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3) 이 말씀은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성장하면서 차츰 고통으로 이해가 됐다. 인생의 시험엔 자신의 정욕에 미혹되는 시험, 멸망케하는 마귀의 시험이 있으나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의 축복과 삶의 여러 가지 시험은 극복해 승리해야 한다. 만 7세가 되니 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됐는데 외가에 가니 5학년 전일순 누나가 나를 불러서 입학시험을 미리 가르쳐 줬다. 일본 선생 앞에 반듯이 서서 경례를 하고 이름은 한명국이가 아니고 “니시하라 하데히루 상” (西原永春)이라고 부르면 “하이”(예)라고 똑똑하게 대답하고 일본말로 1부터 10까지 숫자를 말하라하면 “이찌 니 산 시 고 로꾸 시찌 하찌 규 주”라고 시키는 대로 대답해 시험 합격으로 1944년 9월 1일 도동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 곧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는 가장 혹독한 시험에 합격해 믿음의 조상이 됐고, 동방의 의인이요 가장 큰 부자인 욥에게 내린 가혹한 절망의 시험에 합격하므로 갑절의 축복을 받은 것이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짊어진 십자가의 참혹한 시험의 결과는 인류구원과 부활의 영광에 오른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안겨 주리라” (눅6:38) 울릉도 저동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은 배석문 선생이셨다. 배석문 선생의 딸 배정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현재 용인시 명선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배성태 목사이다. 배성태 목사는 울릉초교의 초교파 목양회 회원으로 훌륭하게 목회하고 있는데 교회 소식지인 우모하 비전센터에 은혜로운 글이 실려 함께 나누고자 한다. 예배당, 구 본당, 제1교육관으로 불리던 이곳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봄에 새 움돋는 나무들처럼 우모하비전센터로 새 옷을 입는다. 60년 전 졸지에 큰 아들을 잃은 설움에 식음을 전폐하고 죽기만을 기다리던 여인. 이 여인이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께서 매일 찾아가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줬다. 그렇게 두 달 후 여인은 깊은 늪을 헤치고 나와 예수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감격과 눈물로 소원했다. ‘주님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오리까 교회를 지어 바치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26년을 적금 부어 만든 5000만원과 덜 입고 덜 먹고 저축한 5000만원으로 둘째 아들이 내어 놓은 터 위에 우리 명선교회가 섰다. 34년 전 한 가족의 헌신으로 세워졌던
지난 주일 예배후 중식과 성경공부 시간이 끝나기 바쁘게 성도들과 함께 수원에 있는 요양병원에 갔다. 김성순 성도의 소천예배를 위해 가면서 이미 말문도 막혔고 눈은 가끔 뜨지만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고 전해 들었는데, 말도 듣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염려하면서 의식이 분명할 때는 임종설교에서 구원확신과 천국소망의 재점검이 쉽지만 귀로 듣지도 못하면 어떻게 할까? 병실에 들어가 낮은 의자를 옮겨 침상 머리 쪽에 가까이 하고 앉아 찬송과 기도 후 귀에 가까이 숙여 또박또박 천천히 구원 설교를 이어갔다. 미리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좀 언성을 높였다. 송장이 다 된 상태에 갑자기 말문이 열려 “캑, 아멘!”했다. 모두 깜짝 놀랐다. 이어서 기쁘게 찬국소망 설교를 하는데 조금 눈을 뜨더니 “아멘”했는데 목소리는 작으나 발음이 더 분명해서 우리들은 또 놀랐다. 그 두 응답은 “나는 이미 구원받았고, 천국소망으로 떠납니다”의 응답으로 우리들에겐 자연스레 이해됐다. 예사랑교회는 여성선교연합회 5층에서 예배하는데 중국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조선족 가족들이 늘어나 중국선교의 비전이 실현되고 있다. 8개월전 간암으로 한 달 밖에 못산다는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은 김성순 여인의 중국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25~34) 마가복음 5장에서 세 가지 군대귀신 축사와 야이로의 딸 살림 기적 중간에 혈루증 여인의 기사가 기록돼 있는데 매우 인상 깊게 읽게 됐다. 그것은 언젠가 예수님의 영화 속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십자가 지고 오를 때 성경엔 여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
