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인지봄비인지 알 수 없게비가 내린다겨울이 끝나기 전눈이 되지 못한 비가서둘러 내린다 지난 겨울눈으로도씻어내지 못해더께로 앉은 먼지바람까지 불어가며말끔히 씻어낸다 그 틈에 겨우내숨죽이고 지내던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얼었던 땅도풀리고 있다 비를 맞지 않아도사람들 마음까지풀리지 시작했다얼음처럼 굳었던 마음이녹고 있다 눈이 되지 못한 비가정말 큰일을 하고 있다 시인은 한국무인협회 강원지부장을 역임했으며 춘천교회 원로목사로 섬기고 있다.
살아온 세월과 인생들을 돌아보며 현인들이 외친 말도 많다. 인생의 부귀영화도 남가일몽(南柯一夢)이며,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초로인생(草露人生)이요 일엽편주(一葉片舟)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 했던가? 유교에서는 살아있는 것은 땅에 붙어 있는 것이요 죽는 것은 돌아가는 것(生而寄也 死而歸也)이라 했고, 불교에서도 살아있는 것은 한조각의 뜬구름이요 죽음은 한편의 뜬 구림이 사라지는 것(生而一片浮雲起 死而一片浮雲滅)이라 했다. 아래의 인생에 대한 회고의 글을 본다. 나무는 가을이 되어 잎이 떨어진 뒤에야 가지와 무성하던 잎이 다 헛된 영화였음을 알고, 사람은 죽어서 관 뚜껑을 닫기에 이르러야 자손과 재화가 쓸데없음을 안다(홍자성). 인생은 허영과 죄악 속에서 태어난다. 아침 버섯처럼 이 세상에 나와 그 머릴 곧게 공중으로 치켜들고 얼마 안 있어 먼지로 화하여 없어진다(테일러). 이슬로 태어나 이슬로 사라지는 이내 몸, 인생의 어려운 물결도 꿈 또한 꿈이러니(토요토미 히네요시). 구슬픈 싯구로 내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공허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잠자는 영혼이 죽은 것이기에 사물은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거늘(롱 펠로).…
나이 더하고 땅거미 내려앉을 때쯤이면 죽도록 안간힘 쓰던 욕심이랑 끝내 이루지도 못한 작은 꿈마저 다 내려놓고 나지막한 산자락에 작은 집 짓고 하얀 구름이나 머물다 가고 밤이면 초승달 둘러싸 속삭이는 강물 속 별들의 이야기나 들으며 가슴 깊은 곳 숨겨둔 미움도 사랑도 다 잊고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실 때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초여름 고향집 처마 밑 담장에 기대어 함께 노래하던 서둘러 하늘나라 간 얼굴빛 하얀 누이를 그리며 살자 했지요 기운내린 소리면 누가 뭐라나요 우리에겐 여전히 감사의 노래가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는데 시인은 ‘한맥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시집으로는 ‘바다로 가지 못한 어부’외에 다수가 있다.
‟할 말만 하세요”, ‟발언권 없어요” 기쁘게 참석한 총회에서 수 없이 들었던 말이다.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하는 회의에서 진행자나 대의원 모두 할 말은 많고 다 할 수는 없어 실랑이를 벌이며 했던 모습이었다. 어디 총회만이겠는가? 그러나 작년 총회를 시작하며 “퇴장명령”에 대한 의장의 제안에 회원들이 기쁘게 받아 들였고, 총회를 진행하며 조금이라도 목소리가 높아지면 “퇴장명령”이 내려질지 몰라 소리를 낮추는 광경은 경직되는 회의 분위기에 웃음을 나게 만들었다. 감히 퇴장명령의 권한을 부여 받은 의장 앞에서 큰 소리 칠 수 있겠는가? 총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다시 되새겨 보며 웃음 짓던 말 “퇴장명령”, 그리고 종종 머리에서 되새겨지는 말이다. 회의에 방해가 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다면 가차 없이 내려질 권한이 나라 국회 회의조차 난장판을 만드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해 보였다. 잘못 사용되는̒개인주의̓나, ̒자기 피알(P.R.)시대̓라는 말이 생겨서 독불장군처럼 자라나 자기의 의견만 내세우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기 쉬운 현대에서, 함께 협력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기 위해 자기 것을 양보하고 어느 땐 손해도 봐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회의에서
초등학교 1학년때 울릉도 저동 내수정의 바윗돌로 된 바닷가에서 미끼를 잘 뀌어준 삼촌의 도움으로 15마리 정도 잡은 4,5학년 형들보다 나는 갑절로 28마리의 우럭을 잡은 경험을 일평생 생생하게 잊을 수 없어 목회사역에도 사람 낚는 어부의 마음을 간직해 왔었다. 고기 잡는 데는 낚시대와 낚시바늘 그 이상이 필요하다. 거기에는 조그마한 기술도 있어야 한다. 고기 잡는 현명한 삶은 잡기를 원하는 고기의 습성들을 연구한다. 그런 다음 그는 조심스럽게 올바른 미끼를 선택하고 그의 낚시에서 능란하게 얼레를 당긴다. 예를 들어, 고물거리는 지렁이가 맛있는 후식이란 생각을 우리는 갖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고기에게 그것은 매력적으로 맛있다. 