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불룩한 큰 자루를 들고 내 앞에 와서 내용물을 쏟아 붓고 사라졌다. 여러 가지 종이돈이 쌓였는데 그중에 외국돈으로 보이는 은행에서 바로 나온 뭉칫돈이 있어 하나씩 집어 상의 안쪽 주머니 좌우에 둘씩 넣으니 양복 두 가슴이 불룩하게 튀어나와서 나머지 흩어진 돈들은 그냥 두고 평생 처음으로 현금 뭉치로 주머니를 채운 기분에 좋아 눈을 뜨니 창살이 환히 밝아온 이른 아침이었다. 특히 목회 초년시절에 교인들이 꿈꾸고 와서 해몽을 가끔 요청할 때 꿈 해몽에 대한 얘기를 부친께도 어려서부터 들었고 특히 대학교 시절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해몽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어서 해몽을 설명해 주기도 했었다. 전번 대통령 선거날 아침 꿈을 꾸고 잠을 깨니 새벽 4시였다. 먼저 끝이 좋으려면 돈조심하라고 충고했던 대통령 후보가 파란 옷을 입고 내 앞까지 왔다가 뒤돌아보더니 정면으로 사라져서 아마도 일바지를 입었으니 부지런히 일 할거라 생각했으나 그 후 다시 생각하니 푸른 옷은 죄수복이란? 이거 안됐구나 생각이 나서 가까운 친구들 10여명에겐 이번 당선자도 부모따라 갈 것이라고 말한적이 있었는데 그대로 되었으니! 돈다발 꿈을 생각하니 이것이 실몽인가? 허몽인가?
“책들이 책상 위에 있다.”(The Books are on the desk)는 위 짧은 문장에 만일 ‘on’이란 간단한 전치사 하나를 빼버리면 문장은 이상하게 변한다. 가령 “The books are ( ) the desk”이면 “책들은 책상이다.”가 되어버린다. ‘책들≠책상’이 ‘책들=책상’이 된다. 왜 이렇게 엉뚱한 문장이 되었는가? 책들이 책이지 왜 책상이 되는가? 이런 터무니없는 변화는 ‘on’이란 전치사 하나가 빠져버린 때문이다. 이 짧은 영문에 ‘on’이란 전치사는 문장의 의미를 죽이거나 살리거나 하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다. 그까짓 전치사 ‘on’ 하나 떼어버리자고 하면 그땐 문장은 완전히 죽어버린다. 사람들이 율법의 한 획 정도야 지키지 아니해도 율법체계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10가지 율법 중에 9가지 율법을 잘 지켰으니 한 가지 율법은 지키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고. 곧 한 가지 율법은 범해도 나머지 9가지 율법은 지켰으니 율법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마치 ‘on’이란 전치사 하나 빼버리기로 문장 의미가 달라지겠느냐는 식이다. 그러나 그게 하나 빠지면 그 문장은 완전히 죽어버린다. “네 부
토요일만 되면 우리가 살던 울릉도는 주사골 동리에 올라와 노란종이를 나눠주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들 3,4학년이 같이 모여 놀이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노란 종이를 나눠주고 떠났다. 친구들은 예수쟁이가 우리 동네까지 와서 선전종이를 뿌린다고 욕하고 받은 종이를 찢어버리기도 하고 또 코를 풀거나 그것을 모아서 뺀또(종이치기)를 만들기도 했다. 언젠가 배석문 담임선생이 “요사이 서양종교인 야소교가 설치니 조심하고 멀리하라”고 하셨기에, 친구들과 불교신자인 나도 5학년인 한상태를 따라서 “예수를 믿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큰 소리로 복창하며 예수쟁이를 따라가며 놀려댔으나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가만히 지나갔다. 한번은 공짜로 이발해주는 곳에 가자고 해서 옆 동네인 중간 모시게까지 따라 갔더니 그 노란종이 나눠주는 그 사람이 아닌가! 나는 뒷줄로 섰다가 도망칠까 했더니 친구들의 눈짓 만류로 길가에 고개 숙인 채 이발을 하고 부끄러워 인사도 못하고 도망쳐 왔는데, 나중에 중학교 1학년 때 교회에 나가면서 더욱 그 노란종이를 나눠주던 이웃교회 집사에게 미안했고 지금까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어려서는 부친이 믿는 유교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생명(生命)은 살아있어서 사명을 지녔다는 의미다. 