내가 여러 해 동안 어떤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모임에 말씀 전하는 강사로 지내다가 이젠 물러나야 하겠다고 생각해 사의를 표하고 마지막 설교를 하는 날을 맞았다. 아침 집회를 마친 뒤에는 조반을 같이 하는 모임을 가졌다. 늘 앉던 그 자리에 앉는 습관이 있는지라 오늘도 내 앞에는 그 형제가 좌정했다. 그 형제는 식사를 마친 뒤에는 자기가 사용했던 젓가락으로 잇몸 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이쑤시개로 하지 않고 매번 언제나 자기가 사용하던 젓가락을 입에 넣고 이빨 청소를 하는데 이것을 보자 하면 아주 혐오스럽고 역겹게 보였다. 언젠가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었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이젠 내가 떠나는 날이 됐으니 충고하지 않으면 영영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용단을 내렸다. 식사가 끝난 후 그 형제를 따로 한 구석으로 모시고 가서 이실직고했다. “젓가락으로 이빨 청소하는 것이 보기 흉하네요.” 그 형제님은 나의 손을 붙잡고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목사님은 설교도 은혜를 주셨는데 이것까지 가르쳐주시니 만만 감사합니다.” 이것이 그 모임을 떠나면서 평상시 잘 대해 주던 그 형제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로 여겼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The last
1964년 신대원에 입학해 여름방학 동안 고향집에 가지 아니하고 계속 첫 목회지인 도안교회를 돌보기 위해 하숙집을 구했다. 인자한 할머니는 둘째 아들, 교회에 나오지 않는 박현매 고등학생과 방을 같이 쓰게 했다. 9월 개학 후 오솔길을 따라 교회당으로 올라가는데 오른쪽 발목이 큰 가시에 찔렸다. “따끔”거리며 아팠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고 예배를 인도하는데 계속 발목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가리토시(멍울)가 생겨 절름거리며 예배 후 내려와 나는 우선 할머니에게 보였더니 “이거 큰일 났시유, 뱀에게 물렸구먼유!”하고 들기름 병을 갖고 와 발라주면서 빨리 유성으로 연락해 대전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했으나 나는 절대로 아무에게도 입 벙긋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월요일 아침 학교를 가려는데 발목이 부어올랐고, 색깔이 불고 누렇고 푸른색으로 뱀처럼 얼룩덜룩했다. 기숙사 동방인인 최한원 전도사는 사감 김 집사에게 얘기했고 나는 할 수 없이 목동병원으로 따라갔다. 의사는 뱀에게 물린 것이 확실하니 재빨리 치료해야지 그냥 두면 다리를 끊어내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미 나았는데, 사람 겁주는구나” 하고 재빨리 도망쳐 올라와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수업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란 이름의 갈매기는 여러 갈매기 무리와는 다르게 고상한 생각의 소유자였다. 그와 같은 동류의 갈매기들의 일상은 어떠했는가? 작가 바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 곧 먹이를 찾아 해변으로부터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 이상의 것을 배우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갈매기에게는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무엇보다도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다른 갈매기들과 친하게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님을 그는 알게 되었다. 그의 부모조차도 조나단이 하루 종일 혼자서 외롭게 시도하며, 수백 번이나 낮게 활강하는 것을 보고는 당황하고 있었다. 뼈와 깃털만 남은 자식 조나단을 바라본 그의 부모는 답답해했었다. “왜 그러니, 조나단?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그의 어머니가 물었다. “넌 왜 다른 갈매기들처럼 되는 게 그리도 힘든 거니? 저공 비행 따윈 펠리컨이나 알바트로스에게 맡길 수 없니? 넌 왜 잘 먹지도 않니? 얘야, 넌 너무 말라서 뼈와 깃털뿐이구나!”
