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제105차 정기총회에서 새 의장단을 선출하고 우리교단에 산적한 주요 안건 등을 처리했다. 그러나 지난 정기총회에서도 의장단 선출 열기에 비해 회무처리 때 보인 대의원들의 참여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매년 정기총회 때마다 선거에만 관심을 두어 선거만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대의원들을 보며 우리교단의 암울한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지금 우리교단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오류동 총회 빌딩 매각 결의 논란 지속, 학교법인 한국침례신학원 문제, 총회 빌딩 건축헌금 운동, 개교회 협동비 확충 방안, 침례병원 살리기 문제 등이 얽히고설켜 있다.현재 우리교단은‘침례교회의 계절’을 맞이하기 위한 협력사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해 총회 규약을 준수하면서 총회와 교회, 기관과 교회, 총회와 기관, 교회와 교회 간 상호협력을 위한 관심과 지원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시점에 서 있다. 따라서 총회와 총회 임원회, 지방회, 개교회가 우리교단의 정서와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침례교회의 모든 대의원들과 공감대를 공유하기를 간절하게 기대하면서 교단발전을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먼저, 총회에서 통과한 오류동 빌딩
제105차 침례교 정기총회가 폐회했다. 이제 총회의 결의를 집행하고 미비된 내용들을 임원회가 결정해서 처리해 나갈 것이다. 성총회(聖總會)를 추구하며 성공적인 총회를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다. 강릉지역 침례교회 목회자를 비롯해, 대의원들을 섬겼던 봉사자들, 음향, 영상 스텝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했던 수많은 이들이 교단의 축제인 총회의 성공적인 진행에 물심양면 애를 썼다. 이들이 진정 이번 총회에 박수를 받아야 할 이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총회 일정에 무리가 없도록 협조한 이들이 우리 총회의 주인이다.총회 개회부터 제105차 총회장에게 의사봉을 전달한 의장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다. 회순 때마다 오고가는 고성과 공격적인 발언에 대해서도 의장으로서 공적인 위치에서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공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하고 싶다.아쉬운 점이 있다면 상정안건 처리를 둘러싸고 대의원들의 참조 발언과 의사진행 발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회에 상정된 안건대로 처리하지 않았던 점을 둘 수 있다. 사안의 중대성과 문제에 대해 대의원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면 적어도 상정안건을 올렸을 때, 보다 심사숙고해서 올려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바로
2015년 제105차 회기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선출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번 3,100여 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덕목보다 으뜸이 되는 덕목이 있다면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교단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세워질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은 작금의 교단의 여러 혼란과 분쟁들을 지혜롭게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라는 점에서 이번 지도자 선출에 무엇보다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게 된다. 이를 위해 의장단 후보자들은 보다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 문화 속에서 열심을 다해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지난 제104차 총회부터 선거공영제가 도입된 이후 2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지역 연합회나 지방회 월례회, 동기 모임, 체육대회 등 교단의 크고 작은 일에 후보자들이 직접 찾아가 지지를 호소했던 방식에서 공개 토론회와 동영상 홍보, 문자 메시지를 통한 후보자 홍보로 바뀌면서 우리의 선거 풍토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 물론 후보자가 직접 다니는 선거운동에서 후보자를 찾아야 하는 선거운동방식은 교단의 깨끗한 선거풍토를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사실
9월 정기총회가 다가오면 총회를 비롯한, 주요 기관 목회자 및 이사, 이해 당사자와 의장단 후보자까지 첨예한 긴장관계를 가지게 된다. 유독 지난 몇 년간 총회와 침례교 주요 기관과의 갈등은 여전히 풀지 않는 숙제로 나타나고 있다.이번 제104차 회기에도 국내선교회와 침례신학대학교에 대한 조사위 구성과 발표, 이로 인한 반박과 불복, 갈등은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지켜본 정기총회의 얼룩진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교단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부득이한 결의와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결의와 결정이 특정한 이들을 위한 또한 어떠한 보이지 않는 세력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제고해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이들을 조사했고 그에 대한 대의원들의 판단을 존중했으며 무엇보다 의장단 선거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릴 적도 있다. 이것이 먼 미래 교단을 바라보는 후배들에게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남게 될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 논쟁의 중심에 또한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으로 인해 교단의 역사와 방향이 바뀐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발언 하나, 우리의 결정 하나가 더욱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이번 제104차회기도
