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서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과 같다”(잠3:12)고 했고, 히브리서 기자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고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 친아들이 아니라”(히12:8)고 했다. 하나님의 징계가 축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문은 다윗도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왜 징계받았는지 또 어떻게 벌 받고 용서받았는지를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의 지시인가? 사탄의 충동인가? 다윗이 말년에 이스라엘 전국에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이 일로 사흘간 역병이 돌았고, 다윗이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제자를 드림으로 재앙이 멈췄다. 그런데 24장 말씀이 시작부터 혼란스럽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1) 다윗이 인구조사 후 징계를 받았는데 이 일이 하나님의 지시였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죄를 짓게 만들어놓고 징계하셨다는 말이 된다. 이해가 되나? 그리고 근 150년 후에 기록된 역대기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역대기 기자는 “사탄이…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21:1) 인구조사가 사탄이 충동해서 한 일이라 했다. 도대체 어떤
하나님은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고자 하는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신다. 지난 3년간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중엽 코로나 바이러스와 흡사한 흑사병이 발생해서 유럽을 휩쓸었다. 얼마나 흑사병이 심하였는지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상이 흑사병으로 죽었다. 이 흑사병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염병으로 기록되고 있다. 흑사병은 1347년 처음으로 발생했다. 그러더니 그 흑사병은 약 300여 년 간 주기적으로 발생하였다.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고 있는 그 때에, 독일 남쪽 바바리아 지방에 오버아마가우(Oberamagau)라는 외딴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 마을에서 살던 한 사람이 이웃 마을에 갔다가 흑사병에 감염되어 돌아왔다. 흑사병은 삽시간에 전체 마을로 번졌다.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흑사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무덤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저희들을 죽음의 흑사병에서 구원해 주시면 앞으로 10년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연극을 만들어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 기도가 응답됐다. 기
가끔 인생의 마지막을 어떤 말로 끝낼 것인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아마 화내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로 인생을 끝마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왕이면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하고 다시 만나자며 삶을 마치고 싶어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평소의 언어 습관이다. 왜냐하면 그 습관이 마지막 말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본문의 앞부분은 다윗 왕의 마지막 말이다. 다윗의 찬양 7절까지 이어진 다윗의 마지막 말은 찬양이었다.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마치 자기 인생에 대한 평가 같다.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1절), 다윗의 자신의 묘비명이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또는 자신의 업적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을 했다. 먼저 ‘이새의 아들’이라 한 것은 족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아버지가 이새, 지금의 자신은 ‘가문의 영광’이랄까? 별 볼 일 없던 존재, 미천한 존재였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다윗을 끔찍이 미워했던 사울 왕도 아들 요나단에게 “이놈아! 이새의 아들 다윗을 없애라! 그래야 네가 왕이 될 수 있어!” ‘이새의 아들’이라고 다윗을 낮춰 불렀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가 이
아시아경제신문 취재본부장인 왕성상이라는 분이 ‘음악기록을 통해 본 가수들의 노래와 삶’이라는 글을 통해 가수들의 운명이 그가 부른 노래의 가사와 일치하다는 것을 발표했다. 이 글에 발표된 내용을 보면 가수 중에 슬픈 노래나 비관적인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일찍 죽거나 끝이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밝고 긍정적인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이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전개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가요기록에서 대중가요 1호곡 ‘사의 찬미’를 부르고 히트시킨 윤심덕은 29살 때 한·일 현해탄에서 투신자살했다. 여가수 양미란은 ‘흑점’을 부르고 히트시킨 뒤 골수암을 앓다가 1980년 요절했다. ‘흑점’의 노래엔 “태양의 흑점처럼 어두운 내 가슴~”이란 가사가 나온다. 우주에서의 흑점은 사람 몸의 암에 비유된다. 결국 양미란은 그의 부른 노래의 가사대로 암에 걸려 요절했다. ‘곡예사의 첫사랑’을 부른 박경애도 밝지 않은 노래를 부르다가 삼성서울병원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차중락은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고 27살에 낙엽처럼 쓸쓸히 가버렸다. ‘수덕사의 여승’을 히트한 송춘희는 자신이 부른 노래처럼 불교에 귀의해 중이 됐다. 그녀의 고모할아버지
