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전국사모회를 만난 것은 저희가 군종목사로 23년간 사역하고 2007년부터 남편이 총회에서 사역을 하게 되면서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제까지 인도하신 주님! 저는 부족하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은데 가르쳐주세요.’ 저에게 몇 가지 사역을 붙여주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전국사모회입니다. 14년 정도 지났으니 오랜 시간 동안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때로는 더 열심히 하지 못했음이 죄송스럽고 아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교단 사모님들과의 만남은 저에게도 축복이었습니다. 목회현장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사모님들과 함께 서로 축복하고 위로하고 사랑을 나누며 주님의 은혜로 치유받는 모습 속에서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선배 사모님들의 헌신하시는 모습들을 보며 많이 배우고 따라가며 이어가야 함을 다짐했습니다. 혹여 어떤 이들은 ‘사모회가 왜 필요하지?’라며 의구심을 던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정말로 소중합니다. 예전에 전국사모회에서 완도에 배를 타고 근처 섬들을 찾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진도와 청산도, 거문도, 여사도 등 험한 바닷길을 마다 않고 외진 곳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목회하시는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을 만나 위로하며 도전받
3) 제1기 오순절운동에 대한 비판 오순절운동이 미국의 성결운동의 한 분파에서 태동해 급기야는 전체 성결교단의 상당 부분을 자기 영역으로 흡수했기 때문에 오순절운동을 거부하고 성결교단에 남기로 했던 다른 분파에 속한 교회들의 배척이 가장 극심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불기둥교회”의 설립자인 엘마 화이트(Alma White) 같은 사람은 이 아주사 거리의 오순절 성령운동을 가리켜 “귀신들린 사탄 숭배자들”이라고 혹평했다. 성결운동의 여성지도자 화이트는 “소위 오순절 침례라고 하는 방언운동은 육에 속한 것이며 사탄에게 속한 것”이라고 비판했고, 이 사탄운동 곧 방언 운동은 말세에 하나님의 백성을 몰아내려는 사탄의 거대한 계획이라고 까지 주장했다. 또한 성결운동은 방언 말하는 것이 귀신들린 결과라고 규정하며 오순절운동을 비난했다. 엘마 화이트가 쓴 ‘귀신방언(Demons and Tongues)’이란 책을 보면, 오순절 예배는 “매우 부자연스럽고, 사람들에게 도발적인 사탄 예배의 극치”라고 표현되어 있다. 심지어 화이트는 윌리엄 시무어를 “사탄의 도구”라고 까지 혹평했고, 에이미 심플 맥퍼슨(Aimee Semple Mcpherson)이 말하는 방언을
첫째, ‘네 잘못이 아니야’를 말해 준다. 우리나라는 성 피해에 대해 인식이 부족하고 부모들은 외부로 이 사실이 알려질까 쉬쉬한다. 이런 경우 아이는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며 정신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으로 성 피해에 대한 전반적인 대책이 부족하고 법적이나 제도적으로도 미흡하다. 그러므로 법적으로 싸워도 오히려 상처를 입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직접 말로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인식시켜 줘야 한다. 자녀가 어느 정도 인지기능이 있다면 증거를 확보하고 법적인 싸움을 하여 자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부모는 항상 자신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여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실제로 성폭행 피해자의 인지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성폭행의 ‘폭행’은 힘이 있는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을 때리면 어쩔 수 없이 맞을 수밖에 없는 ‘폭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회성이든, 지속적이었든, 여러 사람이 가해자였든, 자신도 성관계시에 신체적인 쾌감을 느꼈든, 성 피해자가 성이나 그 밖의 형태로 가해자가 되었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 말씀과 장로들이 정한 전통과 유전을 동일시하거나 전통을 말씀보다도 더 중요시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와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정한 전통을 범한다며 제자들이 떡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하나님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는데 너희는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됐다고(고르반) 하면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며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꾸짖으셨다(마15:1~6). 예수님은 장로들이 정한 전통이나 유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전통을 핑계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죄 값으로 멸망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 주셨고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위한 대속 제물이 되셔서 온갖 고난을 다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시므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
