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따라 꽃은 피고 열매를 맺나니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물들이 어찌 이리도 어여쁠까요. 봄이 되니 여기저기 그저 감탄사가 연거푸 나옵니다. 그러나 꿈에 부풀어 씨앗을 정성스레 심는다고 싹이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더군요. 꽃마다 심을 시기가 있고 개화의 시기가 있고 열매 맺음의 시간이 있음을 화초를 통해 깨우쳤답니다. 제가 보기에 하도 예뻐서 초봄에 이르다 싶었지만 미리 씨앗을 심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행여나 싹이 나오나 매일 매일을 들여다보아도 싹이 틀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패했다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얼마있다 새롭게 또 씨앗을 심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어느덧 떡잎이 쏙 나오더니 연한 녹색의 이파리가 쑥쑥 자라나 소담스레 넝쿨을 뻗으며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꽃은 좀 더 기다렸다 씨앗을 뿌렸어야 했나 봅니다. 봄이 되면 자연적으로 떨어졌던 씨앗들이 돌 틈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요, 그중에 어떤 씨앗은 싹이 나긴 하지만 떡잎만 나온 채로 가운데 싹은 자라지 않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자주 내리던 빗물에도 부르트지 않고,…
자기만 호의호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멋진 집을 지어드리고 싶었던 다윗, 그 마음을 나단 선지자에게 전한다. 나단이 기쁜 마음으로 저녁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온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5), “내 집 짓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한 집을 짓지 않았다고 꾸중하신 적도 없고, 집 지어달라고 부탁하신 적도 없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멋진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생각한 다윗이기에 하나님은 오히려 다윗을 위해 집을 지어주겠다고 하신다(11~12).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래서 언약을 맺으신다. 핵심은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16절), ‘집’이라는 단어로 하나님과 다윗이 서로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는다. 히브리어로 ‘바이트’(בַּיִת), 헬라어로 ‘오이코스’(οἶκός), 이 단어가 7장에 15번은 나오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던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다윗은 하나님 앞에 앉아 감사기도를 드린다(18),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하기, 나단을 통해 주신 다윗과 그 가문
아시아인 최초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30·토트넘)이 올 시즌 소속팀과 자신에게 찾아온 놀라운 결과에 대해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손흥민 선수가 한국인으로서 EPL의 득점왕에 오른 것은 참으로 전세계에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마음을 시원케 하는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손흥민 선수가 전세계가 인정하는 위대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 손옹정 감독의 헌신적인 지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손흥민의 아버지이자 스승 손웅정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수오서재)’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손흥민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었던 비밀스러운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손 감독은 “나는 나의 축구 이야기가 부끄럽다. 축구를 모르면서 축구를 했다. 나는 ‘마발이’ 삼류 선수였다. 공도 다룰 줄 모르면서 공을 찼다”고 자신의 현역 시절에 박한 평가내렸다. 빠른 발 덕분에 버텼지만 기본기와 기술이 부족했고, 독기 품고 악바리 같이 몰아 붙였지만 축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였다고 했다. 그는 아킬레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프랑스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 때에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군인들이 숲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봤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긴 나머지 상사 한 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줬다. 어머니는 지체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눠서 세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라고 했다. 이것이 어머니이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에게는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어머니이다. C.S. 루이스 교수는 아주 명쾌하게 우리의 사람된 모습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 의해서 양육되고 필로스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고 했다. 우리는 다같이 ‘사랑’이라고 같은 말을 쓰고 있다.…