다음과 같이 통용되는 판매 전략이 있다. “존스(Jones)씨가 무엇을 살지 알기 원하다면, 당신은 죤스(Jones)씨의 눈을 통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고기 낚는 영적 어부도 전도대상자의 영적 욕구와 기타의 내면을 잘 꿰뚫어 보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복음을 잘 전해야 한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논에서 일하던 농부가 땅이 갑자기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깜짝 놀라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먼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에 바닷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라고 예수님은 선언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목사님, 좀 도와주세요!” 어느 주일 남루한 옷을 입고 술이 덜 깼는지 말도 또렷하지 못하고 얼굴이 검푸른 50대의 새 얼굴의 사람이 예배 전에 일찍 찾아와서 나를 만나자고 했다. 그는 구룡마을에 사는데 먹고 살기가 힘들어 찾아왔으니 제발 좀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언젠가 성탄절을 앞두고 극동방송국의 행사에 초대되어 갔더니 구룡마을 무허가 주택의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하고 있어 빈손으로 갈 수 없어 갖고 간 봉투를 김 목사님의 선한 뜻대로 사용되게 전달한 일이 기억나서 예배 후에 박종수 씨를 위해 헌금함에 도움의 손길을 광고했더니 개척교회 가난한 성도들이지만 15만원이 되어 기도하고 잘 전달해 줬다. 그런 후 매주일 예배에 일찍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하여 예배 후에 우리들이 개인적으로 도우다가 교회의 구호헌금에서 도왔다. 2년째에는 매주 돈 받으려 나온 걸인이 성수주일 교인이 되더니 한 달에 두세 번씩 왔다. 아마도 돕는 액수가 차츰 줄어드니까 예배 끝
비단 옷을 사드리는 것보다 산해진미 음식을 해 드리는 것보다 대궐 같은 집을 지어 드리는 것보다 눈물이 고이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인 것을 나는 효도의 길 잃고 있다 하늘을 보고 있다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초원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시집으로 '만경강 유역에 서서'와 '화포리 연정'이 있다.
-노부부 간의 침상 매너- 어떤 신혼부부는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신혼여행지에서 이혼수속을 밟지 않나 몇 년 살아온 젊은 부부 사이에 금이 간다고 하지 않나, 70~80 노령의 황혼이혼도 이따금씩 있다고 하지 않나 등 부부관계가 많이 흔들리고 있는 현 시대상을 보고 있자니 결혼생활 60여년을 지나고 있는 팔순 노목(老牧)이 약간은 치매성 걸린 듯한 인상을 받을지 몰라도 후배들에게 할 말은 하고 떠나야 할 것 같아서 횡설수설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들이 다 알고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에세이 형식보다는 조항별로 느낌을 제시하고자 하는 바 새로운 장르의 에세이로 봐달라는 애교도 부려본다. 첫째로, 합방(合房)을 하라. 분방(分房)은 안된다. 각방 쓰는 예가 허다한 부부들이 있는데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부분은 스킨십(skinship)이 있어서 하트십(heartship)이 일어나고 그 때 골인하는 것이 바디십(bodyship)이다. 둘째로, 부부간에 침상에서 그날 마감기도를 했으면 한다. 분명 단잠을 잘 수 있다. 셋째로, 부부간에는 결콘 안면(安眠) 방해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자주 가는 화장실도 고이 이불을 제쳐놓고 도적 침입하듯 뒷발꿈치로 소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는 예수님의 첫 번 외치신 말씀에 젊은 목회 시절 은혜 받아 부흥회를 인도할 때는 거의 언제나 “회개에서 천국”이란 주제로 집회의 첫 시간에 소리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옛날 선지자나 침례요한이나 예수님의 제자인척 흉내를 잘 내었던 것이었다. 요즈음도 사람들은 아마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싫어하고 꺼려하며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게 느껴진다. 그래서 고소한 얘기나 설교로 웃기는 코미디 출연으로 인기를 얻는가? 왜냐하면 요즈음뿐만 아니라 67년 전 중학교 1학년 때 교회 나갈 때부터 저나 다른 학생들이나 어른 교인들도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라는 설교를 귀에 달콤한 귀뚜라미 소리보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아왔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라고 대답해 아내에게 떠넘겼고,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