생(生)은 명(命)을 가지고 있다. 생이 명을 잃으면 그땐 생도 잃는다. 명이 있는 한 생은 유지하게 된다. 생은 사(死)의 반대 개념으로 대단히 긍정적인 것이다. 밝고 명랑하고 화창한 게 生命 곧 살아있음이요 살아있음엔 의미가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3월 거리를 걷다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작은 돌로 포장된 거리의 그 틈 사이로 겨울 찬 공기를 맞으면서 이름 모를 잡초가 고개를 들고 있지 않나. 독일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귀국해서 한국 구리시의 인도도 그러했다. 生이 있으며 어찌하든 움직인다. 상승한다. 퍼진다. 미초의 생명 지키기도 성스럽다 할 것 같다. “행복 생활의 지침”이란 잡지에서 서울 의대 채종일 명예교수가 발표한 ‘기생충들의 흥미로운 생활상’이란 글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은 바 있다. “회충이 가족계획을 한다”는 설명이었다. 회충은 자기가 붙어살아야 할 주인이 필요하다. 자기가 기거해야 할 숙주(宿主)가 있어야 한다. 그 숙주가 없으면 회충은 붙어 살 공간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놈의 회충의 번식이 기하급수적으로 속도를 내게 되면 회충이 포화상태로 사람을 정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일 설교 준비와 침례교전국사모회의 설교준비도 마치고 모처럼 뒷산을 올랐다. 작년에도 한번 만나 인사한 공 목사님과 한 시간 넘게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통합측 교단의 목사로 은퇴하고 2년 후에 마지막 때의 사명으로 이스라엘 선교사로 나가려고 준비하는 동안 여유있는 직장에서 히브리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성경공부도 새롭게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젊어서 목회할 때 두 번의 입신의 체험을 했는데, 그 놀라운 경험은 완전한 변화의 계기가 됐으며 찬란한 천상세계와 지옥의 참경험은 정반대의 경험으로 주님 앞에 신실하고 충성스런 목회의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나의 십자가의 은총과 서울교회 목회 중 참담했던 유치원 화재로 욥이 겪은 원수 악마의 혹독한 시련과 같은 환란을 극복한 “주님의 합력선”의 역사를 듣고 공감하면서 그도 아래와 같이 간증했다. 그가 2000여명의 교회에서 목회할 때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역했는데 장로 피택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다. 그 장로 후보자는 많은 친족이 있었고 교회와 다른 장로들에게도 영향력 있는 자로 결국 장로회에서 만장일치로 추대된 상태였다. 그가 장로 장립을 허락하면서 대신 목사인 그가
소아렌 선교사는 길거리에 다니면서 복음전도지를 나눠주며 뿌렸다. 하루는 매우 거들먹거리는 김익두란 청년에게도 전도지를 줬더니 그는 받자마자 전도지를 코를 풀어 던졌다. 이것을 본 서양선교사는 “청년, 그 코가 썩을 것이요!”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그 청년은 그때부터 코에 고약한 냄새가 나더니 계속 썩은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선교사를 찾아가니 마침 집회중이라 계속 참석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후 고약한 냄새도 사라졌다. 김익두 청년은 회개하고 간증문을 써서 지인들에게 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됐으며 한국교회의 유명한 부흥사가 됐다. 김익두 목사는 법정에서 일본의 검사가 “영감님, 예수 천당, 소리를 그만하라는데 왜 계속해서 혼 구멍이 납네까?”라고 했더니, 눈을 번떡이며 검사를 쏘아보며 “검사 양반, 내래 온 천신에 예수 신이 꽉 차서 소리치지 않으면 안됩네다!”고 말하자 일본 검사는 혀를 차며 “저 영감을 저렇게 예수에게 미치게 하는 그 엄청난 힘은 무엇일까?”라고 중얼거렸다는 일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화이다. 1967년 사복군인으로 춘천군인 복지센터 관장으로 있으면서 춘천교회 부목사으로 봉사할 때에 유명한 복음전도자 오스왈드
