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주요교단들이 일제히 9월 정기총회를 치른다. 우리교단인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총회장 유관재 목사)를 비롯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총회(총회장 이성희 목사) 등 장로교단은 오는 9월 18일부터 나흘 동안 한화리조트 평창 휘닉스파크와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각각 총회를 일제히 연다. 또 예장 합동총회는 9월 18일부터 닷새간 전북 익산 기쁨의교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는 9월 19일부터 나흘간 경주 현대호텔에서 ‘종교개혁 500주년,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를 주제로 총회를 진행한다. 올해 열릴 9월 총회의 주요 의제는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인준, 종교인 과세 문제 등 핫이슈로 넘쳐나고 있다. 각 교단총회에서 통합 출범한 한기연에 대한 가입 인준 여부, 종교인 과세, 동성애 정책 등에 관한 교단 정책과 방향 등이 결정될 전망이다. 먼저 한국교회의 교회연합사업과 관련해 재시동 문제가 공동 관심사로 급부상 하고 있다. 올해 주요교단 총회에서 대의원들이 지난 8월 창립한 한기연에 얼마나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통합의 속도와 방향이 결판 날 전망이다. 한기연은 한국교회교단장회의가 이끌던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통합
“침례병원을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합니까?” 앞에 앉은 자매가 “남산동에 내려야지요. 나도 거기 내리니 따라 내리면 돼요” 옆에 앉은 분이“거기는 뭘라꼬 가요. 침례병원 문닫은지 오래됐어요.” 앞에 앉은 분은 “그래요! 아이고 우짜노, 나는 오랫동안 침례병원만 다녔는데…그게 정말입니까?” 이렇게 병원에 대한 얘기가 오가다가 날보고 “문 닫은 줄 알고나 갑니까?”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 후 나도 하도 답답해서 7월 3일부터 한 주간 금식기도를 하려했는데 집 이사를 하느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기도라도 하려고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대답했다. 정문 앞에 두 사람의 수위가 지키고 있어 서울서 여기 온 사실을 얘기하고 잠깐 기도하게 허락해 달라했더니 법적 관리중이라며 딱 거절해서 눈치를 보다가 지하로 들어가는 문으로 달려가니 주먹만 한 열쇠가 굳게 챙겨져있어 또 다시 나와 할 수 없이 정문에서 사진을 두 장 찍고 고개 숙여 기도한 후 눈물을 닦으며 돌아 나와 전철로 온천장에 내려 모텔에 투숙하고 부산의 어느 누구와도 연락 않고 습설해서 노포동에서 버스로 목포와 광주를 거쳐 무등산 기슭 모텔에서 늦잠 자고 이튿날 기차로 서울로 올라오면서 뒤돌아보니 ‘침례병원은 나 때문
아스팔트 거리를 걷는 도시민은 무척이나 흙 밟기를 좋아한다. 문경새재 제일관문에서 마지막 관문까지는 아스팔트가 아닌 순 흙길이다. 도시민이 와서 맨발로 걷는 것을 보면 흙을 무척 그리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왜 사람들은 흙을 동경하는가! 도시 직장에서 은퇴하고 귀촌하는 사람들의 얇은 소망은 텃밭에 채소를 심고 호미로 땅을 뒤져보는 것이었다. 손으로 흙을 만져보고 코로 흙냄새도 맡는다. “산골농부의 자연밥상”의 저자 자우님의 “흙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이란 글이 있기에 여기 실어본다. 그대로의 자연 그리고 건강한 삶 자연에 온전히 몸을 맡기고 산골농부로 살아가는 동안 심성도 변하고 관상도 변한 것을 보면 흙밭과 더불어 마음밭도 적잖이 일궈진 모양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변화는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건강한 삶이 지금 여기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나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은 것은 다름 아닌 자연에 중심을 둔 농사다. 산골농사는 땅을 갈지 않고, 두둑도 만들지 않고, 화학비료와 농약, 거름 등 인위적으로 만든 자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농사가 되는지 의아하게 여길 텐데 아주 쉽고 단순한 원리다. 땅을 갈지 않는 ‘무경운’과 ‘자연 절기
총회장 후보자들 간 경쟁이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의장단 후보자는 교단에서 인정하는 정규 신학교를 졸업해서 목사 안수를 받고 개 교회에서 최소 20년 이상의 목회 경력을 가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무흠해야 하고 교단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후원이나 기여를 해야 한다. 이번 제107차 총회 의장단 선거는 총회장 후보들만으로 치러진다. 지난 8월 28일 서울 여의도 총회 13층 예배실에서 열린 107차 총회 의장단 선거 출정 감사예배에서 제비뽑기에 의해 총회장 후보로 기호 1번의 공주 꿈의교회 안희묵 목사, 기호 2번의 전주 새소망교회 박종철 목사가 총회장 후보로 뛰고 있다. 제1 부총회장 후보와 사실상 평신도 몫인 제2 부총회장 후보는 본 등록까지 등록한 후보자가 없었다. 의장단 후보는 오는 9월 19일 제107차 정기총회 의장단 선거전까지 스마트폰 문자와 SNS 홍보 메시지, 홍보 영상 배포 등의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또한 월례회 행사나 주요교단 행사, 연합회 행사에 참석해 대의원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총회장 후보자들이 선거기간 동안 정책을 중심으로 네거티브 전략을 지양해 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미 예비
