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한국의 복잡한 상황을 간간히 듣고 있습니다. 기도가 필요한 곳이 너무나 많음을 봅니다. 유대인 친구들과 아랍마을 알리야(외국에서 이스라엘로 이민 온 유대인을 알리야했다고 표현하더군요)한 유대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알리야해서 학교에서 일하는 미국출신 유대인, 아버지가 알리야한 러시아출신 2세, 독일출신 등 여러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커피를 한잔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문자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아직은 조금씩 교제를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이들과 교제하는 중에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아랍마을에 사는 한 유대인 친구들은 목숨을 걸어야 제가 사는 집에 놀러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랍 마을에는 주소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영어시험 신청도 은행에서 계좌도 후불제 휴대폰도 전부 주소가 있어야 합니다. 주소가 없다는 것은 이곳에서 정착할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아랍 마을 사람들은 사서함을 열어서 우편물을 받고 있더군요. 그런데 사서함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아랍 마
1967년 김일성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당내 다른 어떤 사상도 인정하지 않고 ‘김일성 혁명사상’만을 유일사상으로 강조했다(1967.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에서). 물론, 주체사상은 이때까지만 해도 표면적으로는 맑스-레닌주의적 지도사상으로 소개되고 이해된다(1967.12.6. 최고인민회의 제4기회의 김일성 연설에서). 그러다가, 1970년 제5차 노동당대회를 통해 ‘맑스-레닌주의’ 용어가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수정되고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이 명시된다. 물론, 맑스-레닌주의가 북한헌법에서 삭제된 것은 한참 이후인 1992년도이다. 주체사상의 본질은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혁명 활동을 토대로 한 김일성의 혁명정신을 모태로 구현된 혁명사상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북한전체인민들로 하여금 항일유격대원들처럼 될 것을 종용했고, 이로 인해 북한은 ‘항일유격대국가’로 불려 지기도 했다. 주체사상이 공식 제기되면서부터 김일성의 ‘수령’ 이미지는 대표적 상징이자 호칭이 된다. 김일성 일인독재의 일등공신은 김일성의 친동생이자 당시, 당 조직지도부장이었던 김영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김영주가 주체사상의 행동규범인 ‘10대원칙’을
독일과 유럽의 정세와 국제 난민 상황 서유럽 전역(프랑스, 영국, 독일)에 성역이 없이 날마다 새로이 발생하는 테러와 소수 난민들의 신분 위장 문제는 유럽과 독일정부가 겪는 가장 큰 이슈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방법을 통해 적절한 난민정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 만이 갖고 있는 특수한 현상으로 독일인이 그것도 현역 독일군 장교가 시리아 난민으로 위장해 난민보호소와 군대를 병행해 생활하는 전술을 상당기간 하고 있었는데 함께 있던 동료의 오랜 관찰로 마침내 밝혀졌습니다. 이 장교는 신나치성이 있는 사람으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고 군에 입대해 생활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런 군인이 국제 난민보호서에서 난민처럼 함께 생활 한 목적은 외국인 난민들의 독일 입국을 반대하는 것으로 큰 범행을 외부의 신나치주의자들과 협력해 진행했을 것으로 정부는 추측했습니다. 이로 인해 국방부가 소란해지고 군 막사에 나치낙서나 신나치 사인 등이 있는지를 전 군에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현역 군인들의 신분을 검색하는 작업과 의심이 가는 국제난민들의 신분을 섬세히 다시 검색하는 작업등으로 국내정세가 잠시 소란했지만 더 큰 혼란없이 독일정부는 비교적 침착히
