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 이 시대의 최고의 화두! 10/40 창(10/40 Window)을 주창한 선교 전문가 루이스 부쉬라는 학자는 최근에 4/14 창이란 신개념 선교지를 선포했다. 내용인즉, 4세에서 14세의 다음 세대를 잃으면 모든 미래는 끝이 난다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의 다음 세대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미래는 끝이 난다는 것에서 창안된 ‘신개념 선교지대’이다. 이러한 상황은 다음 세대를 잃어버린 서구 기독교, 그리고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지금 한국교회의 급격한 쇠퇴와 고령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골 교회는 시골이라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았는 줄 안다. 그러나 도시의 교회를 가도 젊은이들은 거의 없고 고령화된 늙은 교회들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뱁티스트 트렌스포메이션(Baptist Transformation, 이하 BT)를 준비하면서 전국의 침례교회들의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도시나 농어촌을 막론하고 다음 세대, 특히 청년부가 존재하는 교회들이 지방회 안에서 1/3이 안됐고, 그나마도 제 기능을 발휘하는 청년부는 1/4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한국교회의 절반 이상이 주일학교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보고는 우리가 이미 아는 상황이다. 대학
로마서 필사를 마치고, 성실히 완성케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필사를 끝마치며 감사 기도를 하던 중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필사를 마치면서 네가 깨달은 것이 무엇이니? 어떤 마음으로 필사를 했니?”라는 음성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는데, 또 물으셨습니다. “필사를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서 했니, 칭찬 받고 싶어서 했니, 완성의 목적을 가지고 했니, 상 받고 싶어서 했니, 누구의 의를 위하여 했니?” 말씀을 대하는 저의 태도와 의도를 물으셨습니다. 나도 이것을 해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던, 일 중심적인 저를 발견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로마서 필사책을 폈습니다. 자세히 세세하게 다시 읽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님과의 친밀함을 구하며 묵상을 써내려갔습니다. 로마서를 자세히 읽으면 읽을수록 울컥 올라오는 감동의 말씀들은 살아서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서 필사를 하며 ‘비판과 비난’이라는 주제로 훈습일지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을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장단점을 구분하며 비판했던 저는 이 문제가 죽는 날까지 해결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사랑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롬14:15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
오는 5월 31일부터 이틀간 서울광장에서 열릴 서울 퀴어 문화축제를 앞두고 한국교회의 반대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퀴어축제가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는 인권 행사”라는 주최 측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교회는 “성경의 권위와 질서, 그리고 사회 근간을 뒤흔드는 악행을 용납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를 비롯한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퀴어 문화축제 주최 측은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인권 축제인데 필요 이상으로 한국교회가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한 대다수 한국교회와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문화축제라는 이름 아래 일탈의 선정성과 함께하는 상업성을 지적하며 반대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보수 기독교단체들은 대한문광장 앞에서 축제 이틀째인 6월 1일 오후 1시부터 퀴어 축제의 맞불 행사를 열겠다고 선언해 행사 당일 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퀴어축제 행사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국민대회준비위원회 측은 지금의 성 소수자들은 세상 주요 언론의 관심을 등에 업고 선하지 않은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대회 측은 “퀴어 축제가 동성애자의 인권 보호와 평등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포함된 5월을 우리는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가정의 달을 맞아 사회 곳곳은 물론 한국교회도 여러 행사를 통해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주님이 허락하신 성경적 가족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보면서 전도의 달로 삼았으면 한다. 성경은 가정의 중요성을 굉장히 심도 있게 다룬다. 