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영일만 석유 매장 관련 이슈가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6월 3일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영일만 일대 8광구에 석유 및 가스가 최소 35억 배럴, 최대 140억 배럴이 존재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좋지 않다. 한국갤럽의 지난 6월 14일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동해 석유·가스 매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60%, 반대로 ‘신뢰한다’고 응답한 인원은 28%에 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석유·가스 매장 확률이 높다고 분석한 분석 업체에 대한 신뢰성이 계속 도마 위에 오르고 있고, 이미 이전에 같은 장소를 분석했던 해외 대기업은 정밀분석 결과 매장 가능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매장이 돼 있다 하더라도 채산성이 낮다는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드러나 석유공사에 막대한 부채를 안겨준 ‘자원외교 시즌 2’ 아니냐는 불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영일만 8광구를 채굴할 돈으로 차라리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라는 의견도 제기되지만, 전세사기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정부가 과연 채굴을 취소한다 하더라도 정말 도움이 되는 곳에 예산을 사용할 것인지는 미지수
디딤돌교회(임성도 목사) 국내선교회(회장 이창종 장로) 40여 명의 전도대원은 지난 5월 18일 경북 포항에 위치한 동해제일교회(김위수 목사)에 국내 농어촌교회 전도 지원을 전개했습니다. 동해제일교회는 1916년에 세워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작은 어촌 마을에 위치한 교회입니다. 지난 2023년 새로 김위수 목사가 부임해 교회와 지역에 대한 애정과 헌신으로 온 열정을 쏟고 있었습니다. 교회 선교회 임원들은 사전에 포항에 내려가 교회의 상황을 살피고 전도를 비롯해 교회 리모델링, 내부 정리, 동네 환경 미화 등의 필요를 조사하고 리모델링은 현지 사업자를 통해 진행하기로 했으며 그 외의 부분은 디딤돌교회 전도 대원이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대전에서 포항까지의 거리는 먼 거리였기에 새벽예배를 마친 후, 새벽 6시 30분에 모든 전도 대원은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3시간 30분의 이동시간 동안 선교회장으로 헌신하고 있는 이창종 장로의 인도로 모든 대원을 한 사람씩 소개하고 인사하는 시간을 가지며 9세 어린이부터 78세 장로까지 모든 전도 대원은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디딤돌교회 전도 대원들은 동해제일교회에 도착했을 때, 김위수 목사와 강영숙 사모, 동해제
둘째로, 비즈니스 영성이 돋보였다. 비즈니스 영성이란 선교사가 사업을 할 때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 경영에 초점을 두고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액츠비즈니스 선교회는 비즈니스 선교사의 영성 6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1) 비즈니스 선교사의 정체성, (2) 신앙에 대한 이해와 자기부인의 길, (3) 하나님의 마음과 복음전도자의 길, (4) 모든 소유를 주께 드린 청지기적 삶, (5) 세상의 전문가로서의 뱀 같은 지혜, (6) 세상 중에서 지키는 비둘기 같은 순결. 이런 면에서 펜윅은 비즈니스 영성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펜윅은 이런 비즈니스 선교사의 영성 6가지를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2010년에 허긴 박사 은퇴기념논문집에 기고한 “펜윅의 영성”에서 비즈니스 선교사 펜윅의 영성 4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1) 경건의 생활, (2) 성경에 대한 확신, (3) 증인의 삶, (4) 윤리적․도덕적 민감성. 펜윅은 원산 농장 10만 평을 매입한 후 부자 선교사였지만 하나님 나라 시각으로 물질을 사용했다. III. 펜윅의 비즈니스 선교가 한국침례교회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 지금까지 펜윅의 평가를 보면 펜윅이 근본주의 신학과 세대주의
앞의 기술한 내용대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조선의 존립을 지키기 위해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서양 세력 배척은 날로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대상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양인(洋人)들은 배척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양인을 돕거나 함께 장시간을 지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중국의 고려문 지역에서는 이응찬이 압록강에서 풍랑을 만나 모든 재산을 잃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거렁뱅이가 됐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양인(洋人)을 만나 끼니만 연명한다거나 일자리를 구했다는 내용이다. 이응찬은 존 로스 선교사를 가끔 보는 것이 아니라, 조선어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매일 장시간을 만났다. 존 로스는 조선어를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밤에도 호롱불을 켜놓고 조선어를 배웠던 것이다. 그러나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양인과 매일 함께 지내는 것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인이 양인과 접촉하는 것은 크게 ‘장사, 무역, 역관(통역, 번역)’의 업무일 경우였다. “이응찬이 양인과 장사와 무역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더구나 그 양인이 관료나 외국사절로 온 것도 아닌데, 존 로스라는 양인이 군인인가? 아니면 첩자인가?
