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한 역사 논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국가수반의 발언으로 시작된 3·1절 기념사가 역사인식에 대한 찬반논란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의견을 주장하고 이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다시 말해 역사적 사실이 계속 나오고 있고 마무리가 되지 않았는데 과거를 무시하며 나아가는 것 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디딤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는 소리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과거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적극적인 종교라는데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 같다. 수천년 전의 기록인 성경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리며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만 봐도 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5월은 우리 교단에 있어 아픔의 역사가 있는 달이다. 1944년 5월 10일 함흥재판소는 우리 교단의 전신인 동아기독교에 대해 “신사참배와 황궁요배를 거부하므로 일제와 천황을 모독했으며 교단의 교규 내용이 일제의 국체명징에 위배되는 불온사상을 지닌 교단”이라는 죄목으로 교단 해체령을 공표했다. 전국의 교회 건물은 폐쇄 조치를 당하고 모든 예배 행위는 금지
3년 전 1월,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기 직전 그 땅을 밟았다. 세워진 지 겨우 4년 남짓한 미자립교회의 배부른 행보였다. 온 성도로 하여금 성경 속 지명을 입체적으로 떠올리게 만들겠다는 담임 목사의 말씀 중심 목회 지향성이 불러 낸 거룩하고도 거국적인 사단(事斷)이었다. 올 1월, 기세 꺾인 코로나 덕분에 다시 한 번 그 땅을 밟았다. 아마도 가보지 않은 최후의 성도가 짐을 꾸려야 이 복된 소요가 멈출 것인데 교회가 조금씩 자라나고 있으니 끝을 가늠할 길이 없다. 3년 마다 일명 뿌리 이스라엘 원정대의 구성원이 달라지는 것은 거의 필연적 요소다. 그도 그럴 것이 마련해야 하는 비용이 결코 적지 않은데다 최소 7~10일 정도의 외유가 허락돼야 하다보니 경제적, 일상적 처지에 결행 여부가 달려있다는 점 그리고 각종 예약, 예매일을 앞당길수록 비용이 절감되다보니 순례일보다 수개월 앞선 시점에 참여여부를 확정지어야 하는 등 알고 보면 은근 모험심이 요구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성지순례가 마치 선별된 자들만 갈 수 있는 듯 소개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인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신자의 관점에서 분명 순례 여정은 여느 여행과 차별된 걸음
목회자부부 영적성장대회(대회장 김인환 총회장)가 “회복을 넘어 사명으로”란 주제로 3년 만에 제주도에서 성공적으로 열렸다. 성장대회는 침례교를 대표하는 가장 큰 정례적인 행사였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3년 만에 열렸다. 회복의 섬, 제주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코로나19로 기나긴 고난의 터널을 지나온 참가자들 모두에게 만남과 교제의 장이었다. 또한 집회와 세미나를 통해 영적인 충전의 시간이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인환 총회장을 비롯해 총회 의장단과 임원, 제주지방회가 공항에서부터 기쁨으로 환영하며 맞아주는 것을 시작으로 제주 주요 관광지를 돌며 오랜만에 목회 동역자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인환 총회장은 환영사에서 “이번 성장대회는 암울하고 힘든 코로나 시기를 지나 회복의 중심이 될 것”이라면서 “이번 대회에서 회복을 경험하고 사명을 다시금 재확인해 살아내는 각오와 결단이 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저녁집회는 하나님 앞에 뜨겁게 찬양하며 말씀 증거자의 심령을 격동케 하는 선포로 영적인 재충전을 가지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체험하는 은혜의 도가니였다. 모두가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함을 돌리는 회복의 시간이었으며 주님의
최초로 한글에 띄어쓰기를 적용한 것은 영국에서 온 ‘존 로스’ 선교사였지만, 그의 저서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 1877)’ 교재와 띄어쓰기는 대중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대중화시킨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미국의 ‘호머 헐버트’ 선교사였다. 그는 조선의 정치와 외교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노력했었다. 때문에 당시 고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1905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고종의 밀서를 전달하려는 시도와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위한 사전 작업을 해줬다. 그런 그였기에 고종에게 ‘띄어쓰기와 쉼표, 마침표 등’ 서구의 언어식 표기요소를 적극 권장했고, 또한 국문연구소 설립을 건의하여 만들게끔 했다. 이런 그의 노력으로 1896년에 창간된 ‘독립신문’에는 본격적으로 띄어쓰기 등이 도입되게 됐다. 이후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면서 ‘띄어쓰기’는 정착단계에 이르게 됐다. 이렇게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에는 과거 선교사들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 32:41)