- 김정은을‘수령’이라고 부르지 마라 이번 주에 대북정책관련 학술회의에 참석을 했는데, 발표자 중 한 사람이 김정은을 말하면서 여러 차례 ‘김정은 수령’이라고 언급했다. 참 귀에 거슬렸다. 북한내부에서는 공식문건이나 언론매체 어디서도 김정은을 ‘수령’이라고 칭하지 않는데 말이다. 북한이 ‘수령제’ 사회인데, 당연히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에게 ‘수령’이라고 하는 게 뭐가 어때서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김정은 우상화에 그렇게 열을 올리고 있는 북한은 왜 정작 김정은에게 지도자 최고의 상징인 ‘수령’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인가. 김정은뿐만 아니라, 김정일도 살아생전에 ‘수령’이라고 불리지 못했다. 사후에도 김일성과 통칭해서 ‘위대한 수령님들’, ‘선대 수령님들’이라고만 불리어졌지, 단독으로 ‘김정일 수령’, ‘수령 김정일’로는 칭함 받지 못했다. 이러한 양상은 지도자이미지, 상징측면으로 접근할 때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만큼 ‘수령’이라는 상징 하나만으로도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의 지도적 권위의 차이를 뚜렷이 발견하게 된다. 더 나아가, 현재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에 대한 연구로까지 접근할 수 있다. 글 서두에 언급한 발표자는 김정은의 지도
- ‘작은 스탈린’으로의 김일성 예수님은 30세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3년 동안 공생애 삶을 사셨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기 위해 특별히 12명의 제자를 세워서 그들과 동고동락하셨다. 그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을 뭐라고 불렀을까? 우리는 쉽게 ‘예수님’이라고 불렀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분의 존암(이름)이다. 오늘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것은 큰 실례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이 어느 날 제자들을 향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실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16:16)라고 고백한다. 이 대답에서 우린 두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께 그리 많이 불려 지지 않았다는 것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자주 부른 호칭이 ‘주’(Lord)라는 사실이다. 주는 쉽게 말하면 ‘주인님’이다. 이처럼, 신약성경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주님’(Lord)으로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의 하나님은 모세 이후부터는 ‘여호와’(Jehovah)라고 불리 우셨다. ‘스스로 계신 분’(자존자)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인격적 특성에 맞는 용어들과 짝을 이뤄 사용됐다. 즉, 여호와
우기가 지난 아프리카 평원은 수수한 들꽃들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꾸며 주신 아름다운 자연 속에 하나 되어 사는 삶이 행복이요,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신 것처럼 우리 삶도 때로는 들판의 식물처럼 변화가 있음을 봅니다. 은택이가 벌써 16살이 됐습니다. 작년에 태어난 은채는 이제 2살이 되어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손에 잡히는 것은 입에 들어가고 눈에 보는 것은 모두 만져보고 참견합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은채를 보며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옵니다. 은택이는 8학년으로 학교에서 운동을 아주 잘하고 은찬이는 끼가 넘쳐나서 어디든지 가면 사람들의 기쁨이 되어주고 은채는 귀여운 짓을 많이 해 누구에게나 웃음을 줍니다. 가족의 행복은 아이들이 가라면서 더 많이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3월에 가졌던 남아공가정교회 세미나는 은혜 가운데 잘 다녀왔습니다. 미텡고교회 5명과 루부토교회 3명이 함께 버스를 타고 3월 8일에 은돌라에서 출발해 직접 가는 버스가 없어 루사카에서 하루 밤을 자고 9일 아침 9시에 남아공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3월 10일 11시에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한 일행은 현지목사님의 패스트푸드점에서 맛있는 점심인
북한에는 지도자들에 대한 전설집이 있다. ‘김일성 전설집’이 있고 ‘김정일 전설집’(백두광명성 전설집)이 있다. ‘김정은 전설집’이 출판됐는지 아직 확인돼지 않고 있다. ‘김일성 전설집’이 출판된 시기를 대체로 북한정권 초기나, 김일성이 권력을 독점했던 1960년대 중후반, 아니면 넉넉잡고 김일성 우상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던 1970년대 중후반으로 일반적으로 예상해 볼 수 있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들 시기보다 훨씬 더 늦게 나왔다. 예상외로 1987년에서야 ‘김일성 전설집’ 처음 나왔다. 상당히 늦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고 40년이 지나서야 나온 것이다. ‘김일성 전설집’이 나온 이 시점은 ‘수령제’(혁명적 수령관)가 ‘사회정치생명체론’으로 전환되어 김일성의 신격화(신의 위치)가 본격화되었던 1986년 바로 다음해이다. ‘김일성 전설집’에서 김일성은 초능력을 발휘하는, 도술을 부리는 초자연적 인물로 그려진다. 우리 어린 시절에 한번 들어봄직한 ‘구름타고’, ‘나무잎 배’ 등도 이 전설집의 내용에 포함되어있다. ‘김일성 전설집’을 만들라고 지시한 장본인은 바로 김정일이다. 김정일은 1980년에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채택되면서 자신의
