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에는 유독 해외사역이 많았습니다. 지난 3월 26일부터 6월 25일까지 호주를 비롯해 뉴질랜드, 한국, 튀니지, 이집트 및 지방을 순회하며 일을 했습니다. 주로 복음캠프와 복음집회, 전도세미나, 교회 설교 등의 말씀 사역이 주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HGA학교의 조직, 건축 등을 위한 회의, FMB 총회 등의 회의와 해외 협력 사역 등을 모색하는 모임도 있었습니다. 호주에서는 오랜 만에 가족이 다 모이는 시간을 가졌고 한국에서는 틈을 내 모친 사후 연로하신 아버지와 형제들을 잠깐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부부도 60이 넘어 장기간 나가 사역하는 것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육체적인 피로도 느낍니다. 내년 하반기에는 처음으로 안식월을 6개월 정도 가질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금년 6월부터 9월까지 케냐를 방문하는 사역팀이 4곳이나 됩니다. 이 팀들과 함께 사역할 내용과 일정을 준비하다보니 벌써 9월도 지나간 느낌입니다. 11월 복음캠프와 내년 2019년 1월 복음캠프 및 이를 위한 준비, D3 세미나 실시를 위한 교재 번역 등 내년 2월부터 본격화하는 교회 내 복음캠프와 D3 세미나, 6월 남아공 전략회의 등 이미 내년 8월까지 일정이 잡혀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행15:11) 귀하신 선교 동역자님들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인 시기입니다만 각 국의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서 반가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이번 대회에 좋은 모습을 보인 스위스팀의 선수 중에는 3명의 스트라이커가 알바니아계 모슬렘이었습니다. 덕분에 알바니아에서는 그들과 스위스팀 응원에 열을 더했으나 이러한 현상을 복음 증거에 연관해 생각할 때, 현재 유럽의 유력한 팀들에 고루 분포된 모슬렘 선수들 대부분은 이슬람 국가에서 이주한 가정의 자녀들로, 이들의 경건한 모습에 유럽의 다른 선수들도 점점 모슬렘 개종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예로 프랑스의 축구 천재 ‘앙리’는 대표선수시절 모슬렘으로 개종했고 공공연히 그 신앙을 소개하면서 이번 월드컵 4강에 오른 벨지움의 코치로 나선 ‘앙리’는 모슬렘 전통의 수염을 기르고 나타났습니다. 이는 스포츠 선교의 중요성과 더불어 유럽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의 열매와 부흥을 위한 선교적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임을 느낍니다. 저희 선교사
선교사역 기간동안 가장 어려웠던 때를 말하라고 하면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말과 문화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첫 4년 일 것입니다. 아무리 한국에서 높은 학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선교지 현지에 처음 가면 말 못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은 언어가 어느 정도 되기까지 계속됩니다. 언어가 아직 안된 첫 6개월은 혼자 어디를 나가기가 두려웠고, 이제 언어가 조금씩 된다는 1년쯤 지나는 시기에는, 가까운 주위사람들에게 말을 했는데 알아듣지 못할 때, 밀려오는 슬픈 감정은 나만이 아닌 말 배우는 시기의 선교사라면 누구나 겪었을 것입니다. 한 번은 여전도회 모임이 있다고 해서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고 아침부터 오후까지 모임을 참석했는데,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듣는 내 언어실력으로 하루 종일 앉아 있으려 하니 얼마나 머리가 아팠는지 집에 돌아와서 뻗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싱글로 와서 혼자 지내는 싱글 선교사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부부선교사로 와서 집에 오면 한국말을 쓸 기회가 있는데 싱글 들은 누가 한국말로 말을 걸어 주지 않으면 하루, 이틀 한국말 한 마디도 쓸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자유롭게 한국말을
사랑하는 동역자님!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속에서 늘 강건하셨습니까? 한국도 이제 장마와 함께 무덥고 습한 여름에 접어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온 다습한 이 여름에도 늘 건강하게 그리고 주님과 깊이 동행하시면서 동역자님이 계신 곳에서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계속되는 단기선교, 5차 김치선교! 홋카이도(北海道) 오타루시(小樽市) 제니바코(?函) 지역은 교회가 없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 교회 개척을 위해서 파송 교회와 함께 5번째 김치 단기선교를 진행했습니다. 이 사역은 2016년부터 시작 되었는데, 5차 사역은 지난 5월 11~18일 7박 8일 동안 진행됐습니다. 삿뽀로와 오타루 지역의 시민들을 관계 전도 모임을 통해서 만났고, 특히 교회개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오타루시 제니바코 지역의 시민들과도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며 4영리 영상을 통해서 복음도 전했습니다. 벌써 3년째 이 사역을 하고 있어서인지, 제니바코 지역 시민들의 반응은 너무 좋았습니다. 한국의 친구들이 자신들을 만나러 온다는 그런 느낌인 것 같습니다. 올 가을 6번째 단기선교에 대한 일정도 그들과의 모임 시간에 이미 다 정해버릴 정도로 그들의 반응과 기대가 느껴졌습니다.