다윗이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이 ‘예루살렘 정복’이다. 한 번도 정복한 적이 없는 여부스 사람들의 땅, 아브라함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약속 성취를 목격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다윗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받은 이후 최초로 예루살렘을 정복한다. 천 년 만에 언약이 성취된 것이다. 사실 세월이 지나면서 마치 하나님이 언약을 잊으셨거나 취소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언약 성취의 언저리만 맴돌던 이스라엘이 드디어 천 년의 언약이 서려 있는 이 ‘언약의 땅’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일까? 다윗이 예루살렘 정복 이후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하나님의 법궤였고,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에 모신다. 그리고 너무 감사해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춤추는 예배자가 되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며 ‘제국의 아침’을 맞이한다. 하나님은 그 다윗에게 언약을 통해 마음껏 복을 부어주신다. 영원히 지속될 복, 이름하여 ‘다윗 언약’이다. 본문은 사무엘하의 하이라이트, 다윗 왕의 진정한 대관식과 같은 말씀이다. 로빈슨(Haddon Robinson)은 사무엘하 7장을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이라 했고,
우리 교회 이름은 예사랑교회(한명국 목사)이다. 구성원은 조선족으로 평일에는 모두 직장에서 일을 한다. 그 중 사무원도 있으나 대부분은 육체노동 종사자들이다. 새벽기도가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 단체 카카오톡을 운영하며 긴밀하게 기도하고 있다. 모두가 아멘으로 화답해준다. 생각만 해도 생각하기 싫은 코로나19의 시작 때, “어둔 밤 시작되리니”라는 찬송을 부르며 옛 선지자들의 고통을 생각했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가고 3개월이 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으며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기 어려워지자 한 성도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 예배를 드릴 수 없어 내 마음이 심히 우울하네요.” 그러자 그 성도 입에서는 이런 말을 기대했었다. “그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어서 우리가 정상적 예배를 드려야지요.” “코로나가 풀려야지요.”라는 대답에,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때가 때이니 만큼 모든 것이 움츠려 있을 때, 먼저 그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이 생겨야 하는데, 쉬운 것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훌륭하고 좋은 간증을 듣고 한 주간 동안 퀴즈 문제로 내어 시상금을 주기로 했다. 10만원, 5만원, 3만원, 1만원으로 시상을 매주하니,
반석군인교회는 중부전선 최전방 철원에 소재한 육군 보병 대대교회입니다. 2017년 교회진흥원(요단출판사)을 사임했는데, 마침 군선교 정년퇴직을 하시는 황인정 목사님의 후임으로 군선교사가 됐고 군복음화 후원회 이상로 목사님과 포도나무교회 여주봉 목사님께서 이끌어주셔서 ‘새물결선교회 청년선교’의 파송을 받았습니다. 우리 부대의 애칭은 초산진격대대로 6.25전쟁 당시 선두로 북진해 압록강변에 태극기를 꽂고 물을 수통에 담은 무공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코로나 상황 이전에는 용사 평균 125명, 간부 및 가족 15명, 어린이 6명이 주일 예배에 출석했습니다. 아울러 수요 군종병 교육과 토요 성경공부에도 평균 8명 정도가 참석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부대출입이 막히면서 온라인으로 전환되자 평균 30명 정도가 참여하고, 전역으로 인해 점점 줄어 15명 정도가 비대면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정이 어렵지만 스마트폰을 활용한 온라인 소통과 교육(기초성경공부 등 영상시청)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지난해 12월 대면예배가 열렸을 때 용사 11명, 간부 2명으로 급감했습니다. 교회부흥과 예배회복을 위해 군종찬양팀을 정비하고 성탄 및 송구영신 예배, 새해 기도제목 나누기, 올해 말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덩샤오핑은 1962년 경제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흑묘백묘론(黑描白苗論)을 주장했습니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게 제일이라며, 불합리한 평등보다 합리적인 불평등을 우선시하는 선부론과 함께 획기적인 경제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집단농장의 사영화를 통해 주인의식을 고취해, 중장기적 영농방법이나 종묘의 개량없이도, 그해의 생산성을 4배 이상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뎡샤오핑의 경제 우선주의는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으로 3000만 명이 굶어 죽는 대재앙이 터지자, 농업생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뎡샤오핑은 가난으로 인민을 굶어 죽게 만드는 사회주의 노선은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민이 잘살 수 있는 농업생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윤 동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주장을 펴, 훗날 문화대혁명 때 주자파(走資派)로 몰리는 빌미가 되어,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노련한 정치력으로 4인방을 비롯한 정치 우선주의자들의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에 성