집안의 불화가 쿠데타로 이어진 최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 장면인지, 현실 상황인지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의 비상 상황에 극도의 공포심을 느낀 다윗,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다윗이…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가자…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14). 부자지간의 싸움이 온 나라를 뒤흔드는 싸움이 됐다. 아들이 아버지의 왕관을 빼앗겠다고 일으킨 반란, 이건 쿠데타다. 생명까지 노린다. 쿠데타에 가담한 사람들도 많다(12). 눈치 빠른 모사들과 장군들도 가담한 것, 피신해서 지은 시를 보면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시3:1). 민심도 완전히 돌아서고(13), 반란의 물결이 거세다. 어제의 충성을 휴지처럼 버리고 반역의 깃발을 마구 흔들어댄다. 최악이다. 이 정도면 더 이상 부자지간이 아니다. 나중에 아버지의 후궁들을 압살롬이 공개적으로 취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인륜보다는 권력 찬탈의 야욕만 충만하다. 황급히 도망치며 다윗은 열 명의 후궁을 남겨두는데 압살롬은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한다(16). 광야로 도망
교회를 개척해 작은 공간에서 적은 인원수와 함께 예배를 하려고 하니 어설픈 것들이 참 많았다. 반주자도 없어서 내가 직접 기타를 치며 찬양을 했는데, 매주 주일마다 예배 때 부를 찬양을 선곡하는 것도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어떤 찬양곡을 불러야 할지 참 고민이 많았다. 더구나 요즘 새롭게 나온 찬양곡들은 기타 하나로 반주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피아노와 베이스 기타, 드럼 등이 함께해야 그 곡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데, 인도자 한 명이 기타 하나 달랑 들고서 반주하면 그 찬양곡의 분위기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데다가, 성도들은 요즘 새로운 찬양곡들이 익숙하지 않아 함께 찬양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면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까 더 고민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에 맞는 예배로 디자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작지 않은 규모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다. 내가 전도사와 목사로 사역하면서 대부분의 경우 어느 정도의 시스템이 갖춰진 교회에서 사역을 했다. 늘 적지 않은 인원이 예배에 참석했기에 예배 분위기는 쉽게 고조될 수 있었다. 울릉도에서 목회할 때도 성도의 숫자가 적지 않았고, 성가대도 갖췄으니
3) 찰스 파햄의 신학 찰스 파햄의 신학에 있어서 그는 구원의 위기체험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양육에 의한 점진적인 개종을 거부하고, 오직 “위기체험(crisis experience)에 의한 개종을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분명하고 순간적인 구원의 체험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화를 가르쳤으며, 또한 그는 성령침례의 첫 증거가 바로 방언이라고 가르쳤다. 나아가 그는 믿음치료의 교리(The Doctrine of Faith Healing)를 가르치며 사역했고, 여기에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왕국의 수립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부활이 환란 전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 전천년주의를 가르쳤다. 이는 오순절운동의 신학이 확정된 것은 오순절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파햄 목사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그는 캔자스 주 토페카에 있는 성경학교를 통해 오직 성경만을 교과서로서 가르쳤으며, 바로 그가 그르쳤던 이 성경안에서 발견한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가 방언을 말함이라고 확정을 지어 오순절 성령운동의 초석을 놓았던 것이다. 로스웰 플라워(J Roswell Flower)는 이 결정에 대해 현대 오순절운동의 출생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토페카의 부흥에 있어서 독특
미국의 경제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밀턴 프리드만은 1938년 기고문을 통해 유명한 말을 남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re no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우리가 얻는 각종 편익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와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 개념에 익숙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세속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공생애 기간을 보내실 때 당시 사회 기득권층과 수많은 갈등과 논란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안식일 논쟁이다. 