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전은 한국전쟁의 상처들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을 때다. 우리교단은 전쟁의 상처를 이기고자 미남침례회와 연대해 교단을 재건하는데 힘을 보탰다. 이를 위해 교육을 일으키고 의료 사역과 복음전도 사역을 함께 했다. 또한 침례교회를 홍보하고 알리기 위해 ‘침례회보’라는 명칭으로 교단지의 첫 걸음을 대디뎠다. 교단의 다양한 소식들은 바로 침례회보를 통해 전해졌고 침례교회 소통의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15년간 꾸준하게 교단을 위해 헌신했지만 재정 운영난을 겪으면서 제169호를 발행하고 난 뒤, 자진 폐간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침례교단은 한국교회에서 약한 교세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특별히 ‘침례’라는 표기사용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공격받는 등 여러 이유로 핍박을 견뎌내며 전도해야하는 불편함이 컸다. 이에 교단 차원에서 여러 목회자들이 뜻을 모아 1977년 복간 1호를 발행하고 제호도 ‘침례회보’에서 ‘침례회신문’을 거쳐 지금의 ‘침례신문’으로 자리 잡기까지 혼돈과 방황, 성장의 길을 지금껏 걷고 있다. 본보는 현재 침례교회를 비롯해 국내외 주요 교단과 비정부기구(NGO), 그리고 해외선교지에 뿌려지고 있다. 또한 2012년 미주 침례신문
최근 몇 년 동안 한국교회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1~2세대 담임목사의 뒤를 이어 2~3대 후임 목회자로 세우기 위한 ‘세대교체’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물론 목회자의 세대교체는 중·소형 교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후임목회자 선정과 관련해 초기에는 침례교회 역시 한국교회의 주요교단인 장로교 감리교 등에서 선보인 후임 목회자를 직접 청빙(초빙)하는 방식을 따랐다. 그래서 미국 한인목회에서 부흥을 경험한 목회자나 특별히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받은 목회자가 후임 목회자로 선택받고, 영향력 있거나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지금껏 사역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유학파나 성공한 한인 목회자의 가장 큰 특징은 영성보다는 지성을 더 겸비해 설교가 깔끔하다. 대인관계도 합리적이고 무난하다. 그래서 해외 경험이 많은 한국교회의 성도들과 무난하게 소통하며 성도들은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의 사역을 돕고 있다. 이런 경우 교회도 성장하고 목회자 개인과 관련된 큰 흠집이 없는 한 목회 연착륙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모든 교회가 후임목회자 선정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한
바야흐로 여름 수련회의 계절이다. 1980~90년대 한국교회의 여름은 수련회와 사경회 참여 열기 등으로 뜨거웠다. 그 당시 여름사역은 교회와 수련회장, 기도원 등은 전국에서 모인 성도들로 북적 거렸다. 참석자들은 뜨거운 땡볕도 마다하지 않고 몇 대의 선풍기에 의지하며 옆 사람의 땀 냄새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취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체험했다. 청소년들의 방학이 있는 7~8월이 되면 수많은 수련회와 부흥성회 일정으로 기도원은 행사예약을 잡기조차 버거웠다. 교회도 유치부부터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부, 장년부 등에 이르기까지 여름행사 준비와 진행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연합 수련회가 아닌 개 교회 자체로 준비하는 수련회는 거의 전교인이 참여해 준비하고 수련회에 가지 못하는 성도들도 예외 없이 헌신했다. 그야말로 교회 여름행사는 한 부서만의 행사가 아닌 전교인의 행사였다. 20~3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의 여름행사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90년대를 정점으로 교회 다음 세대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교회학교 수련회도 자연스럽게 통합되거나 교회 행사 자체가 전교인 수련회로 변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주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정착하면서 가족 중심으로 여
내가 한국인으로 모국어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말은 우리 역사와 문화, 관습, 그리고 우리 전통들을 송두리째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민족의 의식세계에 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그 민족들이 수천 년을 그 땅에서 살아오면서 민초들이 만들어낸 속담들이야말로 그 민족성의 일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 한민족이 사용해온 속담가운데는 아름다운 속담들도 많이 있지만 내가 인생의 여정을 살다 느낀 것은 어떤 속담들은 이것들은 우리 속담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우리 사회 곳곳에는 오늘도 아니 땐 굴뚝에서 시커먼 거짓 프로파간다의 연기가 무럭무럭 피워 올라서 무수한 생사람들을 잡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옷깃 한번 스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요란한 소리들이 도처에서 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종류들의 어처구니없는 속담들을 오늘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 가운데서 내게 가장 공감되지 않는 속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모