십계명을 보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 것과 안식일 등 주님과의 관계에 관한 계명 이후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성경은 남자인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돕는 배필로 여자인 하와를 창조해 가정을 이루게 하셨으며, 잠언은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 10:1)를 비롯해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남편과 아내 사이 등 가족 구성원이 마땅히 지켜야 할 교훈들로 가득하다. 신약에도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라며 강한 어조로 가정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설파한다. 이렇듯 성경을 통해 주님께선 거듭 가정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성경적 가정을 세우는 일에 굉장한 도전
한국 침례교의 태동을 열었던 말콤 C. 펜윅 선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대회와 한인침례인대회(영적성장대회)가 지난 4월 30일부터 3박 4일간 강원도 홍천 비발디 파크에서 900여 명의 침례교 가족들이 함께 한 가운데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혼란스러웠던 임시총회가 끝나자마자 시작돼 130년 주년 기념대회가 차질은 빚을까 우려 속에서 열렸지만 우리교단 총회(총회장 박종철 목사)가 초청한 28명의 미남침례회 해외선교회(IMB) 소속 은퇴 선교사로 인해 대회가 빛났고 선교 사명의 뜻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들 은퇴선교사 28명은 모두 한국에서 15년 이상 대한민국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펜윅 선교사는 조선을 사랑했고 동북아 북방 지역 선교에 모든 열정을 쏟았는데 그 열정이 은퇴선교사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펜윅은 한반도를 복음의 전진기지로 삼았고 이를 바탕으로 북간도와 만주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국내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오지에 교회를 세우며 주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선교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였다. 이 정신이 지금에 이르러 오늘날 한국의 침례교회는 성도가 2~30명만 되어도 해외선교사를 파송하는 교단으로 성장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는 13
헌법재판소(헌재)가 최근 임신 초기 낙태까지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이번 사건은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가 “낙태죄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에서 시작됐다. 이로써 7년 전 합헌 결정은 뒤집혔다. 헌재는 지난 4월 11일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한 위헌 청구 심판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또한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했다. 이날 심판에서 헌재는 재판관 4명이 헌법 불합치, 3명은 단순 위헌, 2명은 합헌 의견을 각각 냈다. ‘헌법 불합치’ 결정이란 위헌성은 인정되지만 해당 법률을 당장 무효화할 경우 뒤따를 사회적 혼란 등을 피하기 위해 법률을 고칠 여유 등을 두고 효력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태아 생명권 우선 입장’에서 ‘여성의 선택권 문제’로 바뀐 것이다. 헌재는 “태아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만 절대적 우위를 부여할 수 없다”고 했다. 위헌 판결문을 쓴 헌재나 이를 찬성하는 집단이나 단체들은 앞으로 보수적인 교회들이나 이번 판결에 반대하는 항의자들로부터 거센 도전과 비판을 수없이 받을 것이 자명하다.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지 않
내일 일을 몰라 사람은 막말을 하면 안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언제부터인지 나의 입장이 그렇게 됐다. 나의 남편인 한명국 목사는 줄기차게 침례교세계연맹(BWA)에 몸바친 사람이고 그 덕분에 나는 가정과 교회에 대해 강하게 버텨가는 힘이 생겼다. 어떻게 여기까지 달려 왔는지 지나온 걸음을 되돌아 보니 아득하다. 어린 시절 집에 오면 따뜻한 어머니는 없고 서먹하고 썰렁한 선생님만 있었고 결혼을 해서 나이많은 남편에게 사랑받겠다고 선택은 했지만 남편은 없고, 목사님과 BWA만 있었던 것 같다. 언제 이 우리를 벗어나 볼까도 생각하고 이리저리 안간힘을 써봤지만 탈출하려는 나에게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은퇴하고 새로이 받은 교회는 다시금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전에 정말 나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의지로 전국사모회에 헌신하게 됐다. 스스로 나를 반문해보고 또 불가능이라는 두려움이 나의 영혼을 짖누르기도 했다. 안한다라는 말을 수 없이 내뱉었다. 그러나 어느날 개척 초기 성도 한 분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모님 무슨 일 하시지요? 기도 중이 하나님이 사모님께 물질을 보내라 합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 길을 비켜갈 수 없는 길이라 여기고 순종하기로 한 뒤