꿈을 깨어 시계를 보니 주일 아침 5시였다. 어제는 토요일로 12월 첫날이라 교회당 강단 뒤에 꿇어 앉아 밤기도를 하다 보니 다리에 쥐가 나서 견디기 어려워 누웠는데 잠이 든 것이다. 남루하고 초췌하며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이 앞에 나타나자 놀라서 그만 꿈을 깬 것이다. 대통령 선거날 아침에 푸른 일바지를 입은 여자 후보가 나타나서 깨어보니 새벽 4시였다. 일찍 투표소에 가서 찍고 오면서 다시 생각하니 푸른 옷은 교도소 죄수복이란 해석이 되어 친한 10여명 벗들에게는 그녀가 교도소 갈 것이라 조심스레 얘기 한 일이 있었다. 꿈 해석을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들어왔고 대학시절엔 심리학에서 꿈 해석 공부도 했고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이나 친구들의 꿈 해몽을 부탁받고 해석을 해 주기도 했으나 조심스런 일이었다. 꿈은 신령한 영몽, 예언적인 예몽, 실제로 일어날 실몽, 잡다하게 꿈꾸는 잡몽, 꿈꾸고 잊어버리는 허몽, 악전고투하다 땀 흘리고 꿈 깨는 악몽, 아무 꿈 없이 깨어나는 무몽 등이 있다. 성경에는 요셉의 꿈을 위시하여 많은 꿈 이야기가 있다. 꿈 속에 나를 찾아온 그 불쌍한 한 사람은 누구일까? 길거리, 전철, 시장, 기타 여러 곳에서 만나서 전도했던 수많은 불쌍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는 불신 대통령도 있었고 두 번이나 소위 장로 대통령이 있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인상은 불신 대통령 재직 시가 장로 대통령 재직 시보다 우선 세속 정치도 더 좋았고 더더구나 기독교에 대해서 아주 호의적이었다는 것이다. 언필칭 장로 대통령의 심중에는 자기가 크리스천 장로이니 기독교에 작은 제스처만 줘도 국민의 눈초리가 따가울테니 차라리 무관심하는 듯 지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꽉 차 있지 않았나 싶다. 암, 그렇고 말고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는 병행하지 않는다. 소위 정교 분리라는 명제가 그래서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세속 정치가 잘 되면 기독교는 하락세를 탄다는 이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있다. 독일에서 두어 달 체류하면서 느낀 것은 메르켈 지도자의 선정(善政)으로 독일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안전과 경제부흥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보아하니 국민들은 빵 먹고 다리 뻗고 잘 공간이 거의 완벽하게 마련되어 있어서 아무런 걱정도 없이 지내고 있다. 주말이면 주말 즐김, 월말이면 월말 즐김, 1년이면 연가 2개월 해외여행 휴가, 사는 동안 무료 진료, 노후에는 연금보장, 죽을 땐 장지와 주례목사를 두고 있으니 세상살이 만
우리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 기념 배지를 줬는데 양복 왼쪽 가슴 모서리에 달게 했다. 그 배지는 지금도 나의 여러 양복 중에 꽂혀있다. 그것은 G자와 Y자로 되어 표시로 금도색을 한 것으로 영어의 Go와 Ye의 머리글자로서 “너희는 가서”(마28:19)로 예수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의 첫 두 글자이다. 신학교를 졸업한 주님의 제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가서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복음을 전하기 우해 “가라”는 도전의 명령이었다. 인자가 오신 것은 보내기 위함이다. “가면서 전파하여”(마10:7)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21:2) “사거리 길에 가서”(22:9) “성안 아무에게 가서”(26:18) “가라 하라”(28:10)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눅10:3)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눅17:14)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행1:8)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행8:26)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행10:20)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
염소 가운데 순한 양 같은 님은 떠나셨다. 향년 85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2018년 11월 19일 그는 떠나셨다. 한국 침례교회 원뿌리인 동아 기독대의 원로이신 고 노재천 목사님의 장손이며 고 노안성 안수집사님의 5남매 중 장남으로 세상에 와서 이름 높은 안동고녀 출신의 이명순 사모와 결혼하여 5남매를 이 땅에 둔 채 그는 떠나셨다. 평생을 침례신학교 기독교 교육학 교수로서 교단의 교육발전에 지대한 도움을 주시곤 은퇴하셨고 엊그저께 영 아주 세상살이 은퇴를 하셨다. 내가 까까머리로 갓 제대한 26세 청년이었을 때 아직 신학교 졸업도 하지 아니한 예과 중퇴생인 나를 그는 과감히 점촌 서남교회 담임 전도사로 추천해 주셨다. 나를 인정해 준 님이 고마웠다. 지금 역사적인 점촌교회의 중진들은 그때 학생들이었다. 노 목사님의 아버님이 점촌 시내에서 철물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구에서 역전으로 물건이 배달되면 의당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윤백아, 역전에 가서 짐 찾아와라.”그 밑에 4남매가 있었건만 장자 노윤백은 언제나 그 집 맏머슴이었다. 나는 서남교회를 목회하면서 그 장면을 눈으로 보았다. 그는 순종을 평생 미덕으로 신앙하고 살았다. 