유일신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일곱째 날 안식을 금과옥조로 받들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안식일에도 거침없이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행동은 말 그대로 ‘불경’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한 이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제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을 던지셨다. 창조의 사역은 안식이 완결됐고, 노동 뒤에 휴식은 필요하나, 구속의 사역은 멈출 수 없는 일임을 천명하신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거저 주시는 은혜’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세상 가운데에서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에는 위대한 힘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필리핀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감옥에 갇히게 됐다. 아주 열악한 위생과 전염병 때문에 갇힌 사람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일본 군인들은 10명이 있을 방에 50명을 집어넣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채 짐짝처럼 필리핀 사람들을 대우했다. 절망의 그늘이 짙게 포로들을 누르고 있을 그때에, 하루는 이 감방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그런데 보니까, 그 비둘기가 부상을 당했다. 비둘기가 어디에 부딪혔는지 날개가 떨어지고, 아주 깊은 상처를 입고 그 감방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죄수 하나가 비둘기를 발견하고 상처 입은 그 비둘기를 돌보기 시작했다. 같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던 다른 죄수들도 비둘기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비둘기를 치료해 주기 시작했다. 자기들의 옷을 찢어 비둘기를 싸매어주고, 약을 발라주고, 하나하나 음식을 먹여주면서 비둘기를 돌보아 줬다. 한 달 두 달 지나는데 그 상처 입은 비둘기가 회복이 되어 갔다. 그 방 안에 있는 수많은 죄수들은 빨리 일어나서 비둘기에게 서로
수많은 축복을 경험하고 풍성한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멋진 관용구로 노래했던 다윗, 그리고 세상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구원의 잔’을 높이 들며 건배했던 그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범죄하면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11장의 범죄 사건 이후 12장부터의 다윗은 안쓰러울 정도다. 책망과 징계가 매우 가혹하다. 그 추락은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절정에 이른다. 가정의 비극이자 나라의 비극이다. 그런데 이 또한 다윗이 마셔야 할 쓴 잔일 것이다. 압살롬을 챙기는 충신 요압 잘난 아들 압살롬이 다윗에게 뜨거운 감자가 됐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이 살인자가 되고, 결국 요단강을 건너 어머니 마아가의 고향 그술로 도망치는 탈주자가 됐다(13:37~39). 다윗은 비록 살인자이기는 해도 장남이나 다를 바 없기에 망명간 아들 압살롬이 그립다(13:30). 이런 왕의 마음을 헤아린 충신이 요압이다. 요압은 드로아로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여인을 데리고 와 그 여인이 왕에게 요청하는 형식으로 압살롬을 챙긴다. 그 여인은 과부인 자기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들이 들에서 싸우다
디모데후서는 A.D 66년경 바울이 2차로 로마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쓴 편지이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주동한 폭동 때문에 바울은 체포됐다. 이 당시는 네로황제의 재위기간으로서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많았던 시기였으며, 감금된 감옥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사슬에 매여 있었고, 아마도 암실이나 지하 감옥에 갇혀서 극심한 추위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바울의 옆에서 변호를 해주던 사람들이 거의 다 바울을 떠나고 누가만 그와 함께 있었다. 믿었던 사람들이 바울의 곁을 떠나고 극심한 핍팍과 박해 가운데 이미 자신의 인생이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 떠날 날이 가까이 왔음을 느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자신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수고를 하늘의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천국에 입성했을 때, 의의 면류관으로 보답해 주실 것을 확신했다(딛후4:6~8).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남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의 영의 아들 디모데가 교회의 리더로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따스한 마음으로 격려하며 교훈하고 있는 것이 디모데후서이다. 이 서신을 통하여 오고 가는 세대속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다윗 왕의 가정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부전자전일까? 