대를 위해 사용하기 위해 성탄 나눔 운동을 기획했다. 성탄 나눔 운동은 미남침례교단에서 부활절과 성탄절 등 절기를 중심으로 개교회가 특정 목적의 선교를 감당하기 위해 물질로 후원하며 기도로 후원하는 사역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미 지난해 제110차 회기에서 21개 교회와 기관, 원로목사가 참여해 귀한 헌신의 결실을 맺었다. 지원을 받은 교회와 기관은 이 CP헌금으로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CP는 단순하게 물질적인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우리 모두가 동역자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반자라는 마음을 다시 깨닫게 하는 침례교회의 협동 정신을 담고 있는 귀한 사역이다. 올해도
역사는 말한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냈다. 비대면(un contact)과 사회적 거리두기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기도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역사는 말한다. 세계대전 후에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팬데믹 (pandemic) 후에 펜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 전염병 연구소 파우치 소장은 2021년 말에는 종식될 것으로 예측했지만 지금 우리는 변종 바아러스로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빌게이츠는 2022년에나 종식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그러나 이것도 완전한 일상의 복귀가 아니다. 언제든지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 팬데믹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백신은 유효기간이 3~4 개월이다. 코로나는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어주셔야만 끝날 수 있다. 인간중심의 자본주의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비(非)인간화와 기계화로 결국에는 사물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사회와 공동체를 파괴되고, 자연을 무분별하게 훼손하며 인간의 무한 욕망을 무한 긍정하는 죽고 죽이는 정글 구조를 만들고 있다. 지구화·도시
최근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인천의 모교회에 확진자가 발생했다. 문제는 방역당국의 동선 파악에 비협조적으로 대하며 늦장 대응을 초래하며 교회가 또다시 ‘교회발 확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지난해 2월초 이단사이비 종교시설의 코로나 확산으로 전국이 종교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인천 모교회의 코로나 발생은 또 다시 교회가 집단감염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교회가 쌓아온 철저한 방역체계와 나누고 섬기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은 이번 사태로 공든 탑이 무너진 꼴이 됐다. 지난 11월 초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의 일환으로 정부의 코로나 방역지침이 변경된 이후, 교회는 모처럼 대면예배의 은혜를 나눴다. 정부의 지침에 따라 아직은 제한적이지만 다양한 지침으로 방역지침의 문턱을 낮춰준 것은 환영할 일이다. 여전히 정부의 지침에 한계가 있고 교회에 대한 인식 또한 여전히 불안한 가운데 놓여 있지만 교회가 이렇게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예배에 대한 사모함과 신앙활동에 대한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일상회복 이후 급격한 코로나19 확진자 증가는 12월 초
‘함께’와 ‘공동체’라는 단어는 우리 한민족에게 있어 불가분의 관계이다. ‘두레’나 ‘품앗이’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고 3·1운동, 국채보상운동, 가장 현대에 들어서는 IMF 당시 금모으기 운동과 태안기름유출 사건 때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해 빠르게 사고 지역을 회복시켰던 일 등 많은 사례들이 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공동체에 대한 친밀감이 교회가 성장할 수있었던 밑거름 중 하나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한다. 교회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이며 한 형제임을 중시하면서 함께하는 문화가 깊게 자리했다. 아쉬운 점은 그러한 공동체가 개교회 내에서만 작용한다는 비판들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타 교단에 비해 개교회주의를 더욱 강조하는 우리 교단의 경우 이러한 비판이 자주 도마 위에 오른다. 한국침신대 남병두 교수는 자신의 저서 “침례교회 특성 되돌 아보기”를 통해 침례교회의 특성인 개교회주의에 대해 “바깥에서 개교회 이기주의로 보여지는 때가 종종 있다”고 지적한다. 침례교회는 교회 간의 연합을 잘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 교수는 침례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오해임을 강조한다. 그 증거로 초기 침례
코로나19 사태로 앞당겨진 4차 산업 시대 목회는 대면 중심의 현장 예배를 지향하던 한국교 회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초연결사회, 접속 패러다임의 전환점에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예배당의 빈자리에 성도를 채우는 것이 부흥이라고 배워온 목회자들로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 텅 빈예배당에서 새로운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는 이미 익숙해진 “가상공간 혹은 사적인 공간의 공적 공간화”이다. 다시 말해 예배와 신앙교육의 공간이 교회당 바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니 급진적으로 가상의 공간 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몇 해 전까지 누가 주일 예배를 자기 집 거실에서 스마트폰으로 드리는 성도들의 믿음이 선하다고 말할 때가 올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이미 세상은 코로나로 앞당겨진 4차 산업 시대의 변화에 직면하여, 누구나 손쉽게 스마트폰 안에 디지털 공간과 접속해 가장 사적인 공간인 가정에서 예배가 가능한 초연결사회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에 코로나19 사태는 4차 산업 시대의 변화를 실험하는 도전과 모험의 시간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감염병 전문가뿐 아니라 사회의 패러다임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제111차 총회(총회장 고명진 목사) 회기의 중점사역은 100만 뱁티스트 전도운동이다. 교회는 영혼구원과 선행을 실천하는 곳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던 제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쁨으로 떡을 떼며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예배한 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모델이다. 로마제국의 핍박 속에서 초대교회는 말씀 선포와 이웃전도를 실천했으며 병든 자와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보살폈다. 침례교회도 오지 산간 지역의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이를 거점 으로 이웃을 돌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길을 열어줬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교회가 보살피지 못한 지역은 침례교 사역자들이 자비량으로 달려가 복음을 전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우리는 영혼 구원에 대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강력한 방역지침으로 성도들도 모이지 못했고 믿지 않는 이웃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교회로 이끌고 왔지만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교회의 전도사역도, 양육 사역도, 코로나 이전처럼 활발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교회는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했으며 교회의 돌봄으로
코로나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우리에게 와서 우리로 변화를 요구했다. 너무나 안일했던 초기 대응과 나와는 상관없을 줄 알았던 어리석음이 화를 키웠다고도 말한다. 또한 교회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믿는 자라면 코로나를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일명 지혜롭게 하라는 말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교회로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라면 믿음뿐이다. 언제든 조건은 계속해서 변화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끊임없이 사람이 우선이라는 말이 정의처럼 주장하고 동조할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우린 단순한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신정 민주주의자이다. 조건과 상황에 적응하여 변화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이다. 비대면 신앙은 없다.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은 전투다. 싸우는 것이다. 져도 괜챦은 싸움이 아니라 목숨을 건 싸움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지를 소개하는 글을 부탁받았다. 그러나 결론 부터 말하면 특별히 코로나 이전의 교회생활과 많이 다르지 않다. 주일이면 예배드리고, 주중엔 수요예배, 구역 예배, 금요예배로,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