노 목사님은 재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하늘 천(天) 따 지(地) 집 우(宇) 집 주(宙)” 곧 천자문을 가르친 후 명심보감과 사자소학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공자님과 인의예지 교훈에 대하여 가르쳤다. 조선은 소국이라 공자(孔子) 맹자 노자 같은 성현의 호칭인 자(子)의 호칭을 붙일 인물이 나오지 않았으나 중국의 5000년 역사에는 제자백가의 인물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 공자는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예수와 세계 사대성자로 불리지만 공자님이 가장 높은 성현이라 가르쳤고 나는 자연스레 공자님의 추종자가 됐다. 공자는 태어나자 부친이 죽고 6세에 어머니마저 죽어 천애의 고아로 유랑자가 되었으나 학문에 뜻을 두어 열심히 공부하여 30세에 노나라 정공의 초청으로 중도읍의 읍장이 됐고, 그 후 사공(건설부장관)이 됐고 나중에 대사구(법무장관)에 임명됐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갔고 그 후 14년에 걸친 유랑생활로 “상갓집 개와 같다”는 혹평도 받았으나 수많은 문하생이 따랐고 염옹, 자로, 자공, 안희(아연) 등의 수제자들을 두고 73세의 천수를 누린 후 세상을 떠났다고 배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 드나들던 양남댁 스님이 큰아들이 잘 돼야 한다고 어머니를 꾀어 나를 억
어떤 목사가 예배당을 팔아버렸답니다. 이 소식을 듣던 또 어떤 목사는 무표정했답니다. 그도 예배당을 팔아버렸기 때문이랍니다. 예배당을 팔아버리는 목사가 꽤 많나 봅니다. 발설자가 말했습니다. “권 목사가 예배당을 팔아버렸다면 그땐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겁니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좋았답니다. 식구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버지, 참 잘 사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또 기분이 좋았습니다. 소천일이 가까워오고 있네요. 무척 조심스럽네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하나님, 목사가 교회를 팔아버리지는 않았겠지요.” 일부 목사가 예배당 팔아버렸다는 사건은 성도는 물론 세상 이방인까지도 알고 있는 처지인데 목사 입에서 그 사실을 도무지 발설 한 번 하지 않는다는 것도 양심을 들여다보이는 일 같아서 여기 용감한 건지 바보스러운 건지는 몰라도 이제 목사도 알고 있다고 발설해야 되겠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던 때에 당부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4:19) 사람을 낚으라는 것이 예수님의 소명 이유였다. 예수님은 사람의 호주머니를 훑으라고
맴맴맴! 해마다 여름철이 올 때마다 아름다운 매매소리의 합창이 옛날 시골의 어린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작대기로 나뭇가지를 쳐서 또는 친구들의 어깨 위에 서서 나무에 붙은 매미를 한 깡통씩 잡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저 작은 매미가 어떻게 저렇게 고운 소리를 내어 울려 퍼질까? 저 아무렇게나 소리지르는 듯한 매미의 울음소리를 듣고 무심히 지나칠 때가 많았다. 저 소리를 몇 일간 내기 위해 몇 년을 어두운 땅 속에서 지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우리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여러 가지 식물의 조직 속이나 나뭇가지에 산란된 매미의 알은 2~6주간에 부화되어 깨어 나온 매미의 애벌레(유충)는 땅 속으로 들어가 침과 같이 생긴 뾰족한 주둥이로 나무뿌리를 찔러 그 속의 수액(樹液)을 빨아 먹으면서 몇 해를 자란다. 다 자란 ‘굼벵이’ 성충은 초여름부터 나타나는데, 맑은 날을 골라 대체로 저녁 해질 무렵 땅 위로 기어 나와 나무줄기나 나뭇가지 등에 몸을 고정시킨 매미로 탈피를 한다. 애벌레가 땅속에서 보내는 기간은 종별로 달라서 2~7년을 땅 속에서 보내는 것부터 2~7년에서 13~17년을 보내는 것 등 다양하다. 이 현상은 천적을 따돌리기 위해 채택된 하나의 생존
침례신문의 ‘하늘 붓 가는 대로’ 103회에 다음과 같은 표제의 나의 에세이가 게재됐다. ‘며느리와 딸’. ‘나도 아내와 함께 독일 라이프치히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있는 아들 권순태 목사 집에 두 달을 머문 적이 있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환상적인 커플로서 뭇 교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이민교회를 섬기는 것을 보고 나는 그저 고마웠다. 그런데 문제는 며느리의 존재였다. 며느리는 친할 듯 하면서 뒤로 물러서고 말할 듯 하면서 침묵하기를 꼬박 두 달 동안 그러했었다. 나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 정도를 넘어서 나는 며느리를 경계했다. 어떻든 며느리에게 결례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두 달 체류 중 며느리에게 불평하거나 신경 쓰이지 않게 하려고 우리 노부부는 최대한 노력했다. 끼니 때는 사인 주기 전에 식탁에 앉았다. 밥 먹고는 언제나 잘 먹었다고 말했다. 두 달 동안 이런 시아버지의 “Thank You”에 “you’re welcome”이란 말을 며느리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었다. 거의 나는 점심은 외식으로 때웠다. 식사 시간에도 며느리와 함께 한 적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10분 이상을 마주 앉아 담소한 적이 없었다. 어딜 가든 담소 잘 하기로 꽤나 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