2019년 부활절이 우리 앞에 찾아왔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자신이 직접 부활체로 나타나심으로 그 약속을 확증하셨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 되심을 증명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믿는 신자들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안겨 주신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기까지의 기록을 보면 우리는 주의 길을 따르는 자들의 흥미로운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다.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도망가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 누구보다도 먼저 무덤으로 달려갔고 부활을 목도한 후 용감하게 복음을 전하며 나아갔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겼다가 빌라도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한 후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에 주님을 모셨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도한 후 의심하지 않고 바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한반도의 복음화를 위해 130년 전 조선 땅을 밟은 파란 눈의 청년 말콤 C. 펜윅을 기념하는 기념대회가 오는 4월 30일부터 3박 4일간 강원도 홍천 비발디 파크에서 열린다. 1889년 한국에 온 펜윅은 조선에서 빠르게 한국말을 배우고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지역을 찾아 원산에서 복음전파를 시작했다. 펜윅은 원산과 공주, 강경, 문경, 간도, 연해주에 침례교회를 세우며 침례교회가 조선 땅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힘써왔다. 펜윅의 선교적 사명을 새롭게 조명해 보기 위해 130주년 기념대회와 세계한인침례인대회(영적성장대회)를 교단적 차원으로 마련했다. “은혜로 130년! 다가올 침례교 시대!”란 주제로 열릴 이번 대회는 사전 행사로 침례교 미래의 로드맵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좌담회(4월 12일), 펜윅 선교 130주년 기념 학술 대회(22일)이 열릴 예정이며 오는 30일에 기념대회와 미남침례회 한국선교부(IMB) 선교사 초청의 밤, 한인침례인 선교사 보고의 밤 등 침례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품고 있는 교회임을 선언할 예정이다. 지난 4월 5일 교계 기자 초청 간담회에서 총회장 박종철 목사는 “한국침례교회의 태동은 말콤 C. 펜윅을 통해 시작됐음을 누구도 부인할
토종 게임기의 부활, 23년 만에 부활한 ‘공중보건장학제도’ 대량 미달! 세상 사람들도 부활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뭔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실체는 모르고 결과만 가져다 쓰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찬양한다. 주님과 함께 일으켜 세워진 우리는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간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갱이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정 성경적인 부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예수님은 진짜 금요일에 돌아가셨는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금요일’(Good Friday)에 죽으시고 ‘부활절’ 주일 이른 아침에 죽음에서 일어나셨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안식일(보통 토요일) 전날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금요일에 죽으신 것으로 믿고 있다. 아니다. 예수님은 수요일 날 돌아가셨다. 그분께서 죽으신 다음 날의 안식일은 매주 돌아오는 정규 안식일 즉 토요일의 안식일이 아니었다. 그 날은 매년 한 번 있는 안식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안식일이 큰 날이었기 때문이다(요 19:31). 이러한 큰 안식일은 한 주의 어떤 요일이라도 될 수 있으며 그 해에는 분명히 목요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예비일(수요일)에 십자
산상수훈의 내용 중 마태복음 6장에서, 주님께서 당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며 의식과 형식에 치우쳐 오직 사람들이 보아주기를 바라고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사거리나 길거리에서 구제를 하거나 기도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경계를 시키시는 한편,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외식과 위선으로 단정하시고 본받거나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려는 그러한 행동에 대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더욱 실감하게 하시려고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2,5,16)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까 그들이 행하는 그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일이 틀림없는데, 하나님께 받을 상보다, 먼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려고 하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보다 사람을 먼저, 그리고 사람을 더 의식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이 되어버려서 하나님이 따로 갚아 주셔야 할 상이 없다는 것이다. 주님이 직접 하신 이 말씀을 주님의 임재 앞에서 생각해 보면, 오늘 이 시대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전반적인 면에서의 모습을 생각해 보지