성경에는 수많은 노래가 나온다. 시편의 수두룩한 찬양을 비롯해 예수님이 나시던 날 밤 천군 천사들이 불렀던 찬양(눅2:14)과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를 축복했을 때 화답했던 마리아의 찬가(눅1:46~55), 그리고 투옥됐던 바울과 실라의 한밤중의 찬양(행16장),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외친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찬양(계7:10), 모든 천사가 하나님을 경배하며 외친 찬양(계7:12) 등 찬양이 넘친다. 본문은 다윗이 여호와께서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부른 노래다(1). 파란만장한 삶에서 하나님을 드라마틱하게 체험했던 다윗, 일명 ‘다윗의 승전가’로 불리는 이 노래는 수많은 역경 속에서 체험했던 하나님을 생동감 있게 드러낸 다윗의 신앙 간증이었다. 성경은 구원 이야기인 동시에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의 간증 스토리다. 창세기에 보면 노아가 홍수 속에서 구원받은 간증, 아브라함이 100세의 노령에 아들 낳고 축복받은 간증, 그리고 야곱이 그 험난한 풍파를 다 이기고 금의환향한 간증과 요셉이 우여곡절 속에서도 입신양명한 간증 스토리로 이어진다. 출애굽기도 마찬가지, 드라마틱한 모세의 개인적 간증과 이스라엘 민족의 간증 스
달라스침례대학교(DBU)의 김종환 박사가 ‘감사의 혜택’이라는 칼럼을 보내줬다. 김 박사는 “감사에는 심리적인 혜택도 있고, 신체적인 혜택도 있고, 사회적인 혜택도 있다”고 했다. 이 모든 혜택은 ‘영적인 혜택’으로부터 비롯되고 또 때가 있는 것 같다. 다윗이 그랬다.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14). 기도 응답, 이보다 더 큰 혜택이 있을까? 다윗의 기도 응답에 주목하며 응답받고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기대한다. 3년간 기근이 이어졌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지 약 15년이 지나던 해(BC 995년경), 전 이스라엘의 국토에 3년간 기근이 있었다(1). 그래서 다윗이 기도하자 하나님의 응답은 사울 가문이 기브온 사람을 죽인 것 때문에 일어난 재앙이라 하신다. 성경은 이 재앙을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한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나 홍수 지진 같은 것도 마찬가지라며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하는 것을 미신적이라고, 하나님을 괴물로 만드는 것이라고 펄쩍 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설교는 견강부회(牽强附會), 근거도 없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억지이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맞추는 것이며, 문자
영국 작가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이 쓴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 3부작 중 제3권 제목이 ‘왕의 귀환’(The Return of the King)이었다. 압살롬 세력의 쿠데타를 진압한 다윗은 빼앗겼던 예루살렘을 되찾는다. 19장이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왕의 귀환 장면이다. 화려한 귀환 쿠데타를 진압하고 권력을 되찾은 것은 큰 기쁨이지만 다윗의 귀환은 그저 기쁜 귀환이 아니었다. 압살롬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위세만큼은 대단했을 것이다. 환호하는 백성, 다시 충성 경쟁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 귀환을 ‘화려한 귀환’이라 부르고 싶다. 물론 왕의 귀환에 떠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칫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 펼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황제도 귀환한 적 있었다. 1815년 엘바섬을 탈출해 파리를 향해 진군한 것인데 국왕군의 군대들은 “황제 만세”를 부르며 투항했고 그의 귀환소식에 루이 18세가 급히 도망쳤다. 화려한 귀환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나폴레옹이 파리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따라 기사 제목이 달라졌다. “괴수, 동굴을 떠나다”, “코르시카의 흡혈귀, 후안 만에 상륙”, “성난 호랑이, 기프에 나타나다”, “야수, 그르노블에서 밤을 보