형의 분노로부터 도망치듯 야반도주한 야곱이 그 밤에 도착한 곳은 루스였다. 언제 누군가로부터 약탈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처지였다. 숨을 곳도 밤이슬을 피할 곳도 없어 그저 너른 들판에 자리를 깔았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침대였고, 가장 높은 천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네 조부 아브라함과 네 부친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놀랐다. 아버지의 집에만 계시는 줄 알았던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셨던 것이다. 그 하나님이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나와 함께 하시겠다니. 그래서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이곳 벧엘은 야곱의 생애에 영적인 고향이 됐다. 힘들 때마다, 흔들릴 때마다, 그때 그곳에서 들려주신 주의 음성,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지키리라’는 이 음성이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어쩌면 야곱은 그 추억 하나로 일생을 버텼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영적인 추억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고향 뒷동산을 떠올리듯이, 영적인 고통이 밀
영국의 괴기 소설가 B. 스토커는 걸출한 뱀파이어, 드라큘라백작을 내세워 피의 효능을 왜곡시켰다. 인간의 피가 공급되기만 하면 드라큘라는 계속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거 아닌가. 드라큘라가 인간의 피를 빨아 먹고 영생(?)한다는 건 그래도 봐줄 만 하다. 이건 어떤가?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인간의 피다. 그러므로 사람을 구원하는 건 주 예수님의 피가 아니라 그분의 죽음이다.” 말이 되는가? 말이 되지 않는데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교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 무서운 교리를 주장하는 자가 존 맥아더(John MacArthur)이다, 존 맥아더는 캘리포니아주 쎈베리에 있는 은혜교회(Grace Community Church) 담임목사요 마스터신학교 학장이다. 신학서적과 신앙서적도 많이 집필했다. 특별히 한국 목회자들에게 복음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맥아더 목사의 피의 교리는 심각한 성경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이단교리이다. 1976년 맥아더 목사가 하나의 글을 출판했다. 그 글은 그리스도의 피에 관한 자신의 설교문에 대해 질문했던 자기 교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특별히 출판된 그 글은 맨 위에 “그의 피 흘림이 아니라 그의 죽으심”이
올 한해 여러 차례 진통을 겪으면서 추진해 오던 한국교회 연합운동이 마침내 성사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가운데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지난 8월 16일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오는 12월 총회는 창립총회에서 공개한 정관에 대한 수개정과 대표회장 선출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대내외에 밝혔다. 현재로선 12월 총회까지 예장통합 이성희 총회장과 예장합동 김선규 총회장, 감리교 전명구 감독회장, 한교연 정서영 대표회장에 공동 대표로 한기연을 이끌 예정이다. 그러나 우리 침례교단과 기하성총회(여의도 측)는 한기연 창립과정에서 한 발 빼고 지켜보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기연은 과거 금권선거 의혹으로 분열된 연합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임원선거를 폐지하고 상임회장단이 대표회장을 추대해 총회에서 결의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또한 특정 교단이 대표회장을 독식할 수 없도록 순번제를 채택해 한기연에 참여하는 교단의 참여 폭을 대폭 확대했다. 그동안 한교총과 한교연은 연합운동의 통합을 위해 다양한 논의를 전개했다. 이와 관련, 정관 개정 문제와 기관의 보존 문제, 법인 문제 등에 이견을 보이면서 한국
캐나다의 자스퍼 국립공원에는 에디트 카벨이라는 영국 간호사의 이름을 기념하는 아름다운 산이 있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부상병을 간호해서 탈주시켰다는 죄로 독일군에게 총살됐다. 그녀의 동상에 새겨진 유언은 애국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무에게도 미움과 쓰라림을 품지 않아야 합니다. 미국 역사상 링컨처럼 비난과 미움과 배신을 많이 당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핸더슨이 쓴 전기에는 그는 어떤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의 정적들도 다른 사람들만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를 비난하고 불평하는 사람일지라도 어떤 지위에 적합하면 친구에게 주듯이 그 자리를 선뜻 주었다. “싫어하는 사람이라든가 그의 정적이라는 이유로 누구든 면직시킨 일은 없었던 것 같다”고 써 있다. 우리의 적들과 마찬가지로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특성을 우리가 타고났다면, 그리고 그들이 인생으로부터 받은 것과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을 것이다. 오! 하나님이여, 우리가 남의 신을 신고 보름 동안 걸어보기 전에는 남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을 삼가게 하소서라는 수우족 인디언의 기도문을 우리도 외울 만큼 너그러워야 할 것이다. 적을 미워하는 대신에,