네팔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그 동안 주님 안에서 평안하셨는지요? 네팔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 곳 네팔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나 싶을 때, 바로 무더운 여름이 시작됩니다. 네팔은 4월 14일이 새해입니다. 그것도 2075년입니다. 저는 때 아닌 감기에 걸려 힘들어 하고 있지만 동역자님들께서는 늘 주님 안에서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늘 네팔 서교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동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8월달부터 전도금지법이 시행됩니다. 전도금지법이 철회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더르머 버스티교회 헌당 감사 네팔 서쪽 부떠월 지역에 있는 더르머 버스티교회를 분당에 있는 풍성한교회에서 건축을 해 주셔서 부목사님과 성도님들께서 오셔서 지난 3월 2일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풍성한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부흥 성장하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혈치료 이혈치료사로 잘 알려진 송영천 목사님과 이순애 사모님께서 네팔 교회 성도들과 한인선교사님들을 위해 네팔에 오셔서 이혈치료를 해 주셨습니다. 구멍난 복음을 기워라 세미나 박영철 교수님께서 오셔서 네팔 침례교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역 중인 침례교 사역자들과 한인 선교사님
한 학기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교환학생으로 온 미즈랍, 스카웃, 에이미와 함께 바닷가에서 마지막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특별히 에이미가 떠나기 전에 포항안방선교(PICC)에 나와서 너무 기뻤습니다. 봄에 몇몇 유학생들과 함께 경주 벚꽃 구경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에이미도 함께 갔었습니다. 제가 에이미를 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오고 가는 차 안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후로 학교에서 절 보면 피하는 것 같고 기숙사에서 가졌던 브렉퍼스트 행사에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좀 성급하게 복음을 전해서 무례하다고 느꼈나? 그래서 나를 멀리하는건가?’ 라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에이미가 한국을 떠나기 2주전에 PICC를 방문한 겁니다. 너무 반가워 PICC를 떠나는 다른 교환학생들과 함께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바닷가에 도착해서 피크닉테이블을 차리고 있는데 갑자기 에이미가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면서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도 이제 예수님을 믿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잠시 있는 동안 기독교에 마음이 열리고 스스로 성경도 읽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핀란드에 돌아가면
우리교단 해외선교회(FMB)가 생긴 지 어언 30년이 다 됐습니다. 1989년에 FMB의 첫 번째 파송선교사가 이금주 선교사, 즉 여성 선교사였습니다. 이어서 1990년 저희 부부가 가정으로는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로 파송받아 나가 젊은 시절의 황금기를 다 보내고 이제 나이 60이 넘어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30여년이 지나는 동안 FMB는 날로 발전해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고 세계 곳곳에서 놀라운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들이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함께 사역하는, 절반이 넘는 이들이 여성 선교사임을 아십니까? 싱글로 나가 사역을 잘 하는 선교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남편 선교사의 그늘 아래 아이들을 키우며 선교사역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 주님이 알아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선교지에서 병에 걸려 결국은 주님 곁으로 간 이들도 여럿이 되며, 지금도 선교지에서 고충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몸이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 못하며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누구는 우리를 미련하다 말할지 모릅니다. 선교지에서도 모든 것의 우
독일 할레교회에서 사역하는 김상준 선교사에 대한 소식입니다. 한국에 80세 가까이 되신 연로하신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데, 집에 화재가 나서 완전 전소됐습니다. 시골 농촌에 있는 집이라서 소방차가 들어 갈 수 없어서 피해를 줄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감사하게도 몸은 빠져 나와 생명은 건지셨지만, 현재 노부모님은 갈 곳이 없어, 임시로 이웃이 마련해준 곳에서 지내시며 도움을 받고 계십니다. 김상준 선교사는 장남으로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짐을 가지고 지금까지 견디며 주님의 사역에만 전념해 왔는데 집안에 이런 재난을 당해 더욱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동생도 로마에 살고 있고 바로 부모님을 뵈러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김상준 선교사는 신속히 부모님 곁으로 달려와 앞으로 부모님이 기거할 집을 함께 지어가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한 귀한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작은 도움의 손길이라도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후원계좌 : KEB하나 181-04-0115-9517 예금주 : 김상준