“할렐루야” 저는 전도사님과 결혼을 하면서 사모가 되면서 함께 사명을 감당하게 됐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삼남매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골수염을 앓으면서 아침저녁으로 마이신 주사를 맞고 먹으면서 4년 동안 삼남매를 출산했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유업으로 계승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삼남매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충우 목사님은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 이름을 “한국중앙침례교회”로 세우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감당하는 선교하는 교회를 준비한 교회로 열심을 다해 목양에 전념했습니다. 교회를 아들 목사님에게 위임하고 저희는 선교사로 파송받아 필리핀으로 선교를 나갔다가 4년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한충우 목사님이 대퇴골이 골절되면서 급하게 수술을 받게 됐고 결국 7개월 만에 하나님의 품에 안식했습니다. 저는 2012년 1월 12일부터 홀사모가 됐습니다. 그 때부터 3년 동안 다니엘처럼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 때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서 12:14~15, 여호수아 1:1~9, 사사기 2:1~5, 시편 27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언 킹’에는 유창하게 말하는 동물들이 나온다. 그들은 완벽한 언어능력만 갖춘 게 아니라 정교한 정치적 활동까지 능숙하게 해낸다. 어린 사자가 억울함을 풀고 복수에 성공하는 사건 전개도 재밌지만, 동물들이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즐거움을 안겨 준다. 이런 영화적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어느 날 문득, 하나님께서 사자에게 고도의 지능을 주시어 인간 대신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신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마음만 살짝 바꾸시면 될 터이니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닐 듯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딱 하나,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리 통치자)으로 삼는 언약을 인간에게 주신 후 겸손과 사랑으로 피조물을 다스리라 명하셨다(창 1:26~27). ‘하나님-인간-타피조물’로 이어지는 이 언약적 창조질서는 인간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포기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질서를 스스로 존중하셔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후, 인간의 모든 고통을 체휼(體恤) 하시고, 십자가로 인간부터 구원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온 인류를 구원키 위해 먼저 구별
도피한 지 며칠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다윗은 쿠데타를 일으킨 아들 압살롬과 요단강 지역에서 드디어 무력 충돌을 하게 된다. 부자간 권력 다툼으로 일어난 내전, 이 내전으로 다윗은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을 잃는다. 이 또한 다윗 가정의 비극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다 오랫동안 전쟁까지 준비한 압살롬이 아버지의 권력을 빼앗겠다고 야심차게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치른 백전 노장, 군대를 집결시킨 뒤 그 동안의 전투 경험을 살려 병력을 세 부대로 나눈다. 그리고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자신이 직접 전선으로 나가 전투를 지휘하려 한다. 하지만 부하들의 간청(3)으로 직접 나가지는 않았다. 대단한 전쟁이 벌어졌다. 성경은 다윗의 군대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전쟁이라 했다. 압살롬을 추종한 쿠데타 세력을 ‘이스라엘 백성’이라 했는데 민심이 떠났다는 뜻이며, 그만큼 다윗의 세력이 약세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전쟁은 다윗의 부하들이 이긴다(7). 흥미로운 것은 본문에 전쟁에 대한 실질적인 기록이 딱 세 절밖에 없다는 것이다(6~8). 나머지 말씀은 죄다 한 사람 압살롬의 죽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희한한 것은 전쟁이 시작되는데 다윗이 전쟁 승
테레사 수녀는 인도 빈민가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평생을 봉사하고 헌신해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분이다. 어느 날, 테레사 수녀가 한 가난한 노인의 집을 방문했다. 사실 그곳은 집이라기 보다는 움막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들어가니 온통 먼지투성이에다가 더러운 이불과 낡은 옷들은 몇 년 전에 빨았는지 알 수 조차 없었다. 역겨운 냄새가 감도는 헛간 같은 곳에서 노인은 혼자서 무기력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그저 노인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제가 이곳을 청소하겠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말에도 노인은 반응하지 않은 채, 힘없이 누워만 있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테레사 수녀는 바닥을 쓸어내고, 먼지를 털어냈다. 더러운 옷가지와 이불을 빨고,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청소를 하는 몇 시간 동안 둘은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왜 이렇게 힘든 상황이 된 건지, 왜 이곳을 청소하러 왔는지, 서로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 그렇게 청소를 하다가 테레사는 구석에 쳐박혀 있던 조그만 등을 하나 발견했다. 먼지에 뒤덮인 오래되고 낡은 등이었다. “이 등은 뭔가요?” “…손님이 오면 켜는 등이라오.” 그 대답을 들은 테레사 수녀는 공을 들여 오랫동안 등을 닦기 시