나는 요즘 글을 쓰고 싶다. 특별한 경험이나 의미 있는 삶의 흔적을 글로 남기고 싶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쉽지 않다. 현대는 지식 기반 사회로 말과 글이 넘치는 사회라고 한다. 다양한 분야의 많은 글들이 이미 쓰여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필요한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굳이 내가 또 글을 써야 하는가? 라고 자문하면서 글 쓰지 않는 것을 합리화했다. 또한 글을 잘 쓰고 싶은 바람이 글 쓰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글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쓰는 것도 의외로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글을 쓸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다른 일을 할 시간은 있는데 앉아서 글 쓸 시간은 없다. 글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목사는 글을 쓰면서 살아야 한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글을 써 주셨다. 그게 바로 십계명의 돌판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신약성경을 기록하진 않았지만 제자들을 통해 신약성경을 쓰게 하셨다. 신약성경의 절반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말주변은 별로 없었지만, 그의 글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었다고 한다. 세상의 많은 유력한
산바람 강바람이 불어온다. 계속되는 폭염 속에 전국의 인파는 바다, 강 그리고 산과 계곡이 많이 있는 강원도의 여름축제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동해안 해변 피서객이 1000만 명을 넘고 있다는 뉴스도 눈에 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D-180을 앞두고 펼쳐지는 여름휴가 시즌을 맞아 화천 문화마을에서 열린 여름축제가 열렸다. 이 축제 이벤트 가운데 하나인 ‘토마토 속 황금반지를 찾아라’에 참가한 관광객과 시민들이 토마토 세례를 맞으면서 즐기고 있는 신문의 사진들은 여름만이 줄 수 있는 볼거리이다. 계속되는 폭염에 전국의 인파들이 바다, 강, 산으로 피서를 즐기는 것은 우리들의 생활에 ‘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강원도의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들도 모두 평창 동계올림픽에 온 정성을 다하고 있는 모양새다. 모두 한마음으로 온 국민을 강원도 평창으로 초청하고 있다. “당신이 평창입니다.” 얼마나 절절한 외침인가? 그에 맞춰서 홍천강 별빛 음악축제, 영월 동강 뗏목 축제, 철원 화강 다슬기 축제, 오색 달빛 강릉야행, 화천 쪽배 축제, 섬강 축제, 평창 더위사냥 축제, 망상 야해 페스티벌, 경포 서머 페스티벌 등 다양한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영월 동강
62년 전은 한국전쟁의 상처들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을 때다. 우리교단은 전쟁의 상처를 이기고자 미남침례회와 연대해 교단을 재건하는데 힘을 보탰다. 이를 위해 교육을 일으키고 의료 사역과 복음전도 사역을 함께 했다. 또한 침례교회를 홍보하고 알리기 위해 ‘침례회보’라는 명칭으로 교단지의 첫 걸음을 대디뎠다. 교단의 다양한 소식들은 바로 침례회보를 통해 전해졌고 침례교회 소통의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15년간 꾸준하게 교단을 위해 헌신했지만 재정 운영난을 겪으면서 제169호를 발행하고 난 뒤, 자진 폐간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침례교단은 한국교회에서 약한 교세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특별히 ‘침례’라는 표기사용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공격받는 등 여러 이유로 핍박을 견뎌내며 전도해야하는 불편함이 컸다. 이에 교단 차원에서 여러 목회자들이 뜻을 모아 1977년 복간 1호를 발행하고 제호도 ‘침례회보’에서 ‘침례회신문’을 거쳐 지금의 ‘침례신문’으로 자리 잡기까지 혼돈과 방황, 성장의 길을 지금껏 걷고 있다. 본보는 현재 침례교회를 비롯해 국내외 주요 교단과 비정부기구(NGO), 그리고 해외선교지에 뿌려지고 있다. 또한 2012년 미주 침례신문