미국 마케팅컨설팅업체 앤더슨 애널리스틱스가 미국 대학생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 삼성전자를 일본 기업이라고 답한 대학생은 무려 58%였다. LG전자 역시 응답자의 42%가 미국 기업이라고 대답했고, 26%는 일본기업이라고 대답했다. 한국 기업이라는 응답은 겨우 9%에 그쳤다. 왜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한국 정부가 국가 브랜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미국 대학생들이 한국을 모를 수도 있다. 아니면 한국 기업들이 한국 회사라고 하면 물건이 안 팔릴까봐 일부러 일본기업으로 착각하도록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사실은 미국 대학생이나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국적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한다. 과거 수입품은 대부분 일본과 독일 제품이었기 때문에 브랜드 국적이 어디인지 관심도 없고 모든 브랜드가 일본이나 독일에서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의식이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을 개척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 브랜드에서 국가라는 요소는 점차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브랜드에서 교회에도 새로운 흐름이 요구되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교
부산지법 제1파산부(박종훈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7월 14일 채무자인 의료법인 기독교한국침례회의료재단이 운영하는 침례병원에 대해 파산 선고를 내렸다. 침례교 유일한 종합병원인 왈레스기념침례병원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1955년 부산 영도구 영선동에서 문을 연 지 6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을 맞았다. 침례병원은 체불임금만 300억원 등 부채가 967억원을 넘어섰다. 이에 법원은 침례병원의 총자산이 채권자들에게 갚아야 할 부채보다 적고 청산가치가 계속 병원을 운영하는 가치보다 높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침례병원 총자산은 895억7900만 원인데 부채는 967억1600만 원으로 채무초과 상태다. 채무자인 침례병원이 지급불능 상태에 있고 부채가 초과한 사실이 존재해 파산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침례병원 회생사건의 조사위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인용해 “채무자의 유동자산은 35억7300만 원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전정숙 변호사를 파산관재인으로 선임해 곧 파산절차를 밟게 된다. 채권자들의 채권 신고기간은 8월 25일까지다. 제1회 채권자집회는 오는 9월 27일 오후 부산지법 제307호 법정에서 열린다. 이에 앞서 침례병원은 적자가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처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유세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 당시에는 미국에도 공공시설이 별로 좋지 않아서 대개 선거 유세는 큰 교회에서 했다고 한다. 링컨이 상대방 경쟁자와 함께 합동연설을 하기로 했는데 먼저 다른 당 입후보자 가 연설을 하게 됐다. 마침 날씨가 덥고 해서 연설을 하다 보니까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졸고, 입후보자의 연설을 듣지 않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상대방 입후보자는 화가 났고 그래서 그는 청중들과 호흡을 맞추고 공감을 사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는 연설 도중 참석자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 연설의 테마를 바꿨고 그리고 청중을 향하여 물었다. “여러분, 천국에 가고 싶은 분은 한번 손을 들어 보십시오“라고 했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조느라고 몇 명밖에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입후보자는 이번에는 더 큰 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 그러면 지옥에 가고 싶지 않은 분은 손들어 보십시오. 그랬더니 청중이 모두가 손을 들었는데 링컨만을 손을 들지 않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 입후보자는 ‘잘 됐다. 이제야 링컨을 곤경에 처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링컨씨, 그럼 당신은 천국은 안 가고
철없던 시절 엉뚱한 생각을 했던 날들이 떠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웃는 일이 있다. 초등학교 4~5학년으로 기억된다. 어느 따듯한 봄날 우리 대문에서 건너다보이는 친구네 형한테 새색시가 시집을 왔다. 호기심 많던 나는 친구네 집에 새색시 보러 자주 놀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활짝 열려있는 방 문안으로 예쁘게 꾸며진 새색시 방안을 보게 되었는데 참으로 예쁘고 좋아보였다. 무엇보다도 벽에 걸려있는 ‘횃대보’가 얼마나 예쁘던지…. 하얀 천에 예쁘게 수놓아진 ‘횃대보’가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찾아온 엉뚱한 생각, ‘장가가고 싶다!’ ‘빨리 장가가서 내 방에도 횃대보가 걸려있는 방을 갖고 싶다’는 없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며칠 후 집에서 키우는 어미 소가 송아지를 낳던 날, 아버지는 뜬금없이 “이 송아지는 네 장가밑천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잘 키우라고 하셨다. 물론 아버지는 웃으시며 하신 말씀이었지만 어린마음에도 ‘장가밑천’이라는 말씀이 싫지 않았다. 그날부터 학교에서 오면 언제나 송아지를 관심 있게 돌봤고 여름이면 들에 나가 열심히 소먹이를 베어다 주곤 했다. 송아지는 잘 자라서 어미 소만큼 컸고 살찌워서 등에서 윤기