교회의 가장 큰 절기 중에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기쁨으로 선포하는 부활절이다. 부활절은 영원한 죄인으로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진 수난과 십자가의 참혹한 고통을 겪으며 처참하게 죽으셨지만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기쁨의 날이다. 부활의 기쁨은 어느 특정한 인종이나 성별, 계층 등에 상관없이 이 땅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뤄졌다. 육신의 그 분은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다. 이를 믿는 믿음이야말로 내가 이 땅의 사람으로 살다가 결국 죽음의 길을 걷게 되는 비참한 인생에서 죽음 이후 영원한 생명의 삶이 허락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23년 부활절은 엔데믹 이후 대면 예배로 진행하며 서울을 비롯해 지역별로 연합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특히 서울에서는 광화문 광장에서 부활절 퍼레이드를 진행하며 세상과 함께 소통하는 부활절의 의미를 전하고 믿지 않는 이웃들을 향해 복음을 선포하는 시간을 가지며 뜻깊은 행사를 진행했다. 개교회 또한 모처럼 대면으로 진행하는 부활절 감사예배를 드리며 성도들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나눴다. 기쁨과 감사함이 넘치는 부활절을 보내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하셨다(창 1:27~28).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불순종하는 것은 어떠한 차이를 가져오는가를 사례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2022년 6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인구는 약 5157만 명이다. 이스라엘은 2020년 기준으로 922만 명이다. 2020년 출산율은 우리나라가 0.8명이고, 이스라엘이 2.9명이다. 이 출산율대로라면 90년 후 양국의 인구는 얼마가 될까? 현재 인구는 한국이 5157만 명이고 이스라엘이 922만 명으로 한국:이스라엘=5.6:1이다. 인구변화방정식 y=аbⁿ(참조: ‘저출산 극복 p.33)에 대입하면, 30년 후에는 한국이 2063만 명, 이스라엘은 1337만 명이 돼 그 격차는 1.5:1로 좁혀진다. 60년 후에는 한국이 825만 명, 이스라엘은 1939만 명이 돼 인구는 역전돼 1:2.4로 이스라엘이 오히려 커진다. 90년 후는 한국 330만 명, 이스라엘은 2811만 명이 돼 그 격차는 1:8.5로 벌어져 이스라엘이 더욱 커진다. 현 출산율대로라면 90년 후 우리나라는 인구 330만 명의 노인국이 돼 국가소멸·민족소멸을 목전에 두고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은 생산연령인구가 많은 2811
‘우연’을 믿는 사람일지라도 우연이 겹치면 우연이라고 믿지 못한다. 필연이라고 믿는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며 섭리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이라고 믿는다. 그렇다. 성경은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뿌린 대로 거둔다고 가르친다. 1945년 8월 6일 이른 아침, 특별하게 제작된 B-29 폭격기들이 일본을 향해 이륙했다. 특별한 폭격임무를 위해 특별제작된 폭탄을 투하할 폭격기 ‘에놀라게이’를, 특별편성된 비행전대장 폴 티비츠 대령이 직접 조종했다. 이보다 1시간 전에, 3대의 B-29 폭격기가 먼저 이륙했다. 1대는 고쿠라, 다른 1대는 히로시마, 다른 1대는 나가사키, 이렇게 일본의 세 도시를 향해 날아갔다. 각 도시의 기상상황이 폭탄투하에 적합한지를 관측해서, 에놀라게이를 조종하는 폴 티비츠 대령에게 보고하는 것이 임무였다. 어쩌다 나가사키가 아닌 히로시마였을까? 폴 티비츠 대령은 고쿠라와 히로시마의 하늘에는 구름이 짙게 끼어 있었지만 나가사키의 상공만이 맑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히로시마 상공을 비행하던 B-29로부터 연락이 왔다. 히로시마 상공의 구름이 갑자기 걷히면서 시계가 아주 좋아졌다는 보고였다. 게다가 일본군 요격기도 보
코로나 팬데믹이란 기나긴 터널을 지나 엔데믹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점차 하늘 길이 열리고 사람들이 마스크 없이 돌아다녀도 불안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이르면 오는 7월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과 코로나 확진자 격리 의무가 완전 해제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교회 또한 새로운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현장 예배의 회복으로 예배당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일상회복, 예배회복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해 12월 20일 발표한 ‘기독교인의 기독교 이탈 통계’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믿는 종교에 변화 여부를 보면 종교에 변화가 있는 사람은 전체의 9%로, 10명 중 1명꼴로 나타나 국민들 사이에 종교변동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 변화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1년 전 개신교(12%), 불교(9%), 천주교(8%)를 믿었던 사람 중 ‘현재는 믿는 종교가 없다’로 바뀐 비율, 즉 무종교인이 된 비율이 10명 중 1명꼴이었고, 1년 전 개신교 신자였던 사람 중에서 개신교를 이탈한 경우는 13%로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결과에 대해 코로나 팬데믹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겠지만, 엔데믹에 따른 현장예배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은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을 만한 법정기념일이다. 