“지금부터 신랑 홍용표군과 신부 전미숙양의 결혼예식을 거행하겠습니다.” 1981년 11월 11일 오후였다. 시간이 지나자 신랑 신부는 상기된 얼굴로 예식을 재촉했고, 나는 주례사를 40분 넘게 제일 길게 했다. 신부를 데리고 입장하여 신랑에게 인계하고 곧장 나간 사람은 알고 보니 전세방 주인이었다. 신랑의 친구인지 직장동료로 보이는 몇 사람이 뒤쪽에 앉아 있었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줬다.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날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결혼주례를 간곡히 부탁했다. 옛날 첫 번 주례처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주례를 쾌히 승낙했다. 일단 새신자라서 산 밑 동리의 집을 찾아갔더니 전세방 살림을 초라하게 했고 이미 아기가 있었던 상태였다. 나의 목회 원칙대로라면 이런 경우에는 교회당에서는 결혼식을 허용할 수 없었다. 예전에 S씨의 경우와 같이 예식장에서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그들의 사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 예식장은 정말 힘들겠다 싶었다. 이 신랑 신부의 사연을 듣고 교회당에서 주례를 허락하게 된 또 다른 동기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인하대학 재학 중에 눈이 맞아 사랑에 빠져 양가 부모들에게 미움을 받아 쫓겨났다. 하라는
“기적은 갓난아기 교회의 강보이다”라고 풀러는 교회사에서 말했다. 괴테는 그의 파우스트에서 “신앙의 가장 사랑스런 자식은 기적이다”고 했다. 에머슨은 그의 처세론에서 “기적은 기적적인 자연계에서 일어나지 수학자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제레미 테일러의 성스런 죽음에서 “그처럼 많은 불은과 적의 가운데서도 인간을 살아남도록 하는 것은 인간을 창조하는 것만큼 큰 기적이다”고 말했다. “기적이 없었더라면 예수를 믿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았으리라”고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에서 말했다. 다윗은 그의 시편 40편 5절에서 이런 찬미의 기도를 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1995년 BWA 제17차 대회를 마치고 홍순표 선교사의 초청으로 브라질 상파울로교회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귀국길에 LA의 로버트 슐러 박사가 섬기는 크리스탈 교회에서 예배하고 나오면서 그의 소명에 대한 읽은 글이 떠올랐다. 슐러 목사가 네 살이었을 때 삼촌이 중국을 다녀와 그의 집인 아이오와 목장을 찾아오셔서 문 앞에서 만났을 때, “네가 로버트이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예수님은 반문하셨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마17:17)라고 예수님은 당시의 세대도 질타하셨지만 재림의 때인 종말 세대에는 믿음을 보기 어렵다고 예언하셨는데 67년전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보다 점점 믿음이 식어지고 나태해 해이해지는 것을 54년간 목회현장에서와 지난 35년간 80여 나라의 137회 외국 선교 여행에서도 보아왔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 하였으리라”(눅17:6) 반실불수 다리 치유 나는 나이 28세에 학업과 목회를 중단하고 국방의 의무를 위해 고향으로 가다가 사람들의 소개로 김천에 내려 용문산 기도원에 올랐다. ‘믿음’방에 투숙했는데, 나와 같이 작은 방에 합숙한 이성환 씨는 반신불수로 왜관에서 왔는데 방앗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 말로는 여자관계로 미군과 싸워 넘어져 그 결과 팔은 오그라졌고 다리는 굽힐 수 없는 편 다리가 됐다고 했다. 군 입대를 준비를 위해 한 주간 금식기도를 하려고 올라왔는데, 그가 자꾸 예배하고 기도해 달라고 해서 첫날은 지은 죄를 회
“모든 천사들을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얻은 상속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히1:14) 성경엔 천사들의 활동이 나타나 있는데, 특히 예수님과 천사들의 관계는 많았고 신구약 성도들에게 천사 곧 주의 사자와의 도움과보호, 인도와 역사가 많은데 그중에 몇 가지를 살펴보고 오늘 우리도 천사의 섬김을 받아 훌륭한 후사 곧 상속자로서의 삶과 복음전파에 동역해야겠다. 고장없이 선 트럭 성경 반포 선교의 실화로 무슬림 국가인 이란의 산골에 처음으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성경책을 구하면 예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들었다. 어느 날 밤 한 신자가 꿈을 꾸었는데 그는 말하기를 내일 고속도로에 내려가면 그에게 성경책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지나갈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그는 마을에서 믿는 사람들에게 성경 살 돈을 조금씩 모아 갖고 산을 내려가 그 지역을 관통하는 고속도로에 이르러 바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는 한 트럭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들이 움직이지 않아 아무리 해도 핸들이 꿈적도 하지 않았으나 가까스로 어떻게 핸들을 움직여서 길가에 차를 세웠고 내려서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살피게 되었다. 그런데 큰 바위에 앉아 기다