한번은 윤태준 목사의 초청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말씀 중에 가끔 던진 질문으로 “대접받는 것, 대접하는 것, 대접받고 대접하는 것 중에 좋아하는 것에 손을 드세요”라고 질문했다. “셋 중에 대접받는 것이 좋은 사람 손 드세요”라고 했더니 1/3정도가 손을 들었다. “솔직히 대접받고 또 대접하는 것도 좋던데요”하면서 내가 손을 들자 2/3정도가 날 따라 더 손을 들었다. “그러면 대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 손 드세요”라고 했더니 성가대원 전부가 손을 들었다. 놀라 다시 손을 들어보라 했더니 역시 전부였다. 축복받은 성가대원들에게 큰 박수를 쳤다. 예수님은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42),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10:8)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비이기적이고 희생적으로 강도 만난 이웃에 대해 봉사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깨달아야 한다.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눅3:11)라고 침례 요한도 말했다. 우리도 우리의 것으로 남을 도
“내가 뒤돌아보니 너한테 잘못한 것이 너무 많다. 다 잊어버리래이….” “어머니 별말씀을 내가 엄마한테 애먹이고 잘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다 용서하시고 먼저 천국에 올라가시이소. 마지막 소천 기도를 올립시다.” 봄에 위암의 진단을 받으시고 8개월쯤 지나 흔들의자에 앉아 기도 중에 조용히 임종하신 어머니 앞에 눈물을 흘린 기억이 어버이날이 올 때마다 새롭다. 어려운 울릉도 주사골 농촌 살림에 10남매를 낳아 아홉째 아들은 어려서 일찍 보내고 9남매를 키우느라 수고하시다 절간을 접고 40세에 중병이 들어 교회에 나가든 중 “하나님요, 날 좀 70세까지만 살려 주시이소!”라고 간절한 기도에 응답받아 30년을 더 사시고 만 70이 되어 소천 앞에 모자간에 회개하고 먼저 천국가신 어머니의 “야! 이 자식들아, 너희들도 커서 장가가고 시집가서 자식새끼 낳아 키워보면 그때야 내 마음을 알끼다!”고 가끔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아래에 떠오르는 이야기는 저의 경험의 거울처럼 잊을 수 없는 교훈이었다. 설빔으로 받은 옷을 화롯가에서 태워 버린 날 밤새워 울던 동생을 보고 다시 사 줄 테니 울지 말라며 위로하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이번 설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영국 스코틀랜드의 어느 작은 시골 장로교회의 목사님에 대한 일화를 읽은 일이 있다. 당시 공업화 현상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가는 작은 시골교회인지라, 목사님이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또 그 동리의 사람들은 까다로운 사람들로서, 저들의 마음은 차가웠고, 복음의 진리에 대해 도리어 매우 적대적이었다. 이러다 보니 그의 사역을 통해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장로들의 선동에 의해 목사님은 강제로 교회를 떠나게 될 판이었다. 하지만 이 시골교회를 고생하며 섬겨오던 목사님의 사역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 주일 예배 중 헌금 쟁반이 돌려지고 있을 때 한 소년이 쟁반을 받아 바닥에 놓고는 일어나 그 위에 올라섰다. 이 이상하고 괴이한 일을 보고 책망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자. 그 소년은 “나는 어리지만 목사님의 삶과 사역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오늘 나는 드릴 것이 없어 나 자신을 고스란히 하나님