저는 늘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 따라 항상 기도하는 소녀, 받은바 재능으로 항상 하나님을 기뻐 섬기는 소녀 등으로 불리며 부모님과 집사님들의 칭찬 속에 성장했습니다. 이런 저를 하나님이 기뻐하셨는지 방언과 신유의 은사와 영적인 리더십까지 주셔서 저의 교회 활동은 언제나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만약 제가 목회를 하면 당연히, 그것도 아주 잘 할 줄 알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를 외치며 교회를 개척한 지 만 1년이 지나자 교인수가 100명이 넘었습니다. 제가 받은 은사들을 교인들과 경험하며 열심을 다해 기도와 심방으로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고자 분주히 오가던 나날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열심을 인정하시고 더 많은 축복을 부어주시리라는 확신과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어느 날 문득 저는 제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주님께서는 “너는 행복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행복하기는커녕 우울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충격은 저와 남편과의 목회 방향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거룩함으로 이끌고자 했던 남편의 사역 방향과 무엇보다도 은사 중심을 앞세우던 저는 갈등할 수밖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2020년 7월에 전입해 지금까지 약 1년 8개월 동안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군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15보병사단은 대한민국 중부전선의 전방을 담당하며 제가 사역하고 있는 여단은 최전방 지역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용진교회와 임마누엘동도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제게 맡겨진 장병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찾아가 따뜻한 격려와 기도를 하며 성실히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군 선교활동 중 “전방부대 군종활동”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교회사역 매주 제가 담임하고 있는 2개교회와 소초교회에서 기독 장병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단본부뿐만 아니라 산정산에 있는 부대와 최전방에 있는 부대까지 찾아가는 예배를 통해 군 장병들과 함께 예배의 감격과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곳곳에 예배를 사모하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거리가 멀어 교회로 나오지 못하는 장병들을 위해 제가 직접 소초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이마저도
2016년 1월 20일, 그 해 겨울 중 시리고도 추웠던 그 날,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남편 박정재 목사를 주님께 먼저 돌려보내야만 했다. 그의 나이 마흔이 되던 해였다. 눈물도 나지 않던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경험해야 했던 어려움은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집에 먹거리가 마땅치 않아 어린 자녀들과 함께 식당으로 나섰던 그 날의 감정과 그 날의 밤거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운전대를 잡았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고 누군가에게 컨펌을 받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늘 남편의 의견을 묻고 그의 결정에 맞췄던 나는 밥 먹을 식당 하나 결정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남편 없는 삶을 시작하는 나에게 닥쳤던 첫 번째 어려움이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어린 자녀들과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염려보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부터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그렇게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을 때, 교회 성도님들과 알지 못하는 분들을 통해 하나님은 나와 우리 자녀들을 위로하시고 먹이시고 입혀 주셨다. 어찌나 그 사랑이 크던지 ‘하나님! 도대체 저에게 왜 이렇게 까지 해 주세요?’라고 할 정도로 넘치도록 큰 사랑을 부어 주셨다. 특별히 ‘요
필자가 초임 군목으로 부임했을 당시가 기억난다. 기억하기에는 근무하는 부대의 지휘관께서 1984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군인 신분으로 수상 인터뷰 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라는 말을 하는데 성직자인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이 화두를 가지고 군인교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느끼는 또 하나의 화두는 군인교회란 무엇인가였다. 1980년대만 해도 민간교회와 군대교회를 구분해 ‘군대교회도 교회인가?’라는 약간의 비하가 섞인 듯이 바라봤고 또 열등한 교회인 것처럼 느끼는 분위기가 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고위 지휘관이나 군인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유야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그만큼 군대 내에서 교회가 성공적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장벽 밖에서 장벽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써 통제와 규율의 익숙하지 않은 군 문화에 적응하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겪는 위기는 신앙적 위안을 찾는 좋은 기회가 된다. 특별히 신병훈련 과정에서 점점 미래의 불안, 사회적 격리, 수용 받지 못한 존