포천 양로원에 사역하는 김익수 목사 따라 약속대로 15분 설교를 마쳤는데 휠체어에 앉은 어르신네들의 반수쯤 비스듬히 기대어 졸고 있었다. 예배 후 2층에 올라가니 침상에 누운 90세 전후의 노인들이 음식을 못 먹고 링겔에만 의지해 연명하며 신음하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렸다. 인생은 生老病死라고 어려서부터 들었으나 에녹,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다윗, 천수를 누린 사도 요한을 위시한 다른 사도들처럼 장렬한 순교의 삶이 떠올랐다. 응급환자실을 방문했을 때 그들의 신음소리가 노래처럼 흘러나옴을 듣고 환자들의 마지막을 감지할 때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주 왕하 5장의 나아만의 설교를 하면서 교만을 내리고 겸손히 요단강에 7번 목욕해 어린 아이의 살같이 문둥병의 치유 받은 기적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 실행한 그의 믿음과 순종의 열매였음같이 지금도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믿음과 순종이라 생각되어 아래의 말씀을 나누게 된다. 지난 50여년 목회사역 가운데 나의 병고를 돌이켜 보면서 병자들의 고통과 슬픔, 낙망과 죽음의 그림자에 신음하는 모습에 동정과 불쌍히 여김이 저절로 발산되고 어떻게 저들을 치료하고 주님의 기적의 능
살아갈수록 좀 불편한 것이 아주 편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고 이 사실을 타인들에게 일종의 진리나 되는 것처럼 말해 주고 싶었다. 우리의 생활에 불편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못 가졌기에 불편하기보다는 가졌기에 더 불편하다는 것이다. 어느 스님이 말했던가. 그건 누가 말했던 상관없다. 무엇을 가졌기에 부자(富者)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안 가졌기에 부자가 된다는 것인데 듣기에 따라 알쏭달쏭하다. 그러나 성경이 이 말의 의미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그렇다. 풍부한 소유보다 풍성한 자기가 돼야 하는 것이겠다. 법정 스님의 말이다. 또 이런 말의 정확한 해명은 성경이 말하고 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나에게는 우선 스마트폰이 없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총회 규약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교단 안팎에서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총회규약 수개정 공청회가 침례신학대학교 페트라홀에서 열렸다. 지난 4월 10일 열린 공청회는 규약 개정에 관심 있는 총회 가입교회 대의원들의 참여 열기로 뜨거웠다. 이날 공청회 참석자들은 규약이 현재 우리교단의 현실과 맞지 않는 곳이 있고, 미래를 준비하는 요구가 커지는 시점에서 모여서인지 개정에 대해 전체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로 진행됐다. 규약 개정의 필요성·방향·주요 내용 등을 다룬 공청회는 총회 규약 수개정안과 관련해 6년 만에 열린 공개 토론의 장이었다. 이날 진행은 총회 개정안에 대한 규약개정위원의 설명에 이어 참석자들의 질문 및 토론 등으로 이뤄졌다. 총회는 지속적으로 대의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충분히 수렴한 뒤, 규약 개정안을 보완해 임시총회에서 상정안건으로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81년 총회 규약이 개정된 이후 37년 동안 부분적인 수개정만 이뤄진 상황에서 이번 총회 규약 개정은 변화하는 총회와 지방회, 그리고 개 교회 현실에 맞도록 개정 방안을 마련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현재 우리교단 총회규약 수개정 절차와 관련해 총회규약 부칙 제29조 1
지난 4월 3일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이 다시 가결됐다. 동성애를 옹호·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자유한국당 도의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뜻을 모았다.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인권조례 폐지는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로 향후 타 지방자치단체에 어떠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지 교회입장에서 그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충남지역 여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여론이 형성되고 충남도가 대법원에 제소하는 문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승전가를 부르기는 이른 시점이다. 지금은 힘겹게 막아냈지만 언젠가 동성혼이 합법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인 미국이 우여곡절 끝에 동성혼을 합법화시켰다. 