성 평등, 동성혼 합법화 등이 포함된 법무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에 대해 한국교회가 결사반대하고 있다. 양성평등을 부정하며 남녀 구별은 물론 건강한 성관념마저 없애려는 ‘성(젠더)평등 정책’인 NAP는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해 8월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NAP가 동성애와 동성혼을 옹호·조장하는 젠더(gender) 평등을 추구하는 데다 교계가 가장 우려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안양시기독교연합회(대표회장 임용택 목사)와 군포시기독교연합회(대표회장 김재용 목사), 의왕시기독교연합회(회장 이영학 목사) 등은 시내 곳곳에 180여 개의 플래카드를 걸고 NAP에 포함된 동성혼 허용, 성 평등 정책, 차별금지법 등의 조항을 모두 삭제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안양시, 군포시, 의왕시 외에도 서울, 부산, 광주, 세종, 울진, 전주, 제주, 천안, 청주 등 광역시·도에 소재한 각 기독교연합회 및 시민단체들은 최근 2000여 장의 플래카드를 동시에 게시, NAP에 포함된 동성혼 허용, 성평등 정책, 차별금지법 등의 삭제를 촉구했다. 사실상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이 다 참여하고 있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소속 교단장들은
제이슨 맥코이 선교사 가족 미국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말콤 펜윅 선교 130주년 기념 및 세계한인침례인대회(영적성장대회)에 잘 사는 미국을 한국으로 모시면서 굳이 비행기표까지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니 이 일을 준비하면서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는 박종철 총회장의 결단에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은퇴하고 미국에 돌아간지도 수십 년, 남편이나 아내는 이미 고인이 된 채 홀로 살고 계신 은퇴 노인 선교사에게 1000달러가 넘는 비행기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다. 이번 대회 최고령 참가자인 현복자(Betty Jane Hunt) 선교사는 4월 11일로 만 93세가 된다. 1958년 30대 초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한국에 와서 67세에 은퇴해 고향에 돌아가기까지 자신의 청춘을 한국에 바쳤다. 침례교 교회진흥윈이 생기기 훨씬 이전, 지금 진흥원이 하고 있는 일을 시작해 침례교회의 개척과 발전을 도왔던 그는 자신의 생애에 한국 침례교회가 자신을 재정적으로 후원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며 나이를 잊은 채 환호했다. 앤 윈더스 켈리 선교사 (미국 정착후 결혼, 사진 왼쪽
최근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들을 보면 경제계나 정계, 종교계 등 가릴 것 없이 명망 있는 사람들의 민낯이 언론에 드러났다. 이들은 우리가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이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사회적 인지도를 높여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비도덕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두 얼굴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히 경험할 수 있는 인간 세상의 이치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선한 사람이 되거나 악한 사람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한국교회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탄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문제가 교회 지도자, 즉 리더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회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이다. 신앙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불신자들을 인도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섬김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하지만 지도자의 강한 리더십이 자칫 교회의 리더십인양 행사하며
최근 들어 매일 순간순간 습관처럼 읊조리듯 묵상하는 말씀이 요엘서 2장28절 말씀인데 이 말씀이 왜 나를 이렇게 매료시키는가?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들은 이상을 볼 것이며”라는 이 짧은 두 문장은 내 가슴을 뛰게 한다. 늙은이들이 꿈을 꾸며 살아가는 세상, 젊은이들이 이상을 바라보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신나는 세상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최근 우리네 삶들을 돌아보면 너무 많은 자조적인 말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늙은이와 젊은이들의 꿈과 비전을 억압하는 용어들이다. 이런 말이 있다. “당신 참 젊어 보인다 라고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은 이미 늙은 것을 기억하라.”고 했지만 늙은이가 되는 기준이 머리털의 희고 검음의 차이인가? 하지만 그 기준은 꿈을 꾸지 못하고 “과거만 회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늙은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이상을 잃어버린 순간 그들은 이미 정상적 젊은이라고 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적 현상이다. 이 현상에 그리스도인들이 무비판적으로 무임승차하고 있지 않은지 묻고 싶다. 늙은이를 꿈꾸지 못하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