평안하셨는지요? 인도네시아 메단에서 사랑하는 동역자님께 우리 주님의 크신 사랑과 평강을 전합니다. 우리 주님의 특별한 은혜가운데 지낸 선교지에서의 지난 10년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우리의 지혜나 말에 있지 않고, 오직 우리 주님의 사랑과 능력에 달려있음을 삶 속에서 매일 경험하게 됩니다. 이곳 선교지 상황은 요즘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무슬림 테러단체들의 자폭테러 때문에 교회들과 외국인들이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2주 전에 저희 수마트라 섬에서도 ‘리아우’라는 곳에서 폭탄테러가 있어서 잠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정부의 체류비자 승인 조건이 점차 어려워져 가는 것과 함께, 선교지에서의 영혼구원에 관한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은 점차 치열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주의 복음은 오늘도 역사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님들의 기도가 절실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님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관심으로 이곳 메단에 주님의 교회 ‘아름다운 안티오키아 교회’가 세워진지 벌써 만 4년이 지났습니다. 4년전 2013년 12월 성탄절 날, 집에서 7명이 모여 드렸던 첫 예배가,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들을 포함한 130여 명의 성도들이 말씀과 기
지난해 읽었던 바르트의 전기가 떠오릅니다. 지금까지도 오롯이 남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르트가 30여 년간 집필한 교회 교의학은 73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는 기독교의 모든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해 예수 그리스도로 결론을 맺습니다. 주께서 부르시고 허락하신 삶의 길을 걸으며 신앙의 모든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해 주는 신앙의 선배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만나 교제하면 여러분의 관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그런 이들이 있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들은 아닌가 싶습니다. 2천년 교회 역사 속에서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는 많은 신앙의 선배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며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매주 방문하는 케네네에 M. Kb라는 농부가 있습니다. 저는 한 동안 케네네에 방문하면 그의 집에서 지내며 점심을 먹고 사람들과 교제했습니다. 한 달 쯤 전에 Kb가 쓰러져서 병원으로 이송됐고 뇌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신체 왼쪽이 마비되어 집에 돌아와 방에 누워있었습니다. 교제하던 이들 중 한 사람이 체르노(코란
다문화선교사역에 함께하시는 동역자님. 다문화가족 100만 시대를 맞아 이제는 다문화가정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에 다문화가정의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녀들이 다문화를 알아가고, 엄마의 나라를 이해하며,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소통하여 자존감 높은 아이로 성장하고, 함께함을 통해 행복한 가정이 되도록 돕기 위해 다문화플러스센터는 대전광역시 공익활동 지원으로 강사비를 지원받아 “엄마와 함께하는 세계문화여행” 프로그램을 4월 8일 주일 오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평일에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일 오후에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1차로 12주, 그리고 9월에 2차로 12주 수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 음식, 의상, 생활,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자녀들이 엄마나라를 배우면서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인성을 함양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로 다문화가정들이 주안에서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4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함께하고 싶어 여기에 실어봅니다. "남편