지난해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의 동성혼 합법화 찬성 수치는 66%에 달한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나라 또한 동성혼 합법화의 그물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동성애 반대운동을 주도하는 한국교회의 방식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해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가 동성애축제를 앞두고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자신들이 그나마 맞불집회도 열고 반대 목소리도 내니 서울시가 부담을 느끼고 서울광장 사용 허가를 망설이는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4월 1일 부활주일에 교회마다 지역마다 세대마다 또는 교파 간 연합하여 드린 예배에서 말씀과 찬양, 기도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였다. 사순절과 부활주일을 거룩하게 지킨 한국교회와 성도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마태복음 28:19)”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고 지상명령을 내렸다. 지상명령은 복음을 온 세상에 편만하게 전파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내가 서있는 모든 곳이 사역지이고 내 삶의 현장이 바로 전도(선교)지가 돼야 한다. 그리고 효과적인 복음 전파는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을 통한 것일 수밖에 없다. 주님의 제자들이라면 365일 지상명령에 충성해야한다. 하나님의 형상과 교제를 회복한 성도들은 교회의 부흥을 꾸준히 인도해 왔다.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통해 이뤄져 왔다. 기독교 월간지인 ‘목회와신학’(4월호)은 최근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국내 기독교인 500명과 목회자 300명 등 800명을 대상으로 신앙실태에 대한 온라인
주님이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다시사신 부활의 새아침이 밝아왔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주간 등 사순절을 보내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승리의 부활 아침을 소망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3~14)이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인에게 크나큰 의미를 갖는다. 바울이 강조한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더욱 확신에 갖고 복음 전파와 주님의 사랑을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 전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들은 부활의 참된 기쁨을 찾아보기 힘들다. “부흥이 안된다” “성장이 어렵다” “교회 인원이 점점 줄어든다” 등 교회의 현실에 대한 위기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프로그램의 부재를 탓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예전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교회의 큰 적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지금은 다 지난 네오막시즘에 대한 두려움이 한국교회를 휩쓸고 있다. 내용을 보면 다양성을 중시했던 포스트모더니즘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름은 어찌됐든 다르다. 그런데 과연 한국교회의 위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은사님 한 분으로부터 “이 목사 종교인 과세에 관한 글을 써볼 생각이 없나?”고 전화를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 많이 망설였다. 왜냐하면 일제 강점기에 재산을 몰수당하시면서 고문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시고 짐승처럼 울부짖으셨다던 조부와 또 공직에 계시면서 친구에게 서준 빚보증 때문에 파산했던 선친의 아픈 추억과 조부의 유언으로 목사가 되셨던 선친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고 보니 세금을 내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세금을 내지 않는 다는 것이 무슨 특혜 같지만 성장과정에서 정상적인 국민의 권리를 별로 누리지 못한 절반만의 국민이었다. 대부분 목사들이 세금을 내지 않은 이유가 두 가지 문제 때문인 것 같다. 첫째, 국가가 관습적으로 종교지도자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던 것이고 둘째, 개척교회나 농어촌 교회의 열악한 현실은 세금 낼 기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목회자들이나 종교인들에게 과세를 면제해 준다는 법적 제도적 약속을 한 적이 없다. 우리민족이 한반도에서 살아온 이래 종교와 종교지도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한 역사적 근거가 없다. 다만 조선이 숭유억불 정책을 쓰면서 불교에 조세를 부과한 예는 있지만 조선의 억불정책에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