여름의 산들바람이 부는 날, 강줄기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덧 메밀밭에 하이얀 꽃이 피어서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누군가 살고 있는 옛집을 고쳐 만든 커피집에서 목마름을 축이고 다시 걷던 길을 되돌아서 푸른 버드나무숲을 이룬 강가를 향해 다음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잃어진 침묵을 생각하며 스바냐 3장17절의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를 묵상해본다. 메밀밭 샛길을 걸으면서 며칠 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옛 친구의 이야기 속에 인생길을 가는동안 꼭 피해야할 본인의 삶을 전해줬다. 그것은 누구와도 특히 사모로 교인들과 싸워서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해 줬다. 그런데 그 친구의 남편 되는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기를 “절대 침묵자”라는 점이다. 요즈음 많은 뉴스의 홍수 속에서 ‘말말말’로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문화 예술의 생활화를 통해 삶과 문화가 일상에서 함께 이뤄가는 반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혼미시키는 ‘사탄의 키워드’도 진실인양 둔갑시켜 각종 뉴스 속에 가슴이 섬뜩하다. 세상이 온통 폭염 속에 논바닥이 갈라지고 농작물이 타들어갈 때 “아버지 하나님 은혜의 단비를 주옵소서”라고 교회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와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 등 4개 단체는 지난 7월 6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인 서울광장에서 3년 연속 퀴어 축제를 승인함으로써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박원순 서울시장의 잘못된 행정을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다. 또 한국갤럽 2017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국민들 가운데 동성혼 반대가 58% 찬성이 34%로 나타났듯이 대다수 국민들은 동성혼조차 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는 아직까지 우리사회에 건전한 윤리 의식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7월 15일 보란 듯이 동성애 축제가 열림으로써 한국교회 대다수와 건강한 서울시민들은 지금 크게 분노하고 있다. 서울광장은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부모들이 함께 휴식과 교육을 위한 공적장소이다. 서울광장은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주말 대낮에 벌거벗고 남녀가 뒤엉켜 음란행위를 하는 동성애 축제를 허용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성경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우리 침례교단은 동성애가 창조의 법칙과 자연의 순리에 반하는 만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성문화이자 범죄임을 먼저 지적하
나의 생애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주님의 말씀은 창세기 15장의 언약(covenant, 뻬리트)와 야고보서 1장 12절에서 말씀하신 약속하신 약속(God has promised, 에펭게일라토)이라는 말씀이다. 그 해 장마는 왜 그렇게 길고 오래 많은 비가 왔는지? 지금 추억해 보면 시인 김소월의 시 ‘왕십리’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열한 살 어린 소년이었던 나는 낮선 마을 고모네 집에서 장맛비가 그칠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기다려야만 했다. 비 그치기를 기다린 날이 아마 네 닷세는 족히 됐는데도 그 장맛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비 그치기를 기다리던 아버지께서 단호한 목소리로 “일아 오늘이 약속 된 날이라서 가야해” 그래서 슬그머니 창밖을 내다보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 비 그치고 가면 안 될까요?” 그러자 아버지는 “일아 오늘 수요일 저녁 설교하기로 약속 된 날이란다. 가야지” 하신다. 비닐 우비를 입고 허리를 동이고 단봇짐을 지고 장대같이 내리는 빗길을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오랜 장맛비로 계곡물은 불어나 다리라는 다리는 계곡의 범람으로 다 휩쓸려 떠내려가고 찻길에는 언제 차가 다녔는지 바퀴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각 부처의 장차관을 임명하는 일들로 연일 시끌벅적하다. 청문회를 통해 공개되는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이 참으로 가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록이동색이기는 장관 후보자들만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감싸기와 비판으로 서로 날을 세우는 여야 정치권도 오십보백보다. 