오늘날에 그리스도인들의 대하여 비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부르고 인정하고 있는가?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불러주는 것이 좋겠는가? 사람들은 우리를 부를 때 교회에 다닌다 하여 “교인”이라 부르기도 하고,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 하여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기독교의 신앙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예수쟁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아집이 심한 집단이라는 의미로 “개독” 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말을 볼 때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비쳐진 기독교가 이토록 부정적이었나를 생각해 보면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기독교인답게 살지 못했으면 이런 표현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우리 자신들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이 어떤 호칭으로 우리를 부르든, 그 안에는 그 이름이 담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인”이라고 부를 때는 단순히 교회만 다닌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 다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윤리적 기준을 갖고
한국의 기독교신학과 교회의 세속화로 인해 영적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는 신학교에서 조차 종교혼합주의가 팽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필요한 부분만 믿고 나머지는 믿지 않는 위험한 신학 사상이 지배되고 있다. 신앙고백과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기독교는 계시된 말씀을 통해 모든 가치를 부여하며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애쓴다. 개혁주의 신학과 성경적 신학을 지향하는 교회들은 이성과 경험에 의한 판단의 위험성을 인식하며 계시된 말씀을 통한 끊임없는 확인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이 로마에서 있었던 때의 일이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로마로 쏠려있었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모임에서 한국교회의 원로 목사라는 몇 사람의 회개 발표가 있었다. 그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곳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두 사건을 보면 한국교회의 혼합주의 경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속화되어 타락한 기독교의 특색은 시류의 쉽게 휩쓸려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를 종교적으로 이념화한 채 세상의 분위기와 눈길을 인식하며 쉽사리 혼합주의에 편승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의
앞으로 20여일 뒤에는 교단의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한다. 현재까지 큰 변수가 없는 한 총회장 예비 후보로 등록한 이들이 대의원들의 현명한 판단이 이뤄질 것이다. 물론 일부 대의원 중에서는 ‘교단의 지도자가 이렇게 없냐?’ ‘뭔가 참신한 이가 출마하면 안 되나?’ 등의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현재 총회 규약 상 제1부총회장을 지낸 이가 총회장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나타나는 상황이다. 교단 규약을 떠나서 3,100여 교회를 대표하는 총회 지도자는 무엇보다 교단 전체를 생각하고 교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교단에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과 사업, 교단의 문제를 객관적어로 판단하고 무엇보다 기도하는 지도자를 기대한다.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교단 지도자들을 통해서 여러 공약들을 듣고 이를 지지하며 그렇게 교단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협력보다는 갈등과 분쟁을 조장하고 내실을 기하는 총회 사업보다는 이벤트에 치중하며 자기만족을 주는 총회 업적을 치켜세우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무엇보다 협력 사역으로 상생해야 하는 총회와 기관들은 크고 작은 사안에 대해 이견차를 보이며 협력보다는 서로 간 반목하고 한쪽에서는 총회의