매년 장애인의 날이 되면 사회적으로 장애인의 날 행사를 진행하고, 정부는 언론을 통해서 장애인의 날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힘쓰고 있다. 최근 20~30년 동안 많은 교단들과 교회들은 사회적인 약자인 장애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장애인의 날을 전후한 주일을 장애인 주일로 정해서 예배드리고 있다. 교회가 장애인 주일을 지정해 예배하는 이유는 일반사람들이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거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과 교회의 성도들이 장애인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발달된 사회일수록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의 인권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다양한 법과 제도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동일하게 교회 역시 성경적인 믿음을 가진 교회들은 교회에서 장애인들을 주님의 자녀들로 섬기고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교회의 경우는 교회의 사역 가운데 어떻게 장애인들과 함께 해야 할지에 대한 인식과 정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많은 목사들이 장애인주일을 지키면서 무엇을 장애인들에게 해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교회를 세우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담임목회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피할 수 없는 고민이 있다. 교회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때, 필연적으로 교회 시스템 개선과 재정 현안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이뤄지는 일로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 한계도 현실로 다가온다. 국내선교회(이사장 김주만 목사, 회장 유지영 목사)는 침례교단 목회자가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기 위해 세워진 기관이다. 국내선교회는 국내 침례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 세워진 기관으로 국내선교회 기금과 선교비 후원 등으로 사역을 감당해왔다. 국내선교회는 설립 이래 교회개척학교를 비롯해 미국 침례교회와 연합해 진행한 한미전도대회, 대학과 학원가 중심의 대학생 선교, 농어촌 선교, 북한 선교 등을 전개해 왔다. 국내선교회는 최근 몇 년 동안 미남침례회 해외선교회(IMB)와 함께 미자립교회를 미래자립교회로 세워나가는 KIM 협력 사역 등 최근 5번의 세미나를 진행해 왔다. KIM 사역은 IMB가 해외선교지에서 전개해 온 전도 운동과 교회세우기 사역, 교회 성장 사역 등의 경험과 노하우를 한국 침례교회에 전수하며 국내선교회와 함께 한국적 상황의 교회 성장 모델을 발굴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지원하며 새로운 교회 개척과
2023년 2월 27일 한국침례신학대학교(한국침신대) 이사회는 혹독한 산고를 겪은 끝에 제15대 총장을 선출하는데 성공했다. 관련 당사자들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물론, 대학이사회를 정상화하기 위한 10년에 걸친 분란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고 말할 이들도 있겠지만 고통은 산술적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고통이 크기만큼 결실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눈물을 흘리며 뿌린 씨앗을 기쁨의 결실로 바꾸는 것, 한국침신대의 생존만이 아니라 교단 전체에 비전을 제시하는 것 등의 수많은 과제가 신임 총장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대학총장의 중요성은 총회장 몇 명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교단의 백년대계를 책임진다. 대학총장의 비전은 교단정치에 뛰어드는 이들이 제시하는 ‘청사진’ 혹은 ‘비전’과는 도무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 침례교인들이 한국사회에서 받는 평가의 가장 큰 몫의 책임은 역대 총장들이 짊어져야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린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부는 1년 동안 흘린 피와 눈물과 땀의 양과 무게로 평가받지 않는다. 얼
사도행전 2장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때 세워진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의 말씀과 기도, 그리고 구제와 섬김의 사역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펼쳐나갔다. 초대교회가 나눔과 섬김의 사역을 전개한 이유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초대교회 시기, 바울과 여러 사도들, 그리고 그들의 동역자들이 세운 교회들은 이웃을 돌봤다. 이 초대교회의 정신은 계속해서 전수되고 계승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에 복음을 들고 온 선교사들도 의료와 교육, 보육 등 소외된 계층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한국교회의 토대를 세웠다. 130여년 전, 말콤 펜윅을 통해 세워진 침례교회도 성경을 바탕으로 초대교회의 정신을 계승해 왔다. 교회의 수나 성도들은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었지만, 마을의 한 가정에 복음이 들어가면 그 가정을 통해 여러 가정들이 복음을 접한 뒤, 모이기 시작했고 부족한 것을 서로 나누며 살았다. 쪽복음을 들고 여러 마을과 고을을 순회하며 섬겼던 순회선교사들도 자비량으로 다니며 마을마다 복음을 전하는데 전념했다. 초기 침례교회는 철저하게 초대교회를 본받기 위해 몸부림쳤으며 이름 모를 수 많은 순회 사역자들이