협치와 소통을 내세우며 이미지정치와 감성정치로 시작한 새 정부는 어느새 불치, 불통의 이미지로 얼룩져가고 있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인사원칙 5대 공약, 즉 병역기피, 세금탈류,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위장전입자는 인사에서 배제하겠다며 스스로 깨끗한 도덕적 정부를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위장전입, 세금 탈류,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인사들 투성이다. 거기에다 음주운전 등 사회의 고질적인 인사들도 있다. 그 중에는 비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장관 지명을 사퇴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당당하게(?) 인사권자의 임명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 또한 검증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대부분 인지했지만 국민감정 보다 자기 사람들 챙기기 같은 모습 또는 여기서 밀리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의한 뚝심(?)을 보이면서까지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침묵으로
총회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조만식 목사, 선관위)는 지난 6월 27일 서울 여의도 총회 회의실에서 제107차 총회 의장단 예비 입후보자 선거 설명회를 가졌다. 이날 선관위는 설명회에서 후보 등록 일정과 절차, 선거운동 방법, 후보자 토론회, 유의사항 등을 전달한 뒤, 총회장 입후보자들의 요구사항을 직접 챙겼다. 7월 7일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제107차 총회 의장단 선거 운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동안 총회 선거는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선거를 지향해왔다. 금권선거와 비방 등의 네거티브 선거를 철저히 지양하고 공개 토론회를 진행하며 후보자들의 공약을 검증하고 교단 지도자로서 기본 자질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금권선거를 불식시키기 위해 지방회 월례회나 지역연합회, 일부 목회자 모임 등의 기부 행위 등을 철저히 금하거나 최소 비용으로 제한하며 교단 선거의 풍토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특별히 선거운동도 시대적 상황에 맞추고자 문자와 카카오톡, 총회 홈페이지에 동영상 게시판 등을 활용해 자신들의 공약을 홍보하고 지지를 호소할 수 있게 마련해 줬다. 그 밖에도 후보자들에게 침례신문이나 홍보물 등의 수단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배려했다. 3300여 교회를 대
구원이 무엇인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죄들(sins)의 사면을 받는 것이다. 어떻게 구원 받는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구원 받는다(행26:17~18).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게 무슨 말인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것이다(행20:21). 구원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이단들이다. 역사적으로 교회도 제국도 외부보다 내부가 부패할 때 무너졌다. 죄 사함의 기쁨을 왜곡시키는 박옥수, 4 단계 회개를 주장하는 박무수, 자기가 보혜사 성령이라는 신천지 교주 이만희 등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이단들이 있지만, 교회 밖의 이단보다 더 무서운 게 교회 안의 이단이다. 교회 속의 누룩이다.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를 구세주(Savior)와 주님(Lord)으로 영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의 배후에는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의 교리가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 가르침에 사람이 무엇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예수님을 자기 삶의 주님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 6월 6일 논산한빛교회(강신정 목사)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연합회가 주최하고 충청남도기독교총연합회가 주관한 10시간 기도회에 참석했다. 세계적 혼란과 국가의 총체적 위기, 북한의 핵공포 등, 안보와 민생 치안의 부재 속에 몸살과 홍역을 앓는 때에 하늘문도 닫혀버려 가물어 메마른 삭막한 대지에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논바닥,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 때 이른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연일연야의 날씨, 정말 짜증과 불쾌지수가 신앙인들도 피해갈 수 없는 한계상황 속이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교회 회복과 부흥을 위한 1일 10시간 기도회”는 성령의 열기 속에 뜨거운 찬양과 간절하게 애태우는 기도의 함성으로 온 예배당 안을 성령의 불로 채웠다. 휴일도 자진반납하고 주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한 울부짖음의 아름다운 몸부림들은 마치 하나님의 천사들이 춤을 추는 듯했다. 어쩌면 이들의 울부짖음을 하나님은 아시고 들으시고 열납하시는건가? 때를 같이해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가 촉촉하게 내려 대지를 적셔주니 그야말로 기도하기 딱! 좋은 안성맞춤의 날씨였으니 말이다. 매 시간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역자 강사님들께서 복음을 정확하게 전달해 주셨고, 기도회에 참석한 온 성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