이 지방회는 독일 선교사 목회자로 떠날 전도사를 위해 목사안수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목사 후보자 전도사는 침례교 목사안수 요건을 다 갖춘 자인 것만은 사실이나 갑작스러운 독일로의 선교 목회를 떠나는 만큼 서둘러 목사안수를 받아야만 했었다. 듣건대 목사 안수를 받는데 꽤나 시간을 요한다고 하는데 이 지방회는 속전속결식으로 목사안수를 진행했다. 그러나 결코 약식은 아니나 속식(速式)이었다. 이 지방회는 두어달 만에 면접시취, 구술시취, 논제시취를 끝냈다. 이미 독일에 체류한 전도사가 2주간의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곧 현지로 돌아가야 하겠기에 속전속결로 해줬다. 이 지방회는 물은 흘러가고 꽃은 피게 해야 하는 지방회였다. 듣건대 목사 안수를 받는데 엄청난 경비부담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지방회는 무경비 안수를 치렀다. 주변을 보면 시취위원이니 안수위원이니 해서 몇 차례 모일 때마다 식사대접, 그놈의 거마비에 혼줄이 나는 어린 전도사들의 처지였다. 그러나 이 지방회는 그런 전례가 없다. 지방회에서 모든 것을 사양하는 바람에 목사안수 후보자는 겨우 사정하에 간단한 중식이라도 제공할 수 있는 특전을 얻었다. 전도사를 독일 선교사 목사로 추천한 교단의 어떤 어른 목
조선 말기 당시 관직은 참봉이었던 홍봉조씨는 1850년경 일찍 무인도인 동해의 고도 울릉도(鬱陵島:답답한 언덕 섬)에 맨 먼저 들어와 살았다. 1890년 어느날 배를 타고 남쪽으로 독도(獨島)에 나갔는데 왜놈 어부들이 물개잡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 어부들을 몰아낸 일이 있었다고 홍봉조씨의 손자 홍순칠(洪順七)씨는 말했다. 또 직간접으로 1950년초 어려서부터 저가 들어온 독도를 지킨 얘기를 아는대로 아래에 적어본다. 홍순칠씨가 초대 참모통장 최병덕 장군의 호위병으로 복무한 일이 있어고, 6·25 사변중 원산 전투에서 탱크를 타고 수색하다가 부상을 당해 1953년 봄 상사로 제대한 뒤 고향 울릉도에 돌아왔을 때, 울릉도 첫 개척자인 조부 홍봉조씨는 일본 사람들이 독도는 자기의 영토라고 표지판을 세워놓았다고 분노하는 말씀을 들었다. 통일신라때 거칠부 이사부 두 장수의 군대가 동해의 우산국(于山國)을 정복하고 남긴 울릉도 태하동 해변가 석벽의 글씨가 증명한다. 지금도 독도를 일본 영토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 글은 자못 조심스러우면서도 역사적 사실이기에 강력한 자부심으로 쓰고 있다. 당시는 전쟁중이라 외교경로를 통해 항의한다면 유엔군 사령부 지휘하의 국군병력이
지난 5월 6일 저녁, 최우중 목사(보은구인)와 필자는 5박 6일 일정으로 필리핀 바기오에 소재한 헌드레즈타임즈아카데미중고등학교와 영어어학원연수원(이준성 선교사) 학생들에게 오카리나를 가르치기 위해 떠났다. 거의 4시간가량을 비행한 후 클락공항에 도착해 이준성 선교사와 조우했다. 1년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참으로 눈시울이 불거진다. 우리가 처음으로 교제했을때와 비교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초지일관 변함없는 거룩함과 경건의 영성으로 점철된 그를 만날 때마다 마치 사도 요한을 만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바기오에서 현지의 선교사역을 22년째하고 있는 이 선교사의 닉네임은 “요한 선교사”로 불리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클락공항에서 바기오까지 약 3시간 30분의 거리를 중간 휴게소에 들려 한번 차를 마시고는 쉼없이 달려 이윽고 새벽시간에 목적지인 바기오 헌드레즈 아카데미 하우스에 짐을 풀고 장고의 여정을 달래기 위해 숙면을 취했다. 새날이 밝아오자마자 인자하고 상냥스러운 이준성 선교사의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한정식으로 아침식사가 정갈하게 차려져 나왔다. 정말 솜씨가 가히 일품이다. 어찌나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건강식으로의