할렐루야! 감사와 찬송을 우리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지난해와 달리 우기가 빨리 와서 마음이 분주해졌습니다. 그러나 바쁜 길 돌아가라고 하시는지 4월말 한인교회 야외예배를 마치고 몇몇 선교사님들과 운동을 하다가 손목을 다쳐 수술을 했습니다. 중보기도 분들게 긴급 기도를 부탁드리고 부분 마취가 어려워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잘 마쳤습니다. 많은 동역자님들의 중보기도로 지난주 손목 수술 부분에 실밥을 뽑고 뼈가 잘 붙었다는 의사의 소견에 2주 후에는 팔 깁스를 풀 수 있다고 합니다. 오토바이로 바쁘게 다녀야 할 시점에 손목을 다쳐 마음만 애태우며 지방사역은 부득불 지프차를 임대해 다녀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5월 14일 네팔 지방 선거가 동쪽과 동남쪽 지역에서 실시했습니다. 나머지 서쪽, 중부지역은 6월 14일부터 실시합니다. 네팔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안정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감사한 것은 지난 지진이후 정치적, 종교적으로 어려움을 주던 떠라이에 있는 라저빠 정당이 참패하는 양상으로 가고 있습니다만 6월에 있을 선거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계속 네팔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다딩에 건축 중인 버이레니교회가 있는 지역 근처로 지나던
기독교의 신앙체계는 율법과 복음이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것이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에게 주신 것이다(요1:17).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주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법이요(출20:2~3), 복음은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영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으로 율법을 완성시키신 것이다(마5:17). 그리고 그 구원(아버지께로 가는 길)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되신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요14:6). 북한의 주체사상을 자세히 검토하면, 바로 기독교의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김일성 일인독재체제가 구축된 1967년에 선포된 ‘주체사상’은 율법으로, 김정일이 공식적인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에 제시된 ‘혁명적 수령관’이 중심을 이루는 ‘김일성주의’는 복음으로 비견될 수 있다. 더불어 2012년에 김정은이 선포한 ‘김일성-김정일주의’ 또한 ‘복음’의 성격으로 볼 수 있겠다. 여호와 하나님은 히브리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20:3) 이는 하
사랑하며 고마운 동역자 여러분! 한국은 산과 들이 푸르러 꽃이 피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고 캄보디아는 어디를 가나 망고가 지천인 가장 더운 계절입니다. 최영선 선교사 추모예배를 위해 잠시 들른 캄보디아는 펄펄 끓고 있습니다. 다행히 올해는 우기가 일찍 시작되려는 듯 비가 가끔 와 4월의 황량함은 좀 덜한 것 같습니다. 저는 신대원 6학기의 과정을 6월까지 마치고 6월 27일에 캄보디아에 들어가 새로운 마음으로 제2기 사역을 시작 할 예정입니다. 4월 26일에 최영선 선교사 1주년 추모예배 선교지에서 추모예배를 드린 적이 없었고 또 짜엉래센터교회가 지금 어려운 상황이여서 추모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것이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후배 선교사님의 도움과 교회 리더들의 마음이 모아져 최영선 선교사의 1주년 추모예배를 잘 드릴 수 있었습니다. 최영선 선교사가 50도 못된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마음 아프고 속상한 일이지만 캄보디아에 한 알의 밀로 썩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캄보디아에 많은 열매가 있을 것이라고 제가 간증했습니다. 그런 후 현지 교인들 5명이 최 선교사와 함께 했던 삶을 나눴습니다. 함께 동역하는 양준석 선교사님이 최 선교사의 아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