침례교회는 선교하는 교단으로 세계선교에 선한 영향력을 지금까지 끼쳐왔고 여기에 더해 뜨거운 찬양과 기도, 말씀이 함께하는 교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총회가 주최한 연합기도회인 라이즈 업 뱁티스트를 비롯해 한사목이 주관한 목회자 영성 세미나, 지방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천안지방회가 주관한 복음화 대성회는 말씀과 성경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충만한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는 침례교단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전국 침례교회 연합기도회인 라이즈 업 뱁티스트는 전국을 순회하는 것과 동시에 유튜브 플랫폼을 활용해 6월 3일부터 14일까지 12일간 모든 교회가 온라인으로 참여하며 찬양과 말씀, 기도가 어우러진 대축제의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던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시작된 연합기도회는 매년 6월이면 교단 전체가 기도의 불씨를 지피고 다가오는 여름 사역을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는 응답의 시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는 장소를 제공하는 교회와 말씀을 선포하는 강사, 성공적인 행사 진행을 위해 헌신하는 총회 스태프들의 수고로 기도회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올 초부터 일어난 113차 총회 의장단의 잇따른 직무정지 소식으로
한편 펜윅이 원산 과수원에서 재배한 과일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관해 이호철의 “개화기 서양능금과 과수 재배기술의 수용”(2002년)과 The Korean Repository(1898년)에 게재된 “원산 과일”(Fruit in Wonsan)과 The Korea Review(1901년)에 게재된 “새 달력”(New Calendar)에서 확인이 가능한데 7가지이다: (1) 사과, (2) 앵두, (3) 자두, (4) 배, (5) 구스베리, (6) 건포도, (7) 포도. 특히 원산 사과는 일본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것을 조선일보 1925년 3월 31일자에서 기록하고 있다: “원산평과(元山苹果)[원산사과]라 하면 도처(到處)에서 환영(歡迎)를 밧는바 일본(日本)에서도 상당(相當)한 가(價)를 획득(獲得)하는 모양(貌樣)이라는데 일정보이상(一町步以上)의 과수원소유자(果樹園所有者)의 씨명(氏名)은 좌(左)와 여(如)하다더라.” 펜윅이 재배한 원산 사과는 미국종이었지만 원산지와 질적으로 같았고 인기가 높아 잘 팔렸다. 그렇다면 펜윅의 원산 농장과 과수원의 연소득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이에 관해 1902년 5월 29일 자 황성신문에는 “원산항(元山港) 거류(居留)ᄒᆞᄂᆞᆫ
74년 전 한반도는 남북이 이념 갈등으로 전쟁까지 일으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38선을 중심으로 기습적인 남침을 감행한 북한은 침공 3일만에 남한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물밀듯이 남으로 내려갔다. 삽시간에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를 점령당한 남한은 경상도까지 밀려와 패망의 길까지 치달았다. 당시 자유주의 수호를 내건 미국을 비롯한 UN군과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나선 젊은 국군 장병들의 피와 노력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자 고귀한 희생으로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한국침례교회 역시 1948년 강경에서 총회를 열고 재건의 길을 모색했지만 전쟁의 포화를 피해 갈 수 없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교회를 지키던 우리교단 이종덕 목사는 북한군에 의해 총살을 당한 아픔을 우리는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다시 일어서려던 침례교회들도, 믿음의 공동체도 자유를 찾아 피난을 떠났으며 부산까지 내려온 침례교회는 미남침례교 군목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전쟁은 참혹하고 모든 것을 앗아가는 비참한 상황임을 우리는 74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뼈저리게 체험했다. 수백만의
모 일간지에 우리 교단의 소식이 실렸다. 우리 교단의 현 사태는 ‘교단 정치’가 원인이라는 내용이다. 해당 기사는 이번 사태의 핵심이 한국침신대 이사 파송이라고 지적한다. 양측 당사자들이야 거짓과 진실의 싸움이라며 자신들이 교단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의롭게 나선 기드온의 용사라 칭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정치 목사들의 이권 다툼일 뿐이다. 어떻게든 이번 사항을 확장시켜 자신들의 편을 늘리고 싶겠지만 많은 목회자들은 혀를 끌끌 찰 뿐 동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를 내버려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점점 제대로 된 목회자는 교단에 관심을 끄게 될 것이고, 어느새 교단의 리더십들은 삯꾼으로 가득 찰 것이 뻔하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 기독교한국침례회는 사치일지 모른다. 한국침례신학대학교를 책임지기에는 능력 밖일지도 모른다. 침례병원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 둘 떠나보내다 주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을 깨달을 수 있을지도 사실 의문스럽다.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또 누군가를 향한 손가락질만 하다가 하염없는 세월을 흘려보낼 것만 같다. 과한 표현 같은가? 교단에서 무언가 섬겨야 할 사람을 세울 때 “해야 할 사