이러한 확신에 근거해서 저희는 다음과 같은 선교적 사역을 교회와 함께 협력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개척을 하는 경우, 먼저 새로운 지역 또는 복음 전도가 잘 되지 않은 세대나 그룹 또는 지역에 들어가서, 안 믿는 사람을 대상으로 전도, 믿는 사람을 대상으로 제자 양육을 진행합니다. 제자 양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회개척(교회 형성)이 되고,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지도자 양성을 하며, 선교사의 경우 지역 교회에 이양하고, 새로운 대상과 지역을 향해 떠나게 됩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들어가기-전도-제자양육-건강한 교회개척-지속적인 지도자 개발-아름다운 이양(떠나기)의 순서를 따라 사역을 하지만, 지역의 상황에 따라, 협력하는 교회의 형편과 필요에 따라, 협력은 어느 단계에서나 가능합니다. IMB 선교사들이 몇 가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역을 나누고, 또 위에 설명한 내용 중에 여러분이 궁금하거나, 구체적인 실제적 내용 등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선교적 교회개척을 위한 훈련이 필요하시면 꼭 알려 주십시오. 저희가 교회와 목사님들을 도와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18세기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진리나 진실, 원칙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은 종교의 경우에는 신앙(信仰)이 되고, 과거의 객관적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적 사실 또는 원칙에 대한 것은 신념(信念)이 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 또는 이웃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이 믿음은 ‘신뢰(信賴)’라고 한다. 미국 항공사 제트블루(jetBlue)의 회장 조엘 피터슨은 뉴욕대학교 교수 데이비드 캐플런과 공동으로 쓴 책 ‘신뢰의 힘’의 첫 머리에 “신뢰가 교환되는 순간, 사람들은 협조하고 이타심을 기른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혜택을 나눠 갖는다.”고 했다.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조직문화를 바꾸고, 곤경에 빠진 기업을 되살려 낸 대표적인 경영자로 앨런 멀러리을 들었다. 보잉사의 상업용 항공기 부분 사장으로 일하던 그는 2006년 미국 자동차업체 포드의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그가 CEO로 취임할 당시 포드는 시장점유율 감소와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는 취임하지마자 리더십 전문가 마셜 골드스미스가 고안한 ‘부끄러운 종말’이란 프로세스를 전사적으로 도입했다. 임직원들이 회의에서나 큰 이권이 달린 치열한 기업
헤브론에서 자기가 왕이라고 선포한 압살롬이 쿠데타 세력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한다(16:15). 성경은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르렀다’고 그의 이름을 특별히 거명했다. 아히도벨이 헤브론의 반란을 주도한 인물이고, 다윗이 가장 경계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압살롬이 취할 행동을 제시하는 사람, 그의 지략이 얼마나 뛰어난지 성경이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16:23). 그런데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다윗의 친구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아가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를 외치는 예상외의 일이 벌어진다. 위장 전향이다. 충성을 맹세하는 척한 것이다. 의외였기에 압살롬은 아버지 친구면서 왜 아버지와 함께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의심했다는 말이다. 후새는 “나는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겠다”(17:18)고 한다. 사사로운 감정보다 하나님의 선택에 따른다는 뜻이다. 위장 전향을 숨기려고 은근히 ‘당신은 하나님이 택한 자’라는 식으로 아부성 발언까지 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겼듯이 그의 아들 왕을 섬
제가 전국사모회를 만난 것은 저희가 군종목사로 23년간 사역하고 2007년부터 남편이 총회에서 사역을 하게 되면서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제까지 인도하신 주님! 저는 부족하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은데 가르쳐주세요.’ 저에게 몇 가지 사역을 붙여주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전국사모회입니다. 14년 정도 지났으니 오랜 시간 동안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때로는 더 열심히 하지 못했음이 죄송스럽고 아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교단 사모님들과의 만남은 저에게도 축복이었습니다. 목회현장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사모님들과 함께 서로 축복하고 위로하고 사랑을 나누며 주님의 은혜로 치유받는 모습 속에서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선배 사모님들의 헌신하시는 모습들을 보며 많이 배우고 따라가며 이어가야 함을 다짐했습니다. 혹여 어떤 이들은 ‘사모회가 왜 필요하지?’라며 의구심을 던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정말로 소중합니다. 예전에 전국사모회에서 완도에 배를 타고 근처 섬들을 찾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진도와 청산도, 거문도, 여사도 등 험한 바닷길을 마다 않고 외진 곳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목회하시는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을 만나 위로하며 도전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