자국 언어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가? 우리말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에 분명 틀림없다. 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대게 알고 있는데, 그것은 역사적 사료와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한글 창제는 세종 이도와 그의 자녀들인 ‘문종, 세조(수양대군), 안평대군, 정의공주’의 작품이다.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이 완성된 후 그것을 책으로 만드는 시기에 참여했으며, 그중에서도 벼슬이 낮은 학자들만 참여했다. 왜냐하면, 당시 집현전 학자들의 대부분은 중화사상(中華思想)을 기본으로 하는 화이 질서(華夷秩序)에 빠져있었고, 화이 질서를 명분으로 양반 중심의 지배 사회를 계속 누리고 싶었다. 이들은 한자와 성리학으로 견고하게 구축된 통치 영역에, 미개한 백성들이 들어오기를 원하지 않았던 교만함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 기득권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벼슬 높은 집현전 학자들과 조정의 일부 대신들이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것을 알면, 맹렬히 반대하는 것은 물론, 화이 질서의 근본인 명나라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종 이도는 자녀들 중에 자신의 뜻을 이해하고, 신뢰가 두터우며 및 역량이 있는 이
최근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발표한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는 우리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이긴 하지만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4%가 나온 것이다. 이 결과대로라면 향후 교회의 복음전도 활동이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감출 수가 없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빅데이터 분석에서 2022년 결과가 전년동기간 대비 긍정적으로 반등했다는 점이다. 해당 결과를 발표한 지앤컴리서치 김진양 부대표는 “교회와 관련한 부정적인 이슈 중에 새로운 이슈가 없었고 우크라이나 난민 긴급지원이나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교회의 대응 등 긍정적인 이슈가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교회를 향해 쌓여있던 일반 대중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교회는 긍정적인 이슈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내야 하는 상황이다. 방역대책으로 인해 교회가 예배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여러 핍박을 당해 억울하다거나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한국교회가 힘과 지혜를 모아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많은 교회들이 이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터져 나왔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활동하던 시기 나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딱히 간증할만한 사건이 없다는 점이다. 기타도 못 치고 당시 운전면허도 없었기에 교회오빠 자격에서 일찌감치 탈락한 상황이었기에 누구 앞에 내세울 간증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모태신앙이 아님에도 이상하리만치 물 흐르듯 교회에 발을 내디딘 나로서는 하나님이 어떤 환상을 보여줬다며 단상에 올라 울먹이며 이야기를 풀어놓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하나님이 그런 환상을 보여주셨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곤 했다. 어쩌면 남 앞에 나를 내세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성향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단상 위에 올라갈 기회를 안주셨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간증들을 보면 대부분의 주체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는 이야기와 동시에 자신을 인도한 하나님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데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간증은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계기자 13년 동안 만나온 목회자들 가운데 몇몇은 인터뷰나 자신이 하는 사역을 소개하는 보도자료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인도했다는 등의 내용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인물인지,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