“당신들이 떠나간 후 우리에겐 더 큰 일들이 남았지요. 약 800 가정을 돕는 일, 거의 수천 명의 영혼을 돌보는 일….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맡기심에 감사하고 있어요!” 우리들이 단기선교한 필리핀 프라리델제일침례교회 마루자 청년이 서울교회 선교대원이었던 김정연 양에게 보낸 편지(이메일) 속의 내용이다. 또 오소리오 담임목사의 전화내용을 더해 간추려 본다. “우리는 한 달 동안의 양육계획을 짰어요. 첫 주에는 아는 사람 순으로 정리하고, 둘째 주에는 구원을 위해 새신자 교재를 사용하는 것, 셋째 주에는 반응의 평가를 살펴보고, 넷째 주에는 그들 결신자를 교회예배에 참석토록 초청하는 것으로 정했어요. … 우리는 각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임무와 큰 책임을 감수하고 하나님을 위해 모두 힘써 일하고 있어요.” 지난 두 번의 집회 중 수백 명의 결신자들이 있었는데 양육관리를 안하면 다시는 옥외전도집회를 안할뿐더러 30여명 전도단원은 다른 도시나 나라로 갈 것이라고 경고한 후의 소식이었다. 집회 준비를 의논할 때나 집회 후 떠나올 때에도 새신자 양육(follow-up)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강도 높게 부탁했는데, 지금 오소리오 목사와 성도들은 선교집
“자기가 만든 대로 자신이 돌려받는다” 인과보응으로 “죄(罪)는 지은대로 공(功)은 쌓은 대로 돌아온다“는 속담이다.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의 고온 플라즈마 연구로 아리랑 1호를 띄운 일이 있거니와 강대국들은 우주쟁취의 경쟁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국 천문연구원 우주위험 감시센터는 1976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지구궤도로 쏘아 올린 위성 7900여 개중 현재까지 운용중인 위성은 1900개로 나머지 5000개는 퇴락하거나 파괴되어 궤도를 돌고 있어 인공위성 파편 우주쓰레기가 포화상태로 치닫고 있다고 했다. 유럽 우주국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으로 지름 1mm에서 1cm의 우주 쓰레기는 총 1억 6600개에 이르고 지름 1~10cm의 것은 75만개며 또한 10cm 초과는 2만 9000개라 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관리를 위임한 아름다운 우주와 지구에 이들 우주 파편 곧 인공위성 파편은 평균 시속 2만 8000km로 초속 7.8km로 날아간다. 최근 10년간 대기권에 재진입 과정에서 전소되지 않고 지구 표면에 떨어진 1톤 이상의 인공 우주물체는 연평균 420여개로 모두 합쳐 약 100톤에 이르고, 최근 50여 연간은 약 5400톤이 지구 표면에 떨어진 것
지금 무속 종교에도 무녀들이 단골로 읊조리는 주문이 있다. 그렇거늘 소위 문화 종교인 자기 종교의 경전을 잠시라도 뒤로 하고 경전외적 말들을 늘어는 것은 가관이다. 이렇게 말하면 한가롭기 그지없는 노목사의 부질없는 한담이라 할지도 모른다. 동네 전신주에 매달려 있는 광고지 인쇄물 서두에 불교의 어떤 중의 글이 실렸기에 읽고 있었다. 짧은 글에 인도의 타고르 시인과 자기 종교의 명승 성철의 이야기를 주로 실었다. 그 방대한 팔만대장경의 어느 한 소절을 인용할 수도 있었지만 깜깜소식이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스스로 우습긴 마찬가지다 성경에 이런 말도 있지 않나.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잠26:27) 중이 타고르와 제자의 대화를 실은 것이 그들 종교의 교리일까? 하긴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으니까 실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자기 종교경전에서 가르칠게 없으면 곁눈질하기도 한다. 타고르에게 여러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한 제자가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세상에서 인생의 승리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다.” 이 때 다른 제자가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