최근 몇 년 동안 한국교회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1~2세대 담임목사의 뒤를 이어 2~3대 후임 목회자로 세우기 위한 ‘세대교체’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물론 목회자의 세대교체는 중·소형 교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후임목회자 선정과 관련해 초기에는 침례교회 역시 한국교회의 주요교단인 장로교 감리교 등에서 선보인 후임 목회자를 직접 청빙(초빙)하는 방식을 따랐다. 그래서 미국 한인목회에서 부흥을 경험한 목회자나 특별히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받은 목회자가 후임 목회자로 선택받고, 영향력 있거나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지금껏 사역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유학파나 성공한 한인 목회자의 가장 큰 특징은 영성보다는 지성을 더 겸비해 설교가 깔끔하다. 대인관계도 합리적이고 무난하다. 그래서 해외 경험이 많은 한국교회의 성도들과 무난하게 소통하며 성도들은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의 사역을 돕고 있다. 이런 경우 교회도 성장하고 목회자 개인과 관련된 큰 흠집이 없는 한 목회 연착륙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모든 교회가 후임목회자 선정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한
바야흐로 여름 수련회의 계절이다. 1980~90년대 한국교회의 여름은 수련회와 사경회 참여 열기 등으로 뜨거웠다. 그 당시 여름사역은 교회와 수련회장, 기도원 등은 전국에서 모인 성도들로 북적 거렸다. 참석자들은 뜨거운 땡볕도 마다하지 않고 몇 대의 선풍기에 의지하며 옆 사람의 땀 냄새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취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체험했다. 청소년들의 방학이 있는 7~8월이 되면 수많은 수련회와 부흥성회 일정으로 기도원은 행사예약을 잡기조차 버거웠다. 교회도 유치부부터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부, 장년부 등에 이르기까지 여름행사 준비와 진행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연합 수련회가 아닌 개 교회 자체로 준비하는 수련회는 거의 전교인이 참여해 준비하고 수련회에 가지 못하는 성도들도 예외 없이 헌신했다. 그야말로 교회 여름행사는 한 부서만의 행사가 아닌 전교인의 행사였다. 20~3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의 여름행사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90년대를 정점으로 교회 다음 세대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교회학교 수련회도 자연스럽게 통합되거나 교회 행사 자체가 전교인 수련회로 변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주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정착하면서 가족 중심으로 여
내가 한국인으로 모국어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말은 우리 역사와 문화, 관습, 그리고 우리 전통들을 송두리째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민족의 의식세계에 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그 민족들이 수천 년을 그 땅에서 살아오면서 민초들이 만들어낸 속담들이야말로 그 민족성의 일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 한민족이 사용해온 속담가운데는 아름다운 속담들도 많이 있지만 내가 인생의 여정을 살다 느낀 것은 어떤 속담들은 이것들은 우리 속담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우리 사회 곳곳에는 오늘도 아니 땐 굴뚝에서 시커먼 거짓 프로파간다의 연기가 무럭무럭 피워 올라서 무수한 생사람들을 잡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옷깃 한번 스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요란한 소리들이 도처에서 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종류들의 어처구니없는 속담들을 오늘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 가운데서 내게 가장 공감되지 않는 속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모
미국 마케팅컨설팅업체 앤더슨 애널리스틱스가 미국 대학생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 삼성전자를 일본 기업이라고 답한 대학생은 무려 58%였다. LG전자 역시 응답자의 42%가 미국 기업이라고 대답했고, 26%는 일본기업이라고 대답했다. 한국 기업이라는 응답은 겨우 9%에 그쳤다. 왜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한국 정부가 국가 브랜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미국 대학생들이 한국을 모를 수도 있다. 아니면 한국 기업들이 한국 회사라고 하면 물건이 안 팔릴까봐 일부러 일본기업으로 착각하도록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사실은 미국 대학생이나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국적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한다. 과거 수입품은 대부분 일본과 독일 제품이었기 때문에 브랜드 국적이 어디인지 관심도 없고 모든 브랜드가 일본이나 독일에서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의식이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을 개척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 브랜드에서 국가라는 요소는 점차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브랜드에서 교회에도 새로운 흐름이 요구되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