교회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영적 성장의 침체와 더불어 교회부흥의 어두운 미래가 예상된다. 적잖은 목회자들과 교회의 중직자들은 이 문제로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것이 현재의 현실이다.어떤 영역에서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는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다. 교회성장이라는 고지에 도달하는 데에도 적잖은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장애물을 무사히 통과한 자 만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장애물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애물의 정체성에 대해 면밀히 연구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교회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첫째는 심리적 장애물이다. 교회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무엇보다 숫자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이다. 숫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내적 관계만이 중요하다는 태도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숫자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구원받은 영혼임을 명심해야 한다. 작은 교회가 최선이라면 극단적으로 말해 가장 좋은 교회는 한 사람이 모이는 교회일 것이다. 크던지 작던지 교회의 사이즈가 문제가 아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대해 얼마나 헌신하는 것이 이슈의 초점이 돼야 한다. 잃어버린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이야
대화 속에서 남의 말을 제대로 듣고 이해하기 전에 나의 생각과 판단을 결정해 버리면 모든 인간관계의 ‘적신호’ 오고 만다.더욱 중요한 것은 좋은 미래를 기대하려거든 상대방을 이해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모든 일에 올바른 사리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사물을 바로 보고 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한쪽 편에 기울어져 있으면 상대편을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특별히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남은 전부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해버리면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모자라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물을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혼돈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판단은 쉽지만, 가치판단은 어렵기 때문이다. 왜 가치판단이 어려우냐? 판단자의 주관과 감정,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라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 악에서 떠나 선한 일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쫓으라.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 중 하나는 ‘기쁨 없는 수고’일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참교육이 포기된 시절을 보내고 취직하기 위해 대학생들은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직장에서 기쁨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황폐함 속에서 소외와 갈등과 불안을 안고 살아야한다면 너무 불행하지 않을까? 20세기 초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생산은 증대됐지만 자동화로 인해 인간은 소외 가운데 자기 노동의 결과를 발견하지 못하게 됐다. 수세공과 제작이 있던 과거에는 어떤 성취를 이뤘지만 이제는 한 자리에서 매우 단순한 한 가지 일만 해야 한다. 쉬는 시간외에는 늘 혼자 자기의 자리를 지켜야 하니, ‘기쁨 없는 수고’란 말이 생기는 것이다. 사무직은 조금 나을까? 작은 톱니바퀴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동은 하지 않지만 성과에 대한 압박과 동료들과의 무한 경쟁 그리고 소위 명퇴와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은 그들 역시 ‘기쁨 없는 수고’를 하게 만들었다. 행복한 노동을 위해서는 직장 선교를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성경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였지만 동족을 돕고자 이집트인을 살해한 일로 미디안 땅으로
얼마 전 한국의 무슬림 신도들이 한국을 무슬림의 나라를 만든다는 명분의 하나로 태극기를 등에 걸고 결사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슬람의 세력의 한국 침투는 매우 전략적이다. 지난 2005년에도 한국이슬람연맹에서 출판한 ‘한국이슬람50년사’에는 이들의 선교전략이 소개되고 있다. 첫째, 사원 건립, 현재 있는 서울 중앙서원을 비롯해 9개의 이슬람 서원, 4개의 이슬람 센터와 50여개의 임시 예배처소를 점차적으로 확대하고 한다. 2015년 7월 초, 전국적으로 이슬람 예배처소는 수를 헤아릴 수 없게 됐다. 농촌까지 파고 들어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둘째, 국제 이슬람학교, 설립, 무슬림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한 교육시설이라는 명목으로 영어로 가르치는 초등학교, 유치원 및 어린이집을 만들어 어려서부터 이슬람을 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저렴한 가격에 운영된다면 많은 한국인 부모들이 자녀들을 그곳으로 보내고 싶어할 것이다. 셋째, 이슬람 문화센터 건립, 이슬람 문화센터를 다와 센터라고 부른다. 문화센터에서는 많은 이슬람국가들이 언어교육부터 시작하여 상설 이슬람 교리강좌 등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 이슬람을 뿌리내리