샬롬! 저는 현재 대만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종훈 선교사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2004년 무작정 중국으로 들어가 운남성에서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종족, 미접촉 미전도종족대상으로 2019년 1월까지 사역했습니다. 중국 대륙은 55개 소수민족과 한족을 더해 56개 종족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종족들을 언어와 문화로 구분하면 약 516개 종족이 중국 대륙에 살고 있고, 그 중 중국 운남성에는 이 종족들의 절반인 약 219개 종족이 살고 있습니다. 운남성에 복음을 들어본 종족이 약 47개 종족,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거나 자생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종족은 약 172개 종족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 대륙 전역에 비슷한 상황과 통계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중국 대륙 전체 종족인구 대비 복음화된 종족이 약 89개 종족이고, 종족인구 대비 복음화율 2%미만인 미접촉 미전도 종족이 약 427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아직 중국 대륙도 복음 전도가 필요한 국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시진핑 정권이 들어선 후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비자발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중국 대륙을 떠났습니다. 저 또한 중국 대륙에서 사
2년 후 펜윅의 편지는 1893년에 제임스 존스톤(James Johnston) 박사의 중남부 아프리카에서의 진실 대 허구(Reality versus Romance in South Central Africa)라는 책에 일부 내용이 게재돼 일파만파로 펴졌고 펜윅과 언더우드 간에 갈등과 불신은 더욱 증폭됐다. 마침내 이 내용은 한국연합선교회에 전달됐고, 선교회는 펜윅을 가르켜 “반드시 소환해야 할 어리석고 화 잘 내는 사람”이라 비난하면서 선교비를 끊어버렸다. 결국 펜윅은 필화사건으로 인해 한국연합선교회로부터 받았던 선교비가 1893년에 끊기게 됐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비즈니스 선교였다. 3. 원산 선교기지의 차별성을 제시하기 위함 펜윅의 원산 선교기지(mission station)는 초기 내한 선교사의 기지와는 달랐다. 선교기지(mission station)란 선교사들이 사역하기에 편리한 땅을 구입해서 그곳에 교회, 학교, 병원, 유치원 등을 세워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초기 내한 선교사들은 대개 ‘①교회-②학교-③병원’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펜윅은 ‘①교회-②농장-③과수원’이라는 세 축으로 선교했다. 초기 내한
최근 우리교단 안에서 연이어 크고 작은 좋지 않은 선례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총회장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본안 소송인 선거법 위반 소송의 심리가 5월 9일 끝나고 다음달 13일에 1심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총회장 직무를 대행한 제1부총회장도 선거 무효 확인 소송의 본안 소송으로 직무가 정지됐다. 이에 따라 현재 김일엽 총무가 총회장과 1부총회장의 직무를 대행하는 체제로 총회가 운영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총회의 혼란과 함께 한국교회 연합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캄선교회 대표의 믿기 힘든 일들이 폭로되면서 교계 전체가 이 문제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현재 당사자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모든 책임을 지고 선교회 대표직에서 물러났으며 교단도 탈퇴했지만 그 후유증은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안팎으로 터지는 교단 문제에 대해 많은 목회자들이 우려와 실망,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직무대행체제로 수개월을 보내면서 교단의 성장 동력은 멈췄으며 많은 교회들이 기다리고 기대했던 총회 사업들을 연기되거나 대부분 중단된 상황이다. 나아가 1부총회장까지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정상적인 114차 정기총회가 개최될 지 불투