요한복음 10장 3절에서 주님은 “문지기가 양을 위해 문을 열고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를 가리켜 ‘문지기’(Gate Keeper)라고 하신 게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문지기는 말 그대로 문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목자들이 자기 양떼가 들어있는 문을 제대로 잘 지켰어요 지금처럼 혼란스럽고 방황을 하는 양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문지기 노릇을 바르게 못한 결과라는 것을 솔직히 부끄럽지만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지기가 왜 필요하냐면, 양을 노리고 다가오는 늑대와 이리 떼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마7:15) 주님 당시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영적 이리 떼가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목자된 우리가 문지기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희생 당한 양 떼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늑대나 이리는 혼자 다니지 않습니다. 꼭 떼로 몰려 다닙니다. 영적인 이리 떼도 동일한 특성이 있습니다. 갈수록 다양한 이리 떼가 어리고 순진한 양들을 공격하고 노략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수록 문지기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통치권 확립 작업을 끝낸 다윗은 수도에 법궤를 모셔야겠다고 결심한다. 시온을 그저 자신이 통치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경배받으시는 곳으로 삼고 싶었다. 다윗은 이것을 자신의 중대한 사명이자 거룩한 임무로 여겼다. 그만큼 예배를 기뻐한 것이다. 사고로 운반작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다시 추진해 결국 법궤를 모시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법궤가 도착했을 때 온 힘을 다해 춤을 춘다(14). 그는 춤꾼이 아니다. 평생 춤을 춘 기록이 여기밖에 없다. 골리앗을 죽였을 때도, 왕이 되었을 때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도 춤을 추지는 않았다. 그런 다윗이 춤을 춘 것, 그는 온 몸으로 예배한 춤추는 예배자였다. 법궤 방치? 다윗성으로 모셔라 사무엘상 7장 이래 실종된 법궤, 사울 왕 통치 기간에 법궤에 대한 언급이 단 한 번도 없다. 하나님의 상징인데 사울 왕은 최소한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예루살렘 서쪽 11km쯤 떨어진 제사장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사울은 30년 이상 법궤를 방치했다. 그만큼 예배에 관심이 없었다. 반면에 다윗은 법궤를 국가의 최고 보물로 여긴다. 그래서 법궤 모셔오는 것을 하나님 모셔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길이가 2규
겨우내 순금 집사님이 보이지 않았다. 다섯 시만 되면 어김없이 새벽기도회에 나왔는데 혹시나 ‘치매증상이 더 심해지신 건 아닐까?’ ‘하루 종일 다니시던데 어디서 삐끗하신 건 아닐까?’ ‘고부간에 늘 아슬아슬, 티격태격 하시더니 막내딸 집으로 가신 건 아닐까?’ 그렇게 보이시지 않던 집사님이 겨울이 한참 지난 5월이 되어서야 대문 앞에 멍하니 서 계신 모습을 뵐 수 있었다. “집사님 그동안 너무 궁금했어요. 어디 갔다 오셨나요?” “예!” 짧게 대답만 하시고는 무표정하게 서 계시는 것이었다. 아니 영 딴 사람 보듯 집사님이 저를 완전히 몰라보고 계셨다. 열댓 살부터 마음 속에 쌓은 한을 그렇게 눈물 콧물 범벅으로 풀풀 풀어내시더니 이젠 전부 다 풀어내신 건지 모르겠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저보다 훨씬 총기가 좋으시던 분이 갑자기 우두커니 먼 산만 바라보는 바라기가 되셨던 것이다. ‘주님! 순금 집사님 꽃 피는 봄에 가길 소망하셨는데, 그것이 집사님 소원이셨는데 주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하긴 주님 생각은 우리 생각과 영 다르시지요? 그런데요, 그 집사님 소원은 꽃 피는 봄날이었어요.’ 한 달 여 지나 6월 어느 날, 부서져라 ‘쾅쾅’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
교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예배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정부 지침으로 대면예배가 어려워지고 행정조치로 인해 예배당이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던 팬데믹이 극에 달했을 때 많은 교회들은 예배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배 회복을 위한 자유시민연대’(예자연)는 서울시장을 상대로 대면예배 금지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했고 최근 6월 10일 1심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대면예배 금지 처분은 교회가 음식점 등과는 달리 생산 필수시설이 아니라는 점에 근거해 집합을 금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회는 교인들의 심적 위안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증오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등 안정된 정신 건강을 지원하는 순기능이 있다”며 “장기간 시행된 거리두기 등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우울증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교회가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이 생산필수 시설에 비해 열등하거나 중요도가 덜하다고 볼 타당한 이유는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감염 예방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이를 통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비례의 원칙이나 평등원칙에 반해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그동안 교회 예