장남도 비뚤어진 사랑에 빠졌다. 불편한 진실, 다윗이 뿌린 열매다. 마치 곁에 있던 시한폭탄 같은 성적 문제가 또 터졌다. 이제 다윗 가정의 비극이 시작된다. 성폭행과 칼에 의한 피 흘림, 왕자들의 권력 다툼…. 추악한 일들이 이어진다. 다윗 가정의 비극의 첫 부분, 비뚤어진 사랑과 권력 다툼이다. 콩가루 집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던가? 지금도 아랍 지역에서는 코란의 율법에 따라 한 남자가 4명의 아내까지 둘 수 있는데 그 정도가 아니다. 역대상 3장으로 보면 부인은 사울의 둘째 딸 미갈로부터 말년의 봉양을 위해 얻은 수넴여인 아비삭까지 최소한 9명(미갈, 아비가일, 아히노암, 마아가, 학깃, 아비달, 에글라, 밧세바, 아비삭)이고, 그 외의 소실은 몇 명인지 알 수조차 없다. 아들들도 마찬가지, 최소한 19명(암논, 길르압, 압살롬, 아도니아, 그바댜, 이드르암,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 입할, 엘리사마①, 엘리벨렛①, 노가, 네벡, 야비아, 엘리사마②, 엘랴다, 엘레벨렛②), 전체는 몇인지 알 수 없다(대상3:9). 엘리사마와 엘리벨렛은 각각 2명씩, 이름이 같을 정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호와 이레! 여기까지 저의 삶을 이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요즘 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특별한 휴가로 매우 행복합니다. 베푸신 삶에 자유와 평강이 넘칩니다. 감사함으로 단잠을 자고, 감사함으로 아침을 맞으며, 하늘의 별과 꽃들도 제 삶에 감사함을 더합니다. 저에게 허락하신 이 특별한 휴가, 은퇴의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올립니다. 그런데 이게 웬 호사일까요? 휴가를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웃음의 선물까지 덤으로 주셨습니다. 저녁기도를 편안한 웃음으로 마무리하고, 남편과의 소소한 대화와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도 웃음꽃이 지지 않습니다. 진정 이 휴가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매우 특별한 선물인가 봅니다. 사실 저의 삶은 “하나님! 저에게 하루에 2시간만 더 주세요.”라며 이렇게 간구하며 살아 온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시간에 쫓기는 와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지치지 않도록 언제나 말씀 가운데 격려와 권면으로 임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저를 강건케 하였으며(고후5:14), 늘 주님 기뻐하시는 길로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저는 많은 영혼들을 만나 복음을 기뻐 전할 수
꿈은 미래를 창조하는 재료이다. 꿈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꿈은 꿈꾸는 자를 위대하게 만든다. 꿈을 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그가 꾸고 있는 꿈이다. 그러므로 꿈꾸는 자는 위대하다. 그 꿈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희망찬 미래가 있다. 사람은 그 마음속에 무엇을 상상하고 선포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은 확연히 달라진다. 피카소와 반 고흐는 비슷한 재능을 가진 화가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생은 극단적으로 상반되게 펼쳐졌다. 피카소가 성공의 표본 같은 삶을 살았던 반면, 반 고흐는 실패의 표본 같은 삶을 살았다. 피카소는 삽십대 초반에 이미 백만장자가 됐다. 그의 성공은 나이가 들수록 가속화됐다. 그는 천만장자가 되었고 억만장자가 됐다. 화가의 명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미술계 인사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더니 곧 미술계의 스타이고, 세계적인 화가가 됐다. 반면에 반 고흐는 평생 돈과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20대에도 빈민이었고 30대도 빈민이었으며 죽을 때도 빈민이었다. 살아생전에 그의 화가로서의 명성 또한 우울하기 짝이없었다. 그는 철저히 무명으로 살았고 무명으로
“사람 하나를 발가벗겨 세상 사람들에게 전시하려 한다. 그 인간이 바로 나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참회록 시작 부분이다. 그는 “선악을 가리지 않고 감추거나 과장 없이 모두 말하고 싶다”고 했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은 “이제 당신을 떠나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있던 나를 거두려 한다. 나는 그때 명예와 돈과 결혼을 열망하고 있었고, 당신은 나를 보고 웃고 계셨다. 욕망을 추구하던 나는 쓰디쓴 곤경을 당해야 했지만 주의 자비는 그 곤경을 통해 크게 역사하셔서 내가 당신 아닌 다른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며 참회했다. 또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는 “성인이 된 후 30년을 쾌락주의자 또는 허무주의자로 살았다. 책도 많이 썼고 사람들의 인정도 받았지만 남은 것이 없다. 5년 전 나이 50이 됐을 때 비로소 내가 죄인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기로 결심했는데 그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며 “예수 믿는 것이 지혜며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라 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