동성애 합법화 반대한다동성애자를 널리 지칭하는 게이(gay)는 어떤 말에서 유래했을까? 영어의 게이는 ‘기쁨, 즐거운’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게(gai)’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에 게이에 성관계로 쾌락을 즐긴다는 의미가 추가됐고,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말로 확장되었다.동성애자들이 비정상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호모(homo)’보다 게이라고 불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성 동성애를 뜻하는 레즈비언(Lesbian)은 에게해에 있는 레스보스(Lesbos) 섬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고대에 이 섬의 여성들 사이에 동성애가 활발했다고 한다.미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자 백악관은 동성애 단체들이 즐겨 사용하는 무지개 색으로 백악관 조명을 밝혔다. 왜 무지개 색이 동성애를 상징화게 됐을까? 맨 처음 주창한 사람은 화가 길버트 베어커였다. 그는 1978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곡인 ‘무지개 저편’(Over the rainbow)에서 영감을 얻었다. 무지개가 성적인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베어커가 만든 깃발은 7가지 무지개 색에 분홍색을 더해 8가지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분홍색과 남색 천은 구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다음세대를 생각하자지금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가출한 청소년의 숫자는 이미 전염병적인 규모에 도달했다고 한다. 소망을 빼앗긴 아이들은, 그들이 갈구하는 흥분과 자유를 찾아 대도시로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대도시에서 방황하다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른 그들에게 음식과 쉴 곳을 제공하는 사람은 대부분 마약 밀매꾼과 포주들이다. 불행히도, 가출 청소년 중 수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십대를 넘기지 못하고 살해되거나 약물 남용 또는 자살로 죽는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부모와 함께 중보기도를 하면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다고 한다. 한 예로, 몇 년 전에 가출하여 여러 달째 소식이 없던 아들을 둔 한 어머니와 함께 아이를 바르게 인도해 달라고 믿음으로 마치 목숨을 걸린 듯이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아이와 관련된 어둠의 세력들이 괴멸됐다고 한다. 이 아들은 정신적, 육체적, 정서적, 그리고 영적으로 매우 피폐해져 있었지만, 어째든 돌아왔다. 그가 그러한 상태에서 수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를 눈동자처럼 보호하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 때문이다. 소년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회복됐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사람하며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우리나라 국정공백 상태에 이른지가 50일을 넘겨서 새로운 국무총리가 인사청문회를 통해 임명됐다. 이제는 모두가 협력해 국가의 재난과 같은 메르스 퇴치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시기에 황교안 국무총리가 세워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을 세웠음을 믿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많은 직업이 있지만 꼭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사람을 세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려 함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과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반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나간 세월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이 있느냐는 것을 기준으로 고상한 직업과 천박한 직업으로 나누었던 과거가 있다. 그리고 구분으로 인해 직업에 따른 신분 계급이 이뤄졌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세상에 많은 직업들이 있지만 모든 사람들은 다 편안하고, 보수가 많고, 여가 시간이 많은 직업을 원한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일만 할 수 없다. 우리의 지체 중에는 손만 있지 않고 발도 있으며, 보이는 지체만 있지 않고 보이지 않은 지체도 있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흔히 말하는 좋은 직업도 있어야 하지만 힘든 직업도 있어야
시대가 악하고, 변덕스러우며, 죄가 극에 달할수록 변종들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음을 그리스도인들은 깨달아야 한다.요즘 새로운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중증급성호흡기질환 일명 메르스로 난리다. 2012년부터 중동지역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나타났으며 15년까지 천 명 이상의 감염자와 4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또 다른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인 사스(SARS)보단 떨어지나 치사율은 30~40%로 사스(약 9.6%)보다 높다.지난 5월 20일 한국에서 메르스 최초 감염자가 확인됐다. 6월 4일 기준으로 메르스 의심환자는 601명 격리대상자는 1,667명에 이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가 없다.3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초로 메르스 감염환자가 발견됐다. 이후 2014년 3월까지 200여명의 환자가 발생하다 2014년 4~5월 사이 갑작스레 300여명이 넘는 메르스 환자가 보고되어 논란이 됐다. 같은 해 7월 이후 감염자는 점차 줄어들었으나 현재까지도 매달 수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유럽질병통제센타(ECDC)에 따르면 2012년 4월부터 2015년 5월 30일까지 총 25개국에서 1,172명의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했으며