오는 7월 16일, 서울광장이 음란과 죄악의 장소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한국교회 내에서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리는 동성애축제(퀴어축제)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시민위)는 지난 6월 15일 회의를 통해,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신청한 서울광장 사용 신청 안건을 수정, 가결했다. 시민위는 애초 조직위가 신청한 행사 기간(7월 12∼17일)을 7월 16일 토요일 하루로 줄이고, 신체 과다노출과 청소년보호법상 금지된 유해 음란물 판매·전시를 안 하는 조건으로 광장 사용 신청을 받아들였다. 시민위는 무대 설치 등 행사 준비 시간을 주기 위해 행사 전날인 7월 15일 오후부터 조직위가 광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동성애축제가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것은 2015년부터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오프라인 집회가 금지된 기간을 제외하고 불허된 적이 없이 매번 시민위를 통해 사용신청이 통과됐다. 지난 2019년 당시 서울시의 다수의 공무원들이 서울광장 동성애 축제를 반대하며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서 ‘서울광장은 시민의 건전한
말씀과 기도의 축제인 ‘라이즈 업 뱁티스트’ 침례교 연합기도회는 지난 6월 3일 세종꿈의교회(안희묵 목사) 집회를 끝으로 12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100만 뱁티스트 전도운동과 함께한 이번 연합기도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교회와 성도들이 대면과 비대면으로 동시에 적극적인 참여로 말씀을 회복하고 기도로 은혜받은 집회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같은 연합기도회가 열릴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코로나19로 인해 제한적인 교회 사역 가운데 나온 돌파구였다. 교회의 모임이 제한을 받고 대면 모임이 사실상 통제되면서 대규모 집회를 치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온 대안이었다. 그리고 이 대안은 지난해 12일 동안의 연속된 집회를 통해 침례교회가 ‘기도하는 교단’ ‘말씀으로 충만한 교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대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특별히 2022년 ‘라이즈 업 뱁티스트’는 주요 지역의 거점교회를 선정하고 인근 지역에 속해 있는 침례교회가 함께 연합으로 참여하는 자리로 마련하자는 취지로 10개 교회에서 집회가 열렸다. 교단 안팎에서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이 말씀 증거자로 나서 침례교회와 한국교회를 위해 회개를 촉구하고 영혼 구령을 위해 교회 회복을 위해 한
2년 남짓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교회는 심각한 목회 사역의 타격을 입었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제되고 일상의 회복이 이뤄지면서 외관상으로는 정상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교회의 완전한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와 기아대책 등이 지앤컴리서치(대표 지용근)에 의뢰해 조사한 목회자와 교인들의 현장 예배 참석에 대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3명만이 현장 예배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지앤컴리서치는 또 목회자 981명과 교인 1500명에게 설문한 결과 28.3%만이 ‘곧바로 현장 예배에 참석했다’고 답했으며 57.8%는 ‘일정 기간 지켜본 후 현장 예배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지난 5월 첫째주부터 교회는 마스크 미착용자나 발열증상이 있는 자를 제외하고 모든 인원에 한해 예배당을 개방하고 교회 자체적으로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가운데 교회 사역을 정상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도 안되는 인원만이 현장 예배에 참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온라인 예배에 길들어진 성도들의 주일 예배에 대한 인식이 현장 대면 예배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면 예배 참석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그만큼 역사란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뛰어넘어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침례교의 역사는 영국의 비국교도운동 및 재침례파에 기원을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개혁 시기였던 16세기 당시 영국 국교회였던 성공회와 상충됐다. 침례교는 불세출의 설교가라 불리는 찰스 스펄전 목사(Charles Spurgeon)와 같은 설교가들을 배출하면서 점차 영국 전역으로 확장됐고, 그 세력은 장 칼뱅의 예정설을 극단적으로 해석해 선교가 필요 없다는 기존 영국인 선교사들에 반발, 세계침례회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를 세워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 선교사(William Carey)를 통해 전세계로 확산됐다. 한국 침례교의 기원은 1889년 12월 펜윅 선교사에 의해 함경남도 원산에 설립된 ‘대한기독교회’(1921년 ‘동아기독교회’로 교단명 변경)로 펜윅은 한국인의 특색에 맞춘 선교에 집중했으며, 도시보다 산간 및 해안가 선교에 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