주 안에 신실한 모든 동역자 여러분들에게 하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번에 세계복음화를 위해 힘쓰는 침례교 모든 동역자들과 성도님들에게 대륙 중국의 선교현황과 사역을 함께 나눌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2003년 처음 북경공항에 도착했을 때 부터 20여 년의 시간이 주마등(走马灯)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회상을 하게 됩니다. 2003년 중국 1인 GDP 1390달러인 나라가 2023년 1만 3721달러로 경제성장 10배가 되어 있음을 실로 몸소 체험했던 시간 같습니다. 자전거에서 전기 오토바이로, 그리고 자동차에서 지금은 전기 자동차가 실생활이 되어버린 경제 성장 속에 중국 복음화, 중국 교회들 역시 수많은 지표를 가지고 성장했습니다.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전세계의 양적 교류의 확대가 수많은 사람들을 스펀지가 물을 흡수 하듯이 끌어들이며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세계의 성장 지표의 중심이었습니다. 많은 선교단체들과 선교사들 역시 이러한 세계의 흐름 속에 중국이라는 도시교회와 가정교회, 그리고 대학캠퍼스 사역으로 셀 수 없는 사역자들이 들어와 많은 교회들을 세워가고, 가정교회 리더훈련과 신
두 번째 질문의 답은 1896년이다. 펜윅의 원산 농장 10만 평 구입설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891년 구입설이고, 다른 하나는 1896년 이후설이다. 연구자는 후자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펜윅이 1891년 원산에서 비즈니스 선교를 시작할 때는 경제적 여유가 없던 때라 작은 땅을 구입해서 원산 농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방문(1893~1896년)을 마치고 귀국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 “한국의 농사법”(1898년 8월)에서 “큰 땅”에서의 성공담을 소개한 것을 보면 1896년 봄 이후부터 1898년 8월 사이에 10만 평의 큰 농장을 매입한 것으로 본다. 여기에 주목할 점은 펜윅이 1898년 8월에 게재한 글이 “한국의 농사법”이지 “한국의 과일 재배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농작물은 1년 단위로 수확하지만, 과일의 경우 특히 사과는 8년째부터 수익이 발행하기 때문이다. 펜윅이 1896년에 구입했다면 2~3번 정도의 성공담이, 1897년이면 겨우 1~2번 정도의 성공담이 잡지에 담아있기에 연구자는 1896년 구입설을 지지한다. 오지원은 1897년에 펜윅이 약 10만 평의 농장을 구입했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질문의 답은 펜윅이 3년간 미국과
흥선 대원군이 서양 세력에 대한 배척 이유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여러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시간 언급한 이유 외에 다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퀴즈 하나를 내본다. 조선의 정궁(가장 으뜸이 되는 궁궐)과 법궁(임금이 거처하는 궁궐)은 무엇일까? 대부분 사람들이 경복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로 조선의 정궁은 경복궁이 맞다. 그러나 경복궁이 왕의 거처로 사용된 것은 조선왕조 518년 동안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경복궁은 조선의 상징적인 궁일 뿐, 실제적으로 왕이 거처하고 실질적인 정사를 보던 곳은 대부분 창덕궁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다음과 같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후, 1399년 정종이 개경으로 천도하면서 완공된 지 4년 만에 경복궁은 빈 궁전 신세가 되고 만다. 또 그 이후 여러 가지 사건으로 경복궁은 법궁의 위치를 잃게 된다. 시간이 흘러 임진왜란 전인 1553년(명종 8년), 경복궁에 화재가 발생하고, 더구나 안타깝게도 1592년 임진왜란 때는 대화재가 일어났다. 왜냐하면 백성을 버리고 파천한(임금이 도
한국침례교단이 꼭 기억해야 날 중에 하나가 바로 일제강점기 일제의 탄압으로 교단이 해체되고 모든 교회가 폐쇄된 1944년 5월 10일이다. 특별히 올해는 신사참배를 거부해 수난을 당한지 80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침례교단의 전신인 동아기독교는 원산을 중심으로 한강 이남에는 강경과 공주, 문경 등지에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의 발자취를 걸어갔으며 북방으로는 연해주와 북만주에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자비량 순회 선교사들이 희생과 헌신이 이뤄졌다. 교회가 없는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 외에는 어떠한 것도 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믿음의 선진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일제 강점기의 탄압과 회유 속에서도 꿋꿋하게 복음을 지켜 나갔다. 그렇기에 신사참배와 궁성요배는 침례교인으로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정치적인 사안이었으며 타 교단과는 달리 하나님이 이 땅의 주인임을 당당하게 말하며 일제와 맞서왔다. 그렇기에 교단이 폐쇄되고 교회의 재산이 몰수되는 수모를 겪으며 교단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구금되며 또한 순교하는 일은 일제에 항거한 본으로 삼아 마땅할 것이다. 2023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수난을 당한 침례교 32인의 뜻을 책으로 펴내고 이들의 후손에게 공로패를 수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