샬롬 이스라엘에서 문안드립니다. 걱정했던 우기(겨울)의 추위는 우려와는 달리 따뜻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5월에 들어서며 건기(여름)는 성큼 우리곁에 다가왔습니다. 집안 선풍기 온도 31도를 쳐다보며 이 긴~여름을 어떻게 보낼까 조금 걱정이 되곤 합니다. 지난 3월에는 이싸위야 아랍동네에 있는 여자중,고등학교와 남자 중학교에 종이접기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두세분의 선생님들과 말은 통하지 않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염려와는 달리 그냥 보통의 중학교 학생들에게 영어, 한국말을 섞어가며 Mothers day에 드릴 카드를 만들고 왔습니다. 저의 사역은 아니지만 함께 한 시간이 참 의미가 있었습니다. 내가 유대인사역자 이기에 아랍인은 사역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조금 깰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해맑은 그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에게도 동일하게 그분의 복음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여름방학을 지내고 다음 학기에는 적극적으로 이 사역에 참여해 보려 합니다. 기도하면서 준비해야겠지요. 인파선 결핵이 피곤하거나 하면 딱딱해지고 통증이 있어 조심하고는 있는데 치료방법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두 딸 이야기 두 딸은 이번 여름 7월에
“살라마 뚬뿌구!” 이곳 말로 “평안하십니까”란 인사말입니다. 사랑 많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평안을 선포합니다. 잠비아에서 재미있게 사역하다가 잠시 한국에서 선교본부 사역과 신학을 마무리하고 이제 다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로 오게 됐습니다. 작년 2017년 8월에 사역지를 마다가스카르로 가 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아 그곳 선교사를 만나 뵙고 사역지를 변경하게 됐습니다. 사역지를 변경하면서 고민은 언어를 다시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 식민지였고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지식이 있는 언어는 프랑스어이고, 서민들이 쓰는 언어는 말라가시어입니다. 그래서 시장에 가면 프랑스어와 말라가시어가 혼용되어 사용되다 보니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 수 없고, 영어를 사용하느니 차라리 한국어를 사용하는 편이 의사전달에 더 도움이 되는 기막힌 상황도 연출됩니다. 4월 21일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하자마자 반정부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했으니 교민들은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대사관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22일 주일 한인교회에 인사차 예배하러 갔는데 다시 한 번 더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 반정부 시위로 인해 사망자가 4명이 발생했
이 땅을 밟고 살아온 시간이 벌써 9년이 됐습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던 겨울눈을 헤치고 힘차게 돋아나는 새싹들은 우리 모두에게 밝은 웃음꽃을 선사할 것을 알기에 오늘도 감사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변함없이 함께 해주시는 여러분들의 기도와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우크라이나의 “작은 방주” 가족들이 인사드립니다. 감사의 사역 사역자 세르게이와 나스탸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형제와 교회가 생겼습니다. 교회를 섬기며 신학교 공부를 하고, 성경번역과 보급을 담당하는 부부는 저희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던 모든 일을 중단하고 전적으로 헌신해 사역을 돕고, 준비하고 있기에 삶을 위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동부지역에서 피난을 왔던 난민 보바의 가정이 정착할 수 있는 시골집을 구입했고, 지역을 섬기는 사역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염소를 키워 젖을 짜고, 치즈를 만들어 판매하면서 지역에 있는 학교와 어린이들을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함께 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둘째 지성이가 전액 장학금으로 누나가 다니는 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됐습니다. 9년이라는 시간동안 선교지에서 가족들 모두가 건강하게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막 1:3, 표준새번역) 각각의 광야에서 ‘소리’로 살고 계신 동역자들께 드립니다. 준비없는 혼돈, 흙먼지 날리는 구부러진 현실에 맞서야 하는 우리네 소리들의 삶, 편지지의 글귀와 같이 당신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곳 구마모토에서의 작은 외침에도 귀 기울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학기&영주권 신청 저희 가족은 4월과 함께 몇몇 변화를 맞았습니다. 딸 소리는 현지 시라쯔보 소학교의 3학년(우리나라 2학년)이 됐고, 아들 세준은 드디어 유치원생(4살)으로 데뷔해 아빠 엄마와 떨어져 생활하는 연습이 시작됐습니다. 당연히 집에서 우리말을 쓴 탓에 2중 언어에 대한 도전도 시작된 셈입니다. 딸 소리가 비교적 무난히 이 과정을 지났기 때문에 아들 세준도 잘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스트레스는 있을 수 있겠지만). 또 하나, 12년차를 지나는 현 시점에서 영주권 신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비자가 지금은 5년씩 발급이 되므로 영주권이 없어도 이곳에서의 삶에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장기사역의 안정화를 꾀하고, 출입국 및 일본에서의 생활에 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